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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ㄱㄱ 이퀄 자첫 의식의 흐름 후기 (강ㅅㅍㅈㅇ)

ㅇㅇ(58.231) 2020.09.30 07:21:58
조회 813 추천 37 댓글 19

  


  ㅅㅌㅁㅇ 관극 끝나자마자 집 가서 자다가 새벽에 깨버려서 할 짓도 없는 김에 퇴고 없이 의식의 흐름으로 남기는 후기.


  어린 시절 재밌게 봤던 강철의 연금술사가 이렇게까지나 스포 였을 줄이야...(...)


  가능하면 생각을 비우고 자첫하는 편이라 연금술 소재 + 니콜라(스 플라멜) 여기까지는 별 생각 없었는데, 테오 '호엔하임'이라는 대사를 듣자마자 '???? 플라스크??? 호문쿨루스?? 이거 제목이 이퀄이지???'하는 생각이 나고 그 즉시 극에서 아주 강하게 튕겨나옴... 그냥 예상대로 흘러가는 걸 쭉쭉 구경하는 기분. 흑마술이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연금술로 육체 연성 + 마법으로 영혼 주입이라는 건 판타지에서 가아끔 나오는 설정이라서 예상까지는 못했지만 역시 익숙하더라고.


  다만 마지막에 두 사람이 서로 싸우고 죽이게 된다는 결말은 조금 흥미로웠음... 그러고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후로 (찐이든 짭이든) 테오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어.


  연금술은 그 이름 그대로 금을 빚어내는 기술인데, 그 정신은 황금의 물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수련, 정련을 더하여 완전한 것이 되는 것'에 있지. 여기서 중요한 건 '연(수련, 단련, 정련, 제련, 연마 등등...)'을 통한다는 건데, 따라서 연금술이 과거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인 이유도 '인간도 노력하면 신의 경지에 준하는 경지(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도는 아니니까)에 다다를 수 있다'는 철학이 그 기반에 있다는 것에 있어. 금은 물론이고 불로장생 또한 궁극의 단계에 이른 영혼이 얻는 부가 능력일 뿐인 거야.


  현대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근대 과학의 사상적 기원이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에서 온다고 보았는데, 간추리자면 연금술이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려는 실험과 귀납법의 학문이고 점성술이 '하늘의 운행이 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상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읽어내는 이론과 연역법의 학문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근대 과학은 수학(철저한 연역적 논리)적 모델로 이론을 세우고 실험(반복적인 데이터에서 물질의 일반적 성질을 얻어내는 귀납적 방법)으로 검증하게 되었다는 거지.


  여기서 테오의 다른 점이 있다고 볼 수 있어. 테오는 근대 과학에 기반한 의학이 지지부진하자, 근대 과학의 근원으로 돌아가 연금술과 점성술에서 연금술만을 남기고 점성술을 흑마술로 대체한 거야. 하필이면 '흑'마술이라는 점에서 테오들의 비극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라고나 할까?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 이것을 지상과 천상의 연합이라고 했을 때, 테오가 점성술을 대체함으로써 만들어낸 것은 지상과 지옥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지옥의 학문인 흑마술의 특징으로 극 중 제시되는 것은 검은 까마귀의 죽은 육체인데, 테오는 심지어 이 까마귀를 '먹으려고' 잡아왔다고 하지. 순간적인 변명이긴 하겠지만, 이것은 극에서 제시되는 흑마술의 중요한 두 가지 성질을 알려주는 것 같아. 바로 연금술과 마찬가지로 '지상의 것'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과, '탐식'과 같은 강력한 욕망을 원동력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거야.


  지상의 것을 다루는 연금술과 흑마술이 합쳐져서인지, 테오의 연금술은 이미 육체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아마도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어. 문제는, 그러한 학문의 결과로 만들어진 그리고 자신의 학문을 뼛속깊이 신뢰하게 된 테오가 결국 '친구를 살린다.'는 (비교적) 고결한 희망 대신 자신의 영생을 지속시키겠다는 저속한 욕망(니콜라를 살리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그 연구를 위해 마리에타를 희생시킨 시점에서 테오의 욕망은 추악한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거야.)에 집착하게 되기도 했다는 거지.


