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것 같지만 이런 생각도 있다는 건 얘기하고 싶어서. 

더데빌은 괴작맞아. 괴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욕이 될수도, 칭송이 될 수도 있겠지. 평가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이 난 이 괴작이 나온 게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음.

지금 한국뮤지컬이 양적으로는 엄청 팽창해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포맷에서 한 발 내밀었다 거뒀다를 반복하는 과정 같아. 같은 무대극이라도 연극에서는 새로운 포맷에 대한 실험이 계속되는데 반해 뮤지컬에선 그게 힘든 게. 아무래도 뮤지컬은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그런 면에서 더데빌은 적절히 타협하고 들어간 도전이 아닌가 싶어.

새로운 무대극의 문법을 시도하되, 이것만으로는 너무 위험성이 크니 일단 기본은 하는 배우들도 다소간의 안정성은 확보하고 가자. 얄밉지만 현실적인 타협이었다고 봐.

첫 공은 사실 멘붕이었지. 뭘 얘기하겠다는 거야? 이 소리가 저절로 나왔으니까. 근데 그 멘붕의 원인은 익숙함 때문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포맷은 바뀌었는데, 기존의 방식으로 계속 극을 이해하려고 하니까. 바퀴가 엇나갔던 거지.

일단 데빌은 플롯 자체가 분절돼 있고, 설명보다는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돼 있는데 난 나는 이야기를 통해 캐릭터를 이해하고,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는 흐름에 익숙하니.. 아까 어떤 형이 써준 후기(좋은 후기 고맙!!)에서 해석을 위한 해석이란 얘기가 나오던데. 맞아. 기존에 우리가 극을 이해하던 방식으로 이 작품을 보려면 그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근데 어쩌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호함은 모호함 그대로 두는 것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거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의상 힌트나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을 넣은 것도 머리가 아닌 보이는 것 들리는 것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

워낙 이지나 연출 스타일 자체가 빈칸을 두고, 그 빈칸은 관객 너희들이 채워. 못 채우면 관객 니네 탓(욕먹는 주 원인!!)이라고 하는 스타일이라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번에는 좀 더 파격적으로 무대의 빈칸을 던져서 이게 뭐야란 반응이 나오는 거고, 어쩌면 이지나 자체도 지금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을까 싶어.

그리고 지금으로선 이 극에 대한 반응들은 어느 한 쪽이 맞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고 생각해. 뭐든 변화에는 부침의 과정이 필요하고, 좋으면 살아남고 나쁘면 사장되겠지.

어쨌든 다양성이야말로 무대극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인데, 그걸 잊어버리고 있던 중에 데빌 같은 괴작이 나와서 반갑고, 배우가 아닌 작품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것도 어쨌든 즐겁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