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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문학] 윤수의 '나비효과' 최종화

1313(211.212) 2015.11.03 21:42:41
조회 3996 추천 59 댓글 41




-최종화-






2035년






‘아, 목말라 죽겠네’

타는 듯한 갈증에 자다 깨 거실로 나온 나는 이 늦은 시간에 TV가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


‘뭐지, 성대가 안 끄고 잤나?’

그러나 나는 곧 멈칫했다. TV앞에는 윤수가 몸을 웅크린 채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행된 결승전에서 백.동.준 선수가 어윤수 선수를 꺾고!...”

TV속에선 박상현 캐스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벌써 20년도 더 된 동영상이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계속 그 부분을 돌려보는 윤수의 옆엔, 내가 준 쪽지가 쌓여있었다.






그렇게 나에게서 쪽지에 관한 주의사항을 듣고 몇 날 며칠을 고심하던 윤수는 결국 그것을 사용했다. 


내가 처음 사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윤수 역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몇 번을 왕복하며 작은 실험을 한 후로는, 그것을 완전히 신뢰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제 됐어!!! 나도 이제 우승자라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윤수는 일주일도 안돼서 내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먼 예전 백동준과의 과거를 바꾸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우려하던 부작용은 없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좋아하는 윤수를 보며 나는 그렇게 자위했다. 동준의 인생이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은 바로 다음날 일어났다.



“주성욱도... 성공적으로 해결했어.”

“뭐??”



윤수가 내 생각과 달리 1회 우승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윤수는 밤낮없이 과거바꾸기에 매진했다. 

그리하여 2주가 되었을 즈음엔, 4연준의 준우승을 모두 우승으로 바꿔내었다.



놀랍게도 완벽한 설계를 해낸 윤수에게 나비효과의 후폭풍은 없었다. 


4회 우승을 바꿔낸 직후의 윤수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난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윤수가 이제 만족했다고 판단한 나는, 더 이상 윤수의 우울증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윤수는 왜인지 5,6회우승을 위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건은 그로부터 2주 후 일어났다.

어느 때와 같이 일어나 아침 일을 하고 돌아온 나는, 평소와 달리 그때까지 보이지 않는 윤수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윤수의 방에서 찾은 건 펼쳐진 채 널브러져 있던 일기장이었다.



-아무 소용 없는 것이었어.



휘갈겨 쓴 글자의 발견과 함께 걸려온 성대의 전화.



미래를 성공적으로 바꾼 윤수는 자살했다.








 

2016년









“....어째서?”

영호의 말을 듣고 있던 윤수가 의아해했다.



“부작용도 없었다며? 근데 왜 자살을? 앞뒤가 안 맞잖아?”


“나도 그게 의아했다. 그런데 더 의아했던 건...”


“....?”


“윤수가 바꿨던 모든 과거가 리셋되어 있었다. 4우승으로 바꿨던 모든 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던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본인이 바꾼 과거를 리셋하려면 다시 본인이 가야 하지”



영호는 맞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맞다. 윤수는 4우승을 차지한 후... 다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자살한거다... 그리고 난... 그런 윤수를 되살렸다.”







2035년






“어째서... 날 되살린 거지?”

윤수를 되살리며 고맙단 말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예상보다 냉랭한 반응이었다. 



“그건 내가 물을 말이야. 왜... 왜 자살한 거지?”

윤수는 특유의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과거를 바꿔 우승을 얻고 기뻐하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전의 그 우울한 얼굴이 돌아와 있었다.



“영호야, 넌 기억하니?”



“,,,,뭘?”



“네가 우승하던 그 순간들”


“...당연하지. 그걸 어떻게 잊겠어”



“그럼... 그 순간의 기쁨이라던가 환희 그런 것들이 모두 기억에 남아있겠지?”


알 수 없는 윤수의 말에 영호는 일단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차지한 우승엔 그런 게 없어”





“...?”


“기억을 바꿔서 만든 우승엔... 그런 게 없다. 기쁨이나 환희.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 

그냥 마치 컴퓨터가 입력한 것처럼... ‘우승했다’는 사실이, ‘기뻤다’는 사실이, 그 시절의 기억이 ‘있을 뿐’이야. 

감정조차 마치 누군가 써넣은 것처럼... 그냥 있는 거야, 내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거...”




윤수는 마지막 문장을 반복해서 읊조렸다.


