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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팬픽] Whiskey Bonbon -14

ㅇㅇ(14.32) 2020.10.10 21:24:53
조회 320 추천 23 댓글 5



전개가 마음에 안 들어서 몇 번 갈아엎느라 늦었다... ㅜㅜ 담화는 더 빨리 가져오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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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같은 건 침대 밑에 던져버리고 그냥 잠이나 잘걸. 흙눈이 엉겨 붙은 신발을 깔개 위에 툭툭 털며 엘사가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검색이 검색을 낳는 통에 결국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했더랬다. 피곤한 몸은 가게의 문손잡이를 잡아당기자마자 저절로 푹신한 의자를 찾았다. 그러나 엘사는 주문을 외워 유혹을 물리치고(내일은 휴일이다, 휴일이다, 휴일...) 무사히 자루걸레를 꺼냈다.


그런데 얘는 어제 청소를 한 거야, 만 거야? 검정물이 줄줄 흐르는 바닥을 보며 마감 vs. 오픈 대전의 불길이 일어나려던 찰나 도어벨이 울렸다. 목도리를 둘둘 맨 올라프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이제 날이 어어엄청 춥다! 어제 출장은 어땠어?”


어땠냐니? 엘사의 머릿속에서 주마등이 스쳐지나갔다.


“......두 번 다신 없을 경험이었지.”
“그 정도야? 나도 따라갈걸, 콧수염 아저씨는 왜 나한테는 얘기도 안 해줬담!”
“표현에 오해가 있었네, 정말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다음엔 부디 나대신 가줘. 막대 손잡이에 턱을 괴며 엘사가 체념하듯 말했다.


“손님방에 영원토록 갇히지 않게 조심해.”
“에구, 손에 그건 탈출하려다 생긴 상처야?”
“그런 셈이지.”
“하하, 진짜 따라가서 구경할 걸.”
“그래, 내 몫까지 많이 웃어라.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그 집에 붙잡혀 있느라 웃음을 잃었으니까.”


흠, 더는 까불면 안 되겠단 직감이 찾아와 올라프는 표정에서 웃음기를 싹 몰아냈다. 적어도 눈치에 관해선 그가 엘사보다는 한 수 위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엘사는 깊은 한숨을 뱉은 후, 간밤은 물론이거니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 집 딸과 부대끼다 왔노라고 털어놨다. 그리고선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딸이라는 작자가 ‘망해가는 초콜릿 가게 주인’이라는 사실을 밝혀 극적인 장치를 연출하려 했으나 이는 접어둬야 했다. 왜냐하면 ‘전날 밤’ 대목에만 이르렀을 뿐인데도 올라프가 입가를 틀어막은 데다 얼핏 눈물까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웃음을 참느라 생긴 눈물임을 알아차릴 눈치가 엘사에겐 없었다.) 엘사는 친구의 공감능력에 감탄하며 주변에 널려있던 천을 건넸다.


“대신 울어줘서 고맙긴 한데 일단 이걸로 마저 닦지 그래?”
“고마워, ......아니, 이거 행주잖아!”
“테이블 닦으라고 준 거야. 그동안 나는 바닥 청소도 다 끝냈는데 넌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핀잔을 들은 올라프는 묵묵히 일하는 듯싶더니, 얼마 안 가서 수다쟁이 근성을 이기지 못해 또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생각에는 어때?”
“청소 안 해?”
“좀 괜찮아 보여?”
“대체 뭐가? 내가 주어 없으면 못 알아듣는 거 알잖아.”
“딸이라는 사람 말이야.”


얘는 내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나? 엘사는 참지 못하고 덜 마른 행주를 올라프에게 집어던졌다.


“왜 허구한 날 다른 사람이랑 나를 엮지 못해서 안달이야, 이 참견쟁아!”
“뭐? 아니, 내 말은 친구할 수 있겠냔 뜻이었어!”


뜨끔했던 엘사는 몇 개 더 챙긴 행주들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친구?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비록 네가, 뭐랄까, 개성이 독특한 여인들을 불러 모으는 페로몬을 풍긴다는 점은 유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미스 초콜릿보단 나은 것 같은데? 콧수염 주니어 쪽은 적어도 사과라는 걸 하잖아.”