  그렇다면 테오가 그토록 타락하게 된 것은, 천상의 학문인 점성술을 지옥의 학문인 흑마술로 대체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일까? 그저 절박함에 눈이 멀어 흑마술에 빠져들었다고 하기에는, 테오도 처음에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없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테오는 흑마술을 상대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던 거잖아. 그리고 어떻게 해서 테오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음에도 결국, 신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연금술의 고결한 목적에서 멀어지는 타락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이 극의 제목이기도 한 '이퀄'인 것 같아.


  위에서 말했듯이, 이퀄은 수학 기호이고 수학은 연금술이 아닌 점성술에 더 가까운 것이야. 일단 역사적으로 수학이 천문학을 비롯한 물리학과 함께 발전해온 것도 있고, 무엇보다 점성술은 '천체의 운행 원리가 인간의 삶이 전개되는 원리와 같다'는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퀄은 더더욱 점성술의 이념이지. 또한 점성술의 기본이 매번 '동일'하게 반복되는 천체의 운행에 있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렇고. 이와 다르게, 점성술과 다르게 연금술은 변화의 학문이야. 금의 가치가 납의 가치보다 더 뛰어나다는, 가치 평가와 비교를 수반하는 연금술에는 등호보다 부등호가 오히려 연금술에 걸맞은 이념 아니겠어?


  그렇다면, 등호와 부등호, 서로 다른 이념에 기초한 연금술과 점성술은 과연 어떻게 연합을 맺게 된 걸까?


  equal, 등호의 실제 쓰임을 보면, '1+1=2'와 같이 사용되지. 이 때 좌변의 1+1과 우변의 2는 어떤 것이 먼저인지 정해져있지 않아. 따라서 우리는 당연스럽게 앞의 등식을 '2=1+1'이라고 바꿔 쓰고선 두 등식이 '같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런데, 정말 그런가? '1+1=2'와 '2=1+1'은, 물론 논리적으론 같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다른 것 같지 않아?


  위 상황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두 사람이 된다.'와 '두 사람은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두 문장을 제시해보고 싶어. 내가 보기에, 앞의 문장은 다른 개인으로 인식되던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사람'이라는 공통점으로 묶는 문장이라면, 뒤의 문장은 '사람'이라는 한 집단으로 묶여서 인식되던 두 사람을 각각의 개인으로 분리해내는 것 같아. 그리고 '1+1=2' 그리고 '2=1+1'의 두 등식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아.


  왜 이런 느낌의 차이가 생기는 걸까? 그야 우리가 글을 쓰고 읽을 때 앞에서 뒤로 시간적 경과를 두고 읽기 때문이지. 논리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어야 할 두 등식에 어떤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시간의 경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 의식 때문이야.


  바로 여기에서 생명체가 육체를 가진 것을 넘어서 정신, 의식을 가지고 살아있다는 것이 갖는 의미 하나를 알 수 있는데, 의식을 통해 세상 모든 것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등호 즉 같은 것을 차이나는 것, 구별되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


  이게 아주 중요한데, 여기에서 점성술과 연금술의 연합이 어떻게 가능한지 밝혀지기 때문이야. 등호에 기초해 우주를 파악하는 점성술과 부등호를 추구하는 연금술이 겹쳐질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을 인식하고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이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고, 또 다른 것을 같다고 분석(‘1+1=2’와 ‘2=1+1’이 같다고 분석하는 것처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야. 이러한 의식의 역능 안에서 연금술과 점성술은 연합할 수 있지.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부등호의 연금술과 등호의 점성술이 연합할 때에 드러나는 것이 바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능을 가진 ‘의식’, 즉 ‘살아있음’의 기본적 조건이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여기서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이 요청되었던 이유, 과학이 추구하는 혹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과학 정신’이 드러나는데, 바로 인간의 의식의 힘을 드러내고 또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한 차원 높은 곳을 향해 그리고 더 큰 우주를 향해 증진시키는 것이야.


