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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엘사랑 바이올리니스트 안나랑 눈 맞았음 좋겠다(상)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83.96) 2016.12.26 16:12:28
조회 1447 추천 55 댓글 10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세계의 이목을 온 몸에 받으며 세기의 천재 피아니스트가 된 독일 태생의 엘사. 20대에 이미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을 다 끝내고, 순회 공연마다 매진 행진을 기록할 거야. 머리마저 비상한지라 학문에 대한 관심과 고민으로 이례적으로 유명 대학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하고, 영어나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몇개국어도 줄줄 하는 굇수. 하지만 어린 나이에 이미 피아니스트로서는 커리어의 정점에 이른 엘사는 고민 끝에 20대 후반, 지휘를 배우기로 결심. 음악학교에 들어가 몇 년 간 지휘를 공부하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신인 지휘자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거시다. 미국으로 건너가 갓 생겨난 오케스트라를 맡아 차근차근 충실히 키워나가겠지.

그리고 이 때 막 음악계에 등장한 신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미국 출신으로 아직 앳된 티를 못 벗은 10대 후반, 세계적 콩쿨에서의 깜짝 우승으로 화려하게 데뷔하겠지. 파격적인 곡 해석과 독창적인 연주에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높아지는 유명세에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독주회가 쇄도하겠지. 향후 5년 동안의 스케줄이 이미 정해짐. 그리고 그 와중에, 엘사가 지휘봉을 잡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겠지.

음악계는 일찌감치 두 사람의 만남을 주목해왔을 거야. 이 세기의 클래식계를 이끌어갈 두 신예의 만남이었거든. 얼음에 비견될 정도로 차분하고 칼 같으며, 작곡가의 재림이라 불릴 정도로 원래의 해석을 소름돋을 정도로 충실히 재현하는 음악가인 엘사와는 반대로, 불과 같은 열정과 폭발적인 연주로, 무슨 곡이든 자신만의 스타일로 독창적으로 재해석해내며 다른 의미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안나의 정반대의 스타일이 맞붙었을 때 과연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지 모두가 궁금해하는 바였지.

혹시나는 역시나. 둘의 협연이 결정되고나서 관계자를 동반한 첫 미팅에서부터 두 사람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겠지. 신중하고 침착하게 고르고 골라 한두마디로 의견을 정리해 전달하는 엘사와는 달리, 안나는 갖은 수사구와 바디랭귀지를 동원해 더없이 적극적이고 풍부하게 의견을 개진. 곡을 선정하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도 해석과 판단에 있어 번번이 부딪히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자꾸 벌어짐. 옆자리에 앉은 안나의 매니저 클톱과 엘사의 콘서트마스터 벨은 눈만 데구르르 굴리면서 가시방석 위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거야. 카페에서 앉아 둘이서만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이길 4시간째. 가게 문 닫는다는 소리에야 두 사람(+보릿자루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겠지. 각자 돌아가는 길에 둘은 묘하고 복잡한 기분에 휩싸이겠지.

그 후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와 연습에서도 두 사람은 번번이 부딪히게 될 것이다. 악보 한 페이지만 두세시간씩 반복하면서 자꾸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이겠지. 엘사가 내 해석대로 연주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하지만 안나는 들은 채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해버리고, 그럼 또 오케스트라를 중단시키고 악보를 놓고 둘이서 한참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식. 단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못하겠지.

콘서트마스터인 벨이 나서서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해보려고도 하지만, 서로 원칙주의자 독일인, 자유를 넘어 방종에 가까운 미국인이라며-물론 엘사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조곤조곤 반박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 말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어-으르렁 날을 세우겠지. 그러다 어느 날은 연습 도중 여느 때처럼 둘이 티격대다가 흥분한 안나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일이 생김. 자연히 연습은 중단되고, 단원들에게 일일이 미안하다며 사과한 엘사는 그날 밤 바에서 안 마시던 술을 다 마시겠지. 그 소식을 들은 안나의 매니저 클톱이 찾아와서 두 사람은 깊은 대화를 나눌거야. 물론 안나의 어지간한 공연 영상은 다 찾아봤을 엘사겠지만, 그런 엘사에게 10대의 어린 안나가 연주하는 영상을 넌지시 보여주는 클톱이겠지. 지금보다도 더 제멋대로인 앳된 안나의 모습에 엘사는 그만 피식, 웃음이 나올 거야.

".....그녀는 이제 겨우 21살의, 혈기 넘치는 신인 음악가일 뿐이에요, 엘사. 당신이 그 나이였을 때를 생각해봐요. 물론 감정의 폭을 스스로 주체 못한 것은 안나의 잘못도 있지만."

안나의 그 폭발적인 열정을, 엘사 당신이라면 분명 정제된 형태로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안나는 안나대로 마음이 싱숭생숭하겠지. 아무리 그렇지만 연습 도중에 박차고 나온게 단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그 사람에겐, 자기가 너무 심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온갖 고민들을 안고 강변을 따라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고 있는데, 그런 안나의 눈앞에 불현듯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슥, 내밀어질거야.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벨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씨익 웃으며 서 있겠지. 강변을 따라 걸으며 두 사람은 또 한참이고 얘기를 나눌 거야. 음악에 대해, 또 소소한 이야기들로 능숙하게 대화를 이끄는 벨에 의해 안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겠지. 엘사를 두고 농담 섞어 놀리는 벨의 말에 푸흐흐, 웃기도 한 안나는 또 불현듯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겠지. 두 사람, 정말 많이 닮은 거 알아요? .....네? 엘사랑 당신 말이에요.

"솔로이스트 시절에 지휘자랑 대판 싸우던 것부터, 하나에 꽂히면 들입다 파고 들어가는 외골수 같은 성격까지. 엘사도 당황하는 거예요. 자기 같은 사람을 그렇게 마주하니 어쩔 줄을 몰라하는 거죠."

두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흥미롭기 그지 없다니까요. 살풋 웃음을 터뜨리는 벨의 말에 안나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그저 맞지 않아서 번번이 부딪히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안나는, 아직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앞으로 많은 대화를 나눠봐야할 것 같네요, 두 사람."

깊은 상념으로 제각기 잠 못 이루는 밤은, 무심히도 새벽으로 달려가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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