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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 the summer - 에필로그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1.01 22:58:42
조회 272 추천 1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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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곡은 여러분 모두 아실거 같은데요. 대부분 그렇듯 제 이야기가 담긴 곡이에요."


안나는 마이크쪽으로 살짝 고개 숙이고 관객들을 돌아봤다.

어설픈 버스킹 무대.

강변 앞의 오후 저녁 직후 6시 무렵 더위 가신 시간은 딱 알맞았다.

수 많은 사람들의 핸드폰 렌즈가 안나를 향하고 있었다.


"언제나 말하지만 제 곡들 대부분은 원래 거의 친구가 대리 작곡해준 것들이에요. 저는 그냥 흥얼대면, 그 음계들을 맞춰주는 역할이었죠. 이 곡도 마찬가지였고요. 제 옆에 있는 엘사가 바로 그 친구입니다."


기타를 맨 안나는 손가락으로 콕 집어 오른쪽 키보드의 엘사를 가리켰다.

관객들은 큰 함성소리와 휘파람, 박수소리로 화답한다.


"모두 알다싶이 링컨 센터를 뒤집어 놓은 피아노의 여제에요. 지금은......여제보다는 제 키보드 반주 노예로 지내고 있지만요."


웃음소리.

엘사는 민망함에 고개 돌렸다.

굳이 언급 안해도 유명한 안나 덕에 덩달아 유명하다.

아니, 엘사 때문에 안나가 유명한건지.


"오늘 밤의 마지막 곡이에요. 저희 노래가 여름을 시원히 만들어주길 바래요."


안나가 눈빛을 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엘사는 안나의 손끝에 집중한다.

가볍게 퉁기는 손을 따라 건반 위 기다리던 엘사의 손도 따라간다.







"그 얘기 하지마."


"어떤거? 링컨센터?"


".......그래, 민망스러워."


"그러게 누가 요란떨래. 그냥 준비된 쇼팽.....쇼팽 맞아? 베토벤? 아무튼."


엘사는 삐죽대며 버스킹 장비를 정리했다.

안나 때문에 민망스러워 죽겠지만 밉지는 않다.

클래식의 클래식.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통기타로 멋들어지게 둥둥거리며 한 소절을 따라한다.

엘사는 그 익살에 그냥 풉 하고 웃어버렸다.


"다음 버스킹할때는 반대로 할까? 파격 이벤트지. 피아노의 여제는 싸구려 가요를 연주하고요. 온라인 업로더였던 무명의 아무개가 멋진 클래식을 연주하고."


"이미 그런 사람들 쌔고 쌨어."


"하지만 진짜 천재는 없었지. 그건 너였으니까 특별한 사고였던거야. 아무나 했으면 그냥 미친 관종소리 듣고 끝났을걸."


"내가 미친 관종이란거야?"


"음......그것도 틀린건 아니지. 정상적이면 아무도 그런 자리에서 촌스러운 가요는 안했을걸. 아무튼,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으로 무마할려고 하지마. 이 관종아. 내 얘기 팔아대는 관종."


"알아. 제법이지만 그렇게 찐따스럽게 말하면 말하는 사람이 더 속좁아 보인다? 이.관.종.아!"


"속 안좁아!"


"하이파이브! 안 먹을거야? 내가 살건데."


엘사는 엉겁결에 손 내밀어 안나의 손바닥을 맞췄다.

정리는 아직 덜 끝났다.

엘사는 키보드를 케이스 안에 쑤시고 차 트렁크에 대충 올려놨다.

값 비싼 키보드지만 아무렴.

엘사가 그간 박살낸 그랜드 피아노는 너댓는 넘는다.

바이올린은 한 열댓개였고.


"제가 정리할게요 엘사."


"아, 고마워요 크리스토프."


"뭘요. 보드 매니저.....는 이제 아니지만. 아니, 아니 회사 소속의 매니저는 아니란 뜻이에요."


"크리스토프! 내 기타는 손대지마요. 그 자리 그대로. 티끝 하나 건들지 말고 이 상태로 냅둬요. 아니다 내가 가지고 다닐래. 빨리와 엘사!"


안나는 자기 기타를 어깨에 들쳐맸다.

고등학생때 산 150$쯤의 싸구려 중의 싸구려.

울림통 언저리 한 쪽은 스카치 테이프 발라놓아 땜질 해놨다.

거기에 덕지 덕지 붙은 스티커들까지.

엘사는 안나를 따라 후다닥 달려갔다.