  하지만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에서 발전한 근대 과학, 그 근대 과학의 하나인 의학은 테오의 바람대로 니콜라를 살리는 기술이 되지 못했지. 어째서 이럴 수밖에 없는지는, 테오가 어떻게 연금술과 흑마술의 연합이 성공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나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함께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이제 테오의 방법을 살펴볼까? 테오가 니콜라를 살리기 위해 개발한 기술은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이 아닌 연금술과 흑마술의 연합에서 온 것이야. 즉 변화의 학문, 지상의 것을 다루는 학문이자 부등호에 기초한 학문인 연금술과 짝을 이룰 점성술의 자리를 욕망의 학문이며 지상의 것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문인 흑마술로 채워 넣은 거지.


  흑마술이 어떻게 점성술의 등호를 대체할 수 있는 걸까? 내 생각엔, 흑마술은 점성술의 등호를 대체해주지 않아. 그 대신 흑마술은 연금술의 관심, 지상의 것들을 다루어 천상의 것으로 향하려는 관심을 다시 지상의 것으로 돌려놓음으로써 연금술이 스스로 등호를 갖추게 만드는 것 같아.


  이러한 징후는 극 중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테오가 계속해서 황금,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바로 그것이야. 연금술의 목표는 명백하게 영혼의 단련을 통해 더 높은 단계의 영혼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데에 있어.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은 다만 그러한 단련법을 개발하기 위해 생명체보다 단순한 물질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얻는 부수적인 소득에 불과하고, 심지어 육체의 불로장생 또한 완전한 영혼이 갖는 하나의 특성일 뿐 진정한 목표는 아니야. 연금술이 기독교와 상극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연금술의 목표는 인간이 신과 동등해지는 것이거든. 그런데, 테오는 극의 초반부터 황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이건 연금술을 명백하게 오해했거나, 혹은 세속적인 것에 대한 강한 욕망을 원동력으로 하는 흑마술의 영향일 수도 있어. 그리고 나는 테오의 황금에 대한 언급이 바로 후자의 이유 때문이라고 짐작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흑마술과 연합한 연금술은 자신의 목표를 영혼의 완성이 아닌 부의 증가 그리고 육체의 영생불사로 낮추어버린 거야. 이것은 수적으로 더 큰 가치를 좇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부등호인 것 같지만, 양적인 변화만 있을 뿐 질적인 변화를 배제하고 질적인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등호라고 할 수 있어. 인간의 영혼과 신 사이에는 단지 수량적인 차이, 즉 근력이 몇 배 더 세다든가 아이큐가 얼마나 더 높다든가 하는 차이로 설명할 수 없는 아예 다른 차원의 차이가 존재하지. 힘이 센 인간과 힘이 약한 인간, 둘 모두 더 높은 차원에 있는 신의 관점에선 그냥 똑같은 인간일 뿐이니까.


  이런 점에서, 흑마술은 변화의 학문인 연금술을 정체의 학문으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어. 정체되어 변화가 사라지면,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을 테고, 여기에서 ‘이퀄’이 나타나는 거지. 그러나 이것은 점성술과 연금술이 각자의 존재를 유지한 채 의식의 역능을 매개로 연합하는 것과는 다르게, 연금술에서 부등호의 자리를 일부 지워내고 거기에 등호를 불완전하게 기입하는 방식이며 따라서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완전하지 못한 부등호와 등호는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의식만을 산출할 수밖에 없는 거야.


  어째서 테오는 이렇듯 불완전한 연금술과 흑마술의 결합이 성공적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을까? 그건 아마도,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이 우여곡절 끝에 근대 과학으로 귀결되어 버렸기 때문일 거야.


  근대 과학은,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으로 인해 탄생했다고는 하지만 이 둘의 목표를 온전히 간직하지는 못하고 있어. 왜냐하면, 근대 국가로 접어들면서 천상과 지상의 연결을 목표로 발전 중이던 과학을, 국가가 자신의 통치 기술로 포섭했기 때문이야. 극 중에서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근대 과학인 의학의 경우, 정치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여러 권의 저작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듯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피지배자들의 신체를 재단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지. 그 외에도 수많은 과학 기술이 전쟁 기술과 연관하여 발전한 점이나, 현대 과학의 핵심인 통계 또한 영단어 Statistics를 보면 그 어원이 State로, 즉 ‘국가’의 ‘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학문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어.


