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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tio Dominica 01

Fractal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07 20: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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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tio Dominica 00





Oratio Dominica 01


#01. qui es in caelis, (1)




“나 어때 보여?”



공주가 거울을 보며 물었다.


안나는 교황청에서 파견되었다는 그 조사관을 만나러 간다. 오전 11시.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관례에 무지한듯한 공주가 통보하듯 방문 의사를 전했음에도 그녀가 원했던 시간에 방문하시면 된다는 구두 답변을 받았다. 뽐내길 좋아하던 이스카 주교와는 달리, 교회에서 공문서를 발행할 때 사용하는 상앗빛 양피지에 잉크로 몇 글자 적은 초대장을 보내오지는 않았다. 부패한 교황청에서 파견된 관리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엉망진창입니다. 제 말은, 잘 어울리신다구요. 말괄량이 같으세요.”

“그렇지?”



허니마린이 단정하게 땋아진 안나의 머리카락을 이곳 저곳 매만져 느슨하게 했다. 이리저리 잔머리가 삐져나왔다.


안나는 지금 평범한 중산층 아가씨 같아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다. ‘같아 보이는’이 핵심이다. 잠행 경험이 없는 귀족 아가씨가 으레 그러듯 디자인만 수수하지 원단의 고급스러움과 날카로운 다림질의 흔적 같은 것을 숨길 생각은 하지 못하는, 허술한 모습. 녹색 원피스의 끝단은 종아리에 닿고, 받쳐 입은 상의 소매는 아래팔 중간 쯤에서 끝난다. 굳어 있는 표정을 풀고 장난스러운 얼굴을 만들자, 영락 없이 철 없는 비글 공주 같다.



공주는 온전히 제 사람이라 믿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장난꾸러기 공주님의 가면을 쓴다. 원래부터 그 모습이 가면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 때는 그 모습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꾸밈 없고, 숨김 없고, 내킬 대로 행동하는, 응석받이 막내 공주님. 그렇지만 그녀의 언니가 어떤 일로, 어떤 사정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뜯겨져 나갔는지를 알게 되고부터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어떻게 그리 생각 없이 살 수 있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게 되어 버렸다.


‘비글 공주’라는 안나의 별명은 나라 중에 유명했다. 일국의 공주를 견종에 빗대는 것은 무례한 일이지만, 쉴 새 없이 이리저리 발발 돌아다니며 사고를 쳐대는 그녀에게 그보다 걸맞는 별명은 없다는듯 도통 사라질 생각을 안하는 별명이었다. 그렇다면, 공주는 기존에 쌓여온 그녀의 이미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누구도 비글 공주가 정치적인 사람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얕보이는 편이 상대를 파악하기도, 허를 찌르기도, 정보를 모으기도 쉽다. 비글 공주의 탈을 쓰고 있는 한, 누구도 공주를 제대로 경계하지 않는다. 뭐, 비록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체르노보그 대공, 그녀의 당숙은 속아주질 않지만…… 그의 똘마니들은 하나같이 속는다. 아무리 체르노보그가 공주를 조심하라고 일러도 그들은 멍청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안나는 수월하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조금 쯤은 그런 멍청이들을 부하로 둔 당숙이 불쌍하다고도 생각했다.



허니마린은 공주의 치맛자락에 군데군데 주름을 넣고는 흡족한듯 미소지었다. 그녀는 힐끗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주님. 지금 출발하시면 약 10분 정도 늦으실 거예요.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 앞에서 빙글 돌자, 예의에 어긋날 정도는 아니지만 교황의 특사를 보러 가는 공주라기에는 조금 황당한 차림을 한 적갈색 머리 소녀가 보였다. 허니마린의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안나는 의도적으로 약속 시간에 늦을 계획이었다.



“그러고 보니 허니마린, 내가 이 말 했던가?”

“무슨 말씀이요?”

“나는 내가 너를 이 정도로 마음에 들어하게 될 줄 정말 몰랐어.”



허니마린이 웃었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인데요.”