콧수염 주니어의 정체가 미스 초콜릿이란 걸 알면 까무러치겠는걸. 엘사는 히어로의 비밀을 지키는 조력자의 기분을 실감했다. 이쯤에서 과연 진실을 밝힐 것인가를 두고 (쓸데없이) 고민하느라 엘사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자신이 제안한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 착각한 올라프가 열심히 노를 저었다.


“초반에 조금 삐걱거려서 그렇지, 내가 봤을 땐 콧수염 주니어랑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누구 마음대로 사람을 콧수염이니 뭐니 되는대로 막 불러요!’라고 따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자동재생 되었으나, 엘사는 무시하기로 했다. 그녀의 소심한 복수였다. 하하, 다음에 만나면 써먹어야지. 그러나 간과하고 있던 중대사항이 떠오른 엘사가 정색을 하며 반박했다.


“아니, 문제는 그 사람을 어떻게 부를지가 아니라, 우리는 잘 지낼 수가 없어!”

“날 믿고 마음의 문을 조금만이라도 열어봐, 부탁이야.”


내가 열어놓는다고 해서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묵살되었다.


“잘 생각해, 나이도 비슷한데다 여자야! 물론 친구라 하면 기본적으론 누구나 가능하지만 보통 또래 동성이 대다수란 말이야. 네가 조금 특수조건인 걸 감안하더라도......”
“나도 알아, 친구가 뭔지 정도는! 그래도 할 수 없는 걸 어떡해?”
“혹시 선언 때문에 그러는 거야? 엘사, 내가 못 본 걸로 해줄게. 우리 그냥 처음부터 3대 선언이었던 걸로 하자.”
“그러지 말고 내 말부터 들어 봐.”


후. 엘사는 눈을 질끈 감은 뒤, 다시 뜨고 잘못을 고해했다.


“사실 끝이 좋았던 게 아니야. 마지막에 면전에 대고 내가 심한 말을 해서 말이지......”
“본인 입으로 심하다고 실토하니 긴장된다. 혹시 반응은 어땠는데?”
“그대로 울면서 어디론가 가버렸어.”


엘사의 갈등중재전문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입,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누누이 말했거늘! 그러나 아직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번엔 무슨 사고를 쳤을지 듣기 망설여지는 한편, 희망을 긁어모아보잔 심정으로 그가 물었다.


“뭐라고 했어, 정확히?”
“망해가는 가게를 받아서 내가 기쁠 것 같냐고 그랬던 것 같아.”
“설마 그 망해가는 가게가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건 아니겠지?”
“말 그대로야.”
“인성 한 번 끝내준다.”


올라프는 엔딩 스탭롤이 올라가는 환상을 보았다. 스페셜 땡스에는 과연 사탄의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커녕 절교를 선언한 측에서도 할 말이 남아있었나 보다. 엘사는 잘한 게 없는 입을 또다시 뻐끔거렸다.


“그러니까 내가 잘 지낼 수 없다고 했잖아.”
“잘 지낼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원한을 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미스 초콜릿 때를 생각해봐, 맨 주먹 하나로 너, 네 직장, 네 인간관계를 부쉈잖아!”


그 둘이 동일인물임을 알고 있는 엘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친구의 표정이 파랗게 질린 걸 보자 올라프가 안쓰러워 한 마디를 얹었다.


“그냥, 렛잇고 해버려. 경험이다 생각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면 되지.”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단 말이야! 정말 무슨 방법이 없을까?”
“두 가지 아니겠어? 싹싹 빌든가 아니면 타임머신을 개발해서 과거로 돌아가든가. 너를 아는 내가 봤을 땐 후자가 더 가능성 있겠다.”
“혹시 숨겨진 선택지 그런 거 없어?”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과연 새로운 보기가 머릿속에서 나타났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허황되긴 했으나, 지푸라기 하나라도 절실해 보이는 친구를 위해 올라프는 충분한 생각을 거치지 않고 툭하니 말을 뱉었다.


“아니면 책임지고 안 망하게 해주든가.”
“내, 내가? 책임의 무게가 터무니없지 않아?”
“됐다, 그냥 나가서 빛보다 빠른 입자부터 찾아봐.”
“자, 잠깐만, 날 포기하지 말아줘, 방법이 있긴 한 거 같아!”


