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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피스물의 관계 어때? 26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28 18:37:51
조회 558 추천 1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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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스 바는 적적했다.

적적한만큼이나 칙칙한 분위기였다.

엘사의 앞에 지난번의 맥켈란 레드 컬렉션이 그대로.

이름까지 적어서 고스란히 보관된 위스키는 작은 잔을 갈색빛으로 물들였다.

바 건너의 에리사는 드레스의 슬립을 고치며 다른 위스키를 가져온다.

두 사람은 서로 바 테이블을 두고 약간 비스듬하게 마주했다.


"흐음, 으으음."


에리사는 콧노래를 흥얼댔다.

노래인지 단순히 콧방귀인지 애매했지만 여튼.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공간을 매꾼 구겨진 명함.

에리사는 명함의 몇 군데 찢어진 부위를 손톱으로 눌러 폈다.


"참 곤란한 상황인거 알고 있죠? 그쪽 성미 같으면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제 어깨라도 치고 갈거 같더니 생각외로 예의바르게 와서 놀라기도 했고. 아무튼 여러가지로 제 입장에서도 곤란스럽게 만든다니까."


엘사는 말 없이 눈을 감고 위스키를 넘겼다.

빼지 않고 한 번에.

그리고 다시 잔을 채워놓을 뿐이었다.


"이렇게 될줄 알고 있었잖아."


"후훗, 제가 어떻게요? 점쟁이라도 될까봐서요?"


엘사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위스키 병을 스윽 돌려보였다.

이름과 왔던 날짜가 라벨링 된 포스트를 보여주자 에리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손님이 남기고 간 보틀은 원래 보관해줘요."


"하, 어련하겠어."


"난폭한 인상으로 나올까봐 걱정이었는데. 직원들도 급히 연락해서 다 쉬라고 했어요. 가게 문도 닫았고. 나름대로 사장님이라면 사장님인데 흠씬 두들겨 맞는 모습 보이는건 위엄이 안 살잖아요. 근데 또 마냥 그렇지는 않으시네. 왜 그럴까? 지난번이 조금 격하긴 했죠?"


에리사의 이죽거림.

잘못을 추궁하는 이죽임이었다.

엘사는 또 한 번 위스키를 삼킨다.

면이 살지 않고 자존심도 구겨지지만 쓴 위스키로 덮어버린다.


"하아아. 그래, 그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 온거야. 정말로 진심으로."


에리사는 눈썹을 까닥댔다.

놀리는건지, 그냥 아무 생각 없는데 엘사만 과민한건지.

침묵을 지키는걸 보니까 만족스러운 사과가 아니었나보다.

엘사는 낌새가 이상해지기 전에 다시 덧붙였다.


"너무 흥분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통제할 수가 없어서 마치...마치, 나지만 다른 사람이 되는 그런 느낌이었던거야. 정말로 그 일은 용서 받고 싶어."


"후훗, 좋은데, 존중이 있었으면 하는데요."


"존중?"


"음...무슨 일이든지 그렇잖아요? 공식적이라는게. 공연히 사과를 말하자면 존칭과 경어로. 진정성을 느끼려면 그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느껴지니까요. 표현이 이거 다르고 저거 다르고 큰게 아니라 사소한 차이니까."


엘사는 입 안쪽을 깨물었다.

손이 떨려오지만......

포기하듯 체념한다.

한 발만 물러서서 생각하자.

에리사는 굴복을 원하는건 아니니까.

이건 굴복하는게 아니다.

말 그대로 진정성을 위한 '표현'이지.


엘사는 마음을 잡고 조금 반듯하게 허리를 폈다.

잠깐만 말 없이 목을 가다듬고.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뱃전부터 끌어올릴 태세를 마친다.

그 상태로 바에 기대어 구부정한 에리사를 내려다 본다.

에리사는 그 기세가 마음에 들었다.

과연 어떤 말이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고.

엘사는 후! 하고 짧게 숨을 뱉으며 시작했다.


"그때 일은 죄송했어요. 경찰에 폭행 죄로 신고할 수도 있었고 저를 벌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넓은 마음 씨도 감사하고요. 어떤 보상으로 보은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에 앞서 정말로. 진심으로 사죄드릴게요."


엘사는 딱 한 번 쏟아내고 위스키를 마셨다.

조금 불쾌함을 담아 잔을 내려놓는다.

거기까지 에리사는 눈으로 쫓아가더니 구부정한 몸을 일으켰다.


