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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레코드 02

ㅇㅇ(220.71) 2021.12.12 17:22:19
조회 223 추천 17 댓글 5

Record 02. 두 번째 편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매미마저 울지 않는 무더운 여름날 저녁. 우리의 첫 여행은 너무 덥다면서 투덜거리던 네 말에 나는 저녁 바다를 보자고 했고 너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주인공은 늦게 나타나는 법이라며 나를 먼저 내보낸 너는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서 내 인내심이 바닥날 때쯤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내가 따지기 위해 너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시원한 향이 코끝에 맴돌고 조금 서늘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내게 닿았다.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준비도 없이 너는 내게 입을 맞춰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감은 채, 귀 끝이 빨개져 있는 너는 그저 가만히 입술을 맞대고만 있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지만 피하진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을 눈에 새겨넣기 위해 애썼다. 숨을 쉬기 위해 멀어져가려는 너를 내가 다시 붙잡기 전까지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게 우리의 첫 키스였다.

 

 

 

 

 

 

겨울 바다는 추웠다. 차가운 공기와 날카로운 바람이 온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노을이 지는 바다 앞에서 네가 남긴 usb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네 말과 달리 네가 남긴 두 번째 영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찾을 필요도 없었다. 내 이름으로 체크인을 하자마자 팬션 사장님이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남긴 물건이 있다며 건네주었다. 언젠가 안나 아렌델이라는 이름의 손님이 오면 전해달라는 물건이 있다고 했다.

 

나는 받자마자 너의 편지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서웠다.

네 입에서 나올 말들이 나를 아프게 할까 무서웠다. 그래서 한참을 망설였다. 노트북을 열고, 닫길 수십 번. 마침내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널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안녕, 안나!”

 

화면의 너는 평범한 인사와 함께 밝게 웃고 있었다. 흰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한쪽으로 머리를 땋은 너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 영상을 본다는건 내 말대로 했다는 거겠지? 따라와줘서 고마워. 마음 같아선 안아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네...오랜만에 바다 보니까 좋지?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간 여행이었는데 내가 너무 덥다고 투덜거렸었지.”

 

너는 그날의 일이 기억난다는 듯 웃다 헛기침을 하더니 화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비밀이라는 듯 작게 속삭인다.

 

“..우리 첫 키스 했잖아...그때 나 엄청 긴장했었거든. 나는 너랑 손도 잡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은데 나만 안달내는 것 같아서 조금 섭섭했어. 그래서 너한테 여행도 가자고 했던거야. 이렇게 하면 너도 날 조금 봐줄까 싶어서...사실 너한테 수영복 입은 거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부끄러웠어. 그래서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어. 너한테 어떻게 키스해야할지 고민했거든..결국에는 그냥 돌진하듯이 해버렸지만.”

 

킥킥대며 웃는 너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나는 그저 너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내가 소리쳐도 너의 대답은 없을테니까.

너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나를 왜 여기까지 데려왔을까.

 

완벽했던 키스는 아니었지만 나에겐 완벽한 순간이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기억이고..너랑 다시 올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많이 아쉽다. 그치? 거기까지 간 김에 좀 쉬어.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을텐데...”

 

그래, 너무 힘들었어.

 

안나, 나는 네가 그 기억을 거기에 묻고 오면 좋겠어. 첫 번째 숙제야. 쉽진 않겠지만..그렇게 해야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너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어떻게 너와의 추억을 묻을 수 있겠어.

 

이렇게 말한다고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그치만 내가 없어도 너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이렇게 말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진 않네. , 여기 어딘지 알아보겠어? 짜잔! 우리 고등학교야! 놀랐지?”

 

내가 어떻게 너 없이 살아가겠어.

 

“...이제 나에 대해 말해줄게. 안나, 나는 병에 걸렸어...그게 내가 널 떠나는 첫 번째 이유야...하지만 걱정하지마! 치료하면 살 수도 있대.”

 

내가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미안해 안나...말하려고 했는데 네 얼굴을 보니까 말이 안 나오더라. 잘못한거 알아. 이것 때문에 우리 많이 싸웠지...그러다 보니 서로 얘기도 안 하고..그런데 나는 너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좀 더 일찍 너의 말을 들었더라면.

 

“...나머진 나중에 얘기해줄게. 다음 편지는 우리가 항상 앉아있던 나무 틈 사이에 숨겨놨어. 다음에 봐, 안나.”

 

이 후회가 너에게 닿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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