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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39-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18 18:46:23
조회 194 추천 15 댓글 4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년이다. 진짜 대단하다고 밖에 말이 안나오는 추진력아닌가. 도대체 여기를 어떻게 찾아온거고, 또 저렇게 당당하게 우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첫 마디를 꺼내야 할지도 감을 잡을수 없었다.


 

 엘사는 라푼젤의 손목을 낚아 채고는 순식간에 뛰어 나왔던 정원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매니저와 안나. 두 사람에게 볼 면목이 없다. 쪽팔려도 이렇게 쪽 당할 일이 생길 줄이야. 라푼젤이 평소 나사 하나는 빠져있다는 것즘은 알고있었는데 오늘로서야 새로 재정립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나가 아니라 열 개즈음은 빠져서 사라져버린 여자. 베스트 프렌드라는 명목만 아니였으면 당장 밖으로 내쫒아서 연락도 끊었을텐데. 하긴, 이런 미친 행동을 겪고도 아무런 욕을 하지 않는 자신을보니 새삼스래 알게되었다. 라푼젤과 오래 사귀긴 했구나.


  

 “니들 맥주 한캔 딱 까고 파티 나이트 즐길려고 했지이이 흐으윽!!”


 “아니야..”



 학부모의 손에 이끌려 자신을 때린 학생을 만나러 끌려가는 아이. 엘사의 우악스러운 손에 손목을 잡혀선 저택 현관으로 따라가는 라푼젤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이상한 부분에서 울컥 터져서는 질질 짜는 얼굴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꼴 보기 싫은 모습이었다.


 

 “그, 그리고오..저 남자랑도 같이 놀려고 했지이?!!”


 “아니라고!!”



 홱, 고개를 돌려 라푼젤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주 그냥 눈물이 수돗꼭지처럼 펑펑 쏟아진다. 엘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씩씩거리며 붉어진 얼굴로 귀 끝까지 폭폭 수증기가 나올것만 같은 엘사의 표정을 보면서도 라푼젤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만빼고오오.. 라는 말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엘사의 눈에 들어온 사람. 라푼젤의 어깨 너머로 절뚝절뚝 뒤따라 오는 남성. 매니저의 검게 내리깐 안색을 보니 세상이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올꺼면 조용히 오던가. 왜 애꿏은 사람을 괴롭히냐 이 말이다. 뒷목을 주무르는 것이 분명 라푼젤 특유의 악력을 한껏 맛본게 틀림없었다. 일반 남성도 쩔쩔매는 근력을 가진 여잔데. 저런 여리여리한 체구를 가지신 매니저님 정도라면 한방에 나가떨어졌을것이 뻔했다.



 “섹스 파티! 난교 파티!!”


 “이 미친년이 진짜!!”



 요, 요 입이 문제야. 엘사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까지 라푼젤의 입술을 꽉 잡았다.



 “으아아앙!! 엘사가 사람 때린다!!”


 “아 쫌!!”



 힘에서는 도저히 이길수가 없다. 라푼젤은 고개를 팍 돌리며 엘사의 손을 금방 벗어나 버렸다. 명치라도 한 대 박아넣어주고 싶지만 별 타격이 없을 것 같았다. 어릴적부터 그랬다. 뭘 먹고 자란건지 힘은 장사처럼 세서는 맷집도 대단해서 어디 가서도 맞을 지언정 쓰러진 적은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남자로 태어났어야 할 운명이 잘못해서 여자가 되어버린거겠지. 주님. 제발 이년 성격머리좀 고쳐주세요. 엘사는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상황과 자신이 처한 위치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십분 전만 해도 안나와 집안에서의 즐거운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는데.


 

 찌릿, 라푼젤은 자신을 째려보는 엘사의 눈을 애써 피하며 잔뜩 움츠려들었다. 광경을 보니 하얀머릿결 경찰에게 남녀 한쌍이 잡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아..널 어떡하니 진짜..”


 집 안으로 통하는 현관문 앞. 엘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왜에..파티 안할꺼야아아...?”


 “파티같은 소리하고 있네..”



 우선은 철저하게 숨겨야한다. 안나와 자신의 관계를 말이다. 먹힐 리가 있겠냐만은, 상대는 똥멍청이 라푼젤이다. 자동차 외에는 전혀 눈치가 없는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 제발 안나를 보고 어디론가 도망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안나 역시도 자신이 보내는 사인에 맞춰 연기를 잘 해주어야 할텐데.