"혹시 생각해온 말이였나요?'


"지금 생각하고 느낀대로 말했을 뿐이에요. 진.정.성을 담아서."


"애드리브가 엄청나시네. 연기력도. 정말 진정성이 뭔지 딱 느껴졌다니까요. 별로 대단한 말도 아니었지만 감동이였어요."


에리사는 엘사가 또 잔을 채우려 하자 자기가 대신 채워줬다.

건배 제안을 하자 엘사는 부딪히진 않고 허공에 살짝만 들어 보였다.


"우리 사이가 정말 껄끄러운게 많죠?"


"......"


"아참, 이제 편하게 말해도 좋아요. 사과는 충분히 받아서 기분이 풀렸으니까. 생각보다 뒤끝이 없는 편이거든요. 그걸 안나가 좋아하기도 하고."


"면전 앞에 두고 놀리는건 거북해지는데."


"놀리다니요. 이것도 없는걸로 해요"


에리사는 이미 걸레조각이 된 명함은 반으로 쭉 찢어발겼다.

그리고 바닥에 아무렇게 휘 던져버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엘사,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어때요? 당신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보상은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한 합의금보다 배를 말해도 좋아. 거기에 오늘 장사 못한 비용까지 얹어도 좋고."


"으음, 그런건 신경 안 쓴다니까요. 덕택에 배에 약간 멍이 남아 있긴한데 그건 내 사랑이 따로 위로해줬으니까...아무튼 이번 기회에 앙금을 다 날리고 친구가 되어봐요."


"자꾸 신경 긁을 속셈이라면 절반은 성공했어."


"나한테 사과는 명분이잖아요. 진짜는 따로 있고. 그러면 선 그어놓은채 을로 시작하는 불리한 비즈니스보다 친구가 되어서 부탁을 해보는게 가능성 높아 보이지 않아요? 나라면 그럴거 같은데."


맹한척 힘 있는 에리사의 눈빛에 속내를 꿰뚫렸다.

엘사는 순간 바뀌는 흐름에 움찔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이 여자만큼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긋날대로 어긋난 본인보다도 훨씬 뒤틀린 기형아라고.


"건배할까요? 버디."


"......"


엘사는 이번에 내민 건배 제안은 피하지 않았다.

어딘지 당하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쨍! 하고 잔이 부딪히자 에리사는 기분 좋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이제 편하게 말해도 되는걸까? 엘사? 그 동안은 솔직히 이랬다 저랬다 애매했거든. 우리 사이가 애매하게 껄끄럽듯."


"마음대로해. 어차피 네 마음대로 했던거잖아."


"좋아, 이제야 마음이 조금씩 통하는 기분이야. 솔직히 우리는 정말 친자매 같은 느낌도 들잖아? 생긴 것도 그렇고. 그건 진짜 나도 깜작 놀랬거든. 너도 그랬을거 같지만."


에리사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대각 위치에서 엘사 맞은편으로 왔다.


"한 잔 더? 나는 오늘 취하도록 마셔도 괜찮은데. 안나는 잠깐 잊어버리자. 오늘은 너랑 나. 이렇게 둘만."


엘사는 먼저 에리사의 잔을 채워줬다.

에리사도 넘겨 받아 엘사의 잔을 채운다.

또 건배.

이번에는 처음보다 조금 소리도 컸던 거 같다.


"간만에 피워보네."


지난번의 이산화질소를 빨아들이는 모형 담배가 아니었다.

에리사가 꺼낸 담배갑은 꽤 오래된 모양새였다.

색 바래거나 구겨진 모습과 그 안에 담긴 몇 개비만 보더라도.

에리사는 기다란 담배 홀더에 끼워서 불을 붙였다.


"안나는 담배 연기를 싫어해."


"알고 있어.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지. 그런데 오늘 안나는 상관 없다고 했잖아. 콜록! 아, 이거 오랜만이라서...너도 한 번? 아니면 이거라도."


"치워!"


에리사가 이산화질소 모형 담배를 건넸지만 질색하며 쳐냈다.


"이게 원래 내 모습이야. 퇴폐적인 썅년. 엘사 넌 어떻지?"


"마이웨이인 개썅년."


"푸흐흡! 웃으라고 한거야?"


"진심으로 한 말이야."


에리사의 전화가 울린다.

엘사는 순간 아니길 바랬지만서도 안나의 전화다.

