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초개념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프갤문학] 시간놀음꾼

앙졸라이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8 10:00:01
조회 779 추천 48 댓글 36

자연은혹은 자연법칙은스스로를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그렇기에 그 법칙이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다그렇기에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바뀌지 않고 소멸될 수 없는 것이고그렇기에 공중의 사과는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우리의 머릿속으로만 과거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찌보면회상도 일종의 시간여행이다내가 최근에 읽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시간여행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 또한 일종의 시간여행이라 말하며 아무런 기구 없이 공중에 놓인 원시인의 예시를 든다기구 없는 원시인이 오랫동안 중력을 거스를 수 없듯우리는 회상을 하더라도 오랫동안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자는 그것을 단순히 기술의 문제로 치부하며 기술의 발전이 시간여행 또한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허나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그는 틀렸다비행기를 타는 순간에조차 인간은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 아니듯자연은 시간의 균형을 어지럽힐 것이 뻔한 자에게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허락하지 않는다허나 그것을 거스르는 일이 종종 생긴다사람이 시간을 거스르고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아주 가끔씩 벌어진다.


그것은 자연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비롯된 기적이다시간을 거스른 이가 그 기회를 결코 과거의 일을 뒤바꾸는데 사용하지 않으리란 신뢰무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생각 없이단순히 그 경험을 누리기만 할 거라는 신뢰그리고 무엇보다도지금껏 자연의 질서를 단 한 번도 일그러뜨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인증.


그 모든 조건이 갖춰진 이들은 가끔씩 시간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다평생 동안 자연의 은총으로 열역학 법칙을 거슬러온 나에게 그런 행운이 주어졌던 것을 정말로 과분하게 생각한다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무언가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니다단순히 보고만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내가 젊었던 시절하루는 바다를 가르는 말 녹이 아토할란에서 아렌델로 나를 데려다주었다그날 나는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고아무런 욕심도 품지 않은 상태였다허나 아렌델에 내리는 순간나는 봄철에 벌써 눈이 수두룩하게 쌓인 아렌델을 발견했다천천히 땅에 발을 내딛은 나는 곳 이곳이 내가 아는 아렌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성의 지붕이 내가 만든 하늘색 덮개로 덮여있지가 않았다성의 모양은 내가 정확히 알던 그 아렌델 성이었지만내가 약간의 장식을 추가하기 전이라는 것은 곧 내가 다른 시간대의 아렌델에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나는 성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눈이 수북하게 쌓여서인지 혹은 자연의 조화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막게 하려던 것이었는지모든 사람들이 집 안에서 휴일을 즐길 뿐아무도 밖으로 나와있지 않았다덕분에 나는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황급히 성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어느 시간대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성 마당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시간대의 내가 정확히 어떤 상태일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나는 마당에서 한 붉은 머리의 소녀를 보았다홀로 자기 몸집만한 눈덩이를 굴리고 있는붉은 머리 소녀를 보았다.


소녀의 땋은 머리에는 흰색 줄이 한 가닥 나 있었고소녀는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즐겁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몸을 숨겼다이유는 모르지만정말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난 그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숨겼던 것이다.


나는 이 날을 기억했다내가 이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내가 이 날 안나를 직접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비록 내 방 창문에서난간을 얼려 버릴까봐 아무데도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며 지켜보았던 것이긴 하지만그래도 나는 그 날 안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나는 어린 시절의 내 자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놀고 있는 안나를 지켜보는 건쓴 진통제를 억지로 삼키는 것과 같았다몸은 조금 편하게 해주었지만혀는 너무나도 쓰라렸다하지만 내가 삼킬 수 밖에 없는 진통제를 삼키는 것을나 스스로가 어떻게 방해할 수 있을까?


나는 지켜보았다소녀가 눈사람을 다 만들고내가 미쳐 보지 못한 순간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렸다.


소녀가 눈사람에 말을 거는 순간까지 기다렸다.


안녕올라프?”


