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리메이크/팬픽] Whiskey Bonbon -10

ㅇㅇ(14.32) 2020.09.13 23:39:10
조회 460 추천 25 댓글 9



9화(링크)에서 바로 이어집니당




----------



엘사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로부터 정신적 도피를 시도했다. 그래, 저 여자는 비록 내가 아는 인간이랑 똑!같!이! 생겼지만! 분명 다른 사람일 거야! 여기 오는 한 시간 내내 들은 딸 얘기랑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잖아! 허나 도플갱어 역시 멸종된 도도새라도 목격한 것 마냥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실낱같은 희망마저 끊어졌다.


세상이 아무리 좁다지만 이럴 수 있나? 왜 내가 사교를 쌓는 모든 장소에 저 여자가 있냐고! 엘사는 외나무다리에서의 재회를 마련한 아그나르에게 ‘이 미친 여자가 당신 딸이라고 왜 미리 귀띔해주지 않은 거예요’라고 따지려 들었지만, 뭔가 말하려는 걸 눈치 챈 상대방이 눈을 부릅뜨고 ‘아는 척 하면 죽인다’는 맹렬한 시그널을 보내자 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이 미ㅊ... 미처 몰랐네요, 이런 따님이 계신 줄.”


분명 포도만 먹어도 취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엘사가 작게 웅얼거렸다.


“그렇죠? 자, 이 분은 북클럽에서 알게 된 엘사 라이언 양, 그리고 여기는 우리 집 공주님, 안나.”


풉, 엘사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러나 사형 즉결 처분을 내릴 법한 공주님의 살기어린 표정이 눈에 들어오자 엘사는 입가를 손으로 막은 채 호소력 옅은 변명을 내어놓았다.


“죄송해요, 멀미가 도졌나 보네요.”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공주님? 엘사는 말하는 도중에도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실실 뱉었다. 결국 인내심의 뚜껑이 열린 안나가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마침 멀미에는 우리 집 뒷마당 공기가 특효약이죠.”


언제부터? 아빠의 어리벙벙한 물음은 뒤로 한 채 안나는 엘사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아채고  치유의 장소로 향했다. 잠깐, 잠깐만요, 진짜 멀미날 거 같은데! 끌려가던 중 몸 여기저기를 부딪친 엘사의 울먹임에도 아랑곳 않고 안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도착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나가 사자후를 내뿜었다.


“언제, 어디서, 뭘, 어떻게, 왜 알고 왔어!”


엘사는 ‘나는 당신 이름과 당신의 부모님 성함, 결혼 햇수, 결혼기념일, 자택 주소 중 아무것도 몰랐다’ 이상의 내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이 과대망상 인간으로선 고막은커녕 귓바퀴 근처에도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최대한 간결히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아그나르가 당신 아버지인 줄 알았다면 저는 진작에 북클럽 탈퇴 신청서를 작성했을 거랍니다.”
“성을 보고서 대충 눈치 채야죠!”
“어떻게요? 나는 당신 성이 웡카, 허쉬, 발렌타인 셋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내 미들네임이에요!”
“네? 이름이 안나 허쉬예요?”
“말고!”
“안나 웡카?”
“발렌타인!”


안나는 이 인간에게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고 있노라면 날이 새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론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돌아가요, 지금 당장!”
“이미 선입금을 받았는데 어떡해, 당신이 물어주기라도 할 건가요?”


금전 문제가 얽히자마자 안나의 입이 꾹 닫혔다. 아하, 이 여자를 다루려면 돈 얘기를 하면 되겠군. 머릿속 메모장에 팁을 적어두던 중, 고뇌를 마쳤는지 안나 측에서 제안을 내놓았다.


