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러시아, 소금싸막. 그리고... 2

딥딥-검은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10 22:12:21
조회 485 추천 0 댓글 3
														

2021년 3월 5일.



바뀌겠다고 결심해놓고 다시 같은 생활..

그러다 통장 잔고를 확인한 것은 또 얼마쯤 뒤였다.

pc방에서 천원 이천원씩 야금야금 쓰긴 했지만 확인해보지는 않았었다.

무서웠다.

전역할쯤엔 420만원 가까이 모아왔다만 얼마나 남았을지..

남은 돈은 약 380.

그새 40만원이나 써버렸다.

이렇게 쓰려고, 이런 식으로 까먹으려고 모았던 돈이 아닌데..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사막. 그곳으로 향하겠다고 모았던 돈이다.

떠나야겠다.

이렇게 다 조금씩 날려먹을바엔 어떻게 되든 떠나야겠다.

거지꼴이던 노숙자꼴이던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거다.

그렇게 부모님에게 말하고 떠나기로 했다.



떠나고 싶다.

사실 꼭 볼리비아일 필요도 없다.

그냥 어디든 괜찮을거야.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든..

볼리비아라고 콕 집어 말했던 건,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곳이기 때문,

내 인생에 전혀 접점이 없을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이었기에 한번 가볼까? 했던거다.

직장을 잡고 자유로움을 잃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부대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아온 돈이다.

나름대로 이런 생각들을 설명하려고 하긴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꽤 무거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물러설수는 없다.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 자유일지도 모르니까.

뭐라고 덧붙힐 말이 없었다.

다녀올게요..

조금 반대하시긴 했지만, 결국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리고 그 주,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전역한 이후로 처음 식사도 대접했다.

이후로는 1편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큰소리는 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감은 없었다.

실제로 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 말이 이상하다.

그냥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모님한테 뭐라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계획했던 거니까 갈거라고 말은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불안해하면서도 내심 뭐 알아서 가면 가는거고,, 하면서 비행기표 예매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은 실제로 출발한 계기조차도 진짜 내 의지는 아니었다.


그 계기는 볼리비아로 가겠다고 한 뒤, 그 다음주 주말에 생겼다.

부모님이 주말간 여행을 갔는데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월요일에나 집에 도착할 것 같은데, 한국에 있는거냐고..

내 뻔뻔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물론 다그치려고 하신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 부끄러웠다.

그제서야 새벽에 비행기표를 찾기 시작했다

맙소사. 볼리비아 비행기값, 약 300만원.

사실상 300만원을 제하면 남는 경비는 80만원.

물가고 뭐고 80만원으로 외국을 간다는 건 여행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 아닌가.

사실 여기쯤에서라도 제대로 찾아봤다면 뭐, 그대로 출발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냥 충격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환율이나 물가는커녕 어렸을 때 봤던 살아남기 만화책이나 생각하고 있었다.

곤충세계 재밌었는데.. 남미에서 살아남기도 있었나?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갈거야 말거야?


결국은 크로아티아로 가기로 했다.

부대에서 월드컵을 보면서 주워들은 소문으로는 크로아티아가 알려지지 않은 명소라고 했었다.

물가도 괜찮다고 했으니 어디선가 들어본 유럽에서 1달 살기라도 해보자 싶었다.

내친김에 크로아티아행 비행기표를 찾아보려는 참이었다.

항공권 예매 홈페이지 중앙에 걸린 러시아행 티켓을 보기 전까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행이 20만원! 초특가!

평소였다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유난히 눈에 띄었다.

살펴보니 상당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굉장히, 정말 굉장히 저렴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가장 가까운 유럽" 이라는 말도 좋았다.

무엇보다 사실상 아무 계획도 없었으니 꼭 크로아티아여야 할 이유도 없었고.

이렇게 러시아로 가게 되었다.



