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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엘산나 보고싶다 feat. 엘탄절 /2화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2.26 23:07:39
조회 337 추천 12 댓글 3


https://gall.dcinside.com/snowpiercer2013/1099511


이게 원본이야!






"마지막이니까 힘내요. 다음주는 쉽시다!"


"네에에...."


억지로 빠지려는 나사 붙잡는 책임님의 격려.

그 사이 맥 빠진 대답들에 안나의 목소리는 없었다.

안나는 퀭한 눈으로 최대한 무섭게 모니터를 노려봤다.

이렇게 죽일듯 노려보면 일이 겁나서 도망가지 않을까?

미친 생각이겠지만 차라리 그러기를.


잡생각 뒤에는 밥부터 떠오른다.

안나는 슬슬 12시20여분이 되가는걸 봤다.

이 정도면 먹을 사람 다 먹고 말끔한 구내 식당이겠지.

메뉴는?

안나는 바쁜 와중에도 늘 사진 찍어놓은 금주 식단을 켰다.


'오늘은 괜찮은 날이잖아!'


구내 식당의 급식업체표 파스타는 그저 그렇다.

그 옆에 사이드로 나오는 핫윙은 나쁘지 않지!

안나는 슬금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발팀의 좋은 점이라면 자유로운 분위기랄까.

크리스토프랑 섞이면 또 게걸스럽게 먹는 장단 보고 있어야 하고.

책임님이랑은 숨 막힐듯하니까 지금이 애매한 시간의 적기다.


"저는 식사 다녀올게요."


"안나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래요. 다녀와요."


"채, 책임님은요?"


"나는 조금만 더 있다가. 먼저 갔던 사람들 돌아오고 나면."


"네, 그럼..."


안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의상 물어보는 그때가 제일 쫄린다니까.

괜시레 유쾌한 분이라 일할 때는 좋을지 몰라도 사석은 완전히 꽝이다.

쉼 없이 던지는 30년전 유머 감각은 듣기만 해도 지옥이거든.

안나는 빠르고 익숙한 동작으로 사원증과 칫솔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핫윙 3조각.

안나가 노리는 적기라면 충분히 가능한 소리다.

먹은 사람들 빠지고.

안 먹은 사람들보다 양은 많이 남았고.


그리고 돌아가면서 휴게실에서 코코아 타서....

퇴근하면 크리스마스 휴일!

기분이 좋아지는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제 식사가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맞다!"


"네? 뭐가 맞아요?"


"아니요! 이건 다른거에요. 일 때문에. 수고하세요!"


안나는 식당 앞에서 마주친 총무팀 직원무리를 보고 아차했다.

엘사가 있었지!

언제라고 했더라?

생일이 다음 휴무 시작하는 주였던거 같은데.

21일?


'아....망할 이미 수락했었지.'


안나는 다시 기분이 쭈욱 처지는 느낌이었다.

엘사와 얼마나 어색한 사이인지는 안나의 메신저만 봐도 답이 나왔다.

번호 교환하고 첫 대화가 엊그제.

내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짧은 스크롤 길이가 딱 엘사와 안나 사이의 증거니까.


안나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사원증을 찍고 식판 집었다.

파스타와 샐러드를 담고.

핫윙은....


"저기 실례지만 한 조각 더 얹어도 될까요? 혹시 남으면...."


"네, 마음껏 드세요."


"감사합니다!"


안나는 눈치보며 2조각째 담고서는 영양사분에게 허락을 구했다.

3조각은 너무 양심 없어 보일 수도 있잖아.

식탐 대마왕 같기도 하고.


"좋아하면 더 먹어요. 여기."


"네? 아, 아니요! 괜찮은데!"


"어차피 남아요 이거."


안나가 집게를 놓자마자 인자한 얼굴로 영양사님이 다가온다.

영양사가 직접 쥐고는 핫윙을 2조각 더 담아서 안나의 식판에 올려줬다.

안나는 이게 기분 좋은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많이 먹고 맛있어서 기분은 좋은데.

뭐지....내가 요새 살쪘나?

푸짐하게 먹을 상인가.

그럴수도 있겠다.

요즘 진짜 일상 패턴이 엉망이라 살이 찌는게 무리가 아닐지도.


아무튼 안나는 멀찍히 구석자리로 갔다.

숨어서 핫윙 5조각을 퍼먹는 돼지니까.


