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그 예선이 끝나고 한달이 흘렀다.


2016년 4월 중순.


-1-

KT롤스터 연습실 안.


"타타타타타탁. "

연습실 안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연습에 몰두하는 선수들로 가득차있다. 공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바로 연습실로 돌아와 스타리그 준비에 들어간 영호도 마찬가지였다.

예선이 끝난 후 택뱅리쌍을 비롯한 올드게이머들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5년전 그들이 최고에 위치에서 정점을 찍을때만큼 무서운 포스를 뿜고있었다. SK와의 통신사더비를 앞두고 있던 터라 선수들은 쉴 틈없이 연습중이었다.

"후아암.."

영호는 연습을끝내고 잠시 쉬기위해 베란다로 향한다. 혼자 생각에 잠겨 여러가지 상상을 해본다.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하는 상상. 스타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키스해보는 상상. 눈을 감고 트로피에 키스하는 시늉을 하려한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영호를 부른다.

"얌마! 뭐해?"

깜짝놀라 영호는 뒤를 돌아본다. 정석이었다.

"너 너무 설레발떠는거 아니냐?듀얼 뚫을생각부터 해 임마.키킥"

"아 왜그래요.. 아무생각도 안했어요..."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영호와 정석. 정석은 영호에게 커피를 건낸다. 영호는 커피를 낼름 마신다.

"하... 뚫을수 있을까요..듀얼..."

"왜 못 뚫을까봐 무섭냐?"

"네.. 조금.."

"짜식.. 옛날이랑은 완전다르네. 얌마 예전에 너 기억안나? 너 질때도 중얼중얼거리고 무조건 이길수있다는듯이 말했었잖아. 옛날 니 최고의 장점은 그 무식할정도의 과감함이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애들봐주러가야겠다. 나 간다."

정석은 영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시 연습실로 선수들의 경기를 보러간다. 영호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과거에 그가 잘했던. 최고의 게이머가 되었던 이유중 정말 무식할정도로 근거없는 자신감도 그중에 하나였다. 영호는 눈을 뜬다. 그의 눈빛은 방금 전과 달라졌다. 그의 눈은 어느새 자신감에 가득찬, 거만한 어린이영호의 눈빛이였다. 그는 조용히 연습실로 돌아가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


-2-

한편 SK의 연습실. 역시 이동통신사 더비를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던중이었다.

"야...야야 명훈아 윤종아 너네들도 다 일로 와봐. 내가 재밌는거 보여줄게."

택용은 팀원들을 모은다. 그리고 배틀넷에 접속한다.

택용은 subitoss라는 아이디를 입력하고는 접속한다. 팀원들은 모두 입이 떡벌어진다. 그리곤 한동안 말이없었다.

"이..이건... 웨스트 완성형토스....??"

정윤종은 택용의 아이디를 보고 말했다. 택용이 은퇴하고 지난 2년간 배틀넷과 사설서버를 패닉으로 만들어놓은 프로토스유저. 아이디 빼고는 모두 미스테리였던 의문의 유저. 개인방송 BJ들도 모두 그에게 패배했지만 그가 누군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subitoss라는 아이디는 SK의 선수들을 포함하여 모든 선수들이 게임을 해 본 적이 있을정도로, 아무도 이긴적이 없을정도로 정말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이게 형이었구나.. 역시 연습을 엄청나게 했었구만. 누군지몰라도 프로게이머라고는 생각해왔었어." 

명훈은 의외로 담담한척했지만 속은 그러지않았다. 그는 저 subitoss라는 아이디의 유저에게 한 번도 이긴적이 없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플레이. 그와 경기할땐 항상 리버나 캐리어를 쓰지 않았다. 벌처에 대한 수비도 완벽했다. 명훈은 게임을 할때면 어디서 많이 경험해본 플레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었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일거라 생각만 했었다. 그 아이디의 주인공이 택용임을 알아채고나니 좌절감이느껴졌다. 스타리그에 올라가도 택용을 만나면 질 것이다. 자신은 택용을 절대 이길수 없다.

명훈의 눈빛도 변한다. 아까 본 영호의 눈빛과는 또 다른 눈빛. 살기에 가득찬.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짓도 감수해 낼 그런 눈빛이었다. 그 눈으로 잠시 택용을 노려본다.

"명훈아.. 명훈아? 뭐해 연습하자 빨리."

"어?,,응 형.."

사악한 악마의 눈처럼 보였던 명훈의 눈이 택용을 바라보며 대화할땐 다시 평소의 명훈처럼 멍하고 초점없는 눈빛으로 돌아온다. 택용과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명훈의 눈엔 다시 살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뭔가 결심한듯 했다."