 “큼, 크흠..안, 안나씨이...”



 제발 맞장추를 쳐주기를 바랐다. 현관의 문을 연 엘사는 한껏 목을 빼서는 가늘고 미약한 목소리로 안나의 이름을 불렀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신발을 벗어 집 안으로 입성했다. 라푼젤은 지금 엘사가 처한 상황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선 방금 전부터 화려한 집의 풍채에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 없이 엘사의 손에 이끌러 잔걸음으로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아, 엘사씨.. 다 해결 되신건가요...?”



 잔뜩 긴장한 목소리. 다행이다, 아이돌의 연기는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좋으니까. 노랑머리 멍청이를 상대하기에 더 없이 완벽한 실력이다. 안나는 어디서 구해온건지 앞치마를 두르고는 최대한 비즈니스적이고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내며 주방에서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나왔다.



 “아 예..아 저!..여기는 제 친구..라푼젤 피츠허버트 라고 합니다..인, 인사드려.. 안나 아그나르씨야. 내가 지난번에 말했었지? 그 운전교육 받으신다던...”



 엘사는 터져나올뻔한 웃음을 겨우 참아내고 라푼젤을 자신의 옆으로 잡아당겼다. 앞치마는 또 무엇인가. 너무 설정을 세게 잡은 것은 아닐까. 순식간에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사이가 되버린 안나와 자신을 생각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였다.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처박듯이 숙여버린 엘사는 움찔거리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안녕하세요 라푼젤씨 오신걸 환영해요~”



 그리고 라푼젤은 말 없이 벌어진 입으로 작은 숨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멍하니 인사를 건네는 안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울음은 금세 멈췄다.


 “......딸꾹!...”
.
.


 “야 왔으면 말이라도 해..”


 “..어..어..어..”


 얼떨결에 주방에 앉은 세사람. 매니저는 냉장고 안에 자신이 사왔던 식재료들을 차곡차곡 열심히 쌓고 있었다. 주방과 연결된 하얀 대리석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 놓여진 세 개의 찻잔. 라푼젤은 벙어리마냥 입만 뻥끗거리며 기계처럼 알아듣지 못할 미약한 신음성만 내뱉고있었다. 안나와 엘사는 그 사이에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보이지 않을 식은땀을 흘려댔다.



 “아니 당당하게 찾아와놓고 꿀먹은 벙어리도 아니고. 왜그래?”


 “..어......어...”



 눈도 안감는 것 같다. 그저 멍하니 안나의 눈, 코, 입을 바라볼뿐. 이거 이거 고장났나. 엘사는 처음 보는 라푼젤의 모습에 허, 하는 탄식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콕콕, 손가락으로 볼을 눌러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정신이 나간사람처럼 넋놓고 있을뿐이었다.



 “저..엘사씨 친구분이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신거 같은데 이만 집으로 돌아가시죠..”



 뭐, 나보고 지금 집에 돌아가라는건가. 아무리 연기라지만 이렇게 오늘하루가 마무리 되버리면 안되지 않는가. 이 금발머리 친구놈 때문에 나름 즐겁게 상상하던 안나와의 밤이 끝나버릴 위기에 쳐해버렸다. 엘사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겨우 바로잡으며 라푼젤과 안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여기서 왜 나도 가야하냐는 말을 내뱉기에는 듣는 귀가 많았기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라푼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 야 왜이래. 야!! 괜찮아?!”



 조금씩 붉어지던 얼굴은 이내 볼살이 부들부들거리며 파란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빵빵하게 달아올랐다. 그런 라푼젤을 보자 엘사는 하얗게 기겁을 하며 라푼젤의 어깨를 쾅쾅 두드렸다. 안나 역시도 갑작스러운 발작증세를 보이는 라푼젤을 보자 마시던 찻잔도 던지듯 내려놓은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간질병이 있는걸까. 저렇게 얼굴에 피가 몰려서는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아..!..아!...아....아!!!”


 “꺄악! 괜, 괜찮으세요?!!”


 “야!! 정신차려 임마!!”



 ‘쾅!’


 “안녕하세요!!!!! 라, 라, 라푼젤 피츠허벋버벋..허버트 라고 합니다아아아!!”