돌아다니던 20일에 대해서는 덧붙히는 것 없이 그대로 두려 한다.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능력의 한계인 듯 싶다.

언제까지 계속 고쳐쓸수도 없는 노릇이고.

올리려다가 말았던 사진들이나 올려봐야지.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3794e02debdd70600597c418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새로운 결심으로 떠나는 거라고 반삭하고 갔음.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6b99b27bec8a70330597c462


처음 출발하기 전. 인쇄해갔던 러시아 지도와 횡단철도 노선도.

거기에 인천 ~ 블라디행 티켓.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6b9dee2cb88d77670597c41c


보리스가 주었던 전화번호와 3장의 횡단열차 티켓.

2번 취소해서 3장임.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6d9ce27dbc8f75660597c44e


처음으로 타 본 국내선 비행기.

세상에 외국도 아니고 같은 나라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니...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369fb07feb8923320597c48e


바이칼에서 쓴

나, 살아있다.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6acfb07cecd473340597c482


누군가하고 같이 왔다면 더 재미있었을까? 하면서 적었던 것.

눈 위에 예쁘게 쓰는것도 기술이 필요함.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369be02aebdc22640597c4d4


감자, 양파볶음과 전자렌지 돌린 치즈와 빵. 그리고 잼까지.

엄청 많았음.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3dcfe521bbdf24620597c426

언제나 항상 고마운, 제일 친한 친구.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699be52deed527620597c47a


긴급송금을 받은 뒤, 대사관에서 뽑아준 지도.

덕분에 숙소까지 헤메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왼쪽은 크렘린 궁 입장티켓.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3b9cb42ebc887e600597c49f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굉장히 기대했던 마음이 뚝 떨어졌던것만 뺀다면, 그대로였다.

....

며칠쯤 뒤였나

근처 뒷산으로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잠깐 형 원룸에서 지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엔 자취하면 뭐뭐 하겠다고 잔뜩 기대하면서 20살만을 기다렸었는데..

하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하나씩 해보겠다고 저녁마다 주변 공원을 뛰어다니곤 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선선하면 선선한대로 뛰어다니던 기분.

밤공기를 마시며 뛰던 그 기분을 생각했다.

자유로움. 상쾌함.

뛰어갔다.

목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쿵쿵쿵 뛰도록 뛰었다.

얼굴은 땀이 흘러 간질간질하고 눈에선 맥박이 느껴졌다.

뭔가를 느꼈다거나 바뀐 건 없었다. 다만 상쾌했을 뿐이다.

며칠을 더 뛰어다녔다.

운동이라고 하기에도 별 것 없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집에만 박혀있을때보다는 나았으니까, 또 땀이 마른 몸으로 씻는것도 괜찮았다.

처음엔 쓰러질것처럼 힘들었지만 뛰다보니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뜀걸음 특급을 맞겠다고 주말마다 연병장도 뛰어다녔는데 뭘..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3b95e028bd8a23360597c432


예쁜 하늘.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e4a055157c16728d66ceda3fd6ca7849c763e2dcf27cd84ae3c95e62fe8d477330597c4f4


뒷산이지만 바다가 보인다.

해가 지면서, 연푸른 하늘색과 주황색, 빨간색이 층으로 나뉘어 바뀌는 하늘은 정말 예쁘다.



얼마 뒤에는 열차에서 세웠던 계획을 해보기로 했다.

묘지 앞에서 밤새우기.

다소 뜬금없을수도 있지만, 언젠가 무소유를 읽고나서 생각했던 목표.

공포라는 것을 극복해보고 싶었다.

실존하지 않는, 다만 내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었다.

하여간 겁만 많아서..

날짜는 다소 미뤄졌다.

4월인지라 미세먼지로 내내 탁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 외에도 며칠간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다가 날을 잡았다.

비가 올것처럼 우중충하지만 선명한 날이었다.

혹시 모르니 튼튼하고 질긴 군복을 입었다.