안나가 입을 열었다나는 왈칵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울음을 참아야만 했다나는 뒤돌아서서 달렸다소녀가 나를 발견한 것 같았지만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그리고 식료품점에 도착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옛날 동전 하나를 꺼냈다마치 하늘이 내린 계시처럼나는 그 순간까지 어린 시절의 주화 하나를 주머니에 꼭 넣고 다녔다나름대로는 부적으로 여겼던 것 같지만사실은 그 날 그 순간을 위한 본능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근 하나를 집어 들고 가게에 동전을 내려놓은 채다시 성을 향해 달렸다.


나는 소녀의 앞에 섰다.


누구세요?”


갑자기 어딘가를 헐레벌떡 뛰어갔다 돌아온 나를소녀는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았다나는 햇빛을 등진 채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눈사람 구경하러 온 사람이야잘 만들었구나.”


혹시 요정이에요성 밖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이곳 사람이 아닌 건 알 것 같아요다른 세계에서 오신 요정인가요?”


지나치게 새하얀 옷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나는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자연이 나를 믿고 이 시간대에 보내줬기 때문에그 신뢰에 보답해야 했다나는 당근을 꺼내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아니그냥 당근 주러 온 사람이야어디에 쓸지는 잘 생각해보렴.”


그 말을 마치고 나는 뒤돌아서 성문 밖으로 나섰다.


소녀를 말고는 그날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그렇게 점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나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와 당근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내가 떠나는 것을 보며 눈사람의 코에 당근을 쑤셔 박는 걸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때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차마 삼킬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내 동생에게 그렇게나 그 당근 하나를 쥐어주고 싶었다내 과거에 묻혀 있는 수도 없이 많은 후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의 일이 역사를 조금이라도 바꿔놓았을까?


아니면 그날 이후로도 모든 일은 그저 흘러가야하는 대로 흘러갔을 뿐일까?


아니면 혹은 그날 모든 일이 내가 상상한 꿈에 불과하진 않을까자연이 내게 선사한 환영에 불과하진 않을까?


내가 태양을 등지고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소녀는 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날 이후로 왠지 올라프의 코에 박혀있는 당근을 이전과는 똑같이 볼 수 없었고,


내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 나를 처음 바라보던 안나의 표정이 단순히 재회의 반가움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치워낼 수가 없었다.


언젠가죽기 전에는 내 동생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어린 시절혼자 눈사람을 만들 때나를 본 적이 있느냐고.


그리고 그 일이너에게도 지옥같았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느냐고



출처: 겨울왕국 갤러리 [원본보기]