“좋아, 우리 여기서는 휴전해요. 아니, 해야만 해요! 안 그랬다간 우리 둘 다 내일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신세가 될 테니까!”
“하, 하. 누구는 싸우고 싶어서 이러나. 이상한 망상으로 시비 거는 건 항상 그 쪽이죠!”
“그러니까... 아아, 됐어! 나도 더는 얘기 안 꺼낼 테니 당신도 지금처럼 계속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않기예요, 알겠어?”
“내가 언제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어? 자꾸 유언비어 퍼뜨리는 게 누군데!”
“내 얘기 들은 시늉이라도 해 봐!”


멱살을 틀어쥔 지 1초도 안 되어 라푼젤이 등장해 안나는 헛기침을 하며 엘사에게서 얼른 떨어졌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을 감지한 라푼젤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안나에게 다가갔다.


“혹시 지금 바빠?”
“아니전혀절대근데왜?”
“외숙모께서 전해달라고 해서 말이야. 당장 은혼식 시작하지 않으면 오늘 너는 벽을 타고 이층 창문으로 들어오던지 지붕 위로 올라가 굴뚝으로 들어와야 할 거래.”
“......안 그래도 지금 가려고 했어.”


그런데 잠깐만, 안나는 덩달아 따라오려는 엘사에게 검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멀미가 엄청 심한 거 같으셔서 말이야. 여기서 더 쉬는 게 어떨까요, 엘사?”
“저는 멀쩡...... 네, 알겠어요.”


검지의 각도가 점점 자신의 안구 쪽으로 기울자 엘사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래, 당분간 거기서 오들오들 떨고 있으라구. 한 방 먹였다는 쾌거에 안나의 입가는 웃는 이모티콘 ‘:)’ 처럼 올라갔지만, 곧이어 사촌의 충격 발언에 곧장 ‘:(’ 으로 바뀌었다.


“도중에 방해해서 미안해. 그런데 외숙모 표정이 장난 아니라서, 너도 이해하지?”
“......뭐가 어쨌다고?”
“감사인사는 됐어. 당장 사랑에 빠져 도피를 떠난 저 연놈들을 잡아오겠다는 눈빛을 보고 내가 자진해서 나설 수밖에 없었거든.”


안나는 제자리에 우뚝 섰지만, 라푼젤은 네 맘 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서 걸음을 계속했다. 사랑이라니? 뒷문으로 질질 끌려가며 안나가 뒤집어진 목소리로 외쳤다.


“사랑에 빠졌다고? 어딜 봐서?”
“왜, 그 있잖아. 첫 만남에 눈이 맞는 영화 속 장면 말이야. 서로 보자마자 눈에서 불꽃이 튀기는 게 아주 드라마틱했어.”
“그 불꽃이 그 불꽃이 아니고 그 드라마가 그 드라마가 아니야!”
“왜 이래, 나한테만은 솔직해도 괜찮아. 키스하는 것도 봤는데 발뺌하려고? 방금도 추스릴 시간 준 거 다 알고 있어!”


‘그건 내가 멱살을 잡아서 그래!’라는 말이 입천장까지 나왔다가 도로 들어갔다. 로맨스에 푹 절여진 사고방식을 가진 이 사촌에게 초면에 키스는 믿을지언정 초면에 멱살은 결코 통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냐,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어! 안나가 절절히 진실을 부르짖었다.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야!”
“삼촌이랑 외숙모한테 말 안 할게, 걱정 마.”


‘아니, 진짜라니까!’, ‘응, 그래~’, ‘정말 진지하대도!’, ‘알지, 알지~’. 니가 알긴 뭘 알아! 안나는 언젠가 읽었던 그리스로마신화의 카산드라가 떠올랐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게 이런 절망적인 기분이라니! 그러나 안나 카산드라는 자신의 운명을 예언할 수 없었다. 이는 안나가 불러온 자업자득이며, 저주는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



은혼식을 진행하는 내내, 안나는 뒤통수와 옆통수 그리고 때때로 앞통수에 박히는 따가운 눈총을 애써 무시했다. 물론 출처는 엄마였다. 이두나는 웨딩 케이크를 커팅하면서도 시선은 사고뭉치 딸내미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두 동강 내버리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인 안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좋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랑 둘이서만 있으면 안 되겠다.