  국가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극 중에서도 ‘치안경찰’로 대표되듯이, 국가는 개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 따라서 이 폭력성이 광기에 의해 날뛰지 않게 막기 위해서 자신의 통치 기술로 과학을 포섭한 거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이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으로 시작했을 때 간직했던 목표, 그 정신을 과학의 내용에서 삭제하고 오로지 과학의 기능적인 면만을 가져왔기 때문에 근대 과학은 과학의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리고 테오는 이렇듯 국가에 포섭된 근대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배운 사람이야. 과학의 정신이 삭제된 근대 과학을 숙달한 테오. 따라서 테오는 “‘1+1=2’와 ‘2=1+1’은 동일하지만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고, 그저 테오에게 ‘1+1=2’와 ‘2=1+1’은 2라는 숫자가 1이 몇 번 더해진 숫자인지 나타내는 동일한 공식일 뿐이겠지.


  결국 테오는 근대 과학에서 비롯된 자신의 의학이 왜 실패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 니콜라에게 삶을 선물하려 했던 테오에게 있어 근대 과학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연금술과 흑마술의 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선택지에 있을 수가 없었는데도 그 길을 선택한 테오는, 아무리 연금술과 흑마술을 고도로 수련하고 또 정신을 바짝 차렸더라도,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어쨌든 결국 테오는 과학의 정신이 바로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점성술을 배제해버렸고, 대신 자기 깜냥에 연금술과 궁합이 잘 맞을 것으로 생각되는 흑마술을 도입해버렸지. 궁합이 좋은 건 맞을 거야. 연금술과 흑마술 둘 다 지상의 것들을 다루는 데에서 출발하니까. 그러나 지상의 것을 통해 지상에서 영광을 이루려는 흑마술은 지상의 것을 정신의 힘으로 단련하여 천상의 것으로 바꾸어놓으려는 연금술의 진실한 목표를 은폐해버렸어. 그로 인해 변화의 학문인 연금술은 정체의 학문으로 변질되었고, 테오가 만들어낸 기술은 ‘1+1=2’와 ‘2=1+1’의 차이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즉 의식과 정신을 다룰 수 없는 반쪽짜리 기술이 되어버렸지.


  바로 이 때문에, 결국 테오는 인공 인간인 호문클루스를 만들었으되, 독립적이고 고유한 하나의 인간이 아닌 자기 자신의 중복적인 존재로, 그것도 부가적인 방법을 통해서 기억을 옮겨줘야만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어. 그리고 누가 진짜 자신인지 알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살아남는 자가 진짜인 걸로 하겠다는, 애초에 연구를 시작했을 때의 목표를 생각하면 별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버리기까지 했고. 극을 보다보면 이런 상황이 수없이 반복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야말로 정체의 학문을 숙달한 사람답다고나 할까.


  그러면, 테오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이건 테오가 보여주는 한 판의 웃지 못 할 난장판을 보며, 관객인 나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해.


  우선 여기까지 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고서 시작하자면, 흑마술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는 거야. 그러므로 근대 과학에서 한계를 느꼈을 때, 테오가 돌아가야 할 곳은 연금술 그리고 이 연금술의 올바른 짝인 점성술이었겠지. 그렇다면 여기에서 점성술은 무엇을 의미할까?


  연금술이 인간의 영혼을 신의 경지로 증진시키고자 하는 학문이었다면, 점성술은 천체의 운행 즉 신이 만든 천상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로부터 신이 만든 또 하나의 세계인 지상의 원리를 유추하여 인간의 영혼이 가진 성질과 인간 세상의 운영 원리를 파악하고 인간이 맞이할 운명을 알아내기 위한 학문이야.


  운명. 보통 운명이라고 하면 미래에 반드시 겪게 될 일들을 의미하지. 그러니까,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이 점성술이야. 이 때 우리는 운명의 결정론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데, 과연 인간의 운명이 하나로 정해져있느냐는 거야. 만약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점성술과 같은 예언은 사실상 무의미해.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인 즉 매순간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고, 따라서 규칙적으로 정해진 천체의 운행은 인간의 운명과 무관하다는 뜻이니까. 그러므로 점성술과 같은 예언의 경우 기본적으로 운명에 대해 결정론적인 입장을 취하지. 인간의 운명은 정해진 것으로 바꿀 수 없다고 말이야.


