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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엘사랑 바이올리니스트 안나랑 눈 맞았음 좋겠다(하)

ㅇㅇ(58.142) 2018.05.16 00:18:08
조회 1134 추천 27 댓글 10

지휘자 엘사랑 바이올리니스트 안나랑 눈 맞았음 좋겠다(상)

지휘자 엘사랑 바이올리니스트 안나랑 눈 맞았음 좋겠다(중)





브금 들으면서 읽으면 좋다. 이 노래 들으면서 썼거등.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이 오케스트라의 전통과도 같이 모든 단원들이 함께하는 파티가 열렸어. 공연의 대성공에 잔뜩 흥이 난 단장은 호기롭게 고급 바를 빌려줄테고, 단원들은 제각기 음식과 술을 즐기며 이 성취를 함께 기뻐하며 파티를 즐기겠지. 단원들과 데면데면하기만 했던 안나도 계속 권해준 와인에 얼굴이 살짝 붉어져서는 사람들과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겠지. 

시간이 지나자 조명이 어두워지며 완연한 바 분위기가 날테고, 그러자 또 누가 음악하는 사람들 아니랄까봐 제각기 악기들을 꺼내들고 춤추고 놀면서 난리도 아니겠지. 공연 연습하느라 클래식은 이골이 났다며, 뿡빵대는 재즈나 춤곡을 실컷 연주해댈거야. 한껏 흥이 오른 호른 주자 오큰 아저씨가 안나에게 춤을 청할테고, 안나도 기분좋게 어우러질거야.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웃음과 열기로 공간을 가득 메우던 흥겨운 춤곡이 한바탕 지나가자 어느덧 잔잔한 음악이 달아오른 분위기를 조금은 가라앉히겠지. 그리고 그 때, 어디선가 오큰 아저씨의 어깨를 툭툭 치는 손이 나타나겠지. 

그 손의 주인을 마주하고는 완연한 웃음을 띤 오큰 아저씨가 거대한 몸을 비켜주자, 홀연히 안나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엘사였어. 

"May I have this dance, Madam?"

다분히 장난기를 섞어 춤을 청하는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다소 더 가라앉아있었고, 자연스레 쥐어간 안나의 오른손, 그 손등 위에는 부드러운 입술이 잠시 자리했다 떨어질거야. 쿵. 쿵. 음악이 바뀌면서 제 심장의 속도도 충분히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또 이렇게 빨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어두운 통에 주근깨 가득한 제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지도 모른 채 안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일테고, 훅. 제 허리를 살며시 감싸는 엘사의 손길, 그리고 한껏 밀착해온 몸에 아찔한 안나가 살짝 다리를 휘청거릴거야. 말없이 엷은 미소를 보이며 단단하게 안나를 지탱하고 차분히 춤을 이끌어가는 엘사겠지. 이때까지 서로를 마주할 때는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들이 부딪히기만 했었는데. 어느 때보다 얼굴을 가까이 한 이 순간, 그저 말없이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는 두 사람일 거야. 코 끝 가득 스며오는 서로의 체향. 맞잡은 손끝으로 느껴지는 맥박과 체온, 서로만을 담고 있는 깊은 눈동자만으로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협연엔 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겠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잔잔하던 음악이 마침내 끝을 고하고, 이제 연주는 할만큼 했다는듯 악기를 연주하던 단원들이 악기를 주섬주섬 내려놓고 파티의 한복판으로 다시 뛰어들거야. 동시에 춤판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겠지. 씨익 웃어보인 엘사가 다시 안나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두 사람도 마침내 떨어져나왔지. 어쩐지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오른 안나는 손부채질을 하며 구석에 있는 창문가로 성큼성큼 가버릴테고, 엘사는 목이 타는 듯 근처에 놓인 보드카 샷을 단번에 비워버리겠지.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제 코트를 챙긴 엘사는 단원들에게 자신은 독일로 돌아가 휴가를 가질 계획이라고 얘기할거야. 다음날 아침 비행기라 먼저 가서 짐을 챙기겠다고, 각자 좋은 휴가를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사라지는 엘사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안나는 그저 바라만 보겠지. 


딩동. 

자정에 가까워 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손님이라니. 거기다 이제 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소파에 몸을 파묻었는데! 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틀림없이 이 반갑지 않은 한밤중의 불청객이 벨과 몇몇의 술고래 단원들이라고 생각했어. 이따금 이런 식으로 제 집을 찾아와 제 와인 셀러와 찬장을 동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거든. 