안나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방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갔다. 늦었다, 늦었다, 늦었다…! 약속 시간에 늦은 말괄량이 공주님의 출동이었다. 허니마린이 뒤따라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굽이 단단한 단화를 신었음에도 그녀의 발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기척을 죽이는 것에 능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를 잃고 방황하며 멍하게 시간을 죽이던 안나의 세계가 흔들린 것은 그녀의 나이가 열 둘이 되던 해였다. 운명의 농간인지 신의 안배인지, 열 둘, 사라진 언니의 멈춰버린 시간, 바로 그 나이에 그녀는 자신이 물어 뜯어야만 하는 먹잇감을 찾았다. 빌어먹을 이스카. 사지를 찢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이스카. 이스카 주교에 대한 복수심이 정지되어 있던 안나의 세계를, 알의 껍질을 깨부수었다.


껍질을 깨고 나온 공주가 힘껏 날갯짓할 오기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랄맞은 당숙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공주가 계속해서 거절해왔던 의회 참석을 마침내 받아들여 출석했을 때, 그녀를 발견한 체르노보그 대공의 눈길. 한심하고 웃기는 것을 바라보는 그 깔보는 시선이 안나로 하여금 깨닫게 했다. 직계 왕족도 공주 작위도 제1왕위계승자라는 지위도 다 소용이 없구나, 권력이 없이는 이 모든 게 허울에 불과하구나, 라는 얼음보다도 차가운 현실을. 허울 뿐인 나는,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구나. 아무도 그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학문에도 무예에도 정치에도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범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대하는 데에 뛰어났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따르게 만드는 것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아니. 공주는 그것을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간절하고, 열정적이었다. 전심전력으로 호소했다. 그리고 진실했다. 결코 없는 말로 구슬리지 않았다. 그저 그것 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진심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시작은 총리대신 로드 카이였다. 그가 담당하던 정치외교 강의 시간에, 처음으로 졸지 않은 날에 그녀는 말했다. 카이, 저는 복수하고 싶어요. 우리 가족에게서 내 언니를, 이 나라에게서 엘사를 빼앗아간 이스카 주교와 교황청, 그리고 그들에게 들러붙어 알랑거리는 부패한 귀족들에게.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요. 그러니 나는 걸림돌이 되는 체르노보그 대공을 치워버릴 거예요. 나를 도와주세요. 잠시 멍하니 공주를 바라보던 머리가 벗겨져가는 중년의 충신은 눈물을 흘리며 안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 말씀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주 전하. 엘사를 마녀로 몰아 교황청에 넘긴 이후 대공은 야금야금 나라를 갉아 먹고 있었다. 교황청과의 충돌 이후 국왕의 권위는 흔들리고 있었다. 아렌델의 충신들에게는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했다. 카이를 필두로, 국가와 국가를 떠받치는 왕가에만 충성하는 고리타분한 귀족들이 그녀의 편이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안나는 자신의 세력을 키웠다. 명망 높은 사교계의 레이디 벨, 의협심 넘치는 육군 장교 서 아담, 암흑가에서 힘 께나 쓴다는 플린 라이더 같은 이들이 그녀의 휘하에 들어왔다. 플린 라이더의 지하조직을 통해 노덜드라 독립군이 공주에게 접촉해왔다. 그들에게 정치적 또는 경제적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주는 그들을 환영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인력, 즉 사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체르노보그 대공이 비밀리에 상당수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나는 그들의 지도자에게 친필 서신으로써 노덜드라의 무조건 완전 독립을 약속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을 자신의 주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가 허니마린이었다. 노덜드라 독립군의 수장 옐레나의 충성스런 부하이자 연락책이었던 그녀는 공주의 시녀가 되었다. 안나는 허니마린이 노덜드라에 있는 어머니의 친정으로부터 자신이 불러들인 레이디라고 둘러댔다. 그렇게 말을 맞출 때 허니마린이 얼마나 질색을 하며 싫어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녀는 자칭 문명국 아렌델의 높으신 공주 전하를 꽤나 불쾌하게 여겼었다. 안나는 그녀의 반감을 이해했다. 선왕 루나드가 노덜드라에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가 이스카 주교를 증오하는 것과 같은 결이었으니까. 안나가 툴툴대는 허니마린에게 웃으며, 네가 날 처음 봤을 때 목을 따지 않은 게 신기하다니까, 내가 보기에는 너 성격 정말 좋아, 따위의 말을 했을 때 그녀가 못 이기겠다는듯 웃었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은 왕궁 사용인의 30퍼센트 정도가 안나의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