하지만 에리사는 엘사를 보더니 말 없이 전화를 무음으로 돌린다.

그리고 정말 관심 없는듯 뒤로 돌려둔 핸드폰을 바 테이블 끝으로 쭉 밀어버린다.


"오늘은 정말로 신경 쓰지 말자니까. 너랑 진지한 얘기도 나눠보고 싶고."


"미움 받을건데. 연락이 안된다고 안나가 초조해할거야."


"원래 그런걸 즐기는거지. 너도 그랬을거잖아? 안나가 불안해하거나 위기를 느껴할수록 짜릿한 희열. 그럴수록 매달리게 되는 모습들이라던가."


엘사는 마지막 잔을 비워냈다.

절반 정도 남았는데 어느새 그걸 다 마셨다.

에리사는 위스키 병이 비기 무섭게 자기가 마시던걸 들이밀었다.


"취하도록 마시자고. 건배."


"......흥."


엘사는 이 기분이 썩 불쾌하지는 않았다.

칙칙한 바가 아늑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니까.

술기운에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엘사는 고개를 살짝 흔들어 정신을 잡았다.


"안나한테 들었어. 바람잡이를 꽤 잘했더라. 자기 말고 몇 명을 만나봤냐고 묻더라고."


에리사는 후~하고 담배 연기를 뿜었다.

처음에는 조금 콜록이더니 금방 또 적응한다.

엘사는 눈빛을 바로 잡았다.

취기 오른다고 맹하게 있을건 아니니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싶어. 지금에 충실하면 되는걸."


"행실이 별로잖아. 과거 구린 회사는 별로 상대하기 싫지. 안나도 마찬가지일건데."


"아쉽게도 상투적인 회사 일이랑 감정 따르는 인간 관계는 조금 다른가봐."


"과거가 어떨지 뻔하네. 문란하고 더럽고."


"후훗, 원래 나쁜 일은 더 매력적이지. 그래서 너도 나쁜년이잖아?"


다시 건배.

엘사는 나쁘다는 표현에 부정은 안한다.

알고 있으면서 하는 더 악질인 사람이니까.

동질감을 자극하며 능구렁이처럼 빠져 나가서 할 말도 없었다.

더 말해봐야 머리만 아프겠지.


"우리 집은 거지 같은 집이였어."


에리사는 잔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댔다.

갑자기 푸념하듯 말하길래 엘사도 마음속으로 하던 욕을 멈췄다.

다 피운 담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위스키를 살짝 부어 꺼버린다.

눈초리가 갑자기 먹먹해져 보이길래 엘사도 조용히 경청하기로 했다.


"딱 여기서 더 폐품이 된 바를 운영했지. 최악을 상상하면 좋아. 구석에 거미집, 바닥에 돈벌레 같은거. 스프링 나간 소파에 금간 테이블 그런 것들? 술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겠고. 아무튼 그것 마저 엄마 혼자서 겨우 운영했어. 그 인간은 주정뱅이라서. 술을 진탕 먹고 손님들과 매일 같이 시비를 걸어댔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들이대고. 여자라고 해도 착각은 마, 그딴 가게에 오는 사람들 연령대가 거기서 거기니까. 웃긴건 엄마가 보고 있는 앞에서 그랬단거야. 코미디가 따로 없지."


"그 다음은."


"내가 마네킹 역할을 잘 했나봐. 엄마 대신 일하기 시작하면서 젊은 손님도 생겨나고 많이 늘었지. 점점 바뀌기 시작한거야. 주정뱅이들만 들락거리는 쓰레기촌에서 구석진 곳에 숨겨진 명소 같은 곳으로. 늘어나는 수입으로 엄마는 가게를 조금씩 보수해갔지. 나한테 남다른 감각을 요구하더라고. 젊은 사람들을 꼬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음악도 틀고, 조명도 바꾸고, 예쁜 칵테일도 만들어보고...과일 안주도. 그래서 이제 잘될거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 인간은 우리 모녀를 폭행해댔어. 엄마가 기진맥진해지면 다음은 나. 피해망상에 빠져서는 떠들더라. 자기가 피해자라도 되서 가정과 일터에서 쫓겨났다는듯이. 다시 쓰레기촌으로 뒤바뀌었어. 음악을 틀던 엠프가 박살났고, 야구빠따로 후려친 바람에 새 조명과 간판도 기울고. 새로 산 글라스와 잡기들, 술병들.....경찰도 도움이 안되더라. 그러다 가게도 헐값에 팔아버렸지. 그 노잣돈으로 달아난거고."