엘사는 수면과 맞바꾸어 찾아낸 하나의 방책을 떠올렸다. 상대방이 받아들여줄 지는 모르겠으나 (소금 맞고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선 가능성이 보인다면 매달리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다. 비장한 음성으로 그녀가 말했다.


“내일 가서 얘기해 볼게, 혹시 그 다음날 내가 안 오면 경찰에 신고 부탁해.”
“뭘 할 건지 일단 나한테 확인부터 받는 게 먼저야, 알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그러나 엘사의 말은 오픈시간이 되자마자 찾아온 손님들로 인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시간 있을 때 말해줄게. 엘사는 빠른 속도로 정리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었기에 엘사의 근무 태도는 다소 구멍이 있었지만, 친구 된 바로 올라프는 조용히 눈감아 주었다. 그런데 경영난을 겪는 상인이 동네에 꽤 있나보구나, 초콜릿 언니도 그렇고. 그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우리 상권이 별론가?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



물론 상권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이 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달력이 12월로 넘어가면서부터,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을 온통 크리스마스로 물들였다. 가끔 울리는 교회 종 말곤 아무 소리도 흐르지 않는 적막한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 펴지며, 풀만 무성했던 주거 지구는 집집마다 빼놓지 않고 장식을 구비했다. 특히 상점가는 손님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거의 모두가 장식에 열을 올렸는데, 이에 매년 경쟁이 더해져 지난해에 이르러서는 128색 정도는 동원해야 간신히 알록달록을 운운할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크리스마스 장식은 꽤나 유명한 볼거리가 되어 꾸준히 관광객을 불러 모았고, 그로 인해 광장 거리에는 모처럼 활력이 넘쳤다. 그만큼 배달해야 할 각종 소포와 카드가 넘쳐나는 건 유감이었으나, 크리스토프는 이 시기를 좋아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순록 굿즈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는 ‘펠리즈 나비다’를 흥얼거리며 순록으로 도배된 불법튜닝모빌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저런 우중충한 곳도 상점가에 있었던가? 추위를 막으려 발라클라바를 푹 내려쓰던 중, 그의 시선에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가 들어왔다. 그곳은 스산하게도 초록이나 빨강은 고사하고 불빛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흠, 만약 틈새 전략이라면 실패한 것 같은데. 턱가를 문질러가며 찬찬히 뜯어보자니, 비로소 그는 문제의 장소가 안나의 가게임을 깨달았다. 이제 전기마저 끊긴 건가? 시큰해지는 콧날을 부여잡고 크리스토프가 친구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전기세를 안 내면 어떡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평소 같으면 그의 목을 조를 기세로 득달같이 달려와 ‘내가 그걸 몰라서 안 냈을 거 같아?’라는 둥 쏘아붙였을 터였다. 그런데 손님(?)이 왔건만 나와 보지도 않다니? 이쯤 되니 걱정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그 때, 안쪽에서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강도라도 당했나? 크리스토프는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무장하고서, 냅다 주방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꼼짝 마, 움직이면, 어, (그는 손에 쥔 휴대폰을 슬쩍 보았다) ...전자파를 쏜다!”


깜짝이야! 주방기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던 안나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본능적으로 그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리스토프는 억소리를 내며 무릎부터 무너지더니, 인중에 날아드는 콤보히트에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어 그녀는 무방비한 등에 망설임 없이 무릎을 콱 찍고 올라탄 다음, 발라클라바를 꽉 움켜잡아 그대로 비틀어 질식시키려 했지만 어디서 들어본 절박한 외침에 흠칫 손을 멈추었다.


“자, 잠깐, 켁, 나야, 크리스토프!”


...크리스? 방한모를 벗기자, 그 아래엔 시뻘겋게 달아오른 친구의 얼굴이 있었다. 미안! 안나는 황급히 사과하며 그의 등에서 내려왔다. 아니지, 내가 왜 미안해? 그녀의 신경절에서 다시금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놀라서 죽는 줄 알았잖아, 이 XX야!”
“죽을 뻔한 건 나야! 콜록, 괜히 나섰다가 봉변 봤네! 하긴, 강도도 눈이 있으니, 먼지만 풀풀 날리는 여길 털진 않았겠다!”