허나 내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너를 준우승자로 기억하지 않아. 널 우승자로 기억한다고!”


솔직히 나는 무슨 말로 윤수를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 맞아. 그렇지.,,, 하지만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지? 바뀐 미래에서 그들에게 난 원래부터 우승자였어. 

내가 받았던 수많은 조롱들...을 그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해... 준우승자라 놀림받던 그 시절의 나는... 그대로 거기에 있어. 

바꾼 게 아니라 지웠을 뿐이야...”




윤수는 더없이 쓸쓸한 표정이었지만 확고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영호야. 날 아무리 살려내도 소용없어. 난 이제... 지쳤다.”



그 말을 새겨듣지 않은 나는 과거로 돌아가 윤수를 무려 다섯 번이나 살려내었다.


그러나 윤수는 더 이상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매번 자살해버렸다.






결국 아무 소용없는 일임을 깨달은 나는, 윤수가 처음 죽었던 날로 롤백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기억...뿐...?”


윤수가 몽롱한 표정으로 되내었다. 

동시에 과거롤 바꾸면서 머릿속에 중첩된 우승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바꾼 기억들. 기쁘고 환희에 차올랐던 그 순간들. 그 느낌들. 그 느낌들...?





윤수는 미래의 자신이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우승을 하면 성취감을 비롯 당시의 수많은 감정이 온몸에 남아 있어야 했다. 

프로리그 우승을 했을 때, 2티어지만 우승을 차지했을 때 느꼈던 복받치는 감정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윤수의 기억속에, 아니 윤수의 삶 자체에 녹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꾼 과거와 우승에 대한 기억 속에서 이런 감정들은, 마치 누군가 컴퓨터로 입력해 넣은 듯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 뿐 감정이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네...생소해...’

누군가 ‘기쁘다’라는 느낌을 뇌에 새긴 느낌. 

생각해보면 처음 과거를 바꾸고 우승을 차지한 후 기뻐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다. 

자신은 정말로 우승을 차지했단 사실에 기뻐했지 당시의 감정들을 떠올리며 기뻐한 게 아니었다.



“너는 그 말에 동감하나 보군”

영호가 생각에 빠진 윤수에게 말했다. 윤수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킥킥거렸다. 





그런거 였나.




일종의 대가 같은 것이군





그런 윤수를 바라보던 영호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국 나는 윤수를 ‘직접’ 되살리는 걸 포기했다. 나는...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로 햇다. 

과거를 조작해 윤수의 ‘우울증’을 치료하고 자살하려는 생각자체를 없애기로 한 거지.”








2035년







“자금 지원은 우리가 해줄게”

영호의 이야기를 들은 윤종과 준호는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영호는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만사를 제쳐놓고 윤수를 구하기 위한 설계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능력을 쓴 이후로 처음 돌입하는 실전이었다.



윤수의 우울증은 두말할 필요 없이 준우승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영호들이 과거를 조작해 윤수를 우승시켜봤자 윤수는 다시 죽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더 먼 과거를... 윤수의 마인드 자체를 바꾼다”


준우승을 뒤바꿔 얻어낸 우승에 감정을 못 느낀다면? 답은 간단했다. 





윤수가 쪽지의 힘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미래의 일을 알려주는 그런 편법이 아닌, 윤수 자신이 스스로 실력대로 쟁취하는 우승.



그러면 기억은 바뀌어 남을 것이고 윤수는 애초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윤수는 군심 4연준과 공허에서의 2준우승 후 즉시 은퇴했다. 

편법을 쓴다고 해도 우승을 만들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편법 없이 윤수를 우승시키려면?




일단 기존의 준우승을 바꾸면 안 되기 때문에 6준우승 이후의 시기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은퇴를 만류하고 다시 게이머로써 활동해 우승을 차지하는 것. 


이게 영호가 생각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은퇴를 번복시킨다고 그동안 못한 우승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이런 사실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우승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까?

은퇴한 고령의 게이머를 스스로의 힘으로 우승시킬 방법이 내게 있을까?


고민하던 영호의 눈에 윤수의 일기장사이 비스듬히 껴있는 편지 한 장이 보였다.







2016년






“그건 윤수가 남긴 편지였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통찰력은 놀라웠지... 윤수는 내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구하려 할 것을 알고 있었다. ”


영호는 마지막회까지 포카리 섭취를 빼먹지 않았다.


