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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자서전 오웬하트 (하)

ㅇㅇㅇ(124.146) 2023.04.13 23:30:23
조회 714 추천 8 댓글 1

그들은 날 병원에 데리고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는 안좋게 나왔다. 후에 필라델피아의 병원에서 몇가지의 테스트를 마쳤을때 의사는 나의 다친 척추조직을 보여주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이걸로 고생하고 있다. 어쨌든 난 병원을 나와서 12개들이 맥주를 샀다. 난 내머리에 어떤 안좋은 느낌이 있어서 뇌진탕의 한 증상정도로만 생각했다. 난 잠자리에서도 영 기분이 안좋았다. 



난 아마 병원에 계속 있어야 됐었나보다. 하지만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고 난 잠들었다. 

내 상황이 안좋음에도 난 다음날 일어나서 펜실베니아로 오웬을 향한 프로모를 찍으러 차를 

몰았다. 왜냐면 내가 STONE COLD STEVE AUSTIN이기 때문에. 내 상태는 더 안좋아졌고 난 

레슬링을 할수 없었다. 하지만 난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내가 섬머슬램 다음날 RAW에서 

오웬에게 한 말이다. 



"오웬하트! 나는 의사의 말을 안들을거다. 난 그들이 채워준 목보호대도 안할거다. 너가 내 목을 

망가뜨린건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 넌 날 충분히 커버할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얼간이야! 

요점은 오웬하트, 넌 패배자란거지. 내가 너한테 말해서가 아니라 넌 원래 패배자이기때문이지. 

오늘밤 난 WHOOP-ASS 캔을 따서 AUSTIN 3:16이 무언지 확실히 보여주겠어. 그게 요점이고 

STONE COLD가 그렇게 말했으니깐!!" 



며칠이 지나 난 의사의 진단서를 받았다. 모든 의사들은 내가 레슬링을 하지말아야 한다고 했다. 

난 그후 3~4개월을 떠나있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 경험한 부상이다. 나는 이 부상을 몸에 달고 다녔고, 이것은 나에게 링에 복귀하면 안된다고 경고하곤 했다. 그래서 난 나의 농장 주변을 드라이브 했다. 난 매일매일 맥주를 마시고 4륜차로 주변을 돌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난 상태가 약간 좋아진 것을 느꼈다. 나는 의사에게 링 복귀 능력이 조금 나아진거 같다고 말했다. 난 위험한 기술들을 피해야할거 같았다. 물론 파일드라이버도 마찬가지다. 날 한번더 망가뜨릴수 있기 때문에. 

긴 대화와 테스트 이후에 의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이 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 링에 

복귀해도 좋습니다." 그뒤로 난 돌아와서 태그 매치를 시작했다. 난 많은 태그 시합을 했다. 



천천히 시합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난 1년간 여길 떠나야 될정도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 툼스톤 파일드라이버 때문이다. 내가 풋볼과 레슬링에서 경험한 모든 부상과 물리적 트라우마로 내 등뼈의 자극이 심해졌다. 내가 정상적인 척추신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나쁘게 가지는 않았을텐데 나의 척추신경은 정상이 아니란말이다. 



정상인들의 척추신경은 같은 크기의 공간이 주변에 있지만 난 그것보다 훨씬 적었다. 난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 댈러스 카우보이의 마이클 어빈이 같은 증상으로 선수생활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난 잘 될거 같았다. 손의 근육은 감퇴되어가고 나의 다리는 경련을 

일으켰다. 근육들은 내 등에서 요동치곤 했다. 의학용어로 내 증상은 중앙 신경 압박이었다.하지만 

난 수술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의사를 찾아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내가 칼립켄 주니어의 수술을 담당했던 BALLMAN박사에게 말한거다. 난 그에게 내 수술을 

집도해 달라고 할 예정이었다. 난 신경외과 의사가 필요했지만 그는 정형외과 의사였다.


 대신 난 

인턴들 몇명이랑 클리블랜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45분정도 있었다. 그들은 매우 프로페셔널 했지만 난 매우 불편했다. 내가 거기에 갔다오고 나서 난 텍사스로 돌아왔다. 사슴사냥 기간이었는데 내 손은 여전히 무뎠다. 그게 내가 정말 몸이 안좋은것임을 감지한거다. 나는 내 친구이자 담당의사였던 BAROS 박사에게 말했다. "난 매일 클리블랜드로 갈수 없어. 내가 수술을 받기 전에 석달이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내 친구 YOUNGBLOOD박사를 소개시켜주지. 그는 최고야. 난 당신이 그를 맘에 들어할거라 생각해. 어서 가서 다른 방도를 찾아봐. 그는 여기 샌안토니오에 있어." 최고다! 난 세시간이 걸려서 두번째 방법인 그를 찾아갔다. 난 약속을 잡지는 않았지만 세시간동안 그는 나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나의 문제에 대해 박학다식했다. 나의 세번째 부인인 데브라가 나와 같이 있었다. 1~2주후 수술을 시작했다. 1999년에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파일드라이버를 맞은지 2년후.. 나는 내 상태가 안좋고 위험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받기를 바랬다. 난 그걸 원했다. 요점은 내가 링에 복귀할지 안할지 몰랐다는 거다. 어쨌든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다. 1년에 가까운 수술이었지만 그는 마침내 나에게 링에 복귀해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모든게 다 툼스톤 파일드라이버 때문이었다. 



오웬은 날 파일드라이버로 다치게 한뒤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난 그의 형인 브렛이 나에게 연락하라고 말한걸 들었지만 우린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오웬을 싫어했냐고? 아니다. 이건 단지 비즈니스일 따름이고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는거다. 내가 이후에 그와 다시 일하길 원했냐고? 아니다. 난 그와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옳든 그르든..내가 느낀거니깐. 



때때로 난 어떻게 이게 일어날수가 있었는지 의문이 갔다. 정통테크니션으로서의 오웬은 엉덩이가 

아닌 무릎으로 기술을 시도해야 했었다. 나의 목을 보호하려면.. 

나는 오웬이 유능한 레슬러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재미있게 했다. 내가 단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절대로 악의적으로 누구도 부상을 입히지 않았다는것이다. 오웬은 FUN그자체였다. 그래서 난 왜 그가 그런식으로 해야만 했는지 이해가 안갔다. 


그가 연락을 끊은 이후에 날 화나게 하는게 생겼다. WWE 상품판매부에서 OWEN 3:16과 "난 단지 

너의 목을 부러뜨렸을뿐"이라는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난 정말 그게 맘에 안들었다. 

난 오웬에게 어떤 악감정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백스테이지에서나 통로에서 마주치면 그저 "HI"로만 끝나고 더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난 JR이 생각인 오웬이 그가 파일드라이버를 잘못 사용한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수 없었다. 난 모른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난 당한 대가를 지금도 치루고 있다. 그게 레슬링 비지니스의 하나니깐. 

발레가 아니다. 일은 터져서 나에게 닥쳤는데. 하지만 난 앉아서 울기나 하지는 않는다. 

난 그것의 대가를 치루고 있고, 내 남은 인생 모두 그 대가를 치루는데 살것이다. 


불행하게도 오웬은 1999년 5월 23일날 사고로 사망했다. 아무도 그같은 죽음을 감당하지 못했다. 

아주 불행한 일이고 난 그의 가족에게 슬픔을 느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정말 안됐다.. 

오웬이 죽은건 정말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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