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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24-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2 23: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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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엘사는 어떠한 환호성도 지르지 않았다. 손바닥을 맞닿아 입술에 가져다 대거나 아랫입술을 물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찡그린 채로 무대 위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했다. 두 눈 안에 담긴 안나의 모습을 지켜보기는 했지만 하얗게 바랜 머릿속 안을 정리하는 것들에 집중을 한 탓인지 전혀 공연장의 열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 동안 안나는 무대 위에서 아이돌의 매력을 한껏 뽐내며 이리저리 뛰놀았고 오로지 엘사의 옆. 라푼젤 만이 신나서는 방방 손을 흔들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늘만을 즐기기 위한 열성팬이 되어가는 그녀와 반대로 엘사의 얼굴은 점점 무표정한 사색에 잠겨 아무 말 없이 가끔 눈을 부시는 조명에 입만 뻐끔거릴 뿐 이였다.



 ‘펑!!’


 “꺄아아악!! 안나 예쁘다!!”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화려한 폭죽들과 함께 안나의 마지막 셋리스트의 곡이 끝났다. 폭죽소리와 귀를 찢는 여성팬들의 목소리 덕에 사색의 흐름 속에 갇혀있던 엘사의 정신이 돌아왔다. 흉부가 들썩거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가쁜 호흡을 내쉬는 안나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조명에 반사된 그 모습마저 섹시하고 아름다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예술적인 한 편의 공연이 모두 끝마쳐졌다. 안나는 능숙하게 조금씩 줄어드는 스포트라이트 사이로 스탠딩 석에 위치한 관중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쇼맨십의 일환인 듯 남성 팬들에게는 귀여운 윙크를 날리고 공연 중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간단하게 매만졌다.



 “여러분~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구요~ 다음 공연 때도 꼭! 오실꺼죠?~~”



 안나가 마무리 멘트를 던지며 몸을 숙이곤 손을 귀에 대었다.



 “그럼요!! 당연히 가야죠!!”


 “너 진짜 미친 거 같아...”



 라푼젤은 이미 광팬이 된 듯 안나의 마무리 인사에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안나보다 더더욱 땀에 젖어선 이미 산발이 되 버린 들개머리와 광적인 눈빛으로 두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라푼젤을 보자 허 하는 탄식을 내뱉던 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씩 줄어드는 조명과 찾아오는 암전 사이에 모든 인사를 끝마친 안나는 별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스크린 뒤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무대 뒤쪽으로 걸어갈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백 스테이지로 통하는 계단의 앞에 서서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 마이크를 해체하던 안나는 몸을 돌려 관중석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VIP 좌석, 엘사를 바라봤다. 그리곤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더니 씨익 웃어보이곤 윙크를 날렸다.



 “...!!!”


 “..야!!! 야!! 우리!! 우리한테 윙크한거 맞!!..읍!,읍!”


 “입!! 입 닫아 미친년아 좀!!”



 도망가듯 짧은 발걸음으로 도도도 내려가는 안나와 반대로 엘사는 사색이 되어선 젖 먹던 힘을 다해 라푼젤의 입을 틀어 막아야했다.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놀란 토끼눈이 되어선 환희의 비명을 내지르려는 라푼젤을 어떻게든 제압하며 당황하던 엘사는 급격하게 두근대는 심장과 패닉이 되 버린 머릿속에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안나가 있던 무대 위와 라푼젤의 두 눈을 번갈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읍!!읍!! 야!!..커헉!..읍!!”


 “잠깐만!! 제발!! 오늘만 제발 사고치지 말자 친구야!!”



 라푼젤의 명치를 아무도 보지 못할 속도로 짧게 내려친 엘사는 살금살금 고개를 뻗어 VIP 석 아래, 스탠딩석의 관중들과 일반석 관중들의 반응을 훑어보았다.



 “방금..안나 뭐였어?? 누구한테 한 거지?”


 “몰라? 그냥 우리들한테 한 거 아니야?”


 “손 위치가 우리가 아니던데?”



 웅성웅성, 점점 줄어드는 무대조명들과 함께 모든 공연이 끝날 때 들어오는 일반 백열전구들이 천장에서 조금씩 빛나며 주위가 밝아져갔다. 공연장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 중 안나의 팬들처럼 보이는 대다수는 마지막 안나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한, 두 마디씩 자신들의 의문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엘사는 그들의 작은 소음 하나 하나가 심장을 강타하는 듯 했다.


 

 “뭐 잘못 봤나보지”


 “팬클럽 임원진들은 2층에서 참석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 그래서 그랬나 보다.”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별 다른 의심은 하지 않는 듯 금세 조용해지는 팬들의 소음들과 일반 관중들의 아쉬움들이 섞여 다행히 더 이상 들리지는 않았다. 이윽고 스크린에 엔딩용 영상들이 재생되고 자잘한 음악들이 들려와 엘사의 패닉을 감싸주었다. 명치를 한 대 얻어맞아 눈물을 글썽거리고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엘사를 바라보던 라푼젤은 끝까지 자신의 입을 틀어막던 그녀의 손을 밀치며 일말의 고함을 내질렀다.



 “야!! 아씨 아프잖아 미친년아!!”


 “미, 미안. 좀 쌨냐?”


 “아오..쿨럭!..이게 진짜..내가 뭐 어쨌다고 때리냐?!”