거기에 야상과 우비, 삶은 감자까지 챙겨 출발.

극강의 공포를 극복해야 하기에 라이트는 챙기지 않았다.

아 노트도 챙기긴 했는데 비가 와서 제대로 쓰지는 못했음.

해 질때쯤 출발했지만 산에 도착한 것은 완전히 캄캄해진 뒤였다.

작은 뒷산이어서 가로등이나 여타 불빛은 없는 곳.

완전히 어두운 주변에 절로 긴장이 되었다.

한 발자국 내딛을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리, 돌 밟히는 소리, 근처의 바람소리가 신경쓰였다.

낮까지만 해도 작아서 언덕같다고 생각했었음에도 무서웠다.

계단을 밟았을 때 나던 삐걱임에 움츠러들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바람에 솨아아 흔들리는 수풀에 발이 얼어붙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우비를 입은, 칼을 든 살인마나 뛰쳐나오거나

호랑이같은 알 수 없는 산짐승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쓰며 발바닥에 신경을 집중했다.

맥박 뛰는 소리까지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가다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비 모자를 뒤집어쓰니 시야도 가려져 불안함만 더 커졌다.



하지만 도착하기에는 아직도 한참 남은 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돌아갔다가 다시 올까?

이제 겨우 중간정도인데 나머지를 어떻게 가냐..

그냥 여기까지 온 걸로 만족하자. 아니면 여기 앉아있다 가거나..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비까지 오는건 생각하지도 않았잖아.
다음에.. 다음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 저 앞에 보이는 나무덤불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비바람에 슥삭거리면서 흔들리는 나무들과 그 밑에 드리워진 새까만 어둠.

아... 제발... 저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무서움과는 달랐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불쾌하고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

물론 머리로는 알고있다. 이건 그냥 어두운 나무그늘일 뿐.

하지만 막상 움직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기는 싫었다.

몇 번을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그냥 걸어갔다.

두려움은 감정일 뿐이다. 저기는 나무밖에 없는 곳.

모든건 내 머리가 만들어낸 것.

생각을 멈추고 발만 움직였다.

어쨌든 가고 보자.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동서남북으로 절을 했다.

혹시라도 귀신이 정말 있다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ㅇㅇ.

다행히 길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터널처럼 달빛마저 가려놓은 상태여서 쉽지는 않았다만.

가다보니 큰 정자도 하나 나왔다.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그냥 여기서 쉬다가....

일단은 들어가보기로 했다.

긴장하다보니 더워져서 야상도 벗을 겸, 또 가져온 노트도 쓸 겸.

혹시 모르니 굵은 나뭇가지를 하나 챙겨서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살인자나 멧돼지는 없었다.

대신 모기가 있었다.

자꾸 앵앵거려서 휘갈기듯 일기만 적고 다시 나왔다.

나와서 걷다보니 목적지인 무덤에 도착했다.

일단 쉬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조용히 있다가 갈게요.

맞은편 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

배고프면 생각이 많아진다. 삶아온 감자 하나 꺼내먹었다.

그리고는 그냥 앉아있었다.

무섭기도 무서웠지만 가만히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심심하다고 해야 하나, 좀이 쑤셨다.

원래 계획은 눈을 감고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었지만 모기소리에 집중은 못했다.

사실은 무서웠다.

눈을 감는 순간 새까만 길 너머에서 무언가가 미친듯한 속도로 달려올 것 같았다.

나즈굴이나 멧돼지, 목 없는 오토바이 귀신같은..

머리로는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조그만 소리 하나에도 귀를 귀울이고 긴장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바람소리나 나뭇가지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다만..

이따금 실제 동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계속 이어지는 소리도 있었다.

최대한 동요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눈을 감았다.

저건 바람소리일 뿐이다.. 귀신은 사실 없다..

뭔가 있다고 해도 이런 뒷산에선 작은 동물이다..

앵앵.... 부스럭부스럭... 툭.. 빠각!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소리가 하나 있었다.