'괜찮아, 올해까지는 처먹고. 내년은 빼자.'


안나는 그런 각오를 굳혔다.

올해는 이제 열흘 밖에 없으니까 마지막 기회잖아!

안나는 입구와 등진채로 재빨리 핫윙부터 뜯었다.

뼈조각만 남겨 좀 숨기기라도 해야 양심이 덜 아플거 같다.

누군가 마주쳐서 핫윙만 5조각 처먹는 모습을 보면.....

안나의 사내 별명은 핫윙에 미친 곰탱이가 되서 뒷담 들을지도.


안나는 손을 쪽쪽 빨며 금새 2조각을 해치웠다.

역시 메인보다 사이드가 더 맛있다.

금방 차는 포만감에 콜라 같은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 더한다.

사내 휴게실에 있는 자판기에서 하나 먹을까.

코코아는 어떻게 하지? 

그건 저녁에.

마시멜로는 좀 줄여먹자.


"아, 안나씨. 안녕하세요?"


안나의 입은 등진채로 열배속으로 움직인다.

안에 쑤셔넣은 핫윙 살을 대충 씹어 삼켜넣는다.

헛기침하는 시늉으로 입가도 훔치고.

휙 돌아본 곳에는 엘사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나는 경직된 모습이었다.

꾹 다문 입안에서는 바쁘게 혓바닥이 이리저리 구른다.

혹시 이빨 사이에 살코기 낀거 아니겠지.

양념 묻어 있다던가.


"옆에 앉아도 될까요?"


"네, 앉으세요."


"그, 그럼..."


엘사는 안나의 옆에 앉으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안나도 순간 움찔했다.

보통 맞은편에 앉으니까.

엘사도 잠깐 뜸들이고는 쪼르르 책상을 돌아 반대로 갔다.


"느, 늦게 식사하시네요. 일이 바쁜가요?"


"그건 아닌데. 개발팀은 원래도 간혹 따로 따로 식사해요. 개인 업무 진행상황별로."


"저도 원래는 일찍 먹는데. 일이 밀려서..."


"아아...."


안나는 침착하게 식판 위의 처참한 뼛조각들을 슬그머니 가렸다.

어떻게해도 박살난 2조각의 뼈를 숨길 순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살아남은 싱싱한 놈들 아래에 둔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핫윙에 미친 곰탱이가 되지 않는거니까.


"엘사 선배도 늦게 드시네요. 일이 바빠요?"


"아니요....그냥....그게....그렇죠. 개발팀만큼은 아니더라도."


엘사는 얼굴을 붉히며 파스타를 깨작댔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조금 미루다가 안나가 떠난걸 보고 후다닥 따라온거니까.


"그보다 저희...크리스마스 휴일에 만나기로 한거."


안나는 표정관리하느라 애먹었다.

그게 있었지.

대충 빨리 마무리 짓고 싶다.


"화요일이에요. 제 생일에 맞춰서 저, 저녁이라도 들어요. 저희 집에서 대접할게요."


"아 그거요. 네...주소가 어디였죠?"


"바로 옆집인데요....옆동."


"아!"


"사실 가끔 만났어요. 안나씨는 출근에 쫓기는거 같았는데."


"원래 성격이 조금 급해요."


"대화 해본적도 있어요."


"몇 번 있었죠."


안나는 속이 타들어갈거 같았다.

망할 핫윙!!!

3조각이 더 남았는데!!!

엘사는 정말인지 조신해 보였다.

귀뒤로 백금발을 넘기고는 호로록 거리는 소리도 없다.

파스타를 넘기고 깨작대는 샐러드까지.

근데 차마 그 앞에서 꾸역꾸역 처먹기가 그렇잖아!

크리스토프랑 올걸.

오늘은 그게 좋았을 뻔했다.


"자켓에 소스가 튈거 같아요."


"네? 아....괜찮아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별 말씀을요."


안나는 눈치보며 핫윙을 집었다.

물론 손이 아니라 포크로 깨작대며 찢어서.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어요? 사실 요리를 좀 할줄 알거든요. 혼자 지낸 경력이 되서."


"으음.....보통 저는 배달이나 외식으로 먹어서요."


