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에, 하쿠레이 신사로 가렴."

마른 하늘의 축객령.
한가롭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카나코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유를 여쭈어봤지만, '가면 알 수 있을 거야.' 라는
형편좋은 말만 돌이왔다. 즉, 잔말말고 그냥 가.

그렇게, 신을 섬기는 무녀는 영문도 모른채
짐을 챙겨서 하쿠레이로.
신의 무녀가, 신의 진지한 명을 씹을 수는 없으니까.
어쩔 도리 없이 하쿠레이 무녀의 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네."

인생의 앞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던데,
특히 무녀의 인생은 더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 말 한 마디에, 많은 것이 좌지우지되니까.

하지만, 그것이 풍신사 무녀에 한정된 문화라는 걸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쿠레이 견습 무녀의 일과.
신사 뒤편에 마련된 수많은 묘지를 일일이 관리하기.

"고약한 취미다..."

경악하며 무덤가의 낙엽을 빗자루로 쓸어내린다.
풍신사에선 상상할 수 없는 정경.
이렇게나 많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하쿠레이 신사 뒤편에는 무수히 많은 묘지가 있었다.

수십 수백..아니면 천자리도 넘볼 것 같은 압도적인 갯수.
입구에 섰을 때 지평선 근방까지 주욱 이어진 광활함.
보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면을 가득 메운 비석은 흔한 괴담의 한 장면인 것 같이 섬뜩했다.

대체 왜 이런 '수집'같은 걸 하는 걸까.
빗자루로 무덤 하나하나 쓸어내릴 때마다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작할 때 뿐이고.
반나절이 넘어갈 때까지 무덤만 닦고 있으니ㅡ

"아.. 드릅게 많네 진짜."

팔이 저렸다.
빗자루를 쥔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하루 반나절을 넘게 했는데도 반도 못한 것에 혀를 내둘렀다.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었다.
압도적인 업무량이었다.

괴담이고 섬뜩함이고 나발이고 빨리 끝내고 쉬고싶다....
생각이 그렇게 변화하였다.
사람이 익숙해지는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한 것이다.
거기다가,

"사람 밥은 챙겨줘야지!"

점심이 넘어갔는데도 배식이 없는 괘씸함.
이건 심각한 문제다.
공짜로 부려먹으면서 밥은 제때 챙겨줘야지.
짐승도 아니고말이지.
빗자루를 집어던진다.
합법적인 파업사유 성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