딩동. 딩동. 

나가요! 참을성도 없는 인간들 같으니. 늘어진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엘사가 현관까지 걸음을 옮기면서 끊임없이 투덜거렸어. 

"....내일 아침 비행기라고. 집에 남아있는 술도 없....아, 안나?"

엘사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징글맞은 얼굴들이 아닌, 찬 겨울 공기로 얼굴이 발개진 안나의 모습이었어. 잠시 들어가도 되냐는 안나의 말에 허둥대며 집 안으로 들이겠지. 괜히 어색한 분위기에, 코트를 벗으면서 안나가 놀리듯 말을 던질거야. 

"누군지 확인도 않고 이렇게 문을 막 열어줘도 돼요?"
"벨인줄 알았어요. 또 단원들 끌고 술이나 더 먹자고 집으로 쫓아온 줄 알았죠."

안나의 코트를 받아들고 머쓱한 듯 이마를 살짝 긁적이는 엘사의 손가락 끝에 매달려 연기를 내뿜는 낯선 물건에, 안나는 또 놀라 묻을거야. 

"담배.....도 폈어요?"
"아, 그게....그렇게 자주는 아니고,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 가끔 생각나서. 미안해요, 냄새나죠."
"아니, 아니에요,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건 나니까."

잠깐만 실례할게요. 발코니로 나가서 담배 연기를 내뿜은 뒤에 비벼 끄고 들어오겠지. 그 새 둘러본 엘사의 집은 간소하지만 깔끔하기 짝이 없어. 빈틈없이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벽면 하나에 통째로 자리잡고 있었고, 새까만 그랜드 피아노가 거실 한 쪽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CD와 레코드가 가득한 다른 쪽 벽면에 함께 놓인 오디오와 커다란 스피커에선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는 중이겠지. 소파와 테이블엔 옷가지와 잡동사니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조금 어지럽게 놓여있는 걸 보니 한창 짐을 싸는 와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와인 잔 두 잔에 웬 포도 주스병을 가지고 와 안나에게 내밀겠지. 

"미안해요. 짐 싸느라고 집안 꼴이 말이 아니네요. 마실 거라곤 이거밖에 없고."
"이거....포도 주스...인거죠?"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비슷한 기분이라도 내야죠."

쨍. 유리잔이 부딪히는 명쾌한 소리가 나. 와인이 다 떨어졌어요. 공연 때문에 정신이 없었더니, 셀러가 텅 빈 줄도 모르고....한껏 곤란한 표정을 짓던 엘사가 목이 마른 모양인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깜빡 잊었다는 듯  다급히 소파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짐들을 치워주겠지. 내 정신 좀 봐....좀 앉을래요? 그제서야 소파에 앉는 안나를 두고 발 밑에 거슬리는 물건들을 캐리어로 마구 주워담을 거야. 

"미안해요. 바쁠텐데 갑작스레 찾아와서..."
"아니아니, 괜찮아요, 정말. 짐 싸는 건 핑계고, 사실 쉬고 싶었어요. 떠들썩한 파티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좀 피곤해서..."
"아....쉬어야 할텐데, 나 때문에 또..."
"아니, 정말 괜찮아요. 오늘 같은 날은 잠도 쉽게 안 올테고, 혼자 멍하니 이렇게 소파에 앉아만 있었을 거였으니까요."

방해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도 돼요. 마침내 좀 깔끔해진 주변에 엘사도 드디어 안나의 맞은편에 착석하겠지. 

"그나저나, 여기까진 무슨 일인가요?"

아, 그러니까....포도주스가 든 와인잔을 양손에 쥐고 빙빙 돌려대면서, 한참을 망설이던 안나가 간신히 말을 꺼내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뭐가 고마운데요."
"그냥, 전부요. 내가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릴 때 진작 포기해버렸을 수도 있는데, 그런 날 참고 달래가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성향이 다소 다른 음악가와 의견을 조율하고 맞춰서 연습한 적은 있지만, 어린애를 달랜 기억은 없는데요."
"그렇게 말해주는 것까지 전부, 고마워요."
"...나야말로,"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안나 브라운 씨."