-3-

한편 한가로이 쉬고있는 삼성칸 숙소 병구는 뭔가에 열중하고있다.

"아..아!! 안되는데...!! 아!! 큰일이다! 어..?!!"

왠일인지 연습하며 말이 많은 병구. 그런 병구에게 의문이 든 영무는 병구의 뒤로 다가가 병구의 모니터를 확인한다.

"형! 뭐하는거야! 연습안해?"

"아니..연습할라그랬는데.. 시간이.."

말도안되는 핑계를 대는 병구. 그의 모니터에는 레벨 60대의 성기사 캐릭터가 신나게 사냥감을찾아 돌아다니고있었다.


-4-


화승의 숙소. 연습을 끝내고 식사를 하러 내려가는 화승 선수들.

"오늘은 어떤음식이 날 반겨줄까아아앙아??"

여느때처럼 화승의 분위기메이커인 김태균이 팀 선수들을 식당을 데려간다. 팀원들은 김태균의 개그에 억지로 웃어준다. 자신의 개그가 재미가없으면 다른 선수들에게 화를내는 태균의 성격을 잘 아는 팀원들이었기에 억지로 웃어줄수밖에 없다.

"제동이형~~ 밥먹어요 밥!"

선수들은 모두 제동을 부른다. 선수중 가장 맏형이고 주장이기때문에 제동을 모두 부른다. 그러나 제동은 시선을 모니터에만 고정한 채 게임에 몰두하고있다. 선수들은 하나둘 제동의 모니터 뒤로 이동해 제동의 게임을 지켜본다.

그의 뮤탈컨트롤. 전보다 실력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 않았다. 그리고 점차 나아지는듯했다. 전성기 이제동의 뮤탈보다 더 강력해보였다. 왠지 터렛과 마린들이 빨리죽는 느낌마저 들었다.

"와.. 역시 제동신의 뮤탈은 데미지가 더들어가는구나..."

연습생들도 하나둘씩 제동의 모니터를 향해 모여든다. 그리고는 그의 플레이에 감탄한다. 몇개월사이 그의 경기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선수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고 감탄한다.

"하아아아암 피곤하다~"

제동이 게임을 끝낸다. 그리고 이어폰을 빼고 기지개를 켜고는 선수들을 제치고 유유히 식당으로 향한다.

선수들은 제동이 떠난 자리에 모여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가만히 서있다. 혼이 나간 사람들마냥. 3년간 볼 수 없었던 최고의 플레이였다. 이대로라면 스타리그 우승도 꿈이 아니었다.

"제동이...대박인데? 우승도 꿈이 아니야..."

영종은 선수들을 멀리서 지켜보고있었다. 제동의 플레이를 아까부터 지켜보고있던 사람이기도했다. 그는 제동의 플레이를 보고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우승... 저상태라면 꿈이 아니죠.. 근데.. 저 손놀림이 그때까지 나올 수 있을까요... 전... 모르겠어요.."

영종의 옆으로 정장을 쫙 빼입은 사내가 껌을 씹으며 들어온다. 작지 않은 키에 마른 몸. 뛰어난 패션센스. 제동의 가장 오래된친구 손주흥이었다.

"사실.. 제동이..."

"뭐...? 그걸 이제 왜 얘기..."

"죄송해요.. 제동이가 절대 말하지 말랬는데...제동이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다른애들하고 감독님한테도요.. 부탁이에요 형."

주흥은 영종에게 얘기를 마치고는 제동의 옆으로 쪼르르륵 뛰어가 팀원들 사이로 끼어들어 같이 밥을 먹으러간다. 영종은 주흥이 간뒤 제동의 침실로 가본다. 그리고는 제동의 옷장을 연다. 점퍼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뭔가 느껴졌다. 영종은 그 물체를 꺼내본다. 약이 든 통이었다. 영종은 그 약통에서 약을 한 알 빼서 자기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한편 제동은 식당에 가기전 화장실에 들러 세수를한다.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손을 닦는다.

-찌릿!

"으악!"

제동은 누군가 손목을 비트는듯한 아픔을 느낀다. 자신도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는다.

"무슨일이에요 형?"

"아무것도 아냐. 세수하다가 손가락좀 찧었어.. 제..제동이.. 아..아프다...헤헤"

"뭐에요 형 크크. 빨리와요 밥 다 식겠어요."

태균은 제동의 비명소리를듣고 화장실로 왔다 별일이 아닌걸 확인하고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간다. 제동은 태균이 간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오른쪽 손목을 부여잡는다.

"제발...조금만 버텨줘... 3달...아니..2달만이라도...."



12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