".....잘됐어?"


"어땠을거 같은데?'


"퇴폐적인 썅년이 되었겠지."


"정답! 어릴 때 본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어. 그런거 있잖아? 오션스, 미스피츠, 비슷한? 아무튼 도둑질하면서도 나에 대한건 아무것도 주지 않는 그런 영화 속의 주인공. 가만히 서 있기만해도 알아서 헤벌쭉 꼬여와. 파리지옥인지도 모르고 앉으면 덥석! 탈탈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버리는거지. 너는 날 너무 외롭게해, 미안하지만 여자끼리 이렇게 만나는건 더 못할거 같아. 연기력만 늘었다니까. 시크릿 바를 만든건 내 취향이야. 남자보다는 여자가 낫거든. 의외로 재력이라는게 버는건 남잔데 틀어쥔건 여자인 경우가 많아서. 전과가 여자쪽에 더 많다는 뜻이야."


에리사는 뭐가 웃긴지 싱글벙글하게 마지막에 덧붙였다.


"엄마는 어떻게 됐는데."


"돌아가셨지. 달아나고 한 2년후?"


"새드 시나리오로 눈속임했지 사기꾼이 따로 없었네."


"못할게 뭐야. 나는 가리지 않고 뭐든지 해. 굴욕과 폭언? 하다 못해 너한테 바닥을 구르며 맞는걸 참아낼 수 있는 깡다구가 어디서 나오겠어? 그리고 너무 단정하지 말아줄래? 나는 합법적인 선에 있어. 내가 진짜 사기꾼이면 진작 잡혀갔게?"


"안나도 그런식이야? 파리지옥?"


"아니, 안나는 특별해. 내가 이렇게 보여도 너무 나무라지마. 나에게도 진심이 있어. 그보다 안나를 자꾸 꺼내오지마. 이제 네 얘기나 들려줘봐. 개썅년."


엘사는 잔을 비웠다.

뜨거운 입김이 후하고 나온다.

잠깐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고에리사가 한 것처럼 담담히 꺼낸다.

2번의 위탁가정.

가정내 학대들.

새언니의 유혹이나 수녀님과의 만남.

이야기가 끝날쯤 에리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녀님은 다시 만나봤어?"


"아니."


"왜? 휴일 동안 할 일 없으면 찾아 가서 인사라도 할 수 있는거 아니야?"


"지금 같은 꼬락서니를 보여드리기 싫잖아."


"으음. 기특한 면모가 있네. 넌 정말 어려운 사람이야. 하는 짓은 그 위탁모랑 똑같으면서 마음 어딘가 양심은 남아 있고. 대체 뭐가 진짜 네 모습인데?"


엘사는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기도 모르니까.

화제를 돌리려고 빈병을 퉁하고 튕겼다.

알겠다고 끄덕인 에리사가 새 술을 가져오고 또 마시고서 답했다.

아마도 처음 늘어놓는 이야기에 엘사는 괜히 낯뜨거웠다.

술이 많이 차긴 했는지 머리가 무겁다.


쿵-쿵-쿵-

조금 큰 노크소리였다.

엘사와 에리사 둘 다 동시에 출입문을 볼 정도로.

또 다시 약속이나 한듯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봤다.


"안나야."


"뭐!?"


"올 때쯤이 되긴 했지. 전화도 안 받는데 문도 잠겨 있으니까. 이상하다 싶을거야."


"어쩔거야! 이런 속셈이었어?"


"속셈이라니. 남의 일상에 막무가내로 쳐들어온건 너잖아!"


"대책은 있으니까 시간 보낸거겠지?"


"대책은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 쥐 죽은듯 아무도 없는척 있으면 조금 지나서 갈거야."


에리사는 숨을 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달리던 말을 달래듯 진정하라는듯이 손바닥을 누르는 제스쳐도.


"에리사? 안에 아무도 없어요? 에리사!"


안나의 목소리와 몇 번의 노크가 더.

엘사는 팔짱을 끼운채 출입문에서 아예 시선을 떼버렸다.

에리사도 비슷하게 팔짱을 끼우고 있었지만 좀 더 여유있었고.

전화가 한 번 더 울린다

에리사는 무음으로 번쩍이는 핸드폰을 바 테이블 밑으로 치웠다.

한 5분여를 있었던거 같은 안나는 슬픈 발걸음을 돌린다.