"잠깐만요! 잠깐! 시간이 늦었잖아요!"


"알아요!"


"안데요."


크리스토프는 엘사가 잇몸까지 보이며 웃는 모습에 벙쪄버렸다.

저런 가벼운 모습은 원래 엘사라면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모습이니까.


"오늘 버스킹 장소 섭외한 이유야. 이 젤라또 가게가 엄청 맛집이거든. 안녕하세요! 컵으로 솔티캬라멜 하나, 엘사는?"


"너가 골라."


"하아, 여제님이라고 이런 것도 떠받들어줘야해?"


엘사는 젤라또 매대 위에 가득 적힌 메뉴들을 따라가다 눈이 빙글돌았다.

30여가지의 맛에 뭘 골라야 할지.


"쿠앤크."


"쿠앤크래요."


안나는 곧 바로 10$를 결재했다.

작은 컵에 담기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은 푸짐하게 넘쳤다.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동안 안나는 매대 뒤의 아시아계 직원과 쉼 없이 떠들었다.

이 앞에서 버스킹을 자주할거라 매출이 올라갈거니까 양을 더 달라면서.

엘사는 들으면서 이게 무슨 미친 날강도 짓이지? 양심도 없나 싶었다.

그런데도 직원은 깔깔대면서 곧이 곧대로 한스쿱을 더 퍼준다!

마무리에는 그 직원이 공연중에 자기 가게를 홍보하라고 한다.

거기에 맞춰서 또 안나는 알겠다고 한다.


안나랑 지내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과 무슨 10년지기처럼 지내는 모습.

안나는 가게 외부의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애지중지하는 기타부터 안전히 놓아두고.


"직원이랑 아는 사이야?"


"전혀."


"그럼 어떻게 그런 말을 서슴 없이 하는건데?"


"성공한 인생이라서 그렇지."


"풋!"


"왜 웃어? 아아, 하긴 링컨 센터를 뒤집어 놓은 우리 시대의 슈베르트에 비하......"


"그 얘기 그만!"


엘사는 쿠앤크 젤라또를 한 스푼 크게 퍼서 안나 입에 쑤셔넣었다.

애기들 이유식처럼 안나는 입을 쩍 벌리고 곧이 곧게 받아 먹는다.

안나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기억속 안나는 조금 음침한 구석도 있다고 생각했다.

활발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는?

지금은 그 에너지를 온갖 것들에 쓰고 있다.

엘사가 먹여준 젤라또를 삼키면서 안나는 자기 SNS 계정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방금 한 버스킹 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한 번 새로고침을 하면 좋아한다는 하트 표시가 수 십개씩 늘어난다.

안나는 곧 바로 코멘트 창으로 넘겼다.


- 1시간전에 있던 Ann의 최애곡!

- Ann 사랑해요♡

- 라이브가 사실상 녹음이랑 똑같음! 오늘 경험했어요!

- 20xx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지. 음악에 천재가 두 사람이나 함께 나왔다는게 진짜.....

- 엘사님은 다시 클래식 연주 안하나요 ㅠㅠ 여름에만 공연해서 올해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것봐, 다시 클래식 연주는 안할거냐는데."


이번에는 안나가 솔티캬라멜을 한 스푼 퍼서 내밀었다.

엘사에게 딱 맞는 사이즈로 아담하게.

엘사는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하고선 입만 뻥긋거려 받아먹었다.


"난 이제 업계 퇴출이야."


"참나, 누구 마음대로?"


"원래 그런 고지식한 곳이야."


"까짓거 다음 버스킹에서 하면 되지. 그 키보드로도 못할게 뭐야."


"어차피 이제는 안할거....잠깐 뭐해?"


안나는 직접 코멘트창에 답글을 달아놨다.


- 엘사의 쇼팽을 듣고 싶으신 분들은 다음 공연을 기대해주세요!


"야!"


"이제 해야해. 피할 수 없어. 이것봐 바로 폭발한다."


안나는 자신의 답장에 우루루 몰리는 관심들을 다시 보여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들의 향연이지만 충분히 느껴진다.

안나의 그 한 마디가 또 엔터,음악 업계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일이라는게.


"어, 어떻게 그래! 아무렇게 막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니까!"


"같은 피아노 치는건데 뭘."


"그, 그런게 아니라! 클래식이잖아! 맞는 방식이 있다고!"


"맞는 방식이 뭔데?"


