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극장이 시설이 참 좋아. 편하고 안락한 의자. 그리고 무대도 공명이 참 좋아서 연극하는 극장 중 제일 좋은 듯(내 기준)

거기다 이번 출연진이 말야. 다시는 없을 듯한 캐스팅이야

주인공 바냐역의 이상직.

국립극단 한태숙 연출의 오이디푸스 (명동에서 했던거 있지? 청바지에 긴 코트 입고 장발하고 나왔던 오이디푸스)에서 타이틀롤을 했던 분인데 이번엔 극에 맞게 머리를 짧게 치고 희끗희끗 염색을 했더라.

오랜만에 보는데 억울하고 착해빠진 바냐역을 정말 더 불쌍하게 잘 하더라.

못생기고 일만하던 소냐역의 이지하.

자기가 못생겨서 슬프다고 말하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못생기기는. 그 분 연세에도 십대 소녀역이 그렇게 잘 어울리다니

무대위에서 눈물 줄줄 흘리는데 정말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막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계모와의 호흡도 참 좋았어.

아름답지만 불행한 여인 옐레나역의 정재은.

나는 체홉을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바냐아저씨를 보면서 옐레나가 불쌍한 여자라고는 한번도 생각 안해봤그든 (이지하씨의 옐레나도 본 적있음)

아름답고 남자들이 홀리고 도도하고 어떻게 보면 얹혀가는 인생이고....이렇게 생각했음

그런데 이번 바냐에서는 그녀가 참 불쌍한 여자라는 해석으로 보였음. 역시 연극은 희곡보다는 배우가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정말 중요해.

노교수역의 한명구.

예부터 지금까지 내가 일관되게 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야^^

처가의 돈으로 젊은 아내와 민폐만 끼치며 사는 넘, 그런데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더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야.

그 뻔뻔하고 노구의 아픈몸으로 인한 신경증을 정말 잘 표현했어. 한명구선생님한테 따로 연기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야말로 불필요한 일이지.

장모역의 백성희

사실, 백성희선생님이 얼마전 미수잔치를 하셨어. 미수가 뭐냐고? 환갑, 회갑처럼 나이를 말하는데 88세야.

살아있는 연극계의 역사셔.

그런데 지금 무대위의 모습을 보면서 살짝 삐끗삐끗하시고 깜빡깜빡하시는데 보는 내가 참 눈물이 나네.

아무래도 현역으로 이 작품이 거의 끝이 아닐까 싶어. 3월의 눈때만 하더라도 이러시지 않았거든. 하긴 그게 벌써 2~3년 전 같아.

유모역의 황정민.

사실 이런 대단한 배우가 이 작은 역을 한다는 거에 놀랐어.

근데 또 놀란게 이번 바냐에서는 또 그 유모마저도 커보이더라.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정말 극은 확 바뀌는 것같아.

작은 역이 사실이지만 거기에도 힘과 의미를 불어넣는 배우라 역시 다르거나 싶네.

찔레긴 역의 이정수

그동안 뮤지컬, 연극 등에서 재미있는 역할로 쭈욱 봐왔는데 이번에도 역시 극의 양념역을 톡톡이 해.

라이브로 연주하는 기타솜씨에 반할 지경이네.

장난감친구 덕후들, 꼭 명동 가보기를 추천함!!!

거기에 내가 잘 모르는 신인배우같은 분이 한분 더 있어. 하인역으로. 이름이 찾아보니 유시호라고 하는군.

이분도 몇년 후엔 내가 쓸게 많은 분이 되길.

내가 원래 연극을 사랑하고 체홉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 바냐는 이전에 보았던 바냐들보다 더 좋다.

백수광부의 이성열연출이 이런 배우들을 모으고 극을 만들었기 때문에 더 특별해 보인다.

오브제를 사용한 강렬한 것도 없고 다른 희극적 요소를 강조한 것도 아냐.

원작 그대로 아주아주 담백한 바냐아저씨임에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어.

원래 바냐아저씨 내용이 사실 좀 아침드라마스럽잖아.

역시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푸느냐인거지. 그것이 막장드라마가 되느냐 걸작이 되느냐 하는 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