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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ㄱㄱ 베르나르다 알바 (스포유)

ㅇㅇ(220.74) 2021.01.26 17:17:50
조회 1321 추천 92 댓글 23

초연때부터 보고 싶었던 극인데 그 때는 못봤고, 재연도 전회차 매진에 울고 있다가 수시산책으로 건져서 갔다...

보고 나오면서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했는데,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까워서 후기글을 써봐

참고로 내가 본 회차는 0124 낮공임. 후기가 좀 길 수 있어. 양해 바레.



먼저 이 극의 배경은 1930년대 초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야.

스페인 자체가 가톨릭이 중심이 된 국가고, 그렇기에 우리가 서양에 대해 가지는 자유분방한 환상과는 맞지 않는 보수적인 면모가 강한 곳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안달루시아 지방은 나도 가본적은 없지만 찾아보니 스페인 중에서도 좀 낙후된? 그런 지역인 모양이야.

그렇기에 이 극은 시대적, 장소적, 종교적으로 여성억압이 잘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설정을 품은 채 올라오는 셈이야.


여성들만 등장하고 극의 이야기를 여성이 이끌어간다는 홍보 때문에, 어쩌면 이 극에서 여성들이 승리하는 서사를 꿈꾼 사람도 있을지 몰라.

그런 서사를 바랐던 사람들에게 이 극은 당황스럽고 답답하고, 어쩌면 "이런 고루하고 낡은 구세대의 억압을 왜 지금 봐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봐.

하지만 나는 그러하기에 이 극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모든 여성의 이야기가 승리만을 얻을 수는 없어. 인류의 삶에서 여성억압은 유구한 전통(이라는 미명)으로 이어져 왔던 것이고,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러한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투쟁해야 해. 

여성이든, 소수자이든, 인간을 인간으로 존엄하지 않는 그 많은 억압에 대항하여.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어떠한 억압이 있었는지 직시하는 것은 투쟁의 원동력이 될 수 있어. 


투쟁이라고 하니 엄청 거창하고 머리에 빨간 띠라도 둘러야 할 것 같지만ㅋㅋ;

그런게 아니라,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는 것. 삶에서 부당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맞서겠다는 다짐과 실천. 그런게 투쟁 아닐까.

역사가 주는 의미는 그런 거에 있다고 생각해. 과거의 삶을 알아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는 지향점을 잡을 수 있다는 거지.

누군가 "여자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함? 적당히 참으면 안됨? 양보좀 하지?"한다면, 베르나르다 알바를 제시할 수 있는 거야.

참는다면, 순응한다면 어떻게 되는지.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모습엔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베르나르다 알바를 보면서, 이 이야기는 분명 1930년대 이야기지만 현재까지도 유효한 부분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

여전히 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많아.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자립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정말 최근의 일이고,

아직도 결혼을 현재 가정에서 도피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여성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

극중 페페와 약혼한 앙구스티아스의 모습은 지금도 너무나 찾아보기 쉬운 모습이지. 결혼이 예정된 상황에서 앙구스티아스는 노래해.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가 않다'고 말야.

앙구스티아스의 행복은 결혼을 통해서만 오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지. 

하지만 여전히, 결혼이라고 하는 수단만이 여성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의 행복"이야. 그냥 행복한 삶의 형태가 아닌, '여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는 그런 메시지 말이지.

이게 과연 지금에도 고리타분한 이야기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봐.

또한 페페와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아델라도 마찬가지야. 아델라는 늘 자유롭게 살 것이라며, 자신을 억압하는 베르나르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

하지만 그녀가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독립이 아닌, 페페라는 남자에 기댄 모습이야. 그 시대 배경에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그리고 당연히 그러한 자유엔 한계가 있어. 스스로를 위한 자유가 아닌, 

쾌락과 타의에 의탁한 자유였기 때문에 아델라는 페페가 죽었다고 생각하자 극단적 선택을 해.

이것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리라던 아델라의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최후지.

결국, 이것은 주체적 자유가 아닌,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에게 기대 자유를 얻으려 했던 여성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모습이야.

앙구스티아스도, 아델라도, 그리고 그 나머지 딸들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르나르다 알바도 그러한 한계가 모두 적용되어 있어.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지금에서도 명확하게 유효한 메시지야.


베르나르다는 가부장 권력의 상징적 존재지. 

그것도 현대 4인 가족이 아닌, 3대가 같이 살곤 했던 농촌 대가족에서 여실히 보이는 가부장 권력의 구체화.