“사실 이제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이었어. 우리는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시간이 지나면 깨닫고 후회하지. 

그리고 윤수는 과거에 큰 후회를 가지고 있었다. 결승의 승패와 직결되는... 윤수의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후회... 사실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것이기도 했다. 

난 그것이 단지 '우승을 못해서'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어... 넌... 백동준과의 결승에서 니가  왜 졌다고 생각하냐?”



갑작스런 불쾌한 질문에 윤수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야... 백동준이 나보다 잘했지”

영호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그럼 두 번째, 주성욱과의 결승은?”

“그것도... 주성욱이 잘했지”

아픈 과거를 헤집자 윤수의 말꼬리가 점차 내려갔다.



“그럼 세 번째, 김도우와의 결승은?”



“왜 자꾸 물어. 그것도 도우형이 잘한 거지”

그러나 이번에 영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뭐?”


“넌 2연준 이후로... 공포에 사로잡혔다. 결승자체에 대한 공포”



“....!”

“그 시점의 너에게, 아니 2연준 이후로 지금까지 너는 결승상대가 아니라 결승 자체와 싸운 거야.”




“그게 무슨...”




“또 준우승을 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윤수는 흠칫했다.



“또 준우승을 하면 받게 될 비난과 낙인. 수많은 조롱”



윤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애써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상대가 나보다 강하다며 인정하는 척했지만 니 마음은 어땠지? 

너는 언젠가부터 무대자체와 준우승에 대한 결과만을 생각하며 결승전에 임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어느 순간부터 중요하지 않았어.”




“아니야 난....!”



윤수는 아무도 몰래 숨겨논 야동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임한 세 번째 결승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지. 넌 패배했다. 네 번째 결승도 마찬가지야. 

넌 사람들이 ‘왜 평소에는 잘하는데 결승경기력은 저렇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실력을 보이며 패배했다. 

그러나 당연하지. 결승은 상대를 이긴다는 자신감으로만 차있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넌 딴생각과 걱정이 우선하니 이길 수도, 제대로 된 경기도 나올 수 없던 거다”



“그만해!!”



참다못한 윤수가 소리를 질렀다.



“넌...넌 모르겠지! 너처럼 최정상에서 우승을 여러 번 차지한 너는!”


윤수의 어깨가 떨려왔다.


“그래, 네 말대로다. 난...나는... 결승에서 한 번도 완벽히 만족할 경기력을 펼친 적이 없어. 

결승전 부스에만 들어가면 무슨 생각이 나는지 알아? ‘이기면 어떨까’하는 생각? ‘상대를 어떻게 이겨야 할까’하는 생각? 

아냐. 전부 아냐!.... 그 모든 생각 앞에 떠오르는 건... ‘또 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야. 

또 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조롱한다. 

준우승이란 단어 대신 내 이름을 사용하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나를 까는 게시물들이 쏟아져! 너가 이런 내 기분을 알어? 아냐고!”





‘알지 씹새끼야... 니가 나타나기 전 단골메뉴가 나였는데’

물론 영호는 굳이 이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치만 어떡해! 나도 아는데... 어쩔 수가 없어. 부스에 들어가면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아. 언젠가부터....언젠가부터 나는...언젠가부터...”



윤수는 쉽사리 말을 잊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지만 결코 생각해선 안 되는 그 말. 그러나 언젠가부터 가슴속에 뿌리 깊게 박혀 결승전만 되면 나타나 윤수를 잡아먹었던 말.






“스스로도... 이제는 우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난 영원한 준우승자라고.”


영호가 대신 말을 끝맺어주었다. 








2016년








남겨진 편지는 두 장이었는데 그중 한 장은 영호에게 쓴 것이었다.


놀랍게도 윤수는 자신의 우울증이 어디서 기반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우승을 못해서’ 가 아니었다. 

‘준우승 프레임’에 갇혀 자신 스스로를 준우승으로 확정짓고 경기에 임했던, 떨쳐버리지 못한 과거의 나날들에서 오는 후회였다.



당시 윤수를 대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분류였다. 

윤수를 조롱하는 사람들과 위로하는 사람들. 


허나 주변 사람 중 누구도 윤수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 돌직구를 날리지 못했다. 

윤수는 그렇게 스스로 벽을 쌓고 준우승 프레임에 갇히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결승부터 윤수는 단 한 번도 결승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결승 전(前)의 어윤수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이걸 치료한다고 과거의 윤수가 스스로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지만 영호에겐 방법이 없었다. 미래의 윤수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진단한 것이었다.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치료해 그 나비효과로 윤수가 살아날 것을.





