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프는 하루키의 1Q84에서 따와 우디 앨런 스타일로 버무린 로맨스물.

하루키의 고양이 마을과 같은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서현. 매일 걸려오는 무언의 전화를 받으면서 불현듯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으로 극은 시작.

무대가 인상적인데 격자무늬의 심플한 ㄱ자 세트가 사선으로 놓여있었고 빨려들어갈 것 같은 인상, 혹은 여정을 떠날 거 같은 느낌을 주었어. 달리고 있는 기차의 한 칸 같기도 하였고.
서현이 본질 없이 미사여구만 가득한 방황의 터널을 지나 예전의 자신을 찾아나선 공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대와 작품이 잘 조응했다는 생각.

감각적인 조명과 영상이 역시나 인상적이야. 불투명 아크릴과 같은 세트벽을 통해 묘하게 번지는 빛들과 빗줄기의 묘사들.

고양이 행색을 한 전환수들이 무대를 전환할 때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재미는 있었는데 작품의 리듬에 그렇게 도움은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우디 앨런스럽다고 한 건 일단 재치있는 장광설의 대사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핑퐁하는 호흡이 정말 우디 앨런 스럽기 때문. 천장의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비를 배경으로 섹스한 설정도 우디 앨런스럽고.
동구 배역도 지나치게 우디 앨런스러워.

허진원 작가는 공허함을 인식하고 그걸 채워주고 달래줄 누군가를 욕망하는 솔직함이 미사여구 없는 본질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민새롬은 시각적인 연출에 있어서 감각적이지만 해석력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었어. 장면마다 세부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명확하게 짚으면서 큰 덩어리로 쌓아가지 못하는 연출의 세공력이 아쉬움.

김태현 배우는 조정치스러운 외모가 배역에 잘 맞고 캐릭터 구축도 좋은데 기본기가 좀 아쉬움.
신정원 배우는 상대적으로 안정감과 기본기가 더 돋보이지만 역할의 입체적인 구축이 잘되지 않은 거 같아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