 의자는 라푼젤이 벌떡 일어나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꽤 비싸 보이는 의자였다. 하늘로 솟구치듯 일어난 라푼젤은 대리석 테이블에 고개를 숙이고 찌를 듯이 팔을 앞으로 뻗어냈다. 나름 그녀입장에서 내비치는 정성을 담은 인사일까. 정적속에 휩싸인 주방에서 먼저 소리를 낸 것은 다름아닌 냉장고를 정리하던 매니저의 한숨소리였다. 깜짝 놀라서는 넣던 식재료도 떨어트린 채 라푼젤의 고함과도 같은 인사에 몸을 부르르 떨던 매니저는 이내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놀랬잖아!”


 “하아아...”


 “인, 인, 인사를 바,받,바,받아주시면 안,안될까요오오!!”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잠깐동안 멍하게 라푼젤의 숙여진 몸과 뻗은 팔을 바라보던 엘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윽고, 라푼젤의 귀에 왁, 하고 소리를 질럿건만 그녀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는지 꼿꼿히 굳어버린 자세로 떨리는 목소리를 잔뜩 내뱉을 뿐이었다. 안나는 기운이 쪽 빠져버려선 힘없이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진짜 별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직접 대해보니 만난지 십분도 채 되지않았는데 벌써 지치는 열정을 가진 그녀를 보니 실소가 터져나왔다.



 “푸훗..네, 반가워요..”


 “감, 감, 감사합니다!!”



 뻗은 손을 잡고 악수를 해주는 안나의 촉감을 느끼자. 라푼젤은 안나의 손을 꽉, 잡아서 위아래로 파닥파닥 흔들어댔다. 몸들바를 모르는건 알지만 긴장을 해도 너무 많이 한 것이 문제였던 걸까.
.
.


 아마도 엘사가 안나와 라푼젤이 잡은 손을 억지로 뗴어놓지 않았다면 분명 하루 종일 기계마냥 흔들어 댔을 것이다.



 우레같은 함성이 섞인 인사가 오간 뒤. 엘사는 라푼젤을 따로 불러 한동안 정신세뇌를 시켜야 했다. 안나는 자신의 고용주이고, 운전교육을 담당하는 일을 맡았기에 이렇게 만날수도 있는것이라고. 아토할란에 같이 있던 것은 안나 아그나르가 맞지만, 순전히 드라이브 코스를 주행하기위해 다녀온 것 뿐이라고. 그리고 이 일은 절대 새어나가면 안되는 일급 비밀이니 부디 입 털고 다니면서 소문내지 말기를 바란다. 라고 라푼젤의 전두엽에 깊이 박힐 때까지 그녀의 귀에 중얼거렸다.



 다행스럽다고 생각해야 맞는건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맞는건지. 라푼젤은 그런 엘사의 말을 들으며 끄덕끄덕, 열정적으로 고개를 움직이며 알겠다고 했다. 원래 이렇게 말을 잘 듣고 하라는 대로 하던 여자가 아닌데. 갑자기 순종적으로 바뀐 라푼젤의 행동에 엘사는 자리로 돌아오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의 눈총을 지우지 않았다. 어딘가 찝찝하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짧은 한숨만을 쉬어낼뿐. 부디 자신이 말 한 대로 라푼젤이 따라와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금, 이번에 세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왼쪽에는 안나가, 오른쪽에는 엘사가. 그리고 노랑머리 금발 미친년은 가운데에 앉았다. 도대체 왜 쟤가 둘 사이를 갈라놓는 선택을 한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라푼젤은 정말 멍청하게 보일법한 헤실헤실거리는 미소를 띄고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엘사 자신에게는 어떤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몸까지 돌려 안나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어 대었다.



 “아유~ 저 혹시 싸인 나중에 부탁드려도 될까요오~?”


 “아...네..그, 그러세요..하하..”


 “실물이 훨씬 이쁘시네요 진짜~~ 하하하! 가까이서 보니까 훨~씬! 훠얼씬 이쁘십니다아~”


 “고, 고맙습니다아..”



 이번에는 엘사가 울고 싶어졌다. 망쳐도 제대로 망치는 저 순발력을 보아하니 오늘은 정말 글렀구나 싶었다. 이미 오래전 포기해버린것인지, 엘사는 소파의 가장 끝 자락에 반쯤 눕듯이 팔걸이에 기대어서는 티비속 시트콤만을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누구 들으라고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애꿎은 안나만이 엘사의 한숨소리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라푼젤을 상대하고 있었다. 쟤는 도대체 무슨 깡으로 저렇게 친근하게 자신와 안나.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건지. 마음같아서는 모든 걸 다 밝히고 당당하게 가운데 자리를 쟁취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깊이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아이고 제가 친구를 잘 둬서 이거이거 오늘 진짜 횡재했네요오~ 이런 대스타분을 앞에서 만나게 되다니요~~”


 “아..예..아 저기..그, 그런데..”


