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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의 관계 어때? 25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25 0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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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아트도 받은김에 말해보자면 이제 30화 이내에서 완결 예정!!!








또각-


또각-


또각-


엘사는 걸음걸이도 넓고 일정하다.

흐트러짐 없이, 언제나 완벽하게.

엘사는 안나의 앞에 선다.

예전의 자기 자리를 쓰고 있는 그 앞에 우뚝.


"안나, 잠깐 시간 될까?"


괜히 티낼 필요 없어.

무표정하고 심드렁한 평소 말투로.

일상적인 모습 그대로 담백하게.

안나는 귀찮음과 강력한 거절의사를 담은 짧은 한숨을 쉰다.


'바로 거절 당한다. 아니면 뻘줌하게 날 선 대치만 일어날거야.'


고개를 미친듯이 휘휘 저어서 허무한 상상을 떨쳐낸다.

엘사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왜 이렇게 어렵지.

시나리오가 돌아가지를 않아.


다시 한 번 크로커스 바를 찾아가본다.

밖의 출입구를 한 번.

계단을 내려가면서.

호흡을 고치고.

입장.....

이런, 종업원 한 명이 응접하러 왔다가 알아본다.


'죄송하지만 손님은 입장 불가세요.'


'제가 왜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있는 분이니까요.'


문 앞에서 막힌다.

그 어줍잖은 새내기 바텐더랑 실랑이가 벌어지겠지.

첫 관문으로 막아선 초보자는 별 문제가 안된다.

그저 날카롭게 내려 깔아보기만 해도 겁에 질릴게 분명하니까.

고고한 위압으로 너는 당장 꺼지고, 다른 사람을 데려와.

눈빛 하나로도 질려버리게 할 수 있다.


'무슨 일이야? 너는 들어가 있어. 이 사람은 내가 상대할게.'


조명이 아슬하게 닿는 바 끝자리에 안나가 있다.

그 웬수 같은 망할 기집도.

에리사는 사람 좋은척 싱글대면서 엘사 앞에 설 것이다.

손톱을 까끌거리면서 여유롭게.


'아직 블랙리스트 철회한다는 말은 안했는데.'


'비켜, 안나한테 볼 일이 있는거니까.'


'흐음, 안되는걸. 바의 규칙이야. 여기는 내 가게고. 그러니까 내가 법이지. 무엇보다 안나 입장은 생각해봤고?'


'그 안나의 입장에 맞추려고 온거야. 제삼자는 빠져 있어.'


'어머나, 완전 제삼자가 아니라서 못 빠지겠는데?'


에리사는 능글능글 헤실거릴거다.

생각만해도 절제가 안돼.

안나가 긴장하며 엘사와 에리사를 눈 여겨 볼 것이다.

에리사는 다분히 흥분하길 바라며 도발해댈거고.

에리사의 어깨를 밀쳐버리고 강제로 들어가볼까?

에리사는 별로 붙잡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안나는 고개를 흘긴다.

엘사가 가까워질수록 딴청피우며 술잔만 바라보면서.


"안나."


결국 이름을 부르고 마주하면 마지 못해 답할거다.


"여긴 왜 왔어요. 블랙리스트시잖아요."


"그런게 중요해? 어차피 회사에서도 볼거잖아."


"이제는 별로 볼 일 없겠죠. CEO가 되신 대표님과 남들보다 아주 조금 승진이 앞당겨진 매니저라는 차이가 있는데요."


포기하듯, 그리고 제발 가란듯.

안나는 이 악몽이 끝나길 바라는거 같다.


"사과하려고 왔어. 다른 짓 하지 않아."


"사과요?"


안나는 어이가 없다는듯 콧웃음칠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안나의 냉소적인 태도.

뒤에서는 비웃고 있는 에리사의 승자의 태도.

엘사는 앞뒤에 적의를 두고 발이 묶이고 있었다.


"잠깐만 나가자 그편이 더 잘 설명할 수 있어."


"나가면요? 이번에는 저에요? 에리사를 곤죽이 되도록 패놓으신걸로도 못 참으시겠냐고요."


안나는 경멸과 혐오를 담은 강한 눈빛으로 응수한다.

식은땀이 흐른다.

안나는 피식하고 비웃음으로 템포가 바뀐다.


"하긴, 이미 저도 뺨을 맞아봤죠. 대표님은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


"아, 아니야. 나는 정말로......"


"사과한다는 말 쉽게 하지 말아요. 사과하는게 뭔지도 모르면서! 알지도 못하는걸 뻔뻔스럽게 양심 세탁하듯 하려들지 마시라는거에요!"


