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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9-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2 2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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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박.”



라푼젤은 핸드폰 속 안나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는 입을 헤 벌리고 연신 감탄사만 흘러내고 있었다. 프로필속 안나는 롤리팝을 한입 물고 있는채로 초롱초롱한 두 눈망울로 라푼젤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귀여운 빵모자를 쓰고있는 그 미색이 짙은 모습에, 라푼젤은 눈을 떼지 못하고 부럽다는 듯 사진을 확대해보기도 하고 고개를 가까이 해보기도 했다.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엘사가 볼을 긁적이며 떨떠름하게 침을 삼키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게 별거 아니라고? 이야 우리 엘사 많이 컷다아~, 이런 슈퍼스타 운전교육을 다해주고. 야 넌 복받은거야, 나였으면 운전기사 시켜달라고 바짓가랑이 라도 붙잡고 있었겠다.”


연신 부럽다, 부럽다. 라며 중얼거리던 라푼젤은 엘사의 중얼거림에 이해할수없다는 듯 두 눈썹을 치켜세우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라푼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언가 고민에 빠진듯한 엘사는 밝은 햇빛이 오가는 창문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와 진짜 너무한거 아니냐, 인생 혼자사는 미모네. 엄청 이쁘잖아~”


화면을 넘겨 다른사진을 보았는지, 다시 헤 하고 입을 벌리고는 뚫어져라 핸드폰 속 안나를 쳐다보는 라푼젤이였다. 안나의 솔로 앨범커버용으로 찍은 것 같은. 조금은 노출이 섞여있는 무대용 하얀 핫팬츠 와 몸에 달라붙는 치어리딩 셔츠, 펑퍼짐한 야구점퍼를 쓰고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이는 사진이였다.



“근데, 그나저나. 그래서 애인사진은 어디있어. 빨리보여줘”


순간의 정적, 엘사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정말 잘못들은건가 싶어 재차 물어보려 멍하니 고개를 돌려 라푼젤을 바라봤다. 그저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고만 있는 모습이였다.



“..뭐?”
“..?..애인사진 달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척, 하며 자신의 메신저를 보여주는 라푼젤은 스크롤을 내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한 눈빛으로 엘사를 째려보았다. 잠시 머리를 굴린 엘사는 대충 정리가 되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역시 그럼 그렇지. 참으로 라푼젤 다웠다. 저 좋은머리를 이럴때는 못쓰는구나 싶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야 너 설마..”


뜨끔, 설마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건가 싶었다. 눈치를 못 채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점점 커지는 그녀의 눈동자에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라가는 목을 축이려 커피를 한잔 홀짝였다.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걱정도 되었다. 나름 친한 친구이니 이해해 주지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있었다. 뭐, 나름 살면서 라푼젤과 이것저것 볼꼴 못볼꼴을 보여주며 살았으니 이정도야 쉽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볼까봐 애인사진 다 지웠냐?”


다시 한번 라푼젤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참으로 좋은 친구였다. 착하지만 조금은 모자란 친구.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돌려주는 라푼젤을 보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핸드폰을 건네준 뒤 다시 턱을 괴고 앉은 라푼젤은 재미없다는 눈빛으로 엘사의 얼굴 이곳저곳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은 엘사를 보고는 번호를 물어본다던지, 아니면 모델 제의를 하는 등등 미모에 대해 칭찬일색이였다. 하지만 라푼젤의 눈에는 그저 말 안 듣는 철부지, 사고뭉치 친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가 예쁘다는건지.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지만 적어도 자신이 볼 때는 예쁘다 정도는 아니였다. 물론 일반인과 비교한다면 다르지만 연예인을 할만한 재능은 못돼보였다. 성격도 성격인지라 분명 엘사 본인이 못 견뎌낼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에휴.. 아무튼 그런거 아니야!, 사귀는것도 아니라고!”
“그럼 뭔데. 썸?”


잠시 고민하는 듯 턱에 손가락을 올리고 천정의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던 엘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라푼젤과 눈을 맞추었다.


“..비슷..하지..?..”
“아아, 그래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계셨구만?”



라푼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허리춤에 손을 얹어놓고는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마치 일타강사가 칠판 앞에 서서는 무언가를 가르치려는듯한 묘한 표정처럼 미간을 찌푸린체 엄중하고 근엄한 척을 했다.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중 라푼젤은 손가락을 뻗어 엘사를 가리켰다. 아주 중요한 키워드를 알려주는 과외선생님의 모습처럼.



“어서 나에게 말해보거라, 나 눈치 백단인거 알지? 다 알려주마 이 언니의 연애스킬을.”
“전혀 눈치 백단같이 안보이는데. 그리고 썸도 아니야 좋아하는건지도 아직 잘 모르겠어”


생각만큼 자신의 모습이 재미가 없었던 것인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뻗었던 손가락을 접고 어색하게 옷 여기 저기를 털며 엘사가 앉아 있는 소파의 옆자리로 몸을 옮겼다. 푹신하게 몸을 감싸오는 소파가 좋았는지 팔 다리를 쭉 피며 작은 스트레칭을 하더니 축, 쳐져서는 하품을 하는 라푼젤이였다.



“뭐야 싱겁기는..그러니까, 너도 너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는 거야?”
“그렇지 뭐..”


“음음, 내가 또 이런 고민의 해결법을 알고있지!”
“뭔데?”