 “네?..아 엘사요오~ 쟤는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아아”



 라푼젤은 오랜만에 만난 손녀딸을 챙기듯. 안나의 손을 맘껏 만지며 반달같은 눈웃음으로 꺄르륵 거리고 있을 때. 그때마다 엘사의 얼굴은 점점 낯빛이 어두워져만 갔다. 그런 엘사의 표정변화를 라푼젤의 어깨너머로 먼저 알아챈 안나만이 그녀를 흘깃 훑어보면서 난처하다는 듯이 라푼젤의 손을 애써 마다하고 있었다.



 “하아..집에 가야겠다아아~”


 “네? 엘, 엘사씨 벌써 가시려구요?”


 “그래야지요..누구 때문에 밥도 못먹었는데 가야지요~”



 삐졌다. 분명하게 마음 상했을 것이다. 엘사는 접어두었던 청자켓을 챙겨서는 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푼젤이 여기 있는 이상. 데이트를 즐길 수 없기에. 잔뜩 눈썹을 늘어트리고는 반쯤은 짜증과 나머지 반은 서운함이 섞인 표정을 하고선 잘 틀어지던 티비도 꺼버렸다. 쭈욱 기지개를 키는 엘사를 보니 정말 가려는 것인가 싶은 안나는 황급히 라푼젤의 손을 밀어 넣고는 어쩔줄을 몰라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엘사와 눈을 맞추려 했다. 그럴수록 엘사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짧은 한숨만 폭폭 쉬어낼뿐이었다.



 “밥? 밥도 안드셨어요?”



 라푼젤은 엘사의 말을 듣자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안나의 갸여운 몰골을 훑어봤다. 그래요, 누구 덕분에 밥도 못먹었어요. 마음속에선 찌릿, 하며 째려보고는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안나는 그러지 못했다. 더 이상 라푼젤을 상대했다가는 엘사는 더더욱 삐져버릴것이고, 자신도 지쳐버릴께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 네..아직 안먹었는걸요..”


 “아까 방금 그분. 요리해주시는 사람 아닌가요?”


 “그건..제..매니저 오빤데요..”


 “아..그렇구나 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라푼젤은 안나와 인사를 한 뒤에, 매니저를 찾아가 고개숙여 사과를 하긴 했다. 물론, 기겁하며 주방의 끝으로 매니저가 도망치기는 했지만. 깡패도 아니고 털석 고개숙여 죄송하다고 고함치는게 사과라면 사과겠지. 도대체가 정신구조가 어떻게 되먹은건지. 진짜 자동차 말고는 별 다른 지식들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는것만 같은 라푼젤의 면모를 오늘 참 많이 되새기는구나 싶었다. 얘는 원래 이런 얘였지. 뒷 생각 안하고 사건을 일으키기가 특기인 친구.



 “그럼 밥 먹어야지요! 치킨! 치킨 어떠세요? 이런 밤에는 또 치킨에 맥주가 따악! 알맞거든요~”


 “치킨이요..? 하지만..매니저 오빠가 치킨은..”


 “예, 안됩니다.”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주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남자. 매니저는 단호하고 결연한 목소리로 안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런 매니저의 모습에 엘사는 그럼 그렇지. 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곤 라푼젤이 입고있는 후드티의 모자를 쭉쭉, 잡아당겼다.



 “야, 가자. 치킨은 안된다고 하시잖아.”



 “..치킨..안됩니까?”


 “...예..안, 안되는데요..”


 “진짜...안됩니까..”


 “...안, 안될..껄..요..”



 이게 지금 사람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엘사는 라푼젤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 치려다 문득, 매니저의 표정을 보니 힘을 주었던 손을 거두었다. 이러다 되는거 아냐?. 라푼젤은 지금 부릅 뜬 눈으로 매니저를 똑똑히 노려보고 있다. 저 눈빛을 버틸 수 있는 남자는 몇 안될 터. 잘만 한다면..



 “치. 킨.”


 “..드, 드세요..”