죽기는 개뿔, 입만 펄펄 살았구만! 손마디를 뚜둑, 하고 꺾으며 그녀가 매섭게 다그쳤다.


“강도? 복면까지 쓴 채로 나타난 집채만한 남정네 입에서 먼저 나올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그거야 컴컴한 구석에서 혼자 뱀처럼 쉭쉭거리고 있으니까 그렇지!”
“쉭쉭거리든 멍멍거리든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응? 남의 일에 신경 끄고 네 물건이나 챙겨 가!”


곧장 얼굴로 날아드는 방한모를 능숙하게 잡아채며 그가 빈정거렸다.


“고맙기도 하지, 연말에 친절 사원상이라도 드려야겠네.”
“상 말고 그냥 돈으로 내놔.”
“하, 돈을 벌고 싶다면 말이지, 충고하겠는데 나라면 외관 장식부터 힘쓸 거야. 주변은 축제에 잔치에 경사가 났는데 여기만 초상집이 따로 없어.”
“쓸데없는 조언 고맙다, 다음 임차인에게도 꼭 전해주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크리스토프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다음 임차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 누군데요?”


갑자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크리스토프는 ‘끼약’하는 소리를 내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자 그의 덩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엘사가 안나의 시야에 나타났다. 이번엔 안나가 돌고래와 흡사한 고음을 내질렀다. 난데없는 괴성에 어느 정도 내성을 습득한 엘사는 가볍게 눈을 굴리며 말을 이어갔다.


“설마 아직도 장사 그만둘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뭐? 너 장사 그만둔다고?”
“왜요,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실망했어요? 걱정 마세요, 인테리어 철거비용 알아보는 중이니까. 다 뜯어내야 그 쪽이 인수하든지 말든지 하죠.”
“뭐? 이 사람이 다음 임차인이라고?”


하루 만에 대체 어디까지 얘기하고 다닌 거야? 게다가 처음 보는(것처럼 느껴지는) 남자가 말을 계속 따라하는 통에, 살짝 심기가 불편했던 엘사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 구관조는 뭐죠? 당신이 키우는 건가요?”
“아뇨, 시끄러워서 마침 내쫓으려던 참이에요.”
“아니, 못 가! 너한테 할 말이 많거든! 그만 둔다니, 대체 왜?”

 

그리고 나도 몰랐던 사실을 치고 박고 난리였던 저 여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크리스토프는 씩씩거리며 손가락으로 엘사를 가리켰다. 누군 알고 싶었던 줄 알아? 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2:1인 줄 알았더니 1:1:1이었네. 어쨌든 지금은 발언 기회가 저한테 넘어온 것 같네요. 안나, 살릴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급한 대로 장식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래, 일단 장식부터......”


이 둘은 서로 언제 봤다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자신을 닦달하고 있는 건지, 안나는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짜증 유발 시너지 효과만큼은 확실히 이해했다.


“아니, 다들 장식 못해서 안달 났어? 여태 관심도 없던 손님이 창문에 리본 하나 달면 갑자기 궁금해 못 견디겠어서 들어와 준대요?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닫으면 난방비라도 아끼지!”
“안나, 잘 생각해 봐. 오큰 아저씨가 요즘 장식품 가격에 바가지를 씌운다는 소문이 있고, 물론 사실이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인테리어 철거비용보단 훨씬 저렴해!”
“그래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해 봐요, 그 많은 관광객 중에 설마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어요?”


이 인간들이 장사할 때는 망한다고 뭐라 하더니, 소원대로 망하니까 이제 와서 장사하라고 하네! 안나는 까드득, 이가 갈렸다.


“물론 있기야 있겠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수고롭게 굳이 처음 와본 동네의 파리 날리는 가게까지 들어오지 않을 거고, 대신 자기에게 익숙한 브랜드 매장을 구글맵에 검색하거나 마트로 가겠죠.”


겨울이라 파리는 없을 텐데, 라고 중얼거리는 엘사의 말을 두 귀로 흘리며 그녀가 이번엔 크리스토프를 향해 싸늘한 눈빛을 선사했다.