슥, 들어오는 얼굴에 엘사는 윽, 하는 작은 신음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만치 뺐다. 아랑곳하지 않고 살짝 비웃음 같기도 하는 미소를 풀지 않고 잠시동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자신의 자리로 몸을 빼고는 입을 열었다.



“만나, 자주만나, 틈만나면 만나.”
“만약 상대방이 못 만나는 상황이면?”


“..엑, 그건 생각안해봤는데..”
“어휴..”


절래절래 고개를 저으며 이마에 손을 짚는 엘사의 모습에 라푼젤은 머쓱하니 뒷통수를 긁으며 헤헤 웃었다.



“음..그러면, 이건어때. 그 사람을 만났을 때 한번 자주 웃어봐”
“그건 무슨소리야?”



“그냥 바라보고 웃어보라고, 웃었는데 상대방도 나를 보고 웃는다? 그리고 그게 잊히지않고 기분이 좋다? 그러면 마음은 좋아한다는거지..음,아닌가?”


참으로 라푼젤다운 생각이다. 이렇게 천진난만 하고 때로는 백치같기도 한 그녀였지만 엘사가 보기에는 그래도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웃음이라는게 그렇지 않는가,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표현의 수단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수없다면 몸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도 알아서 따라오겠지. ‘모 아니면 도’ 라는 생각으로 나름 결의가 보이는 얼굴로 끄덕이는 엘사였다.



“근데 만약에 정말 이 방법이 틀리면?”


“넌 내가 웃으면 무슨생각이 드냐?”
“죽빵?”


싱글싱글 웃던 얼굴이 엘사의 주먹을 보더니 추욱 늘어졌다. 시무룩해진 표정이 되버린 라푼젤의 모습에 작게 실소를 내었다.


“..너무하네..아무튼 내 꿀팁 잘 생각해봐.”


쩝, 라푼젤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젓고는 일어서서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서랍에서 정비용 장갑을 한 짝 꺼낸 뒤, 책상 위 어지럽게 펼쳐진 서류들을 들췄다. 종이들을 이리저리 한쪽으로 밀쳐내고는 무언가를 찾는 듯 하더니 곧 작은 자동차 키 하나를 엘사에게 휙 던졌다.



“난 작업하러 가야되니까. 저 밑에 대차 해서 가”


그것을 잡아 챈 뒤 차키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엘사는 의아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 왠일이야? 차도 빌려주고?”
“운전교육 강사가 차가 없어서 되겠냐. 사고내지 마, 비싼거야.”



쓰읍, 하며 작게 침을 삼키고는 잔뜩 불안한 표정으로 차키를 가리켰다.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살짝 차키를 흔들던 엘사는 들고있던 커피잔을 테이블에 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볼일은 끝났다. 라푼젤은 자신의 애마를 아주 깨끗하게 고쳐줄 것이다. 성격은 저래보여도 나름 자동차 앞에서는 신중하고 진중한 한명의 미케닉이 되는 그녀였기에, 엘사는 자동차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 라푼젤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아무렴, 지금까지 그녀의 말을 듣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게 몇 번이나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사무실을 나와 계단을 타고 내려와 자신의 애마를 뒤로하고 공장 밖으로 걸었다. 뒤 따라 라푼젤도 같이 내려왔다. 엘사가 직원용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던 많은 차들을 향해 손을 뻗고는 차키의 잠금 해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홀로 주차장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 있던 검은색 BMW 330 I 의 접혔던 사이드미러가 노란 LED 불빛이 반짝이며 펴졌다. 작은 감탄사와 함께 차의 범퍼와 헤드라이트를 관찰하던 엘사는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차 문을 열고는 털석 운전석에 앉았다. 새차와 다를 것 없이 느껴지는 실내의 냄새와 깨끗한 내부에 주위를 둘러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에 기가찬 듯 피식 웃는 라푼젤이였다.



“잘 탈게, 땡큐!”


시동 버튼을 누르자 우웅, 하는소리와 함께 실내의 여러 버튼들이 반짝이고는 네비게이션과 계기판의 화면이 켜졌다. 처음 보는 디지털 계기판에 신기한 듯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여러 눈에 들어오는 빛들을 빠르게 훑었다. 어짜피 쓰는 버튼은 거기서 거기였기에 딱히 궁금한것도 없었다. 엘사는 문을 닫은 뒤, 창문을 내렸다. 그리곤 가늘고 여리한 손을 들어 작게 흔들었다. 그 모습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충 손을 뻗어 휘적거리던 라푼젤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한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나중에 그 썸탄다는 애랑 잘 돼서 사귀면 셋이서 얼굴이나 한번 보자”

“셋이서? 왜?”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엘사는 라푼젤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새끼 쳐야지. 조언 값은 받아야 되지 않겠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들고는 음흉한 눈빛으로 씨익 미소짓는 라푼젤을 보며 엘사는 한숨을 쉬었다. 언제 꼭 남자한명 대려다 줘야겠구나 생각하며 씁슬히 혀를 찬 뒤, 손을 뻗어 기어를 조작했다.


“잘 가라.”


“어, 바이”



살짝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주차장을 나서는 검은색 BMW를 보지도 않고 뒤를 돌아선 라푼젤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공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느새 시간은 점심이 가까워져 햇빛이 내리쬐고, 어디선가 참새가 지저귀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참으로 맑은 날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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