"몰라! 옷차림 같은거지! 분위기에 맞는 옷차림! 장례식장은 검은 단벌, 결혼식장은 흰색 옷 자제하고. 뭐 그런것들이야! 사회적 통념!"


"엘사, 내가 장담하는데 그 잘난 천재 지휘자들, 오케스트라들, 피아니스트 어쩌구 저쩌구들. 한 트럭 가져다가 길거리에서 연주시켜보면 아무도 못 알아볼걸."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음악이잖아. 아무렇게나 즐겨. 잘치면 장땡이라고."


"그런 단순한게 아니라니까!"


"아직도 입시 준비가 필요해? 아니면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어? 명성도 끝났잖아. 업계 블랙리스트 엘사 씨."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무르기 없어. 다음 공연은 무조건 쇼팽이야."


엘사는 안나의 막무가내에 포기했다.

원래부터 안나를 말싸움이나 우기기는 이겨먹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보고 비웃을거야."


"그러라고해. 왕재수들. 너도 비웃어줘. 왕재수 병신들. 그래서 나랑 피아노 대결 떠보자. 지는 놈은 업계 퇴출하기. 내기 방식은 당연히 사람들 투표."


"내가 이기는게 당연하잖아. 내가 더 알려졌으니까."


"그럼 얘기 끝났네."


조막조막 먹어대는 통에 엘사의 젤라또는 금새 녹아 흐른다.

안나는 넵킨을 집어 엘사의 손으로 흐르기 전에 닦아줬다.


"빨리 좀 먹어. 얌전 떨지 말고. 그런것도 버릇이야? 분위기 맞춰서?"


"난 원래 이렇게 먹어."


"어휴, 답답해. 내가 먹여줄까?"


안나는 장난스럽게 엘사를 안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아~하고 벌리면 자기가 먹여줄거라면서.

공공장소에서 해대는 장난은 영 질색인 편이다.


"엘사."


치대다 말고 안나는 엘사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제 편하게 해도 괜찮아. 그냥 신경쓰지말고 하고 싶은대로. 어떻게 하든 넌 최고니까."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Ann을 보러 오는걸."


"그 Ann은 엘사가 보고 싶데. 화려하게 피아노를 치는 엘사."


"또 말만하고 홀랑 도망가면?"


"만약 그러면 내 기타 부술게. 약속해."


엘사는 기대어 조곤조곤하는 안나에게 금방 풀려버렸다.

아이스크림을 푸던 손이 절로 멈춘다.

엘사는 똑같이 안나의 얼굴에 기대어 잠시 마음을 쉬었다.

안나는 무릎 언저리에 있는 엘사의 손을 깍지껴 잡았다.

엘사가 어쩌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엘사를 놓치지 않게 꽉.


"엘사,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키스해도돼?"


"나중에."


"키스해줘야 믿을거 같아서 해본 말......으악!"


안나는 덜컹이다가 쏟아진 쿠앤크 젤라또에 비명을 질렀다.

끈적스러운 아이스크림이 허벅지에 가득 쏟아져서 엘사에게도 흘렀다.


"내가 빨리 먹으라고 했잖아 이 멍청아!"


"너가 손을 잡는데 어떻게?"


엘사는 허겁지겁 넵킨으로 아이스크림 녹은 걸 훔쳤다.

안나랑 지내면 이런 일은 흔했다.

격식, 예의, 관례 같은거 없는 즉석에서 벌어지는 것들.


"으휴! 천재면 뭐해! 음악 빼고 멍청이!"


"그것만 잘하면 됐었어!"


"이제는 피아노 여제가 아니라 반주 노예니까 내 말을 따라. 다음부터 아이스크림 먹을 때 깨작거려서 녹이면 알아서해! 억지로 입을 열고 넣어줄거니까."


"반주 노예인거랑 그건 무슨 상관이야?"


"빨리 닦기나해!"


엘사는 허둥지둥하는 안나를 보다 손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얼굴에 발랐다.

링컨 센터 운운해댄 소심한 복수랄까.

안나는 자기 볼부터 입가까지 죽 그어진 진득한 쿠앤크 아이스크림을 손등으로 닦았다.

닦으면서 동시에 엘사를 부라린다.


"해보자는거지?"


"장난이었어."


"나도 장난 좀 칠게."


"안나, 안나! 기다려봐!"


엘사는 크리스토프에게 전화 오는걸 무시했다.

안나랑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치느라 정신 없었으니까.

여름이 하나도 덥지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여름 말고도 모든 날이 가슴 시원할거 같다.

언제나 연주할거고.

언제나 함께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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