준우승 프레임에 갇힌 과거의 어윤수를 구해라.





다음은 방법이 문제였다.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갑자기 뚝 떨어져 ‘넌 준우승프레임에 갇혀 평생 준우승만 하다 나이 들어 자살해’ 라고 한다고 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까. 


미친놈 취급이나 안하면 다행이었다. 

반년 넘게 어설프게나마 공부를 거듭한 영호는 ‘스스로 깨닫는’ 방법이 치료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그런 영호에게 준호가 아이디어를 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윤수는 직접 과거에 다녀온 후 인조 된 우승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잖아. 

그토록 바꾸고 싶던 과거였는데 말야.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오랜 트라우마와 직접 마주하기도 했고”



“그렇지”



“그럼 과거의 윤수에게도 똑같이 과거를 바꿔보게 하는 거야. 똑같은 걸 느끼게 하는 충격요법이지. 꽁꽁싸매둔 자신의 마음에 직면하게 만드는 거야”


“과거의 윤수에게도 다시 과거를 바꾸게 한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윤수는 편지에서 그 시절의 자신은 애써 준우승 프레임을 부정하며 지나간 결승전에 대한 미련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미련을 똑바로 마주해 극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해결책이었다.





“게다가 뜻대로 안 되더라도, 과거 여행을 다녀오면 적어도 우리가 진짜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은 믿겠지”



준호의 계획은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설령 의외의 상황이 벌어져도 미래에 있는 자신은 언제든지 더 먼 과거로 가서 리셋시킬 수 있었다. 


과거의 윤수가 아무리 자신의 과거를 바꿔도 

그 직접적 원인은 자신이 과거로 가서 쪽지를 준 것이기 때문이니 수틀리면 안주는 걸로 바꾸면 모든 건 원위치일 것이었다. 



또한 윤수가 쪽지로 무슨 짓을 하든 바꾼 과거는 2035년까지 영향을 줄 것이었다. 윤수가 무슨 짓을 했는지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은 시기가 문제였다. 어느 시기의 윤수에게 돌아갈 것인가?



영호가 처음 돌아간 건 6준우승 후 은퇴를 앞둔 윤수였다.

그러나 6준우승의 윤수는 애초에 쪽지를 시험해보지조차 않았다. 그 당시의 윤수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5윤수도 마찬가지였다. 패배감에 찌든 윤수는 영호의 말을 그저 개소리로 여겼다. 어떻게 6번째 결승에 올라갔는지 신기할 정도의 마인드였다.



영호는 실패하면 더 과거로 이동해 리셋시킨 후 다시 돌아왔다. 과거로 돌아가 아무것도 안하고 숨어 30분을 지내는 것도 여러번 반복되니 고역이었다.



영호는 4연준의 윤수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해 바로 1연준의 윤수에게 건너갔다. 

그러나 아직 패기 넘치던 시절의 1윤수와 2윤수는 역시 영호를 쌩깠다. 트라우마 자체가 안 생긴 모양이었다. 


남은 건 3윤수와 4윤수였다. 3윤수는 드디어 쪽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4윤수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던 3윤수는 바뀐 과거와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해버렸다. 



3윤수는 아직 독기에 차있지 않았다.





결국 영호는 4윤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게 봤다. 다른 방법으로 충격요법을 쓰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4연준 후의 윤수는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시기였다. 

영호의 생각보다 활발히 움직였고, 일을 처리해나갔다. 물론 일이 이렇게 파국에 이를 줄은 영호도 짐작할 수 없었다.








2016년








“그럼 이 모든 것들이...... 내 우울증의 근본을 치료해서 날 살리기 위한 거라고?”


“그래. 니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려주고 니 마인드 자체를 바꿔버리기 위해서지. 

실제로 너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 과거를 바꾸고 싶다고...”




“그래 그거다. 4연준의 어윤수. 너는 과거에만 묶여있다. 

‘준우승 프레임’에 갇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과거만 바라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그걸 극복하지 못한다면 악성종양이 되어 커갈 거고, 미래의 너 자신을 잡아먹을 거다”



“......”


윤수는 벌거벗겨져 광장에 묶인 느낌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과거의 결승들을 늘 곱씹었다. 그건 마치 늪과 같이 윤수를 빨아들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달아날 수 없었고 하나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가정을 수도 없이 했다. 