계단을 올라 돌아가는 발소리도 들렸으니까.


"이제 갔네."


에리사는 숨 죽인 바를 다시 원상복구 시킨다.

안나가 떠난게 마치 우한이 떠내려간듯 시원한 얼굴이었다.

엘사는 그게 탐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도저히 신뢰라는게 없어 보이니까.


"떨떠름한 표정이네. 술이나 더 마실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네가 조금 좋았다가 여전히 모르겠어."


"어떤점이 그런데."


"안나에게 진심이라는거,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지?"


"너는 진심이었고?"


"나는..."


"주제가 이렇게 된거. 이제 부탁을 해볼 차례 같은데."


에리사는 말을 뚝 자르고 술을 채웠다.

잔에 차고 넘치고록 한 가득.


"부탁? 어떤 부탁?"


"안나랑 다시 만나고 싶은거지? 예전 관계는 못 되더라도 나한테 했듯이 용서라도 구하고 싶을거 아니야."


엘사는 괜히 숨을 삼키며 뜸 들였다.

부탁이라고 했지만 빌미로 뭘 요구할지는 미지수다.

엘사는 마음속으로 뭘 요구하든 일단 받자고 여겼다.

백지에 경매금액을 적어 넣는 것과 똑같은거다.

엘사는 터무니 없이 높은 액수를 적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래."


"해줄 수 있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고?"


엘사는 너무 쉽게 수긍하는 바람에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럼. 내가 어릴때부터 느낀게 뭔지 알아? 사랑은 나눠줘야 한다는거야. 내가 못 받고 자란 사랑을 많이 많이 나누고 다니는거지."


"지랄."


엘사는 더 참아주지 못 하고 욕이 나왔다.

에리사라는 정신나간 인간은 정말인지 엘사가 본 비교 불가능한 최강자였다.

그야말로 세계관 최강 미친년?

엘사는 그쯤으로 정의 내렸다.


"이 말하면 많이들 그래서 익숙해."


"사랑을 많이 나눠줘야 하는게 아니고 사기치고 다닐 인간이 많다겠지."


"그것도 맞는 말이고. 아무튼, 그래서 부탁을 들어준다는데도 지랄이라고 할거야?"


"조건이 뭔데."


"엘사, 세상 일을 다 비즈니스로 이해하지마. 그냥 즐겨. 친구 사이가 됐잖아?"


에리사는 술을 쭉 넘겼다.

그리고 어서 마시라며 손을 흔든다.


'이 이상 마시는건 위험한데.'


"취하도록 마시자니까."


에리사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엘사와 마신 술은 비슷했지만 어지간히 취하지 않는다.

엘사는 슬 머리가 빙글 돌기 시작했는데.

그런 엘사에게 잔을 잡기만 해도 넘칠 정도로 가득 찬 술은 부담이었다.

그래도 엘사는 한 번에 털어넣었다.


"취기가 좀 돌아?"


에리사는 엘사가 잔을 비우자마자 바로 다시 채운다.

긴장이 조금 풀리자 뒤늦게 확 취기가 몰려온다.

엘사는 본능적으로 위험한 직감을 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마셔봐. 만나게 해준다니까."


"내가 취해서 이상한 행동하길...하게 만들려고?"


"설마. 내가 술 가게를 운영하는데 취객 관리는 확실해."


엘사는 의심하면서도 잔을 받는다.

경매금.

터무니 없이 높은 경매금액.

엘사는 이건 그 대가라고 여겼다.


"내일도 쉴거잖아."


더는 허리 피고 올곧게 있을 정신이 없었다.

엘사는 바에 기대어 있었고 에리사는 그 귓전에 바짝 붙었다.


"여기까지가 끝이지?"


엘사는 끄덕인다.

더 마시는건...

엘사는 자기가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다.

털썩하고 쓰러지기만 했지만.


"푹 잠들어 엘사. 아무 걱정하지말고. 네 부탁은 반드시 들어줄거니까."


에리사는 부재중이 여러개 찍힌 핸드폰을 다시 찾았다.

무슨 일이 생긴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장문의 메시지.

에리사는 안달난 새끼 여우를 달래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뾰루퉁한 기분을 풀어줄 이벤트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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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660 그르릉 ㅇㅇ(110.47) 06.06 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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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645 오늘도 살아남았다 ㅇㅇ(223.62) 06.04 16 0
1123644 쥬흐흣 ㅇㅇ(110.47) 06.04 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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