 “어? 진짜요? 아싸!! 오빠 최고!”


  세 사람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특히나 몇 년만에 먹는 치킨인지. 지금까지 더럽게 뻑뻑한 닭가슴살만 씹어댔던 안나의 입에 드디어 기름진 닭다리가 물리는 날이었기에. 안나는 더 없이 환호하며 신나했다. 중간에 엘사와 껴안고는 소리를 지르느라 얼굴이 달아오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 피자도!”


 안나가 잔뜩 신이나서는 방긋방긋 웃으며 매니저에게 외쳤다.



 “아, 그건..”


 “피. 자. 도. 요.”


 “치킨도 먹는데 피자까지는..”


 “피자.”


 “네에..드세요..맘껏 드세요오..하아..”


 
 이러려고 매니저를 지원했을까. 자신은 담당 아이돌 한명조차도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다. 결국 피자와 치킨을 허락해버린 매니저는 나중에 회사에 가서 선임 매니저들에게 한 트럭으로 먹을 욕들을 상상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지하게 깨질텐데. 그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라푼젤이 그에게 다가가서 와락 껴안으며 폴짝폴짝 뛰지 않았다면 매니저는 분명 오늘 하루 기분이 굉장히 착잡했을 것이다.



 “매니저 오빠 조심히가세요~!”



 터덜터덜 집으로 복귀하는 매니저, 그리고 안나의 숙소에 남게된 세 사람. 안나가 손을 휘적거리며 철문으로 멀어지는 매니저에게 환하게 인사했다.



 “오빠 내가 나중에 뽀뽀해줄께!!”


 “넌 왜그래 미친년아!”



 엘사의 옆에 서서는 안나를 따라 환하게 인사하는 라푼젤. 진짜 언젠가는 한 대 쥐어박아 줘야겠다 라고 다짐했다.
.
.


 “와..대박..”



 테이블 위 세 사람. 그리고 황금빛 기름 물씬 떨어지는 치킨과 자글자글 부드러운 치즈가 가득한 시카고 페퍼로니 피자. 그리고 왜 거기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라푼젤의 자동차 트렁크에 쌓여있던 맥주. 이 세 개의 조합을 보니 안나의 입꼬리는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엘사와 라푼젤 역시도 좋아했다. 라푼젤은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기에 좋아했고, 엘사는 안나와 같이 있기에 좋아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부어라 마셔라 치킨을 뜯고 피자를 흡입하며 열심히 따듯한 저녁 한때를 보내기 시작했다.



 “엘사가 그래서 그때 욕 안하던가요? 핳ㅎ하핳ㅎ 쟤 입이 원래 진짜 험한데에~”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아, 아뇨! 하하..그때 욕 먹기는 했는데에..”



 라푼젤은 잔뜩 취해 얼굴이 벌게져서는 엘사의 치부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과 엘사가 못볼꼴로 레이싱 전날 침낭에서 잠을 잤던 기억. 화가 나서 헬멧을 던져버리고 씩씩거리던 기억. 혹시 엘사에게 교육받으면서 욕을 먹지는 않았는지. 세상을 달관하듯이 살아가는 엘사의 평소 사생활 등등. 라푼젤의 입은 쉴새없이 떠들어대었다.

 평소같았으면 안색이 파래져서는 당황하거나 화를 낼법도 하지만, 엘사는 술이 들어가자 그 향취에 그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선선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안나는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헤실헤실 좋아했다. 자신에게는 없는 추억들이었으니까. 어느때나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거나, 으레 윽박을 지르며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둘도 없는 의지를 하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안나의 시선에서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맞추며 으르렁거리기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욕짓거리를 서로 뱉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기류가 있었다.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은은한 공기. 그렇기에 안나의 웃는 눈빛 안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긴 한이 비춰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아! 엘사가 학교다닐 때 이야기 안해주던가요? 얘가 진짜~ 완전 대박이였거든요~”


 “야 그 이야기를 뭐하러..!”


 “듣고 싶어요!!”


 “것 봐! 안나씨도 듣고 싶으시다잖아~! 그럼 해드려야쥐이이~”


 “얘가 말이지요...”



 엘사와 라푼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 청춘이 이제 막 피어나던 시절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

내가 상상하는 라푼젤 웃음소리는 핳ㅎ하핳ㅎ 가 아니면 표현이 안된닼ㅋㅋㅋㅋ

아마 세편 동안 엘사와 라푼젤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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