"저희 사는 곳 주변에 맛있는게 있어요? 크리스마스 휴일에는 배달이 좀 밀릴 거 같은데. 고기는 어때요? 이것봐요 간단한 스테이크 정도는 그냥 인덕션에 구워서도 할 수 있어요. 요즘 좋은 제품들이 많으니까!"


엘사는 자기 핸드폰을 뒤적여서 직접 요리한 스테이크를 보여줬다.

뭐지, 원래 자취라는게 이렇게 먹는건가.

딱 알맞게 구워진 웰던 스테이크는 목재 플레이트 도마에 놓여져 있었다.

옆에는 곁장식으로 놓은 아스파라거스와 샐러리.

어디 전문점에서 찍어놓은거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사진 테두리에 살짝 있는 가정집 풍경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거는 연어 스테이크고요. 이건 제가 만들어본 초밥. 이거는 회인데 영상을 보면서 제가 직접 칼질 해봤어요. 이쪽에 살짝 어긋난건 처음이라 실수한거지만."


다음장도, 또 다음장도.


"아니면 파스타 종류는 다 가능해요. 크림, 오일, 토마토. 수프는 그냥 평범한 인스턴트 수프를 곁들이면 되니까. 또 이거는 동양식인데 안심 커틀릿이랑 팟 타이에요. 발음이 어려운데....새천? 사춴? 그런 지방에서 전해진거라던가? 이거는 메시 포테이토고 미트로프도 되고요. 치킨 파이도 되고요. 참, 고기는 어떤걸 좋아하세요? 소? 돼지? 닭? 좋아하는 부위가 따로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조금 요리가 달라지니까요."


정신이 없다.

보면서 안나는 점점 처참해지는 기분이었다.

안나의 주식이 뭐냐고?

피자, 햄버거, 탄산음료.

가끔 고기나 외식.

몇 가지 없는 종류의 무한 순환.

엘사는 뿌듯하다는 얼굴로 으쓱거렸다.

마치 크게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듯 보였다.


"어때요 안나? 이중에 마음에 드는게 있을까요?"


"음....다 좋아요."


"다?"


"솔직하게 정말로요. 저는 먹어본거 없는 거 투성이라서. 그러니까 제 말은 다 먹어본 음식들이지만. 직접 요리해서 먹은적은 없죠."


"요리하는걸 싫어하시나요?"


"그런건 아닌데 뭐랄까 귀찮다고 할까요."


"저녁은 제가 준비할게요."


"어음.....네, 좋아요. 그럼 저는 뭘....."


"술은 안나가 준비하면 되겠네요."


"술, 그렇죠 술. 어떤 취향이시죠? 고급스러운 와인? 사실 고급스러운게 뭔지 잘 모르는데 원하는 취향이나 즐기시는걸 추천해줄래요?"


"우리 동네의 할인점에서 맥주만 사와도 괜찮아요. BWS가 바로 지척이니까. 아니면....같이 장을 봐도 좋고요."


"와인으로 할게요. 와인. 예, 서로 준비해요. 엘사는 음식, 나는 술. 그렇게요."


안나는 서둘러서 정리했다.

같이 장보자고?

그건 일단 피하고 본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제일 잘나가는거 찾으면 되겠지.

특선 판매 같은걸 본적 있다.


"닭 요리를 좋아하시나봐요."


"네? 닭이요? 갑자기?"


"파스타보다 핫윙을 더 드시는거 같아서."


"아, 아아! 이거는 제가, 그러니까 영양사님이 더 주시더라고요. 어차피 남는다고. 좋아하는 것도 맞아요. 그, 그런데 평소에는 이만큼은 안먹죠."


3조각째 처참해진 핫윙 뼛조각들이 식판을 뒹군다.

안나는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온갖 쌍욕을 했다.

핫윙이 그렇게 맛있어? 

음식 사진 보면서도 정신 없이 처먹었네 이 핫윙 킬러.

내일부터 회사 서버 접속 아이디는 핫윙 킬러다 이 병신아.


"식사 덜하셨으면 제거라도 드실래요?"


"아니요!!! 배불러요. 아하하, 음, 남은 파스타만 정리하고 일어나야죠. 이, 일해야 하니까."


"21일날에는 더 비우고 오셔도 좋아요. 오랜만에 정말 실력 발휘해볼태니까!"


"네, 네네. 그, 그보다 저는 이제 먼저 일어나볼게요. 즐거웠어요 엘사 선배."


"아....그럼 저도. 그보다 안나씨?"