정신이 번쩍 든다.

이것도 틀렸다.

어떤식이 됐든 안나와 멀어질 뿐이다.

엘사는 머리를 북적북적 긁어댔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

안나와 단둘이어야 하고.

반드시 마주보는 상황.

전화나, 메신저 따위가 아니라 입과 눈으로.

그 상황을 끌고 간다고 해도 그 다음은?

여태까지 무자비하게 욕심낸 과욕과 수 차례 보여준 전과들은?

안나의 마음 과녁에 깊이 박혀진 과거가 가장 걸림돌이었다.

엘사로서는 전혀 방법이 없을 정도의 외통수.


엘사는 고민으로 발을 두들기다가 멈췄다.

가장 큰 고민은.....따로 있었지.

안나를 감싸쥐고 있는 망할년.

에리사부터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게 순위다.


엘사는 그렇게 과정을 바꿨다.

다행이라면 에리사는 엘사에게 여지는 있다.

그게 엘사를 놀리려는 심보인지, 비웃으려는건지 몰라도.


"크읏....."


엘사는 미간 사이를 좁히며 이를 갈았다.

에리사라는 여자는 극상성이다.

엘사가 자신의 성공가도에서 이런 상성을 처음 만나봤기에 더욱 어렵다.

교묘한 언변은 둘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번지르르한 말을 할 뿐이지.

문제는 매우 도발적이다.

엘사는 먼저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게 굴욕이라 여겼다.


사과?


'그래, 그 목적이지.'


엘사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꾸깃꾸깃 구겨진 명함을 펼쳤다.

검은 크로커스 문양이나 Ban이라고 적힌 글씨가 형태가 없을 정도.

이건 언제 구겨버리고 찢어발기려 했는지.


'남겨놓기를.....잘한건가.'


엘사는 안도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것도 없이 찾아갔다면 무슨 놀림을 당했을지 뻔히 보인다.

또 그 잘난 여유와 비웃음.


'내가 준 명함은 갈기갈기 찢어놓고선 무슨 낯짝으로?'


팔짱을 끼고 곤란하다는듯 꺼덕거리는건 진짜 못 참았을거다.


'아니, 아니지. 내가 지금 아쉬운 처지야.'


엘사는 생각을 고쳐보려고 발악을 했다.

자존심을 내려보라던 아그나르의 말이 이런 것도 포함이었을까.

그럴수록 엘사는 핸드폰만 붙잡았다.

최선은 아니지만 우선 전화라도 된다면?

회사, 바.

그 두 공간만 벗어나도 충분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지.

더 운이 좋다면 전화로 닿는 음성으로도 전할 수 있을지도.


물론, 엘사의 전화 따위는 일체 받지 않는 중이지만.


"헙? 안나?!"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안나의 이름과 번호!

엘사의 눈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흐흠, 크흠! 아, 아아!"


엘사는 곧 바로 목을 풀었다.

원래 목소리를 내지 말고 조금 톤을 올려본다.

그리고 호흡을 고친 이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


안나의 목소리!

엘사는 그것만으로 화색이 돌았다.

톤, 조금 더 높인 톤에 집중해!

반색하는 느낌이 들게!

엘사는 그렇게 한 번 더 생각하고 답했다.


"안나. 무슨 일이야? 저, 전화도 안 받는거 같더니."


엘사는 바보 같이 어정쩡한 연극톤이 된 것에 인상 구겼다.

말은 왜 더듬었고!

이건 완전히 NG야!

하지만 안나는 무미건조하게 바로 이어갔다.


"사장님께서 새로 들어온 거래처 관련해서 시간이 촉박하니까 대표님의 판단을 들으라고 하셨어요. 이제 자기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까 휴가중에 양해를 구하고 이것만 부탁드린다는 말도 덧붙여서요. 근데 회사에 저 말고는 대표님에게 물어볼 사람이 없네요."


엘사는 사적인 얘기가 아니라 딱딱한 사무 일에 실망했다.

더 실망인건 지독하리만치 기계 같은 안나의 말투였다.

지금은 본인만 휴가중임을 잊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독하게 일에 매진하고 있을 때지.


"관련 서류 메일로 보내드렸어요. 대기하고 있을테니까 컨택하시면 말씀주세요. 쉬시는 날에 죄송했습니다."


안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끊으려했다.

최대한 간결하게.

나머지 의사는 이제 말로 하지 않고 메일로만 하고 싶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잠깐만 기다려봐 안나!"


".......네."


신기하게도 알 수 있다.