  물론 너무 절망적인 운명을 앞둔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몇 가지 예외 사항이나 변칙 조항을 만들어놓긴 하지만, 거기에는 심대한 노력, 사실상 연금술이 납을 금으로 만드는 수준의 기적이 필요하지. 그런데 이러면 또 하나 질문이 생겨. 운명이 정해져 있어서 바꿀 수 없다면, 안다고 해서 바꿀 수도 없는데 그걸 알아서 뭐 하려는 걸까?


  점성술은 무언가를 바꾸려는 기술이 아니야. 점성술의 역할은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알려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미래의 순간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의 수련을 쌓게 하는 것이지. 낙관적인 미래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 미래를 만끽할 수 있도록 힘차게 나아가도록 하고, 부정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하고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을 힘껏 지키기 위한 각오를 다지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정해진 운명을 예고하는 예언의 역할인 거야.


  이러한 점성술과 연금술이 연합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점성술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은 이른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하는, 불완전함이라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겸허한 수용이야. 그리고 연금술은 영혼을 단련하여 지상의 세계에서 천상의 세계를 향할 것을 권하고 있지.


  만약 점성술만이 있었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밖에 없을 거야. 하지만 연금술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운명을 순응하되 그것을 세계가 자신을 향해 내리는 단련, 성장의 계기로 삼아 성장할 수 있는 거야.


  테오는 왜 니콜라의 병을 고치려고, 살리려고 했을까? 단지 의학적인 견해에서 니콜라의 심장이 박동하고 폐활량이 지속되기를, 뇌신경이 활동하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니었을 거야. 오데뜨를 이야기하는 테오는, 동시에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어. 즉 테오가 니콜라의 병을 고치려던 최초의 이유는, 당연하게도, 바로 니콜라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이들이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이었지.


  아끼는 이들과 함께 하는 하루가 그만큼의 행복이라면, 혼자가 아닌 니콜라가 하루 더 생을 연장하도록 돕는 것은 분명 그의 행복을 위한 길이 될 거야. 그러나 사람이 영생불사할 수는 없어. 물론 연금술의 궁극에서는 그러한 능력이 부가적으로 따라올 수 있다고도 하지만, 만약 그것을 목표로 하는 순간 영혼의 각성은 요원한 일이 되겠지. 만약 행복을 위한 삶이 아닌 그저 살아있는 날짜를 하루 더 늘리기만을 위한다면, 그것은 점성술이 아닌 흑마술과 연합한 연금술과 다를 바 없는 일이 될 거야. 사람은 아프고 병들어서, 죽게 마련이지. 그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이야.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하루하루라고 해도, 그 하루가 정말로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 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이것이 꼭 정신적인 것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야. 건강한 신체는 분명 행복에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몸으로 하루를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행복을 향한 노력이 될 수 있지. 그 과정에서 질병을 떨치고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걸 바라지 않더라도 남은 날들을 더 많은 추억을 남기는 날들로 만들어나갈 수 있었을 거야. 오데뜨와의 추억, 첫키스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테오의 모습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단순한 생존 기간의 연장이 아닌 그 기간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에 더 크게 달려있다는 걸, 테오는 스스로 깨닫지 못했어.


  여기서 ‘기억’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해. 테오가 호문쿨루스에게 기억을 넘기자, 테오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되지. 따라서 기억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오는 셈이야. 이러한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이 극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살아있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내 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테오가 진실로 니콜라를 위한다면 했어야 할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해.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 의식의 시간 개념을 ‘순수 지속’으로 설명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기억이 단지 과거의 데이터가 아닌 정신 그 자체라고 주장했어. 베르그송에 의하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그가 경험한 세계의 이미지들, 감각하면서 반사적으로 반응한 운동들은 매순간 빠짐없이 기억되는데, 이러한 기억을 ‘순수 기억’이라고 해. 이 순수 기억이 인간이 살아가는 현재의 매순간 계속해서 회상을 통해 불러져오는 과정에서 의식이 형성되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인간 의식의 시간 개념인 ‘순수 지속’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