"네!"


"저, 저희 호칭을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말아요. 그니까 선배나 그런것보다 그냥 친구처럼....편하게 하셔도 좋은데요."


안나는 웃으면서 또 다시 복잡하게 머리를 굴렸다.

왜 얼굴 붉히고 있는거야.

사실 지금 핫윙 킬러가 되서 생각이 안돌긴 한다.

그냥 직관적이게 들은대로 듣고 뱉기로 했다.


"그래요 엘사. 언니....라고까지는 해야 할까요?"


"그게 더 좋아요. 저도 안나라고 할태니까."


"네, 엘사."


엘사는 얕게 씰룩거렸다.

스르륵 귀 아래로 내려온 머리카락에 가려졌지만.


"커피라도 마실래요? 휴게실에서 시간 조금 남을탠데."


"아, 그게 일이 많이 밀렸을거에요. 개발팀이 따로 따로 식사하는 것도 업무 순환 목적도 있거든요. 그러니까....먼저 가볼게요!"


"......메신저에 집 주소랑 동, 호수 보내놓을게요."


"그래주세요!"


안나는 엘사와 최대한 빨리 작별하고 돌아섰다.

휴게실은 있다가 가자.

핫윙 킬러 + 마시멜로 분쇄기가 될 수는 없어.

엘사의 행동으로 볼 때 어버버한 면이 있다.

제발 그 어버버한 모습으로 안나씨는 핫윙을 5조각을 먹는다는 말만 하지 말아주길 기도한다.


젠장, 배고프다!

엘사랑 떠든다고 핫윙도 못 해치웠고.

파스타는 거의 입도 안댔다.

전부 박살났어 전부!



"안나씨?"


또 뭐야!!!

안나는 자리로 돌아가다 말고 휙 돌았다.

대충 안나의 계산으로는 2~3일에 한 번 머리감는 크리스토프다.

본인도 아는지 벅벅 긁어대는걸 참는다고 비니를 눌러쓰고 다닌다.


"이거 드세요. 개발팀 인원 숫자 맞춰서 커피 타가는 중이었는데."


"아, 고마워요."


"책임님이 오늘은 집에 가자시던데요?"


"또 갑자기?"


"또 갑자기라니요?"


"아니에요, 오늘 갑작스러운 일이 많아서. 몇시에 퇴근인데요?"


"칼퇴근! 크리스마스잖아요."


성가시게 움직이던 머리가 퇴-근 두 글자만 박힌다.

안나는 금방 온화한 미소로 얼굴 한가득 깔깔거렸다.


"와, 그럼 오늘부터 휴일이네요! 내일이 아니고?"


"그렇죠! 이미 부서 단체방에도 공지올라갔을건데."


"확인을 안했어요. 그렇네! 하! 오, 하나님! 진짜 감사합니다!"


안나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날아갈 기분에 펄쩍댔다.

12월 이번 한 달중 처음 겪는 칼퇴근이다.


"하핫, 책임님이 전부 짐쌀 준비나 해두래요. 평소에 민박하던 짐 다 싸서 방 빼라고."


"그래야죠! 그런데 크리스토프, 그 비니는 언제 세탁한거에요?"


"이거요? 네? 모자도 세탁을 하던가요?"


안나는 너무 신나버려서 괜히 말을 붙였다는걸 늦게 인지했다.

비니를 벗어서 상태를 보는 크리스토프.

머리를 벅벅 긁어대는데 긁는 자리 그대로 자국이 남고 머리가 안흐트러진다.

충격적인 모습에 안나는 돌처럼 굳어서 억지로 눈과 입만 움직였다.


"하하하, 남은 시간 일이나 열심히 하러 가요. 까짓 비니 뭐가 문제람."


엘사에게도 메시지가 와있었다.

안나의 머리는 바쁘게 다시 구르기 시작한다.

오늘 칼퇴근하고.

퇴근길에 피자를 주문하고.

도착하자마 딱 떨어지는 피자를 받아두고 우선 씻자.

넷플릭스를 틀어놓은채 피자 절반을 박살내고.

그 다음에는 알람 끈채 퍼질러 자고.

내일 일어나면 BWS에서 술을 사고.

화요일날 장단 맞추면.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말까지 못해도 5일은 자유야!

자유야!!!

핫윙? 더 맛있는걸 사다가 배터지게 먹어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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