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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션] 불꽃 왕국 - 6

치즈드래곤(119.201) 2014.05.18 16:37:53
조회 441 추천 15 댓글 4



   [불꽃 왕국 - 1]


   [불꽃 왕국 - 2]


   [불꽃 왕국 - 3]


   [불꽃 왕국 - 4]


   [불꽃 왕국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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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 또각.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눈에는 조그맣게 타오르고 있는 불꽃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이외의 것들은 온통 어둠이 둘러싸여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발 밑의 계단을 헛디디지 않게 더욱 조심스레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앞서가는 셀라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 채로, 불타는 오른손을 치켜들어 투명한 계단을 비추면서 말없이 내려간다. 나 또한 입을 굳게 다물고 그녀의 뒤를 따른다. 옷자락을 스치는 진홍색 머리카락조차 심연의 장막이 가려버려 잘 보이지가 않다. 꽤 오래 걸은 것 같은데, 둥글게 굽어져있는 계단의 나열은 좀처럼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것 같다. 그녀의 불빛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한 줄기 주르륵 내 콧자락을 따라 내린다. 곁에서 같이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엘사 여왕 또한 답답한지 작은 한숨을 내쉰다. 젠장, 대체 언제까지 내려가야 하지?






   또각. 또각.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내 귀를 타고 흐른다. 앞에 치켜들고 있는 그녀의 손에는 따스한 불꽃이 일렁인다. 셀라라고 했던가. 나와는 이질적인 그녀의 마법이 이 캄캄하고 깊은 곳을 밝혀주고 있다. 불빛 밑에서 어렴풋이 투명한 계단이 보인다. 비록 유리이지만 꽤 단단한 지, 발을 약간 힘차게 내디뎌도 금조차 가지 않는다. 이것 또한 그녀의 작품이겠지. 어둠 때문에 앞서가는 그녀의 얼굴은 물론, 찰랑이는 붉은 머리카락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 말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로지 발걸음 소리만 있을 뿐인, 완벽한 침묵. 나는 계속 그녀를 따라 내려간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선 모양의 유리 계단은 여전히 밑에 남아 있다. 문득 더워진 기분이 든다. 이것이 한스와 그녀가 파 놓은 함정일까? 온 몸의 신경을 더욱 곤두세운다. 공기가 약간 탁해진 것을 느끼고 부지불식간에 작은 한숨이 나온다. 후우, 대체 언제까지 내려가야 할까?









   "다 왔어."




   셀라는 웃음기 없이 말하며 치켜든 오른손의 불을 꺼 버렸다. 순간 짙은 어둠이 내리깔리리라 예상했던 한스와 엘사는, 계단이 끝나 바닥이 보인다는 사실과 함께, 멀리서 따스한 빛이 여리게 새어나오고 있는 좁은 통로가 그들의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셀라는 뒤에 있는 둘을 확인하러 고개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 통로를 향해 나아갔다. 엘사도 그녀를 따라 통로의 틈새에 들어가려다, 만약 그러면 뒤에 한스가 남아 자신을 협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경계심 품은 눈빛으로 그에게 먼저 들어가라 손짓했다. 한스는 말없이 그녀의 요구에 따랐다.



   터벅, 터벅. 어두운 통로를 나란히 걷고 있던 셋은 그 끝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숨 막힐듯한 더위도 천천히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한스는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입고 있는 검은 수트의 외투를 벗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전에 입었던 옷과는 달리 일일이 달려 있는 단추 때문에 외투조차도 잠시 벗어 던지기가 무척 힘들었다. 결국 한스는 포기하고 계속 걸어갔다. 그의 뒤에서 걷는 엘사는 은연중에 마법으로 시원한 냉기를 몸을 타고 흐르게 해 더위를 느끼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답답한 대기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통로의 끝 틈새로 나와 보니, 그곳엔 거실보다 조금 작은 방이 존재했다. 모두 유리로 되어있는 내벽으로는 건너편의 땅 밑 기반암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방 한 가운데, 주홍빛과 뜨거운 열기를 발하며 높게 치솟는 불꽃의 벽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보호하려는 것 처럼 둥글게 둘러싸여진 채, 그 화염 벽은 가까이 가기 힘들 정도로 무섭게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한스와 엘사는 놀라움을 느꼈다. 그러나 쏟아지는 광채 때문에 차마 눈으로 그것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하고, 한 손으로 자신의 시야를 가릴 뿐이었다.



   셀라는 가만히 서서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곧 앞으로 성큼 나아가 그 불타는 장막에 왼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오른편을 향해 갈랐다.




   샤르륵-




   그 홍염의 벽은 그녀의 손짓 한번에 위아래로 나뉘어 사라져버렸다. 그 맹렬하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그것이 발하던 빛과 열기는 너무나도 손쉽게 존재를 잃었다. 주위가 급격히 차가워진 것을 느끼고 둘은 강렬한 섬광 때문에 들었던 손을 내려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셀라는 자신의 앞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키높이 정도로 길게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 강렬했던 불꽃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두 팔을 벌린 사람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 그것의 얼굴 부분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그녀가 한 행동으로 인해, 한스는 마침내 그것이 사람 모양의 불꽃이 아니라, 정말로 타오르는 불꽃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셀라는 뒤를 돌아, 경악한 채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한스와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엘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얼굴에 소름끼치는 미소를 띄우고 입을 열었다.




   "엘사 여왕님."