공적인 초점에서 사적인 초점으로 넘어가는 기류를.

엘사는 몇 가지나 되는 상상으로 그리던 말을 목구멍에 채웠다.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나오는건 쉽지 않지만 억지로.

목 근육 하나, 하나와 혓바닥을 쥐어짜낸다.

적당히 좋은 멘트 구성도.


"사과할 수 있을까? 너한테 연락하려고 했었어. 내가 잘못한거. 뻔뻔한 철면피가 아니라 진심으로."


전화 건너가 조금 부산했다.

대답도 바로 이어지지 않았고.

아마도 안나는 잠깐 자리를 피해 어딘가로 향하는 중인거 같았다.

사람이 조금 없을만한 곳으로.


엘사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전화가 끊어진건 아닌가 싶어 확인해보기도 했고.


"죄송해요 대표님. 잠깐 자리를 피하느라요."


"괜찮아. 이해해."


"사과요? 어떤 사과를 말씀하시는건데요?"


안나의 말은 여전히 딱딱했다.

조금도 부드러워지거나 풀리는거 같지 않아 보였다.


"전부 다! 내가 너무 히스테릭했어. 이런 말 구차한거 알지만......나는 그런 방식으로만 살았어. 그게 정말로 너를 박하게 대하고 그러려던게 아니였어."


"제가...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알아, 알고 있어. 너한테는 어이 없고 뻔뻔스럽게 느껴질거라는거."


"에리사에게는요? 제 사람한테 그런 만행을 저지른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것도 사과 하나면 끝나는 일이겠죠."


"아, 아니야. 그건...에리사는 얘기하지말자. 나는 너에게 사과하는거니까."


엘사는 제 사람이라는 표현에 노여운 감정이 들었다.

그 하나로 자신과 완전히 선이 그어지는 느낌이라서.


"대표님, 말씀은 알겠지만..."


"알아! 전화로만 얘기하려는거 아니야. 만나서 얘기하자. 딱 한 번만 기회를 줘."


"하아아....."


엘사는 구차한 자신의 절절함이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추할만큼 추한 모습 다 보인 마당인걸.

그러면서도 전화에 들리는 안나의 한숨에 절망감이 찬다.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너무 뻔한 스토리랄까.


"그만 끊을게요 대표님. 아무래도 역시 받을 수 없어요. 솔직하게 제 감정을 말하자면 대표님이 정말 미안한건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그저 양심 탓인지, 자기 성과물을 고스란히 뺏겨서 안달인건지. 설령 정말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사과하면 받아줘 하는게 저에게 맞는 건지 그것부터 의심스러우니까요. 그냥 전부 이기적이라고 밖에 안 느껴지니까요."


"이기적? 절대 아니야 절대로!"


"끊을게요. 사장님께서 조금 급해보이셨어요. 답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나? 안나!"


전화는 단호하게 끊겼다.

엘사의 마지막 부름은 거실에 흩어진다.

엘사는 곧장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봤다.

습관처럼, 잘못된 프로세스를 찾아가는거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제자리 걸음이다.

안나는 엘사를 받아줄 여유가 없다는 것.

자기 사람인 에리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


엘사는 울컥하고 치솟는 감정에 핸드폰을 꽉 쥐었다.

내던져 버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느라 진땀을 뺀다.

뇌의 파편 어딘가 깊숙히 자리잡은 위탁모가 속삭이고 있거든.

보고 배운대로 하라고.

안나에게 심드렁하게 새 핸드폰을 줬다 거절당하고 박살낸 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걸 상기하며 엘사는 크게 숨을 쉬며 삭혀낼 수 있었다.


"젠장, 젠장!"


엘사는 소파에 추락하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복잡해진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정리하기 위해 생각 자체를 잘라버린다.

한니발처럼.


회사 메일을 켜보자 역시 또 안나가 찍혀있다.

파일들을 열어 넘겨가는건 왜 이렇게 쉬운지.

몇개나 되는 거래처들의 정보는 쏙쏙 담겨 들어온다.

오랜만에 일을 잡으니까 흥분이 되기까지 하는데 이게 안나와의 통화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엘사는 불과 수 십여분 안에 추려낸 사항들로 메일 답장을 쓰고 있었다.

답장을 쓰는 과정에서 또 옛 생각이 떠오른다.





"착하게 살렴, 엘사. 오늘은 그게 전부란다."


성모 마리아님......

엘사에게는 엄마 같았던 수녀님.

수녀님은 시간이 날 때면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엘사를 앉혀놓고 가르치는건 아니다.

