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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18-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5 21:08:51
조회 178 추천 1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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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줄, 엘사의 이름까지 눈으로 훑었던 안나는 그 자리에서 서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편지에 쓰여 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짊어진다고?, 더럽고 치사한 것?.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던 기억들의 어딘가가 똑, 하고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공백이 온 머릿결을 곤두서게 만드는 듯 했다. 편지 속 엘사가 말하는 내용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잠시 잊어 달라고?,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가능할리 없었다. 얼마나 냉철하게 이 상황을 판단해야 사랑했던 사람을 잊을 수 있는 것일까.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헛된 희망을 다시 끌어오는 것 말고는 이해할 수 없는 편지의 내용. 고작 이정도 내용이 전부였다.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날들이 부정당하는 듯 했다. 지금껏 고통받아온 많은 시간들이 너무나도 쉽게 느껴졌다. 엘사 에델바이스는 안나에게 또 다시 희미하고 불확실한 약속을 건네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잘 살아보라고? 나를 위한 삶을 살라고.. 지켜보고 있겠다고...?”



지금껏 가져왔던 모든 슬픔이 역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곧 분노로, 그것은 일방적인 분노가 아니였다. 깊이 한 맺힌 응어리들이 터져 나오는 분노였다. 편지를 들고 있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붉게 달아오르는 눈시울과 함께 밤새 수척해진 안색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곧 편지를 구깃구깃 접은 그녀는 어느새 편지가 아닌 종이뭉치가 된 그것을 방안의 구석지에 던졌다. 씩씩거리는 호흡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간 종이뭉치를 노려보던 안나는 풀리지 않는 분에 못이겨 화장대 위의 여러 병들을 밀쳐내며 어지럽혔다.



“겨우!!..겨우!! 이런 변명만 늘어 놓는거야?! 그런거야?! 나는..나는 칠년을 기다렸는데!!”



두껍고 무거운 병들이 이리저리 떨어지고 부딪히며 쨍쨍거리는 파열음을 내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화장대 위를 노려보던 그녀는 화장대에 붙어있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수척해진 두 볼과 길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산발이 되어있는 머리들을 보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화장대 앞의 의자에 풀석, 주저앉은 안나는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멍하니 응시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사랑한다면서...살아있다면 한번은 나타나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도대체..도대체 어디있는거야..말이라도 해줘..”



지금껏 넘어져서는 그대로 일어나지 못할 뻔 한 것이 여러 번. 그럼에도 꿋꿋이 다리를 털고 어떻게든 일어서서 앞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 넘어진다면 일어날 힘이 남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거울 앞에서 조금씩 훌쩍이던 안나는 바닥에 떨어진 티슈 곽을 집어 들어 티슈를 몇 장 뽑았다. 이젠 흘러내릴 눈물도 없는지 따갑게 매마른 눈과 얼굴을 슥슥, 닦았다. 거울 속 훌쩍이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멍하니 쳐다보던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떨어진 화장품이 담긴 병들과 파운데이션들을 집어 들었다.



다시 차곡차곡 위치를 찾아 정리하던 중, 구석지로 굴러간 병을 집어 들었을 때, 안나는 주춤하며 자신의 손가락에 느껴지는 따가운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한쪽이 깨져 조각들이 날린 병과 함께 아세톤 향이 코를 찔렀다. 짧게 침을 삼킨 안나는 조각에 베여 피가 맺히는 손가락은 신경 쓰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비닐봉투와 걸레를 들고 왔다. 거칠게 봉투 안으로 던져 넣은 뒤 빠득빠득 바닥을 닦자 아세톤 향은 점점 거세져 온 방안에 화학냄새가 풍겨졌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이빨을 드러내며 벅벅 바닥을 긁고는 걸레를 있는 힘껏 던졌다. 축축이 젖어 빠르게 날아간 걸레는 방 한구석의 작은 인형들이 모여 있는 진열장에 맞고는 몇 개의 눈사람 인형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안나의 손가락에서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영혼 없는 눈빛으로 빨갛게 물들여진 자신의 손가락을 보던 안나는 뚜벅뚜벅 욕실로 걸어갔다. 한걸음, 한걸음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녀 뒤를 따라 한 방울 씩 핏방울이 떨어져 길을 이루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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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방울져 떨어지는 손가락을 세면대에 담그자 맑은 수돗물이 붉게 물들었다. 점점 피어나는 붉은 장미를 보듯이 멍하니 피가 퍼져나가는 것을 관망하던 그녀는 뜨듯 미지근한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며 손가락을 움직여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물 속에서 얽히고 일렁이며 춤을 추듯 흩어지는 핏물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미쳤나봐..이게 아름다워 보이네..”



레버를 올려 배수구를 열고 수돗물을 틀자 붉게 물들었던 핏물들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점점 옅어지는 것을 지켜보자 마치 그 광경이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보였다. 몸속의 뜨거웠던 감정이 빠르게 옅어지고, 흐려져 빈 공간이 되는 것처럼. 이제 자신은 공허한 몸뚱이를 가지곤 어떠한 것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점점 차오르는 투명한 수돗물처럼.



욕실에서 나와 드넓은 거실로 걸어온 안나는 촉촉이 젖은 손을 닦고는 티비 옆 작은 서랍을 열어 구급상자를 꺼냈다. 약품냄새가 진동하는 상자 속에서 밴드를 찾아 손가락에 감쌌다. 그 위에 반창고를 덧대어 단단히 고정시키곤 상자를 닫아 서랍 속에 가지런히 넣어두었다. 하얀 반창고에 돌돌감긴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짓던 안나는 다시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치기에는 아직 일러.”



오늘은 엘사와의 두 번째 운전교육이 있는 날 이였다. 약속된 시간은 오전 11시. 욕실에 들어서기 전 확인한 시계엔 9시 정각을 비추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생각한 안나는 잠옷과 속옷을 벗어 욕실 앞 한쪽에 모아두고는 살짝 찬기가 느껴지는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기의 물을 틀자 따듯한 온수가 뿜어져 나왔다. 온몸이 젖으며 나른하게 감싸는 수증기와 따듯함에 눈을 감았다. 이 따듯함이 수증기가 만들어 내는 건지, 엘사 아렌델을 생각하자 조금씩 뛰는 심장이 만들어 내는 건지 안나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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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슬픈거 다썻다..존나 우울증 올뻔했네 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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