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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19-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6 17: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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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바램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희뿌연 안개처럼 촉촉이 내려오는 가루비와 함께, 조용한 시골의 도로를 달리는 미니밴 안.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조용히 창문 밖을 응시하던 안나는 씁쓸하고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창문에 한 두 방울씩 맺혀 흘러가는 빗방울을 보았다. 천천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르며 움직이는 자동차의 진동과 습한 공기가 섞여 묘하게 기분 좋은 포근함이 밀려왔다. 마음속에 가졌던 고민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지금의 순간을 맛보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등을 몇 개 지나치고, 듬뿍 습기를 머금고 젖어가는 가로수를 지나치자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가 눈에 띄었다. 강 너머로 굳게 뻗어있는 산줄기들과 초록의 빛으로 수놓아진 나무들을 보자 밀려있던 피로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곧 그녀는 엘사를 만나게 된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강가를 따라 쳐진 울타리들과 작은 보도블럭. 그 옆, 2차선의 아담한 도로. 속도를 줄여 천천히 기어가던 미니밴은 허름한 정류장 앞에 멈췄다. 지난번 그녀와 처음 만났던 정류장 이였다.



“조심히 운전해야 된다?”


“고마워요. 끝나면 전화할께요”



매니저와의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그가 건네는 우산을 받았다. 묵직한 차 문을 열자 비오는 날의 습한 공기가 그녀의 피부를 감싸왔다. 금새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며 매니저에서 싱긋 미소 짓던 안나는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었다. 손을 흔들자 조금씩 자신을 태웠던 자동차가 멀어지고 그녀는 홀로 남게 되었다. 우산을 토독토독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 잠시 서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으니 그녀가 도착하기에는 멀었을 것이다. 분명 저 멀리서 다가오겠지, 그때도 그랬으니까. 이전과 다름없는 고요한 빗소리만이 들리는 풍경 속에서 안나는 잠시 예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 전의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내렸을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정신없이 살아오던 그때.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하지만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사랑했던 사람을 닮은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알고 있다. 너무도 익숙하니까. 마치 같은 인생을 살아온 것만 같은 무례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나를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좋았다. 지나가며 놓쳐왔던 많은 감정이 생겨났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진심을 다해 그녀가 좋았다. 아니, 좋아한다. 엘사 아렌델을.


“진짜 미쳤네....”



어느 샌가 안나는 발걸음을 옮겨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 찰박찰박 보도블럭 위 작게 고인 물들을 밟고, 지나갔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편하게 눈에 들어오는 나무들과 저택들은 더 없이 고요했고, 그들을 벗 삼아 사색에 잠긴 그녀는 정처없이 작은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엘사 아렌델..”



기억에 존재하는 모습들은 호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안나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그녀가 날 좋아할까? 아니, 정말로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는게 맞는걸까? 그저 닮은 모습에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몸과 정신이 기억하는 일들에 감정이 휩쓸리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만약..나한테 관심이 없으면 어떡하지..”



안나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끄응, 하는 신음성과 앞 이마를 긁적거리던 그녀는 눈 앞에 보이는 작은 돌멩이를 탁, 찼다. 통통 튀기며 굴러가던 돌멩이는 보도블럭의 턱 너머 갓길의 하수구 앞에서 멈췄다. 실컷 흐르는 빗물에 잠겨 적셔지는 돌멩이를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시원해지는 것만 같았다. 우산을 든 채로 쪼그려 앉은 안나는 빗물 속, 반신욕을 하는 듯 반쯤 담구어진 그 돌멩이를 멍하니 처다봤다.



흘러가는 빗물처럼, 안나의 머릿속에도 여러 기억들과 고민들이 이리저리 흘러갔다.


결국 하수구로 모이는 빗물처럼, 생각을 집중하던 안나의 머릿속에도 하나의 결론으로 모든 의문들이 모아졌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어,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



자신도 듣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내뱉은 말. 그리고 안나는 핫, 하며 고개를 처들었다. 황급히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10시 50분. 동그래진 두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한참을 걸어왔던 것인지 자신이 내렸던 정류장은 풍경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씽!”



벌떡 일어나서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도도도 달려가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뒤에 남겨진 돌멩이는 잔뜩 빗물 받아들이더니 조금씩 밀려 들썩거렸다. 곧, 거세지는 빗방울과 함께 빗물을 타고 기분 좋게 흘러가던 돌멩이는 하수구 옆 작게 피어있는 민들레의 품 속으로 들어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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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분 정도를 뛰어 도착한 정류장 앞, 그곳에는 검정색 자동차 한 대 만이 비상등을 키고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였다.


“뭐야..오늘도 늦는건가..”



