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가 꺼지는 불상사(?)에도 1의 흐트러짐 없이 열연을 펼친 귭과 역시 동요되지 않고 그의 행동과 말 한마디에 집중하며 울고 웃은 관객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생기지 말았어야 할 참사였지만 몹시 경험하기 공연이었던 것 같다

며칠 공연을 쉬고 재개했던 날 귭 자첫을 했었는데 문장의 강세라던가 사극톤, 정렬되지 못한 연기가 다소 거슬렸다가, 호흡이 훨씬 길어지고, 정돈되어 배우가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던 것 같아

그리고 일리아드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도 헥토르도 아닌,

“이름났고, 이름나지 않은 자들”

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어

소년들, 오하이오에서 온 소년, 멤피스에서 온 콧소리 내는 소년, 한국에서 온 영어하는 소년들
나레이터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소년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자신을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전쟁에 영웅이 있을 수 있을까? 주인공이 있을 수 있을까?
  
이름 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리고 그의 가족들의 참혹했던 서사를 들려주고 있지만 결국 그 비극은
오하이오에서 온 소년의 것이기도, 멤피스에서 온 콧소리 내던 소년의것이기도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이름 모를 그 소년…
총구를 겨누며 공포와 두려움으로 릴리 마를렌을 노래했던 소년들의 그것이기도 할 테니까

귭 나레이터가 제3자의 시선으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전하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전하는 것도 그때문인 것 같았어

전쟁 영화 같은 걸 못보는 사람이 있니? 아카데미 수장작이니 뭐니 해도 진짜 전쟁영화를 못보는데 그 이유가 그 모든 비극과 참혹함에 이유가 없기 때문이야 (아니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는데..)

많은 영화와 뮤지컬에서 많은 죽음이 있잖아.. 심지어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도 죽음에는 이유가 있어 (웃자고 하는 이야기야)

근데 전쟁은.. 신과 권력을 가진자들을 위해 이유도 모른 채 스러져가는

“이름나지 못한 자들”만 있을 뿐이야

공연 보고 잘 안울었는데 자첫 때도 자둘 때도 너무 울게 되어서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그래도 좋은 극이고 근래 보기 드문 작품이니 다들 꼭 챙겨봐보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