묘한 침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던 그 때, 창밖으로 떠들썩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해. 메리 크리스마스! 자정이 막 지나, 이제 이브에서 크리스마스가 된 모양이지. 꿈에서 깨어난 듯 그제서야 현실에 눈을 뜬 안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벌떡 일어나 코트를 챙겼지. 너무 시간을 많이 뺏았나봐요. 가봐야겠어요. 현관문에 다다른 두 사람은 아쉬운 듯한 인사를 나눌거야. 그럼...

"....메리 크리스마스, 엘사."
"당신도, 메리 크리스마스."

얼굴을 가까이 한 엘사가 살짝 고개를 돌려 안나의 볼에 입술을 맞추겠지. 그저,친구로서의 담백한 인사의 의미. 엷은 미소를 띤 안나가 그제서야 문을 열고 사라지면, 공간을 가득 메운 채 남아있는 안나의 향만 괜히 가득 마셔볼거야. 머쓱하게 뒷목을 비비며 돌아서려고 할 때, 갑자기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올거야. 뭐 두고 간 거라도 있나, 생각하며 엘사가 다시 문을 열자마자, 훅 뛰어들어온 안나가 목을 끌어안고 대뜸 엘사에게 입을 맞추겠지. 놀라움에 동그랗게 커졌던 두 눈은 자연스레 감겨 내려가고, 갈 길 잃었던 두 팔은 안나의 몸을 가볍게 감싸안을거야. 짧지만 더없이 날카로운 입맞춤이 아쉬운 듯 떨어져나가고,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그제서야 조심스레 꺼내놓는 안나겠지. 당신은....

".....아직도 내가 싫어요?"
"싫어하는 걸로 보이나요?"
".....그렇다면,"

조심스레 말을 고르며 흘러내려온 엘사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는 안나의 손은 그저 떨리기만 하겠지. 

"......날, 좋아하나요?"

쿵. 쿵. 누구에게서 들리는지도 알 수 없는 심장소리만 두 사람을 에워싼 짧은 침묵의 순간이 이어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안나의 두 눈을 깊이 바라보고만 있던 엘사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떼어놓겠지. ......만약,

"만약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제 뺨에 머물고 있는 안나의 손을 부드럽게 쥐어내면서, 마침내 입 안을 맴돌기만 하던 제 말을 완성시키겠지. 

".....어떻게 되는 거죠?"

멈춰선 안나에게 천천히 다가간 엘사가 새하얀 손을 조심스레 올려 그 붉어진 뺨을 살짝 쓸어내리다가, 서서히 얼굴을 가까이 해 보드라운 입술 위로 다시 제 것을 살짝 포갰다 떼어내겠지. 

"....모르겠어요, 나도." 

희미한 불빛을 받은 안나의 갈색 눈동자가 일렁거려.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던 떨리는 목소리가 힘있게 이어지지. 하지만, 그저...

"....이 키스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나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입을 맞추는 엘사일 거야. 세 번째로 맞닿기 시작한 두 입술은, 안나의 말처럼 이 밤,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에게 깊게 파고들기 시작하겠지. 

코 끝에서 옅게 느껴지는 담배 냄새마저 섹시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저 오늘이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인걸까. 아직 찬공기가 남은 코트를 벗기는 손을 거들며 담배향 섞인 체향을 폐부 가득 들이마실거야. 오늘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향에 마음껏 취해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아까 마신 게 주스가 아니라 와인인 게 틀림없어. 무언가에 취한 듯 흥분한 숨을 내뱉으며, 안나의 두터운 스웨터 안으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살결을 연신 더듬어대는 엘사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매끈한 등을 아래서부터 거슬러올라 간 엘사의 손이 안나의 브래지어 후크를 찾아 탁, 끌러내리자 순간 움찔하면서도 그 손을 이끌어 제 가슴으로 데려다 놓는 안나의 대담함에 씨익 미소지은 엘사겠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르고 진득하게 얽어진 몸을 이끌어 비틀비틀 침실로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일거야. 아무렴 어때.

....크리스마스니까.

아직 끝나지 않은 두 사람만의 협연은 밤이 깊어가도록 쉬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 되었을거야. 




썰 기억하는 쥬미 있냐.

아끼는 썰인데 아까워서 오랜만에 생각나서 마저 써서 올려봄.

현실이 초여름이니까 썰 배경은 겨울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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