분명히 바람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부스럭거리면서 천천히, 이쪽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

동요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곰? 호랑이? 고라니? 다람쥐? 사람? 멧돼지??

물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심각했다.

진심으로 호랑이나 표범이 뛰쳐나와 나를 습격할것만 같았다.

최대한 숨을 고르려 노력하며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았다.

멧돼지. 이런 뒷산이라면 가장 위협적인 동물이라고 해도 멧돼지일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물론 알아서 가 준다면 좋겠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긴장감으로 팔이 저릿저릿해졌다.

금세라도 내 쪽으로 달려오면서 자연의 무서움을 보여줄 것 같았다.

안되겠다 일단은 살고 봐야지.

원래 계획은 밤을 새는 것이었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지금 내려가기로 했다.

핸드폰도 두고 와 여차하면 고립될수도 있다.

히말라야도 백두산도 아니지만 진지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음;

이따금씩 아래에서 올라오는 차와 사람들의 소리도 있었지만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떻게?



결정은 했지만 막상 움직이려니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길 너머에서 뭔가가 나타날것만 같았다.

거기다가 야생동물은 놀라면 달려들지도 몰라..

일단 집에서 가져온 감자를 꺼냈다.

원래는 날을 새고난 후, 무덤 앞에 놓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려고 했던건데..

어쩔 수 없다.

멧돼지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살고 봐야지.

감자를 최대한 멀리 던진 후,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계획은 이랬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동물 주변으로 떨어져 굴러간 내 감자.

동물은 처음엔 경계하며 예민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조금씩 다가가 정체불명의 운석을 확인해본다..

? 설마 이건 감자?

그것도 알감자가, 먹기좋게 삶아져있다니

이럴수가

안심한 동물은 경계를 풀고 감자를 먹고

난 그 사이에 도망친다..

새벽의 산길이라 뛰지도 못했겠지만, 거의 뛰듯이 걸었다.

여차하면 뒤쪽 비탈로 굴러야 하는걸까 고민했는데..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4시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젖은 군복과 전투화는 베란다에 널어놓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이없기도 하고 뭔 일을 한건가 웃겼다.



결국은 별 의미없는 짓이었지만,

무엇이라도 했다는 느낌은 꽤 만족스러웠다.

운동은 아니래도 몸을 움직이니까 확실하게 바뀌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음으로는 상하차.

상하차와 운동으로 돈도 벌고 상남자가 되고 싶었다.

며칠 뒤에 신청했다.

생각은 했어도 막상 남들과 일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면접을 본다는 말에 2번을 찾아갔다.

처음엔 가는 길에 체력을 기르겠다가 깝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로 갔는데, 아라뱃길의 바닷바람에 너덜너덜해져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 감각이 없었음.

두번째는 정석대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갔다.

상하차인데 면접을 보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정말 떨어진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붙었다.

면접보고 돌아오던 길, 흐릿하던 그날의 날씨가 생각나네.



일하던 때의 기억은 상당히 흐릿묘하다.

뭐랄까, 고등학생때의 점심시간과 군대에서의 진지공사를 합친 느낌이었다.

땀차고 기름진듯한 남고의 점심시간 + 조끼입고 정신없는 진지공사.

여하튼 상당히 열심히 하려고 했고 인정도 받았다.

인정이랄게 뭐 있겠냐마는 상차 쌓기에 재능이 있다는 말에 기분은 좋았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9시부터 6시까지 점심시간을 빼고 일을 했다.

일은 단조로웠다만 사람들은 재밌었다.

모두와 이야기를 해본건 아니지만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교정은 이미 끝났는데도 치과에 갈 돈이 없어서 3개월 넘게 교정기를 끼고있던 형,

휴일에 심심해서 소일거리삼아 출근한다던 아저씨,

노란색 모히칸에 항상 스피커폰으로 노래를 틀어주던 형.