참고로, 안나의 또다른 시녀는 레이디 벨이었다. 레이디 벨은 능란한 사교술로 젊은 귀족사회에서 안나의 지지자를 늘려갔다. 안나는 그녀로부터 수년동안 사교술을 배웠지만 도저히 그녀의 능란한 혀놀림과 현란하게 바뀌는 마스크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혀를 기름에 담갔다 뺀 후 금가루를 뿌린 것 같이 말마디로 사람들을 홀렸다. 벨이 말하는 것만 들으면 안나는 자기 자신에게 수백번이라도 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겁지겁 마차에서 내려 동동거리는 발걸음으로, 굳게 닫힌 성당 정문 앞에 섰다. 비글 공주를 발견한 시민들이 까르르 웃으며 그녀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나는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나는 떨리는 숨을 진정시키는 척 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설프게 턱을 치켜들고 점잔빼는 척을 했다. 허둥대는 꼴을 고스란히 본, 성당문을 지키던 두명의 교황병들은 못본 척 하고는 있었지만 떨리는 입꼬리를 차마 어쩌질 못하고 있었다. 계획대로였다. 안나는 그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정신 없는 말괄량이를 연기하고 있었다. 아렌델 국민들에게야 비글 공주 안나는 유명하지만, 교황국 데인으로부터 파견된지 얼마 안 된 이들에게는 낯설 테니까. 갓 아렌델에 입국한 이 한 무리의 데인인들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서는 이들 사이에 빠르게 이미지가 퍼져 주어야 했다. 안나는 기왕이면 이 두명의 병사들이 입 싼 놈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초조한 척 부산스럽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창살문 너머로 책임자가 보낸 것 같은 사람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 사람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것을 티내지 않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흠, 흠흠. 나는 아렌델의 안나 공주예요. 어제 제가 전갈을 보냈는데, 음, 그……. 책임자? 님께 말이죠. 아무튼 그분께서 무어라 말씀 없으시던가요?”



안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그들이 대답하려는 찰나에 먼저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제가 3분… 아니 5분…. 오, 이런, 허니마린. 알겠어. 10분이군요. 아무튼 그 시간을 늦은 건 결코 제가 늦잠을 자 버렸기 때문이 아니고, 잠깐, 나 뭐래니?”



그녀는 자신의 입을 주먹으로 통통 두드렸다. 병사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웃음을 참기 위해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앗, 흠. 아무튼 오전 11시에 책임자? 님과 뵙기로 했답니다……, 그러니까 신사분들, 문을 열어주시겠어요?”



안나는 발을 동동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완벽한 말괄량이 연기였다. 병사 한 명은 마침내 웃음에 굴복해 그녀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반쯤 쓰러졌다. 나머지 한 명은 불쌍하게도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마차에 따라붙었던 왕궁 하인이 태연하게 다가와 공주의 신분 증명서를 내밀었다. 병사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웃음을 참기 위한 잠시간의 침묵 후에 그는 가까스로 말했다.



“아렌델의 안나 공주님. 환영합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두 병사는 반쯤 흐느끼며 철문을 열었다. 안나는 뿌듯했다. 그녀는 서둘러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척 하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제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다시 되돌아가 병사들에게 물었다.



“어, 저어, 근데 제가 책임자님? 이 누구신지 잘 모르거든요? 제가 모르려고 한 게 아니라 그게 그분께서 어제 서명을 주시질 않아서, 아니, 그분 탓을 하려는 게 아니라—— 중요한 건 제가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모른다는 건데요, 어디로 가야——”



허니마린이 나설 차례였다. 그녀는 안나의 등을 밀어 문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어깨 너머로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신사분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그녀는 속삭이는 척 했다. “공주님, 앞을 보세요! 저기 앞에! 마중오신 분이 계셔요!” 병사들과 사제 모두 들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목소리였다.


병사들은 철문을 닫고는 성당 담장을 붙들고 머리를 박았다. 사제는 차마 아렌델의 공주 전하 앞에서 웃을 수는 없었는지 자신의 옷자락을 꽉 쥐고 뺨을 파들파들 떨었다. 안나는 자신의 어깨를 짚은 허니마린의 손 위에 손을 올렸다.


오늘도 완벽한 시트콤이었어, 허니마린.

저도 알아요, 공주님.




————-


다음화에 엘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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