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검열의 기록들이 널부러진 무대와 낡은 브라운관 TV, J에게로 오웰이 작품을 집필한 40년대, 오웰이 상상한 미래 84년, 우리가 이미 지나온 84년 그리고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를 꿰뚫는 윤한솔의 감각.  빅브라더들의 등퇴장로를 아득하고 깊게 보여주는 공간 운용. 놀라운 건 윤한솔이 오웰의 작품을 거의 해체하지 않고 온전하게 올렸다는 것. 기대했던 전복이 없어 아쉽기도 하다만...

고르곤
환상과 실재, 과거와 현재를 담아내려 사실적인 틀을 유지하되 프레임만 강조시킨 무대. 적지 않은 장면 분할을 조명의 구획으로 깔끔하게 정돈하고, 배우들의 등퇴장로를 각각의 프레임에 부러 돌아가게 만들며 호흡을 여유있게 이어나가는 연출의 리듬이 유려해보일 때도 있다.다만 여전히 감정의 마찰과 폭발에 집중하는 임세륜의 과잉은 서브텍스트를 희석시킨다.

민중의 적 2014
서사적으로 풀어낸 입센. 대충 입혀놓은 듯한 의상, 노역을 젊은 배우들이 맡고 분장은 거칠어 마치 대학극을 본 듯한 인상도... 하지만 르포처럼 성실한 조사가 바탕이 된 각색과 그것을 담은 진정성이 돋보인다. 성도일(스토크만)의 연설 장면에서부터 각색이 삐그덕대고 휩쓸리는 민중이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지만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로하는 제스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이혈
배우들의 열연, 박장렬 연출의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몇몇 장면만들기도 뭐. 그런데 에너지는 폭력적 말초적 자극에서 맴돌고 위안부는 소재로만 활용된 듯 관습적인 장르의 틀에서 얄팍해진다.

유사유감
쓰는 사람들, 작가의식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삼국유사를 쓴 일연의 작가의식이 어떤 건지 잘 와닿지 않는다. 시대와 시대가 맞물리고 망자와 산자가 섞이고 배우는 관객과 섞였지만 코미디가 내용과 잘 조응한 건지는 의문. 신안진의 발군의 연기, 박해성이 짜놓은 코미디 장치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웃지못한 것은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