  시간은 계속 흘러가. 이건 물리적인 사실이지.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그 시간 속을 살아가면서 매순간 마주치는 현재를 하나의 점으로 파악하지 않아. 가령 어떤 물체가 눈앞을 휙 지나가서 사람이 놀라서 뒤로 물러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물체가 시야에 잡히는 순간 즉시 뒤로 물러나지 않아. 물체를 인식하는 데에 찰나의 시간이 필요하지. 즉 사람이 ‘지금’을 인식할 때 바라보는 시점은 항상 실제 현재보다 살짝 과거로 흘러간 시점이야. 그리고 만약 공이 사람의 근처로 날아와서 사람이 손을 뻗어 공을 잡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그 사람은 손을 뻗을 때, 그가 눈으로 공이 있다고 인식한 바로 그 지점에 손을 뻗지는 않을 거야. 그보다 살짝 미래 시점에 공이 어디 있으리라 기대하고 그 위치로 손을 뻗겠지. 즉 사람이 ‘지금’ 행동할 때 향하는 시점은 항상 실제 현재보다 살짝 미래에서 흘러올 시점이야. 이렇듯 사람의 시간 인식은 살짝 과거 시점을 바라보고 살짝 미래 시점을 향하는, 찰나의 짧은 길이긴 하지만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지속된 순간’으로 이루어지게 돼. 이 때 과거를 되잡는 인식을 파지(retention)이라고 하고 미래를 향한 인식을 예지(protention)이라고 하는데, 파지가 먼 과거까지 이루어지는 게 바로 회상이야. 예지가 먼 미래까지 이루어지면 기대라고 하고. 이렇게 파지와 예지로 이루어진, 점이 아닌 선 즉 지속 시간을 기초로 인간은 시간을 인식하고, 이러한 지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이 감각하는 시간을 물리적 시간과 구분해서 ‘순수 지속’이라고 해.


  이 순수 지속 안에 사는 인간은, 파지를 통해 파악한 기억을 정신 속에 침전시키고 지나간 과거의 사건을 기억으로부터 회상해 미래에 대한 예지를 만들며 현재를 살아가. 그리고 태어난 후부터 지속을 통해 침전된 모든 이미지들과 감각들에 대한 기억이 모두 순수 기억이 되는 거야. 그리고 이 순수 기억은 매순간 빠짐없이 현재로 불려나오는데, 왜냐하면 바로 직전 과거의 기억이 또 바로 그 직전 과거의 기억을 기억하는 식으로 모두 엮여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인간이 현재를 인식할 때의 찰나의 시간 지속은 매우 짧고 따라서 주어진 시간은 매우 제한적임에 반해, 순수 기억은 그 직전까지의 평생 동안 침전시키며 모아온 기억이기 때문에 양이 매우 방대해. 그래서 순수 기억은 그 모습 그대로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매우 압축해서 극도로 추상화시키지.


  가령 우리가 ‘사과’라는 과일을 본다고 하자. 이 때 우리의 순수 기억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사과의 이미지들, 그림 혹은 글로 묘사한 사과에 대한 정보들이 모두 들어있어. 마치 구글에 검색을 하면 이미지와 웹사이트들이 쭉 뜨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 양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순수 기억은 현재 시점으로 수축하면서 극히 추상화되어서 ‘빨갛고 둥근 과일’이라는 식으로 사과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지.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는 사과를 지각하게 되는 거야. 그리고 이 사과를 집어 든다고 했을 때, 우리의 몸은 그 동안 했던 ‘집어 드는 동작’들을 추상화하여 일종의 동작 매뉴얼을 만든 뒤 그 매뉴얼에 따라 몸을 움직일 거고. 만약 내가 사과를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면, 누가 내 앞에 사과를 들이밀어도 나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겠지. 즉 우리의 지각 능력, 행동 능력 등 의식의 작용들 모두가 기억에 의해 만들어지게 돼.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살면서 접한 모든 대상들과 주고받은 영향이 종합된 결과물인 거야. 그러므로 앙리 베르그송에 의하면, 기억은 나의 일부분이 아니라, 기억이 곧 나인 셈이지. 만약 두 사람의 의식이 서로 구분된다면 그것은 서로의 순수 기억이 다른 모습이기 때문인데, 가령 푸른 사과가 나는 지역에서 살다 온 사람은 ‘사과’라는 낱말을 보았을 때 나와는 떠올리는 심상이 전혀 다르겠지?