다시 결승에 올라 이겨야지 하는 마음은 언젠가부터 사그라지고 있었다.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이제 그만...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영호는 주저앉아있는 윤수의 앞에 편지하나를 던졌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니가 하는 것. 나는... 니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니가 조중혁과 한지원을 죽이고 편히 우승을 차지하든, 모두를 되살리고 우승을 포기하든. 

니가 하는 선택에 따라 변할 너의 마인드가, 그것이 미래의 윤수를 살리느냐 죽이느냐를 가를 것이다. 

솔직히 더 이상 방법도 없다... 니가 한 선택이 미래의 윤수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이젠 나도 포기할 것이다. 니 명이 거기까지였던 거지.”




영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군. 사실 그동안 너에게 쪽지를 준 이후로 리셋되지 않게 시기를 뒤로 조절하면서 왔었다. 정말 머리 아픈 작업이었지만... 이제 올 일은 없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영호는 사라졌다.







혼자 남은 옥상.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윤수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아직도 품 안에 안고 있던 령우를 바라보던 윤수는, 령우를 내려놓고 영호가 주고 간 편지를 펼쳤다.







“미래의 나에게...







직접 너를 만났더라면 모든 일이 쉬워졌을 것이지만, 룰상 너를 직접 만날 수 없어 이렇게 글로 쓴다. 


또한 이렇게 남기면 나의 친구들이 어떤 방법을 쓰던 적절한 시기의 나에게 전달하리라 믿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너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줄 건 없고, 다만 당부 한 가지를 하고 싶다. 

차후에 있을 결승들... 그 결승들에서만큼은, 과거에 얽매인 어윤수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어윤수’로써 플레이하길 바란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결승전에서 내 스코어를 세지 않게 되었다.



‘이제 2점만 따면 우승이야’ 라는 생각보다


‘벌써 2점만 내주면 준우승이야’ 라고 생각했다.



GG를 치는 순간에는 ‘내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분노’보다는 ‘또다시 나를 조롱할 사람들에 대한 걱정’ '난 안되는건가'하는 자괴감이 먼저 차올랐다.


사람들은 내가 평소처럼만 하면 우승할 실력이라고 했다. 그건 우리도 아는 사실이었어.


그러나 우린 부스 안에서 1대1이아니라 상대선수와 네티즌 수만 명의 눈길과 싸우는 기분이었지.

그랬기에 우리는 긴장도 안했는데 결승만 올라가면 실력이 흔한 다이아 저그로 전락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부탁하고 싶은건 하나다.


준우승은 부끄러운게 아니다. 자랑스러운 성적이지. 


그러나 내가 아쉬워 놓지 못하는 건 우승/준우승을 떠나 얽매임 없이 본연의 실력을 100%발휘하는 결승을 더이상 치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디 그 많은 부담감과 과거에 대한 미련을 물리치고, 너 본연의 실력을 한 번이라도 보여줘라.


너를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모두 너의 편으로 돌릴 정도의 실력을 너는 가지고 있다.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여 니 최고의 기량을 결승에서 발휘하는 것. 

설령 우승을 못하더라도 그렇게만 된다면, 니가 지금의 내 생각을 이해해 줄 수만 있다면, 난 더 이상 후회가 없다.













윤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요했다.






마지막 남은 쪽지 한 장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우승을 바꾸는 건 굉장히 쉽고 편한 일이었다. 


딱 30분만 다녀오면 자신은 2회 우승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고 자신은 다시 미련이 남은 과거와, 자신을 향한 조롱들과 싸우며 게임을 해야 할 것이었다. 

영호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과거는 더이상 바뀌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6회준우승도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윤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과연 준우승에 묶여있던 과거에서 한 발 짝 나아갈 수 있을까? 알면서도 가야 할 가시밭길을... 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윤수의 눈에 령우의 시신이 보였다. 중혁과 성욱 지원의 주검이 하나씩 떠올랐다.





‘저 모든게... 내가 한 일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에 미쳐서,,. 분명 벗어난 줄 알았는데... 이젠 괜찮아졌다 생각했는데...... 


그냥 가슴속에 묻어놓은 것뿐이었나’








이내 윤수는 몸을 일으켜 마지막 하나 남은 문 앞에 섰다. 