어차피 똑똑한 엘사는 스치듯 말해도 기억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라고 한다면 아마도 엘사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착하게 살면 그 사람만 바보인데요."


엘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정답이라 생각했다.

수녀님은 세탁한 다른 수녀복들을 빨래줄에 걸고 있었다.

하나를 털어내고 빨래 집게에 물리면서도 입은 쉬지 않는다.


"착하게 살면 바보가 된다는건 맞는 말이란다 엘사. 세상은 대부분 나쁘게, 순화하면 감정적이게 사는게 훨씬 쉽고 간편하거든. 감정을 쏟아내고 남을 상처주고 날을 바짝 세우는건 내가 상처 입지 않아. 상처 입는건 언제나 다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착하게 살려고 하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자기가 받아야해. 착하다는건 상처를 딛고 인내해야 한다는게 기본이니까 말이지. 하지만 정말 괴로운 것은 그 착함의 보상은 아무도 해주지 않는 것이 더 슬픈 일이야."


엘사는 듣는둥 마는둥이었다.

사실 나름대로 경청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그렇게 했다.

나름의 사춘기적인 반항이기도 했고.

이미 나쁘게 살아온 엘사의 반동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엘사, 나는 반드시 너에게 착하게 살라고 말하려고 한단다. 왜 그런지 알고 있니?"


엘사는 다음 빨래를 꺼내서 건네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감정의 날을 세우고 살아가는건 사실은 더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야. 그에 비하면 착하게 사는 건 훨씬 더 쉽고 간단한 길이지. 날을 세우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혼자서 잘해야해. 결국 전부 모든 일을 혼자서만 해야하지.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베여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얼마 안가서 혼자만 남게 된단다. 아니면 애초에 혼자라서 더 날을 세우는 것이기도 하고. 불행한 것은 그 사람이 남들을 베는 만큼이나 자기 자신의 내면도 상처낸다는거야. 착하게 사는건 어떨까 엘사? 네가 말해볼래?"


"바보 멍청이요. 더 말할게 있나요."


"후후훗, 정답이야. 착하고 순종적이고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란다. 모두가 무시하고 얕보고는하지. 하지만 좋은점이 뭔지 아니?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고, 아주 작은 것만 잘해도 박수를 받는단다."


"실수하면 혼나겠고, 잘하면 당연한거죠."


수녀님은 다음 빨래를 건네 받을 때는 빨래 집게를 잡지 않았다.

대신에 살짝 무릎을 굽혀 엘사의 머리를 넘겼다.


"누구나 그렇게 배우는거란다 엘사. 그게 바로 착하게 사는 보상이야. 착한 바보들은 혼나면서 배우고, 당연히 잘하는 법이 없어. 시행착오를 두 번씩, 세 번씩, 열 번씩 겪기도 하지. 하지만 착한 사람은 절대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아. 그들은 항상 두 번째, 세 번째, 열 번째 기회를 받는단다. 왜 그런지 아니? 그들이 남들보다 바보라서야. 감정을 내세우고 남들을 베어대며 잘하던 사람은 반대란다. 조금만 틀어져도, 사소한 것만 실수해도 꼬투리를 잡히지. 사방에서 그런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안달을 내. 저 사람이 없었으면, 저 사람한테 악감정이 남아서 그런 이유들로. 내가 말하는 차이를 알겠니 엘사? 인생에서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는단다. 그때 너에게 기회가 또 있을지 없을지. 그건 네가 착하게 살았는지 나쁘게 살았는지에 달려 있어. 나는 부디 네가 수 천번, 수 만번 기회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단다."


엘사는 대답을 꾹 삼켰다.

'그러면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면 되겠네요.'

그렇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수녀님이 이내 다시 빨래를 널기 위해 일어나 그러지 못했다.


"덧붙이자면, 착하게 사는 사람은 최고의 보상을 받을 때가 온단다. 바로 내가 엘사, 너를 만난 것처럼. 엘사도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날거야."






엘사는 업무 메일의 답장을 완성하고 안나와의 대화를 덧붙여볼까 했다.

물론 생각만하고 있는거다.

엘사는 업무체로 된 간단한 지시사항과 근거들을 써서 답장을 보낸다.

왜 다른건 이렇게 쉽게 되지 않지?


엘사는 어떤식이든 두 번째 기회가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간 나쁘게 살아온 탓이겠지.

수녀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살았더라면......

그때의 오만한 대답을 생각했던걸 후회한다.

수녀님조차 의심해서 도망칠 궁리나 하던 치졸함도.


엘사는 다시금 구겨진 블랙리스트 명함을 쳐다봤다.

남은 패가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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