  그리고 이러한, 순수 지속과 순수 기억의 두 축이 현재라는 지점을 둘러싼 지속에서 압축되어 의식이 형성된다는 인식은 자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데, 바로 ‘변하지 않고 고정된 나’, 혹은 ‘본질적인 나’, 다시 말해 ‘진짜 나’라는 건 없다는 거야. 왜냐하면 순수 기억이 압축되어 나타난 지각 능력과 행동 능력으로 현재의 지속을 파악하고 반응한 순간, 그 파악(파지)와 반응(예지)의 기억이 곧바로 침전되어 순수기억에 추가될 거거든. 바로 앞에서 순수 기억이 다르면 다른 사람이라고 했잖아. 결국, 매순간을 지날 때마다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른 새로운 나가 되는 셈이야.


  그런데 이렇게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 같아. 그러면 내가 지금 분명히 갖고 있는 이 기분, ‘나는 나’라는 자기동일성의 감각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베르그송은 순수 기억과 순수 지속에 의한 의식 개념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 ‘나는 나’라는 자기동일성의 감각을 완전히 부정하는 대신, 다시 한 번 ‘지속’ 개념을 검토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


  현재 시점에 순수 기억이 압축되어 나타난 의식은, 분명 현재 이전 시점과 이후 시점에 나타나는 의식과는 순수 기억의 내용이 차이나기 때문에 다른 의식이야. 하지만 그러한 의식이 작용을 생각해보면, 의식은 현재 시점이라는 딱 분리된 한 지점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야. 현재 지점에서 아주 짧은 과거까지 파지를 통해 상황 인식에 따른 영향을 미치고, 또 현재 지점에서 아주 짧은 미래까지 예지를 통해 상황 판단에 따른 영향을 미치지. 즉, 아주 짧은 과거부터 아주 짧은 미래까지의 짧은 순간만큼은, 하나의 의식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소 단위의 ‘지속’ 안에서는 자기동일성, 즉 과거의 나에서 비롯된 것이 나이고 미래의 나는 나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장받는 셈이야.


  이렇게 보면, 시간을 잘게 쪼갠 매 지점마다 의식의 내용은 달라지지만, 매 지점은 그 전 지점 그리고 그 다음 지점과 연속되었음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의식은 매순간 변하더라도 그 변화하는 의식이 연속적인 변화의 궤도 위에서 연결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마치 진화생물학에서 보면 매 세대마다 유전자는 조금씩 변이되지만 어쨌거나 부모 자식 간의 계보를 연결함으로써 한 생물종이 느닷없이 창조된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진화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자유의지는 가능한 걸까? 베르그송에 의하면 절대적인 자유로서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할 수 있어. 마치 닭이 낳은 알에서 호랑이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나 의식이 매순간 새로이 탄생하는 과정과 의식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예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렇다고 해서 베르그송이 자유란 있을 수 없다는 견해에 찬성하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어.


  앞에서 순수 기억이 회상을 통해 현재 시점을 향해 불려오면서 압축됨으로써 의식이 형성된다고 했지? 그런데 여기서 의식이 압축되는 과정은, 추상화라고 정해진 과정을 따르긴 하지만, 기계적으로 정교하게 결정된 과정인 건 아니야. 아까부터 예를 든 ‘사과’를 떠올리는 과정을 다시 예로 들자면, 순수 기억이 압축될 때 사과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평균내서 정확하게 그 평균으로 수렴하는 것은 아니야. 애초에 그런 정교한 분석 작업 자체를 할 시간도 없거니와, 사과의 이미지와 연결된 또 다른 기억들 혹은 비슷한 이미지들도 마구 섞이기 때문에, 매순간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사과의 추상적 관념이 어떤 것일 거라고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어. 분명 모아놓고 보면 다 비슷비슷하지만, 분명히 조금씩 차이나는 여러 개의 추상적 관념들 중 어느 하나만이 나타나게 되어있지. 여기에 바로 의식의 ‘미결정성(혹은 불확정성)’이 있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제한적인 ‘자유의지’가 나타날 수 있는 거야. 이 자유의지는 주어진 현실과 과거의 기억에서 완전히 절대적으로 자유롭진 못하지만, 분명 나타나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도록 만드는 ‘차이’의 원리가 존재하고 있지. 바로 이 ‘차이 내는 능력’, 이것이 위에서 내가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을 가능하게 했던 의식의 역능, ‘같은 것을 같으면서도 차이 나게 만들 수 있는’ 역능인 거야.