추천 비추천

48

고정닉 34

0

댓글 영역

전체 리플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12491 [바갤] 애기 밥 먹이고 이제 주차장 내려갑니다... 양만장 갈거시에요.... [34] beric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3488 37
212490 [주갤] 주위리) 아란 쉐리 신 보틀 (The bodega) [22] ㅇㅇ(175.223) 04.04 1757 16
212488 [바갤] 홍쓰아제 떠나기 직전 네비보는 장면 [19] DeWAL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406 24
212487 [건갤]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 프롤로그 [17] .(124.51) 04.04 2157 40
212486 [과빵] 합정 크레이지파이 사과파이 먹엇다 [17] 개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818 17
212485 [토갤] 1/48 완성 토갤에도 올려봅니다 [15] ㅇㅇ(210.103) 04.04 1977 20
212484 [프갤] 스코치 떴느야아아아아?? [5] 슨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642 33
212483 [필갤] 기추ㅜㅜㅜㅜ [9] fill.in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812 12
212482 [필갤] 사진 올려봄 [8] 티셔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173 10
212481 [포갤] 스압) 곤율거니로 마스터볼 랭겜을 달려보자 51 [36] 마이너감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458 31
212480 [디갤] ¶ 벚꽃 시즌 / 20.04.04 [21] CAN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976 16
212479 [문갤] [포말] 포말충님의 이벤트 후기 !!! [15] 피자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773 11
212478 [디갤] 시네마스코프해봄 [9] 모멘텀(110.70) 04.04 1225 17
212477 [미갤] 20200404 멜론 일간 TOP 100.jpg(#임영웅 #영탁) [54] ㅇㅇ(39.7) 04.04 2022 99
212475 [디갤] 인도 여행 사진 및 후기 (델리 and 바라나시).jpg [30] ㅅㅍㅋ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425 15
212474 [트갤] 선녀같은 핫링크 [12] 초합금혼(116.33) 04.04 1581 10
212473 [여갤] 듴공앱공트 ~ 아이돌라디오 직캠,Red Sun사진,가현 [8] Dream_Ca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939 30
212472 [I갤] 200403 뮤뱅 출근 류진 4p by make me wonder [3] 아기부엉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974 22
212471 [미갤] 가즈쿨 완성~~~구레이트 와아아아 [3] ironhong(49.163) 04.04 954 15
212470 [I갤] 200403 뮤직뱅크 퇴근 류진 프리뷰 by hyper beam! [5] 있지?믿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152 18
212469 [연뮤] ㄱㅅㄱㅁㅇ) 데미안 승현배우 인터뷰 (작품 약스포) [13] ㅇㅇ(211.207) 04.04 767 16
212468 [과빵] 사과파이 만들었어요 [20] ㅇㅇ(221.141) 04.04 1995 24
212467 [주갤] 북한술)솔꽃술 리뷰 [57] 잔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2554 38
212466 [기음] 장미우유 먹구있엉~~(feat 머구타워) [79] 츄m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932 17
212465 [기음] 재택에 지친자의 먹방 ~.~* [42] 뚠사미(59.6) 04.04 3771 26
212464 [겨갤] 지방프붕이 뚜레주르 등신대구하기 후기 [74] 후로또타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807 87
212463 [트갤] 오늘 찾은 팬모드들 [12] Laibach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231 13
212462 [파갤] 고민하다 쓴 개인적인 스모데드 큐/노하우 [35] 전사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811 24
212461 [과빵] 빵린이 오란쥬 케이크 만들었다 [28] 르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442 28
212460 [토갤] 나무젓가락으로 짱구 칸탐로봇 조각하기 [28] 화물미는할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2440 65
212459 [모갤] 뽀야미.jpg [25] 문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9079 160
212458 [동기] 나무쳇 삼 [10] I치치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166 28
212457 [모갤] [스압]모붕이 하이랄 섬 만들어봤다 [84] 도요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4659 56
212456 [엠갤] [14:21] 아이즈원 #은비 인스타 업데이트 [81] SN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5807 171
212454 [민갤] 오늘 왜냐맨 이게 뭐냐;; [25] 최지병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3606 31
212453 [바갤] 씹덕의 마블 모두해~(02화) [50] 홍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2242 50
212452 [미갤] 갓깅바라기 영웅이 [60] ㅇㅇ(223.62) 04.04 3814 227
212451 [하갤] 금스타센스갑 + 추가 [10] ㅇㅇ(211.246) 04.04 1480 25
212450 [미갤] 선거공익광고 7인 짤 [169] ㅇㅇ(106.102) 04.04 7412 334
212449 [필갤] 오랜만에 칼-라 사진 [11] 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832 8
212448 [토갤] 토붕이 스케일 입문과정이다 [88] 멍청도식캡처장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4716 64
212447 [기음] 짬뽕 먹구있엉~ [34] 엔젤리코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3157 18
212445 [멍갤] 무개념 견주들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48] mai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2362 31
212444 [과빵] 크루와상 만들어봄 [13] 커넥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2517 18
212443 [카연] [짐승친구들 2기] 마지막 화 - 전역하는 날 [89] 짤태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7875 270
212442 [냥갤] 새식구와 30분째 대치중 [27] ㅇㅇ(175.223) 04.04 4577 110
212441 [과빵] 몰티져스 사왔다 절대먹지마 진심 ㅁㅊ십노맛 돈아까움. 진심. [54] rocket(114.201) 04.04 4694 80
212440 [포갤] Yves Tumor의 Heaven to a Tortured Mind 리뷰 [4] 핑크프로이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585 20
212439 [겨갤] (정보) 생쥐 구조대에서 프로즌2까지 디즈니 속편의 역사와 전략 [49] 정보갤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4 1494 76
212438 [여갤] 오늘자 버스터즈.jpg (feat. 마스크) [31] ㅇㅇ(112.185) 04.04 4334 56
갤러리 내부 검색
전체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개념글 []

/

    이슈줌NEW

    1/6

    뉴스NEW

    1/3

    힛(HIT)NEW

    그때 그 힛

    1/3

    초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