 “맞을 짓을 했으니까 그렇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거리던 엘사의 어깨를 가볍게 주먹으로 친 라푼젤은 씩씩거리며 자신의 배를 매만지고, 줄어드는 관중의 뒤를 따라 성큼성큼 공연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 뒤를 따라가던 엘사는 문득 발을 멈추고는 몸을 돌려 무대 위를 바라봤다. 모든 조명들이 꺼지고 주황빛 전구들만이 들어온 스테이지의 황량함. 마무리를 짓는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스탭들과 그들에게 이끌려 이동되는 무대 장치들의 사이, 자신에게 윙크를 날렸던 안나가 서있던 자리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위험하게..왜 그런거야..?..’



 방금 전, 안나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는 자신에게 윙크를 보내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저릿해지는 가슴 속 깊은 곳. 엘사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입술을 물고는 두근거리는 심장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정에 주체가 안 되는 듯 엘사의 두 볼이 어느 때보다 빨갛게 상기되어갔다.


 

 “뭐하냐? 빨리 와! 확 두고 기버린다?!”


 “어? 아, 음. 갈게”



 라푼젤의 고함에 놀란 듯 고개를 홱 돌려보는 엘사의 행동에 갸웃거리던 그녀는 상기된 두 볼은 보지 못한 듯 했다. 씩씩거리며 다시 몸을 돌려 계단을 타고 출구로 걸어가는 라푼젤의 등 뒤를 멍하니 바라보던 엘사는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그녀의 뒤를 따라 공연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벌써 집에 간거 아니죠? 잠깐 기달려주세요!!’


 “....”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쉰 엘사는 슬쩍 자신의 옆,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라푼젤을 흘겨보았다. 그녀는 어느 샌가 다시 열성적인 안나의 팬이 되어선 오늘 있었던 모든일들을 떠벌거리며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나왔던 곡들을 모두 기억하는 듯 하이라이트 부분들만 돌려가며 흥얼거리는 그녀를 보자 픽, 하고 웃음이 피어났다.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수많은 인파들 속에 섞여있던 그녀들은 바로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흡연장 구석의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이는 곳에 쪼그려 앉아서는 엘사는 담배를 피웠고, 라푼젤은 담배연기를 양껏 받고 리듬을 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집에 가는거지?”


 “그으으러어어엄~ 이제에에에~ 가야~~~지이이이이”



 노래를 부르는건지. 대답을 하는건지 어깨를 들썩거리는 라푼젤을 애써 무시하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엘사는 자신의 손 안에 담겨있는 핸드폰의 액정을 다시 바라봤다. 안나의 메시지. 공연이 끝난 직후 바로 보낸건지 발신시간과 현재시간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담배를 한 모금 빤 뒤. 천천히 내뱉으며 작게 흔들리는 눈으로 그 메시지를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잠시 기달려 달라는 말. 엘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차 타고 갈 거야?”


 “그래야아아아아 지이이이이~”


 “지금?”


 “더 늦기이이이이 전에에에에에 가야 지이이이~~”



 모두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끈 엘사는 끙차 신음성을 내뱉으며 쪼그렸던 다리를 펴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일어난 라푼젤은 당연하다는 듯 엘사의 앞에 걸어가며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너 혼자 가라”


 “당여어어어언~ 하.. 어? 뭐라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감 있는 스텝을 밟던 라푼젤은 흥얼거리던 노래를 멈추고 뒤를 돌아 엘사를 바라봤다. 잘못들은 건가 싶은 표정을 하고선 물음표를 띄운 것 같이 의아스럽게 눈썹 한쪽을 치켜세웠다. 어이없다는 눈빛을 애써 무시하던 엘사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더 물고는 볼을 긁적였다. 저 멀리 무섭게 빠져나가는 인파 사이를 잠시 노려보던 엘사는 손을 뻗어 라푼젤의 어깨을 턱, 하고 잡아 작게 두드렸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뭔 소리야 니가 무슨 약속이 있어. 친구도 없는년이”


 “그런게 있어. 궁금해?”



 아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입꼬리를 올리는 엘사를 바라보던 라푼젤은 말없이 두 입술을 앙 다물고는 작게 혀를 찼다. 두 눈빛이 마주치고 잠시 말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 침묵의 대화 속 먼저 입을 연 것은 라푼젤 이였다.



 “패싸움 하러가냐?”


 “...아직도 우리가 얘 인줄 아니...”


 “급하면 불러라 아직 예전실력 안 죽었으니까”


 “하..알았으니까.. 자.”



 엘사의 손이 움직여 청바지 앞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라푼젤에게 건냈다. 그것을 바라보던 그녀는 짧게 고개를 저으며 엘사의 펴진 손바닥을 다시 고이 접어주었다.



 “됐어. 택시타고 갈 거야”


 “아, 그래? 그럼 뭐.”



 한차례 엘사를 노려보던 라푼젤은 몸을 홱 돌려선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택시 승강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살랑살랑 한량의 걸음걸이를 하고는 흥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만 갔다. 담배에 불을 붙힌 뒤 뻐끔뻐끔 연기를 들이마시며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뒷 모습을 관망하던 엘사는 몇 번 피지 않은 담배를 버리고는 천천히 공연장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어느새 시간은 빠르게 흘러 밤 아홉시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들이 공연장 주변 광장의 공허함을 메우고, 들어왔을 때처럼 시끄러운 소음들은 사라져 점점 평소의 그때처럼 고요와 정적 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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