쪽지에 돌아갈 시기를 적는 건 금방이었다.






워프를 기다리는 윤수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다. 


그렇게 윤수는 마지막 쪽지를 사용했다.












2036년







현재로 돌아온 영호는 소파 위에 몸을 뉘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윤수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할 것이고, 그가 바꾼 과거로 인해 영호가 사는 현재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었다. 




만약 자신의 의도대로 된다면, 윤수는 살아 돌아와 있을 것이었고, 아니라면 여전히 죽은 사람일 것이었다.



피곤함에 연신 하품을 해대던 영호는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영호는 번쩍 눈을 떴다.




고요했다.





여전히 목장 사무실 안엔 자기뿐이었다.




‘결국... 험한 길보다 편한 길을 선택한 건가...’




착잡한 마음에 냉장고에서 포카리를 꺼내는 찰나, 누가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성대냐?”

포카리를 마시며 영호는 문으로 향했다.





“영호야 문 열어봐”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영호는 허겁지겁 달려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











1년 후 - 2017년







“10분 후에 슛 들어갈게요!”

“네!”



스태프가 들어와 민준에게 방송 시작을 알려주고 나갔다.

민준은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로 최종대본을 점검하고 있었다.


민준은 대본 옆 연습장에 오늘 쓸 각종 애드립을 적어 넣고 있었다. 


오늘 스슬 결승에 올라온 선수 중 한 명은 그야말로 애드립의 분수대였다. 쓸 말이 너무 많아서 고르는 게 고역일 정도였다. 

그러나 첫 스슬결승을 맡은 민준은 멘트 하나에도 사력을 다해야 했다.



‘참 근데... 대단 하긴 해“


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 선수를 떠올렸다.

군심에서 4연준을 하고도 불굴의 의지로 공허에서 두 번이나 결승에 진출해 전부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 


1티어 6결승 진출 6준우승이라는 기록은 정말 전무후무의 기록이었다. 





그런 그의 1티어 8번째 결승전이 오늘 치러지는 것이었다.


“음...이게 문법에 맞나? 뭐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써야지 스시들이 좋아할 거야.”


민준은 대본 옆 연습장에 애드립멘트를 적으며 몇 번 옹알거렸다. 

이 선수가 이기면 막 생각난 척 쓸 애드립이었다.



“형! 시간 다됐어!”



인규의 부름에 민준은 대기실 불을 끄고 나갔다.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들어온 한줄기 빛이, 민준의 연습장 위에 써진 글자를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건 아주 간략한 영어 한 문장이었다.












Soo has win 'again'



















주연 : 어윤수


조연 : 조중혁, 김유진, 주성욱, 박령우, 한지원, 이영호


엑스트라 : 김도우, 최연성, 이신형,      , 정윤종, 김성대, 김대엽, 조성주, 영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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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자리 달조차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밤.


영호와 윤수, 성대의 목장 사무실에 누군가 다가가고 있었다.

소리를 죽이고 주변을 살피는 것으로 보아 손님 같아 보이진 않았다.


손수건을 동여매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은 그는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열쇠를 넣어 사무실 문을 열었다.


곧장 안으로 들어간 그는 얼마 안 가 밖으로 나왔는데,

그의 손에는 윤수와 영호가 사용했던 쪽지가 한뭉큼 쥐여있었다.


다시 주변을 살피던 남자는 황급히 농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농장을 벗어난 남자는 이내 쪽지를 살피며 두건을 벗었다.




그는 다름 아닌 중년의 중혁이었다.




“흐흐흐....됐어...”

쪽지가 더 이상 없는 줄 알고 속고 산 세월이 20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라고 중혁은 생각했다.




“조중혁!”


쪽지를 갈무리하던 중혁의 앞에 누군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중혁은 전혀 놀라지 않고 쪽지의 반을 나눠 건넸다.



“성공이야. 형 계획대로.”


중혁이 쪽지를 건네자 남자는 씩 웃으며 그것을 받아 챙겼다.







달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역시 중년이 되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지원이었다.










진짜 끝.



여러모로 부족하고 허점도 많은 글 여기까지 봐준거 ㄹㅇㄱㅅ


내 머가리의 한계이니 빵꾸가 있어도 너그러이 봐주면 ㄳ


원하는 결말이 아니면 ㅆㄹ


내일은 후기와 후속작 '채민준의 배틀로얄' 프롤로그로 돌아오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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