그러나 안나는 사진 촬영이 있다는 걸 깜빡했었다.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와중 꼼짝없이 엄마의 옆에 서야만 한다는 점을 인지한 안나가 말했다.


“저는 엄마 아빠 결혼사진도 재현할 겸 프레임 밖으로 빠져있을게요.”
“너도 있었어, 5주차였거든.”
“기억난다, 작고 귀여운 7mm였지.”


때 이른 출생의 진실을 25년 만에 알게 된 충격을 이겨내고 안나가 간신히 대꾸했다.


“......다 큰 제가 엄마 자궁 상반부에 붙어서 사진 찍을 수는 없잖아요? 그냥 여기서 감상할래요. 이야, 구도 좋네~”
“헛소리 작작 하고 빨리 옆으로 붙어라.”


옆으로 오라고 하시는데요. 은혼식 진행 중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포착되어 졸지에 사진기사 역할까지 맡게 된 엘사가 깐죽였다. 이씨, 안나는 엘사를 잠시 흘겨본 후 할 수 없이 부모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두나는 딸의 옆구리를 감싸 안으며 낮게 속삭였다. 너 내가 얌전히 있으라고 했다. 점점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기분 탓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안나는 엄습한 고통에 진땀을 흘렸지만, 바로 시작되는 카운트다운에 필사적으로 미소를 유지했다. 열 번 남짓한 플래시가 터진 후 엘사가 말했다.


“좋은데요, 몇 장 더 찍을까요?” 
“그만 찍어!”


안나의 비통한 외침을 끝으로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마침내 이두나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옆구리를 감싸 쥐며 안나가 몸을 웅크렸다. 아아, 나 죽네...... 그러나 아그나르의 ‘깜짝 제안’에 안나는 당장 신음을 멈췄다.


“라이언 양이 사진에 안 나와서 조금 아쉽네. 괜찮다면 우리끼리라도 한 장 찍을까요?”
“아쉬워요? 뭐가요? 왜요? 생판 남이랑 초면에 가족사진을 같이 찍는 게 말이 돼요?”
“내 새끼 싸가지 좀 봐. 얘, 너나 초면이지 네 아빠는 아는 사람이라잖아.”
“좋아, 찬성표 둘. 반대표 하나.”
“아니, 엄마는 언제 봤다고 그래요! 찬성이라고 말도 안 했으니 이건 무효야, 무효!”
“알겠어. 찬성표 하나, 반대표 하나, 무효표 하나.”
“무효표 말고 투표가 무효라고요!”
“남의 표를 니 맘대로 행사하지 마려무나. 나는 찬성이야.”


재밌을 것 같거든. 안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이두나가 덧붙였다. 아그나르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깜짝 가족회의’의 결론을 당사자에게 권했다.


“그래서 라이언 양은 어때요?”


어....... 사진 찍히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엘사는 사양하려던 참이었으나, ‘거절해!’라고 째려보는 안나와 ‘승낙해!’라고 노려보는 이두나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더 강해보이는 쪽을 선택했다.


“어....... 쩔 수 없네요.”
“잘 됐다, 이리 와서 같이 찍읍시다!”
“그런데 촬영은 누구한테 부탁하죠? 다들 실내로 들어가신 것 같은데요.”
“제가 할 게요!”


라푼젤이 폴짝폴짝 뛰며 나타났다. 그녀는 흥에 겨웠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대답했다.


“재밌을 거 같아서 근처에서 보고 있었거든요!”