  이 차이의 원리에 의해 나타나는 어떠한 원인에도 구애받지 않는 창조적 발생, 창발. 베르그송은 이것이 바로 생명(력)이며 삶이란 순수 기억을 수축시켜 창조적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했어. 그리고 이런 능력을 가진 생명체로서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창조적 생성의 약동을 적극적으로 발산함으로써,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연속적으로 자신을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이끌어나갈 수 있는 거야.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으로써 순수 기억과 추상화에 의한 의식 생성의 원리에 의해 틀지어지는 가능성의 폭을 받아들이면서도, 좁다면 좁지만 넓다면 또 넓은 그 폭 안에서 최대한 우리가 원하는 쪽을 향할 수 있도록.


  만약 테오가 호문쿨루스를 만들고 그들이 죽도록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정체를 받아들인 그들에게 밖으로 나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도록 놔두었다면, 테오와 마찬가지로 생명체인 테오의 호문쿨루스는 창발의 역능으로 자신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들었을 거야. 그러면 모두가 각자 자신의 새로운 삶 속에서 진짜일 테니 누가 진짜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었을테고, 누군가는 니콜라를 살릴 기술을 개발한다는 선택지까지 닿을 수도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테오는 정체의 학문으로 변질된 연금술과 흑마법의 연합에 붙들려 자신과 호문쿨루스의 기억이 동일하기만을 바랐고, 기억이 완전히 동일해졌을 때 그들은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같은 사람이 되었지.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할 정도로 정체에 집착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기억이 축적될 여유마저 없애버렸어.


  아니, 만약 테오가 자신의 호문쿨루스들에게 삶을 허락할 정도의 깨달음이 있었다면, 애초에 호문쿨루스를 만들지 않았겠지. 니콜라와 오데뜨와 함께 있으면서 니콜라가 남은 하루하루를 최대한 덜 아프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우면서 그의 남은 삶의 나날들이 최대한 행복하고 기쁜 시간들이 되도록 노력했을 거야. 그리고 니콜라를 보내주고 나서, 자신의 순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니콜라를, 그의 의식 속에서 되살아나는 니콜라를 만날 수 있었을 테고 테오 스스로의 창발의 역능을 빌어 ‘니콜라라면 이랬겠지’라며 그에게 기억 속에서나마 생명을 불어넣어줬을 수도 있을 테고. 테오의 기억이 모자라 니콜라를 충분히 생생하게 떠올리기 힘들다면, 오데뜨와 함께 기억을 나누면서 두 사람이 함께 그렇게 해낼 수도 있었겠지.


  뭐 어찌됐든 이 극의 결말 같지는 않은, 가까이서 보면 섬뜩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무가치한 반복에 불과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이런 결말만큼은 아닌, 다른 결말을 맞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실 테오만의 잘못은 아냐. 연금술과 점성술의 연합으로 탄생한 과학의 정신을 배제한 채 과학을 그저 국가 통치와 이윤 창출의 도구로 이용한 근대의 탄생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하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구조가 ‘테오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분명 테오에게 그 운명 안에서도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능력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과연 나를 둘러싼 사회/정치/경제 구조, 생물학적 요인과 같은 나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되어 있는지, 그리고 나는 그 운명의 흐릿한 테두리(좁고 단단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고무줄처럼 질기게 나를 옥죄고 있는) 안에서 나는 무의미한 정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이전과는 비슷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어떤 변화를 향해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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