조금씩 차오르던 호흡을 가다듬던 안나는 괜히 뛰어왔다는 생각에 아쉬운 듯 입을 오므리고는 작게 혀를 찼다. 가만히 정류장을 바라보며 근처의 저택들을 흝어보니 나중에 늙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이곳에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잡생각이 떠올랐다, 안나도 스스로가 떠올린 잡념이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실소를 내뱉고는 살랑살랑 흔들리는 걸음으로 정류장 근처를 뱅글 뱅글 돌았다.



“아아..언제오는거야~”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 자신의 퍼플색 후드티에 떨어졌다. 빗방울은 따듯했다. 손을 뻗자 손 바닥 위에 방울 방울 맺히는 빗물들. 순식간에 작은 손 안의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보고 씨익 웃은 안나가 손바닥을 크게 펼치자 고여있던 빗물은 보도블럭 위에 후두둑 떨어져서는 다른 빗물과 섞여 어디론가 흘러갔다. 젖은 손바닥을 청바지에 슥슥 닦아내고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시계를 보았다. 11시 11분. 아직도 보이지 않는 엘사의 하얀색 자동차를 찾던 안나의 시선속에 앞에 세워진 검은색 승용차가 눈에 띄었다.



“설마 이건가?”



짙은 유리창 때문에 차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 서 있는데 잠에 들지 않는 이상 못 볼 리가 없었다. 고개를 뻗어 얼굴을 유리창 가까이 대고 두눈을 가늘게 뜨자 희미하게 차 안의 윤곽이 그려졌다. 밝은 빛이 띄는 것을 보니 마치 핸드폰을 들고 있는것만 같았다. 누군가 시트를 뒤로 눕혀선 핸드폰을 보고있는 것이다.


“엘사 맞는거 같은데..”


작게 헛기침한 안나는 희미하게 백금발의 머릿결을 본듯한 느낌에 손을 뻗어 유리창을 똑똑 두드렸다.

‘히익!’


“풉, 맞네..”



바깥으로까지 들려오는 작은 비명과 놀란 듯 고양이처럼 경련하는 엘사의 모습에 안나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저런 엘사의 모습은 꽤나 의외였다. 귀여운 구석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잠금이 풀어진 도어 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아 이차 맞구나, 오랜만이에요~”


“어, 어서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마치 오랫동안 지켜 본 듯한 익숙함이 피어올랐다. 언제 보아도 참 예쁜 얼굴 이였다. 엘사는 지난번과 같은 청자켓과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름 그녀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패션이였다.



싱긋 웃음을 짓고는 엘사의 눈을 바라봤다. 맑은 바다의 눈. 정말로 빠져들것만 같은 두 눈동자에 가슴 한 구석이 저릿했다. 엘사는 안나의 눈을 어색하게 피하고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응?..왜 저러지..’


처음 보았을 때 하고는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모습을 알아챈 안나는 마음속에 작은 호기심이 생겨났다. 방금 엘사가 보였던 행동들과 모습에 무언가 숨기는게 있는 것인가 싶었다.


손잡이에 튄 빗방울을 자신의 옷 소매로 샥샥 닦고는 우산을 발 밑 언저리에 두었다. 눈에 띄는 신기한 인테리어에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향이 좋은데요?, 이번에 새로 뽑은거에요?”


첫 마디를 어떤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던 것들과는 다르게 자신도 모르게 능숙하게 내뱉어진 인사치레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 아니 잠깐 빌린거야..그..전 차는 수리 맡겨놔가지고..”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


엘사의 말을 듣자 안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그러고 보니 하얀색 차는 지난번 자신이 긁어먹었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진심을 담아 사과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손해배상 청구도 안하는 그녀가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아냐!! 그럴수도 있지..”


말을 더듬으며 손사래를 치는 엘사의 모습을 보니 또다시 풉, 하고 실소를 내뱉을 뻔했다. 이런 의외의 모습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자신이 보아도 굉장히 어색해보이는 미소를 짓는 엘사를 보니 더욱 마음속 한 구석이 아려왔다. 정말로 자신은 이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습도 예쁘네.’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는 그녀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어색한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눈웃음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한 장의 아름다운 인물화처럼 보였다. 만화속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모든 관심과 집중이 그녀에게로 향해있었다.



“다행이네요, 전 그때 엘사가 엄청 화나신줄 알고..혹시 그만두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설마! 그런 일은 없을거야!”


“네?, 아, 그래주시면야 고맙죠.”



‘무슨일 있나?..놀래라..’


왁, 하고 고함치듯 대답하는 엘사의 목소리에 놀란 안나는 티를 내지 않고 마음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방금 전도 그렇고 무언가 숨기는게 있는 듯 오늘따라 이상한 엘사의 행동에 안나는 고개를 그녀가 보이지않을 정도로 살며시 갸웃거렸다. 자신이 뱉어놓고 스스로가 놀란 듯 엘사 역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던거 같았는데’


혼자 고함치고 혼자 놀래서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당황하더니 이젠 갑자기 안나에게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잠시 그 행동들을 멍하니 지켜보며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안나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그럴리는 없겠지..’