안나는 이제 재미라는 단어를 한 번만 더 들으면 분노 미터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푼젤은 엘사에게서 카메라를 넘겨받고 즐거운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다들 가운데로 오세요. 네, 좋아요, 외숙모랑 삼촌은 양 사이드에, 우리 친구들은 가운데~ 음, 4인 가족사진 같네요. 셋 하면 찍을게요, 하나, 둘, 둘 반... (빨리 안 찍어?) 미안, 네 표정이 너무 험악해서 농담 좀 한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웃으렴.) 한결 낫네요. 진짜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좋아! 아니 잠깐만 잠깐만, 누가 도망가는 안나 좀 붙잡아 주세요~ 네, 고마워요, 외숙모! 기념으로 한 장 더 찍을게요. 이번에는 커플끼리... 아차, 내 입 좀 봐, 미안. 아하하, 미안하다니까! 의자 던지려고 하지 마! 어쨌건 이번에는 구도를 바꿔서 두 명씩 붙어서 찍어요. 네, 사랑이 넘치시네요, 삼촌! 방금 거 확실히 찍었어요. 아, 부케로 얻어맞는 것까지 찍어버렸네요. 그런데 옆에 두 분은 너무 뻘쭘하게 서 있는 거 아니에요? 응? 자꾸 누가 꼬집는다고요? 저런, 이제는 괜찮을 거예요. 되로 주면 말로 받는 법이죠. 그쵸, 외숙모? 아, 좋아. 이걸 마지막 컷으로 할 게요. 하나, 둘, 셋! 다들 수고하셨어요!”


다들 실내로 들어가려는 와중, 라푼젤이 다가와 녹초 상태의 사촌을 껴안으며 귓속말을 건넸다.


“재밌었지?”


으아아! 결국 미터기가 폭발한 안나가 베어 허그를 시전하고서야 촬영 소동이 끝이 났다.




**




간소한 홈파티라고 하더니 아무래도 속았나본데. 준비해둔 슈터 칵테일이 사라지는 속도를 관찰하던 엘사가 생각했다. 여태 점잖던 사람들이 막상 뒤풀이가 시작되자 엘사에게는 비밀로 부친 채 ‘누가누가 술 빨리 마시나’ 대회를 벌인 모양이었다. 그냥 저 분들에게는 섞을 필요 없이 스트레이트로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커피를 홀짝이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아그나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정도로 공짜 칵테일을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이대로 가다간 세 시간 후에 재료 아니면 제 체력이 바닥날 것 같아요. 아니면 둘 다거나.”
“다들 얼마 안 있어서 집에 돌아갈 거예요. 저기서 무섭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있죠?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운전을 해야 한다더라고요.”
“그랬구나.”


다음 참가자 대기줄이 아니었군. 엘사의 마음에서 안도감이 피어났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요. 끝날 때쯤엔 너무 늦었을 테니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음......”


엘사는 ‘과연 오늘 내로 집에 갈 수는 있을런지?’라는 말을 커피와 함께 꿀꺽 삼켰다.


“아니면 손님방에서 주무시고 가도 괜찮아요. 편할 대로 하시죠.”


아그나르의 제안을 듣자마자 엘사의 뇌리에 ‘손님방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번뜩였다. 이는 비록 과장이 섞였다만, 그 인간의 실제 반응 역시도 쉽게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환청이 들려왔다. ‘이 쓰레기! 인간 말종! 우리 집에서 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엘사는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택시를 타는 게 좋겠어요.”
“그러시죠, 그럼. 비용은 제가 낼 테니 다음 모임 때 알려주세요.”
“하하......”


다음 모임에 제가 없을 수도 있답니다. 이미 마음속으로 탈퇴를 결심한 엘사는 기운 없는 미소로 응답했다. 그러자 아그나르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조금 지치셨나요? 그러고 보니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괜찮아요, 저만 보면 소리를 지르는 따, 아니 사람은 지금 없으니까요.”
“이거라도 드시죠, 기운이 좀 날 거예요. 저희 딸이 만드는 초콜릿이랍니다.”


엘사는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그 인간 수제 초콜릿’을 보자 비명을 지를 뻔 했지만, 여기는 크레이지 초콜릿 걸의 홈그라운드라는 사실을 간신히 기억해내고 마지막 남은 사교성을 쥐어짜냈다.