“그리고 바가지 쓴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과연 내가 그걸 사야겠단 생각이 들겠니?”
“미안, 그래도 혹시 관심이 생긴 거면 내 순록 굿즈들을 빌려줄 수 있어. 지금 한 번 볼래? 밖에 예술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는 내 모빌에서 맘에 드는 거 몇 개 뜯어가.”
“뿔 달린 스노우모빌 같은 거 말이에요? 조금 전에 상인들이 이 흉물은 뭐냐면서 견인하고 있던데.”
“뭐? 안 돼!”


스벤을 함부로 다루지 마! 크리스토프가 잽싸게 뛰쳐나가자, 둘은 어색한 분위기에 남겨지고 말았다. 안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잘근거렸으나, 이내 됐다는 듯 눈을 내리깔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직전까지도 ‘스벤이 뭐지?’라고 골똘히 생각하던 엘사가 팔을 뻗어 다급히 안나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그 쪽하고 말싸움할 기분이 안 드니 이만 돌아가 주세요.”
“제, 제가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신경 쓰이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그렇지만 그만두는 것까지는......”
“저도 저지른 게 있었고, 그땐 감정이 격했던지라 지금와선 딱히 마음에 두지 않아요.”


안나는 몸을 돌려 엘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사과는 잘 받았어요. 하지만 폐업은 그 쪽이 쉽게 이래라 저래라 할 게 아닌 것 같네요. 어제 헤어지고 나서부터, 과연 이 방법밖에 없는 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그러니 죄책감 같은 감정에 붙잡혀서 마음에 없는 위로를 전할 필요 없어요.”


좋아! 이번엔 다행히도 눈물 없이 말을 끝맺었다. 불과 몇 년 치에 버금가는 눈물을 어제 하루 동안 내내 쏟아낸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바라던 대로 쿨한 모습으로 뒤돌아 나가는 장면을 연출하려는데, 팔을 놓지 않은 채로 졸졸 따라붙는 엘사 탓에 어린이 보호 픽토그램으로 대체되었다. 안나가 찌릿, 하고 경고의 눈빛을 쏘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엘사는 여전히 끈질겼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듣지? 목구멍에서 ‘참견 말고 빨리 꺼져’라는 엘사 전용 통역이 부글거렸으나, 안나는 남아있던 모든 인내심을 발휘하여 꿀꺽 삼켜버렸다. 아직 쿨함을 포기 못한 안나가 대꾸했다.


“생각의 단계는 지난 지 오래예요, 남은 절차는 실행뿐이죠. 폐업정리를 마쳐야 하니 손 좀 놔주실래요?”
“제가 봤을 때는 홍보가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사람들에게 존재라도 알릴 수 있다면 분명 좋은 결과로 돌아올 거예요.”


그래서 뭐, 장식하자고? 치솟는 화로 인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려는 일말의 쿨함을 어떻게든 지키려 안나가 애를 써보았지만, 참을성은 이미 동난 지 오래라 제 버릇이 다시금 부상했다.


“아니, 대화에 도돌이표가 대체 몇 개람, 어차피 결론은 장식이라 이거잖아요! 오큰 아저씨한테 사주 받았어요, 당신? 영업사원이 투잡이세요? 됐어, 안 사, 그러니까 당장 나가!”


갑작스런 하이드의 출몰에도 엘사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내내 기운이 없더니(?) 이제야 좀 살아났네. 엘사의 입가에 실실 웃음이 걸렸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태도는 안나에게 있어 불쏘시개나 다름없었다.


“어쭈, 쪼개? 구경났어? 콱 둘로 쪼개버리기 전에 빨리 안 꺼져?”
“아직 얘기 다 안 끝났어요, 그래서 홍보를 위해......”
“야, 장사 관둘 건데 장식이 다 무슨 소용이야! 나 안 해, 공짜로 갖다 줘도 다 안 해! 그렇게 장식이 좋으면 공짜로 발자국 장식 하나 남겨줄 테니까 등짝 여기 갖다 대! 왼발이랑 오른발 중에 하나 골라 보시지!”
“아뇨, 안나,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장식이 아니라요......”


엘사는 핸드폰 화면 잠금을 푼 뒤, 안나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어때, 나의 검색능력이?’라고 자랑하는 듯이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는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나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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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마켓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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