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열심히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흰 털에서 땀방울이 튀겼지만,
걸어가기라도 한다면 윤다인 선생의 불빠따가
엉덩이를 화끈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생각에
승리는 뛰고 또 뛰었다.
신령목을 지나자, 작지만 알차게 지어진 조그만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승리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학교 정문의 시계를 흘끔 보았다.
8시 15분,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이 정도는 윤다인 선생님이라면 봐주실거라는 생각에
내심 안도하며, 교실로 들어섰다.
'초롱아! 안녀... 초롱아?'
평소에는 승리를 보자마자 달려와 괴롭히던 초롱이었지만.
오늘은 들려오는 대답도 없었다.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화끈한 윤다인 선생님도,
유쾌한 기동이도,
늘 착한 숙구도,
항상 예뻤던 초롱이도...
교실은 어두컴컴하고 적막에 잠겨 있었다.
"혹시 내가 너무 일찍 온건가?"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승리는 15분이나 지각했다.
항상 운동장에서 막국수를 비비던 필수 아저씨가 있나
창밖을 내다봤지만, 바람에 풀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올뿐, 필수 아저씨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승리는 자기만 빼놓고 평화 박사님을 만나러 가거나,
읍내를 구경 나갔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울적해졌다.
할것 없이 교실을 어슬렁거리다가, 친구들이 올때까지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저번에 초롱이가 줬던 편지를 꺼내보았다.
초롱이가 혼자 있을때 읽어보라던 편지,
생각만 해도 베실베실 웃음이 절로 나고
밤마다 뜯어볼까 갈등했지만, 초롱이가 혼자서
읽어보라고 신신당부 했기에 지금껏 읽지 않았던
편지였다.
승리는 지금이 편지를 뜯어보기에 딱 알맞은 때라고
생각하곤 편지를 뜯고 읽기 시작했다.
- 승리에게 -
안승리가 아니라 승리라니, 벌써부터 웃음이 비죽거렸다.
어느 정도 읽었을까, 학교의 정적을 깨고 뚜걱거리는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가벼우면서도 힘있는 윤다인 선생님도,
방정맞게 걸어다니는 기동이도,
차분히 걸어다니는 숙구도,
총총거리는 초롱이도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에봇리 대표 쫄보 승리는, 편지에만 집중하려 했으나
창가에 조금씩 눈이 갔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그냥 지나가라...
뚜걱거리는 발소리가 뚝 그쳤다.
승리는 내심 안도하며 창문을 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창백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승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 얼굴은 천천히 천천히 문을 열고는 검은 가운을
끌면서 천천히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초롱이의 의자를 가져와 승리와 얼굴을
맞대 앉았다. 앉으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승리는 무엇에 홀린 듯, 제압당하듯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말없이 그를 쳐다보던 낯선 괴물은,
딱 소리를 내더니 허공에서 서류철을 불러냈다.
승리는 저 괴물이 뒷산 승덕 아저씨와 닮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무섭지만 순한 승덕아저씨완 달리
분위기를 압도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 승리?'
'...예?'
괴물이 책상위에 있던 초롱이의 편지를 힐끔 바라보더니,
거칠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왜 너 혼자만 남아있는거지?'
'... 저는 평소처럼 일어나서 학교에 왔을 뿐인데...'
못마땅 하다는 듯이, 승리를 보면서 정신없는 친구군
하고 뇌까리더니 서류철에 무언가 갈겨 쓰고 있었다.
'이런 일이, 저번에도 있었니?'
'아... 아니오,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괴물은 기분좋은지, 손마디가 하얘지도록 깍지를 끼었다.
'좋아, 내가 틀린게 아니었군, 네가 특별했던 거야.'
'저... 우리 반 친구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지? 숨김없이 대답해'
괴물이 웃음기를 쫙 뺀채로 다그치듯이 말하자,
승리의 참았던 눈물이 그렁그렁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ㅡ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평소처럼 일어나서
등교했는데, 반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고요... 훌쩍...'
괴물은 하얀 손으로 승리의 어깨를 꽈악 잡고는,
'오는길은? 오는길에 누구 본사람 있니?'
생각해보니, 등교하면서 새준 아저씨나 다른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다. ' 아... 아니요, 없어요'
'좋아,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어. 하긴 이러는건 좀
이상하지. 승리, 마지막으로 물어보겠다. 왜 편지를
읽고 있었지? 보통 교실에 아무도 없다면, 찾으러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가거나 둘중하나 아니던가?'
'히끅... 좋아하던 사람이 준 편지라서요...'
괴물은 서류철에 뭘 갈겨쓰곤 기분좋게 사라지게 했다.
그러고는 승리에게 나가보라 했다.
승리는 천천히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문으로 걸어갔다.
아까 있었던 일이 전부 꿈만 같았다.
'...... 안승리.'
괴물이 거칠게 그를 불러세웠다.
승리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를 돌아봤다.
나도 이제 우리 마을 사람처럼 사라질까?
아무도 없던 반처럼, 나도 사라질까?
기동이, 숙구, 초롱이처럼, 나를 사라지게 하려나?
히끅거리면서 울던 승리를 보던 괴물이, 나직히 말했다.
'토요일엔 학교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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