   엘사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지가 두려움과 혼란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셀라의 미소가 조금 씁씁해진 듯,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그녀는 재차 말을 걸어 대답을 구했다. - 엘사 여왕님. - 그 말이 머릿속을 파고들자, 또다시 잃어버릴 뻔한 그녀의 이성이 되돌아왔다. 여왕은 살짝 떨리는 어조로 대답했다.




   "네."



   "이 아이의 불꽃을, 당신의 마법으로 식혀 주세요."




   셀라가 말했다. 이루 말 할수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이것이 당신이 절 여기로 데려온 이유인가요?"



   셀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붉은 장발이 불꽃의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한스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 애를 써 보았다. 그래, 바로 저것 때문에 그녀가 엘사 여왕을 이 곳으로 유인했다, 이 말이지. 그는 잠시 두 여인 사이에 내리깔리는 정적을 틈타 그 불타오르는 사람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두 팔을 벌린 채로, 하늘을 바라보며 절규하듯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짧은 머리카락과, 그리 크지 않은 키로 미루어 볼 때에 그는 사춘기 즈음의 소년인 것 같았다. 소년.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한스는 재빨리 그 소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맙소사.' 한스는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낮게 읎조렸다.



   그 소년의 외모는 리버트와 판박이였다. 셀라의 창조물, 온 몸이 유리로 이루어져 있는, 지금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리버트. 아마 그 유리상의 모티브는 지금 저기서 불타고 있는 아이의 어린 시절이었으리라, 한스는 생각했다. 그에게 또 수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저 아이는 대체 누구지? 누구길래 그를 본따서 리버트와 그 며칠 전날 밤 유리상을 만들고, 또 어째서 이 유리성 지하 한 가운데에 두 팔을 벌리고 불타고 있는 것일까? 소년과 셀라는 무슨 관계지? 그가 이런 의문에 해답을 찾으려 머리를 굴리는 도중에, 몇 초간의 정적을 깨고 엘사 여왕이 입을 열었다.




   "저 소년은 누구죠?"



   "나중에, 당신이 이 불길을 멈추어 주신다면 그때가서 모두 설명해 드릴게요."




   엘사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옆에서 혼란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한스 왕자를 스윽 쳐다보았다. '좋아, 함정은 아니군.' 그녀는 지금껏 유지해왔던 경계태세를 마침내 풀고, 앞에서 뜨거운 홍염을 두르고 있는 채 굳어져버린 소년에게 애틋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것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었다. 잠깐 푸른 빛이 일렁이더니, 그 치솟는 화염을 향해 냉기의 마법이 요동치듯 쏟아져나왔다.




   오른손으로 계속 푸르런 광채를 뿜어내던 엘사는 몇 초후, 마법을 멈추고 손을 내렸다.




   불길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여전히 소년을 둘러싸고 타오를 뿐이었다.





   전혀 예상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불꽃 주위에는 그녀의 냉기로 인해 하얗게 서리가 서려 있는데, 어째서인지 정작 솟아오르는 불꽃만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엘사는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셀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점차 돌처럼 굳어져갔다. 허억, 순간 숨을 들이삼키는 엘사의 가슴 깊은 곳에 위기감이 들었다. 한스 또한 셀라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좁은 통로를 향해 물러섰다. 그 때, 그녀의 눈빛이 순간 뒤바뀌더니 오른손을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높이 쳐들었다. 화르륵, 소리와 함께 방 가장자리에 셋을 둘러싸는 거대한 불꽃의 벽이 생겨났다. 통로의 입구 또한 불길로 막혀버린 것을 알아차린 한스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못 가."




   셀라가 말했다. 평온한 어투였지만, 그렇기에 다른 이들에게 다가온 충격은 더욱 컸다.




   "못 가!"




   그녀가 다시금 외치며 다른 왼손을 휘둘렀다.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한스는 열기로 인해 앞으로 몇 발자국 도망치듯이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엘사는 자신의 마법을 쏘아내어 열기를 종식시키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녀가 발하는 푸른 빛은 불길의 표면에 닿자마자 눈 녹듯이 스러져버렸다. 그 정도로 화염의 기세는 격렬했다. 셀라가 엘사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공포에 질린 여왕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셀라는 그녀를 불꽃벽이 바로 등 뒤까지 오도록 몰아붙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 마다, 일그러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분노섞인 일갈이 흘러나왔다.




   "불꽃을, 꺼트리기, 전 까지는, 누구도, 아무데도, 못 가!"




   뒷걸음질 치는 엘사 여왕의 망토가 불꽃 벽에 닿아 그을리기 직전에, 통로 앞의 불꽃 벽 사이로 무언가가 뛰쳐나와 절박하게 소리질렀다.




   "셀라! 그만해!"




   한스는 무심코 그것을 바라보았다. 거센 불길로 인해 빨갛게 달구어져 있는 것은, 바로 리버트였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몸 구석구석 김이 나고 있는 리버트는 자신의 몸이 열로 인해 녹아버릴 뻔한 것도 모르는 지, 곧바로 셀라를 향해 달려가 그녀의 검은 드레스자락을 붙잡았다. 그녀가 자신을 방해하는 이를 물리치려 그 쪽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두 눈에 리버트의 모습이 비춰졌다. 순간, 셀라의 모든 몸짓이 멈췄다. 자신을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작은 유리상을, 그녀는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불길이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오직 정적 밖에 없었다.




   몇 초간 계속 가만히 서 있던 셀라는, 이윽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리버트의 작은 몸뚱이를 부둥켜 안고 자신의 모든 서러움을 쏟아내었다. 그녀의 두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 안의 대기에, 셀라의 통곡 소리만이 커다랗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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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이 너무 적어서 조금 늘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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