나를 좋아하나?. 라는 말은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어디 아파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어? 아,아냐 그런거! 오늘 컨디션 괜찮은데?”


나름의 확신을 가진 안나는 마음속으로 키득거리며 한번 골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반응이 좋아서야 한번 장난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인 안나에게 딱 들어맞는 상황이였다. 나름 가늘게 뜬 걱정되는 표정을 만든 안나는 엘사의 이곳 저곳을 훑었다. 자신의 시선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긴장하고 작게 떨리는 것들이 눈이 보였다. 곧, 희미하게 보이지 않을 미소를 머금은 안나는 엘사가 알아차릴 수 도 없이 엘사의 이마에 손을 뻗어 턱, 하고 매만졌다.



“아픈거 맞는 것 같은데”

확실하게 굳어있다. 고양이같이 당황해서는 자신의 손이 부적이라도 되는 것 마냥 뻗뻗하게 경직된 몸과 표정을 보니 정말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진짜 귀엽네 이 여자’


가만히 이마에 손만 대고 있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였던지 안나는 자신의 이마도 만져보고, 다시 엘사의 이마를 만져보고, 살살 더듬으며 자신의 사심을 채우면서 그녀의 보드라운 피부를 느꼈다.


‘아..따듯해..피부 진짜 곱다.’


뻗었던 손을 거두고는 자신의 손바닥 안에 남아있는 온기와 감촉을 느꼈다. 너무도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는 연신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며 엘사의 흔적을 더듬던 안나는 그런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엘사의 시선에 풀어졌던 표정을 다시 고쳐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요”


“그렇지? 날도 안 추운데 감기에 걸릴 리가 없지”


격양된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를 더듬는 엘사를 보았다. 그녀도 나처럼 비슷한 감정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작은 바램이 떠올랐다.



“그럼 교육 시작하기 전에, 나 담배한대만 피고 와도 될까?”


지난번에는 마음대로 나가버리더니, 오늘은 어색하게 안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엘사의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예전 자신이 핸드폰을 봐도 되냐고 물었을 때 대답했던 엘사의 말이 떠올랐다.


“넵 편하실대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담배를 챙겨 나서는 엘사의 모습 뒤로 안나는 드디어 쿠국, 하고 미소짓고 웃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결론은 나왔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엘사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자동차를 지나 뒤편으로 걸어가서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엘사의 모습을 사이드 미러로 흘깃 바라보던 안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만나기 전 생겨났던 의문들 중 하나는 풀렸다.



‘나는 엘사를 좋아해. 그리고 그녀도 나를 싫어하지 않아.’


하지만 아직도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하나의 의문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엘사 에델바이스와 너무도 닮았어. 그래도 괜찮을까?’



방금 전, 엘사 아렌델과 나누었던 감정들은 모두 엘사 에델바이스와의 기억속에 같이 잠들어 있던 감정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애써 외면하고는 있었지만, 몸이 기억하는 그녀의 흔적을 영원히 지울 수는 없었다. 아직도 엘사 아렌델을 생각하면 따라다니는 의문들에 답답했던 것인지 안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끝이 떨렸다. 이즈음 되면 잊혀져야 하는데, 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참..답답하네..”


엘사 에델바이스는 지금 내 곁에 없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엘사 아렌델이다.


어느새 눈앞을 가려오는 눈물들이 부끄러운지 안나는 흘러내릴것만 같은 눈을 황급히 부볐다. 엘사가 지금 자신을 보면 싫어할지도 몰랐다. 혼자만 가져야 하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보이긴 정말 싫었다. 엘사가 오기 전에 눈물을 닦아내고 안나는 억지로 웃었다. 최대한 해맑은 미소를 내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유리창 너머 비추는 우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 사이드미러의 엘사의 모습을 보았다. 폭폭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무언가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고민이 자신을 생각하는 고민 이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착각을 하니 자연스레 입 꼬리가 올라갔다. 울다가 웃는 스스로가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인지 혀를 차며 실소를 내뱉었다.



따듯한 히터의 공기가 감싸안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안나는 작은 결심을 했다. 이룰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결심.



사이드미러를 보자 엘사가 뚜벅뚜벅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곤 고개를 빼꼼 내밀자 엘사의 걸음이 멈췄다.



“제가 운전석에 앉으면 안돼요?”


“..마음대로 해”



여전히 자신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엘사에게 작게 미소 지은 안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잠겨있던 문을 열었다. 부디 빗방울에 자신이 흘린 눈물자국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몸을 움직여 운전석으로 뛰어갔다.



“뭐해요! 빨리 타요!”


“어여, 갈게”



운전석에 앉은 안나는 그녀가 어서 조수석에 오기를 바랐다. 오늘이 지나기 전, 부디 방금 자신이 결심했던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시나브로 떨어지는 빗방울 너머, 창 바깥은 초록빛 물결에 휩싸인 따듯한 봄비의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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