“감...... 사합니다.”


엘사는 초콜릿을 받자마자 냅킨으로 대강 싸서 가슴 포켓에 집어넣었다. 그리고선 영혼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껴두었다가 먹을게요.”
“하하,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저기 널려있답니다!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더......”
“안 그러셔도 돼요!”


정말인데! 그러나 엘사의 절박함을 겸손함으로 받아들인 아그나르는 껄껄 웃으며 초콜릿 탑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이... 궁지에 몰린 엘사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아주 부녀가 사람 말 안 듣는 거 똑같지!”
“혹시 제 얘기예요? 죽을래?”
“......뚝심 있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는 뜻이었어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하며 엘사가 소리 난 곳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곳엔 당연히 안나가 있었다. 안나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새하얀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엘사에게 건넸다.


“자, 드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뒷담할 거면 더 작게, 앞담할 거면 더 크게 말해요.”
“이건 또 뭐람. 생크림 케이크?”
“아뇨, 제가 만든 웨딩케이크랍니다. 제법 그럴듯하죠? 어쨌든 그 쪽도 손님은 손님이니 맛이나 좀 보시라고.”


뭐? 엘사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포크를 멈췄다.


“당신이 만들었다고요? 그럼 독이 들었겠군.”
“뭐야? 좋게 대해주려 해도 진짜!”
“틈만 나면 당신한테 죽을래, 죽을래 소리를 듣는 저로서는 당연한 이치 아닐까요? 그럼 그 쪽이 먼저 한 입 먹어보시든가. 자, 아~ 하세요.”


엘사는 들고 있던 포크를 안나에게로 가져다 댔다. 그걸 왜 니가 떠 먹여 줘!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표 감시의 눈초리를 느끼고 있던 안나는 진저리를 치며 거부했다. 그러자 엘사의 의심은 더더욱 깊어졌다.


“거 봐, 제 가설이 입증 됐네요. 독살 미수로 고소하기 전에 도로 가져가주시죠.”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까 그러죠! 포크 내놔, 내가 스스로 먹게!”
“하, 포크 주면 그대로 절 찌를 거죠? 당신 생각 이제 뻔히 알지.”
“나를 무슨 살인청부업자... 아, 모르겠다! 먹으면 되잖아!”


제발 엄마가 보고 있지 않길! (그러나 당연히 보고 계셨다.) 안나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음, 독은 없나보군. 삼키는 모습까지 똑똑히 확인한 후에 엘사는 본인의 입에도 넣었다. 그러나 입에 들어오자마자 엘사가 사레기침을 콜록이며 물기 어린 눈으로 투덜거렸다.


“초콜릿이잖아!”
“내가 뭐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요, 그럼?”
“크림에 화이트 초콜릿을 섞었다고 미리 말 안 했잖아요! 이럴 거면 안 먹었지!”
“아니, 아주 대단한 미각 감별사 나셨네, 야,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깝다, 그냥 내놔!”
“그래, 다 가져가라, 다! 그렇게 아까우면 얼굴에 바르든지!”
“뭐? 무슨 논리야, 나 말고! 이 손 안 치워, 악!”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진작 돌아와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아그나르는 혼란에 빠진 지 오래였다. 이건 말로만 듣던 캣파이트인가? 아니면 보다시피 푸드파이트?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사랑싸움? 혹시 그렇다면 지금도 케이크를 얼굴에 뭉개고 있는 게 아니라 조금 과격한 크림 묻히기 놀이를 하고 있단 말인가? 좀 전도 잘못 본 게 아니라 정말 케이크를 서로(※조작된 기억입니다) 떠먹여주던 거였고? 아아,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상처를 안 줄 수 있을까?