베르나르다는 혼자 있는 순간에는 철없는 "내가 결혼을 하면"같은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하고, 남편 안토니오를 잃은 슬픔을 드러내기도 해.

하지만 타인(여기에는 당연히 가족들까지 포함돼)이 있는 순간에 그녀는 한 개인으로서의 베르나르다가 아니라 '가장'이라는 개념의 구체적 모습이 돼.

감정을 숨기고, 권위를 드러내지. 극중 그녀는 "나는 생각하지 않아. 그저 명령해."같은 대사를 했는데, 

이것은 베르나르다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가부장제에 먹힌 채, 가부장 권력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해.

그것은 분명 베르나르다의 가정을 지치기 위한 방법일 거야. 

그녀가 살아오며 유일하게 배운,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 '이것이 맞다'라는 것에 절대 들어맞는 방법.

하지만 베르나르다의 '가족'은 지키지 못하지.

그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결말 부분이야. 아델라는 자살했고, 그 모습을 보며 슬퍼하는 딸에게 '침묵'밖에 말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


그런 베르나르다의 모습을 보며, 최근 읽은 한 책의 내용이 생각났어. 

이란에서 명예살인을 당한 전직 여성 앵커의 가족을 찾아가 인터뷰한 부분이었는데, 거기 나온 피해 여성의 아버지와 오빠(오빠가 죽임)는 

가족의 명예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개소리를 지껄여 ㅋㅋㅋ

그런데 웃기면서도 슬펐던 것은, 그 오빠란 사람은 아직도 집안에 여동생의 차마 핏자국을 지우지 못하고 

그저 카페트로 덮어둔 채 여동생을 그리워하고 있었단 거야.

여동생을 위한 길이 살해였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그렇게밖에 배우지 못했고 그런 사회에서 살아간 거지. 

명예살인이라는게 주는 개같은 쌉소리를 떠나서 그런 거대한 이념에 사로잡힌 개인을 들여다본 것은 의외로 꽤 충격이었거든.

결국 잘못된 이념이, 잘못된 사회 및 권력 구조는 끊임없이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베르나르다 가정의 비극은 그래서 1930년대에 멈추지 않고 현재까지 유효한 거야.

그 낯설고 먼, 이국적인 멜로디와 이국적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재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이, 이 극이 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아델라의 죽음이 기승전결의 전 에 해당하는 극적인 순간인데, 그 순간 막을 내려버리는 것 역시 너무 현실적이었어.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은 갑갑한 마음. 하지만 삶은 결국 그런 식이고, 살아가는 매 순간이 우리에겐 극적이자 극적이지 않은 순간이겠지.

아델라의 죽음 이후 그 가정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우리가 완성된 결말의 형태로 알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에 내려진 베르나르다의 '침묵'을 알아.

그 침묵이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전해졌음을 우리는 알아.


그래서 이 극은 아직 늦지 않았고, 지금 올라올 수 있으며, 

앞으로도 '다시 이 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라는 말을 위해 올라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덧. 감상 중에 '여적여'라는 이야기들이 몇 몇 보였는데, 

타인의 감상에 뭐라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극 안에 있는 갈등을 너무 납작하게 보는게 아닐까 싶어.

애초에 여적여라는 단어 자체가, 여자와 여자 간에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의미 축소하고 왜곡하는 단어라고 생각해.

어떻게 여자와 여자 간에 항상 평화와 공존만이 있을 수 있겠어? 여자, 남자, 그런 걸 떠나서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갈등을 겪는데.

그런데 왜 여자와 여자 간에 갈등이 있으면 저런 단어를 쓰게 될까?

애초에 저 여적여 라는 단어는, "여성 간의 투쟁은 남성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질투인 것"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양한 관계성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해.

극 중 페페라는 한 남자에게 딸들이 다 마음을 두고 갈등의 도화선이 되지만, 그것이 '페페의 사랑을 얻기 위함'이란 형태는 아니라고 봐.

당시 그 가정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가정 외 남자의 힘으로 가정을 벗어나는 것 뿐이었지.

페페는 사랑하는 대상일 수도 있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쟁취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어. 딸들의 신경전은 결국 자유를 위한 것이었고.

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한계가 극 마지막에 터지는 것이라 생각했고.

물론 감상은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내가 타인의 감상에 고나리질을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야.

다만 여성 간에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 자체를 아예 부정해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긴 감상 읽어준 바발들 고맙고 나는 이만 자둘표를 주울 수 있을지 모른단 기대감으로 산책하러 간다... 내자리왜없...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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