끙끙, 아그나르가 머리를 싸매고 별 영양가 없는 고민을 하던 중, 이두나가 다가와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응? 그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자, 이두나는 ‘쟤는 이미 글렀다’는 뜻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하! 그러나 아그나르가 이해한 바는 달랐다. ‘그냥 못 본 척 해 주자’는 뜻으로 받아들인 그는 배려심 넘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난장판으로부터 조용히 퇴장했다.





------


드디어 연재 화수 두 자리수 도달했다!! ㅜㅜ 읽어주는 설줌마들 항상 고마워!!


+) 은혼식 파트 분량조절 대실패로 앞으로 두 화 정도 더 이어짐...^^ 

추천 비추천

25

고정닉 7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62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708 디시 이미지 왜 깨져... ㅇㅇ(223.62) 15:50 5 0
1123707 누가먼저 보내나 시합! ㅇㅇ(223.62) 15:42 6 0
1123706 일편단심 안개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4 11 0
1123705 넘쳐나는 go간 [1] ㅇㅇ(223.62) 11:29 19 0
1123704 축 늘어진 흰 옷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아기 [1] ㅇㅇ(223.62) 11:27 13 0
1123703 설갤 단점 ㅇㅇ(223.33) 11:08 8 0
1123702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1 19 0
1123701 그런가 [2] 설갤러(118.43) 05:34 13 0
1123700 아니 69라고 설갤러(118.43) 05:33 9 0
1123699 크 69가 와버렸다!!!! 설갤러(118.43) 04:50 10 0
1123698 엘산나를 만난게 행운이야 [5] ㅇㅇ(223.62) 06.08 28 0
1123697 배거파 [1] ㅇㅇ(110.47) 06.08 14 0
1123696 오늘막글 ㅇㅇ(223.62) 06.08 10 0
1123695 어 내일이 69잔아 ㅇㅇ(223.62) 06.08 11 0
1123694 쥬미 영화 보러옴 ㅇㅇ(211.234) 06.08 12 0
1123693 안탄절 지나면 엘탄절도 금방 ㅇㅇ(223.62) 06.08 13 0
1123692 모험가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16 0
1123691 싯발 언제 비 그친거냐 [1] ㅇㅇ(223.62) 06.08 17 0
1123690 수상하게 칼을 잘쓰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27 0
1123689 뭐지? 결혼식인가? [5] ㅇㅇ(211.234) 06.08 46 4
1123688 정령을 잡아다 예쁘게 묶어 공물로 바치기 ㅇㅇ(223.62) 06.08 18 0
1123687 혐퀘후식사 [2] ㅇㅇ(211.234) 06.08 17 0
1123686 오늘은 자동으로 실내활동 [1] ㅇㅇ(223.62) 06.08 16 0
1123685 자연스레 깊어가는 둘의 관계 ㅇㅇ(223.62) 06.08 16 0
1123684 아찜글 ㅇㅇ(211.234) 06.08 13 0
1123683 새벽글 [1] ㅇㅇ(115.138) 06.08 14 0
1123682 다다음주가 안탄절이네 곧 [2] PeopleOfArendel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0 1
1123681 안나가 엘사를 [1] ㅇㅇ(223.62) 06.07 26 0
1123680 엘산나의 금요일 ㅇㅇ(223.33) 06.07 13 0
1123679 여전히 존버중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24 0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31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06.07 19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06.07 19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7] ㅇㅇ(115.138) 06.07 82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7 20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10]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95 10
1123672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창작물 [6] 케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04 11
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49 0
1123670 프로즌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아 [2] 설갤러(118.43) 06.06 21 0
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25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3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44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0 0
1123665 이럴 때 정신놓으면 갓반인 된다 [2] ㅇㅇ(223.62) 06.06 29 0
1123664 말라간다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2 0
1123663 단편이나 떡밥 내놔!!! ㅇㅇ(211.234) 06.06 22 0
1123662 점심때되니 [1] ㅇㅇ(211.234) 06.06 21 0
1123661 오늘 갓생사는척 함 ㅇㅇ(211.234) 06.06 19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