늙은 30대인 줄 알았는데 젊은 40대였던게 놀라웠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조금 시간이 나면 자리를 바꿔가며 일하고

퇴근시간쯤 되어 물량이 뜸해지면 (물론 쏟아지던 때도 많았음.) 시덥잖은 얘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에서는 거의 잤다.

앉아있다보면 저절로 눈이 감겼다.



집에 도착하면 약 7시 ~ 7시 반 사이.

왕복 3km정도를 뛰고 근처에서 턱걸이를 연습하고 약 10시쯤 기절.

다음날도 비슷.

그 다음날도 비슷.

그 다다음날도 비슷..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다.

머리맡에서,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잡았던 핸드폰이 습관이 되어 점점 늦게 잠들기 시작했다.

연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늦게 잠들수록 회의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잘 하고 있는건가? 남는게 과연 뭐가 있는건가...

처음 목표였던 3달이 지나면 다음엔 뭘 해야하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갈수록 심해졌다.

그건 운동과 늦게 자는 피로와 맞물려 더 심해져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정말 눈을 뜨면 내가 죽겠다라는 느낌?

거기다가 뛰는 와중에도 쓰러질 정도로 피곤했고.

우울함과 불안함이 겹치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고 있는게 맞는건가?

점점 자신도 없어졌다.

사고가 터진건 약 2달쯤 될 무렵이었다.



위 사고와는 관계없지만,

가라앉는 분위기도 바꿀 겸 오픈채팅 얘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시작은 인터넷에 떠돌던 금욕 수기였다가 유투버들에 자극받아서 금욕방을 찾아 들어갔었다.

사실은 새벽에 잠들지 못해서 돌아다녔을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f4d0551a26ac5e472968584c448a04446700c3be49d011cc99f1d3c9436f9cc6f0c1d6934


참전했다가 강퇴도 당하고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f4d0551a26ac5e472968584c448a04446700c3be49d011cc9994d35cf31f39e3f0c1d6958


큰 목표에 주저앉는 사나이들도 마주했다.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f4d0551a26ac5e472968584c448a04446700c3be49d011cc9991a67c360f09d3e0c1d6909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f4d0551a26ac5e472968584c448a04446700c3be49d011cc99a1d669032f09f6f0c1d6917

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f4d0551a26ac5e472968584c448a04446700c3be49d011cc9cd18679236a4993f0c1d695eviewimage.php?id=2bb2c223ecd536&no=24b0d769e1d32ca73fec80fa11d028319511fc2d4825bdd78ebab3202f4d0551a26ac5e472968584c448a04446700c3be49d011cc9cf4831c363a0ce3a0c1d690f


가끔 시답잖은 뻘글로 슬픔을 달래기도 했음.

어이없는 건, 저래놓고 또 막상 자려고만 하면 잘 안되었다.

아 이제 몇시간밖에 못 자네... 생각하다보면 한심함과 후회에 오던 잠도 달아나곤 했음.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온다면, 덴마의 지로나 럭키짱의 강건마를 말해야 한다.

근성과 노력으로 강해진 (강건마는 잘 모르겠다) 주인공.

당시의 내 롤모델들이었다.

만화에서 나오는 사람을 롤모델로 삼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랬다.

강해지고 싶었다.

최소한, 몸은 약하더라도 정신만큼은 누구보다 더 끈질겨지고 싶었다.

한두번으로 금세 포기하고, 언제까지고 어제를 곱씹으며 주저앉는 건 지긋지긋했다.

더이상은 어제처럼 살고싶지 않았다. 빌빌거리고 다니지는 않을거다.

또각.

당시에 정확히 무슨 소리가 났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긴장이 풀리면서 기절할 것처럼 주저앉았다는 것 뿐이다.

쌓여가던 피로에 하루하루가 버거워질 즈음, 유난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

발목이 꺾였다.



그 때는 점심시간. 조를 바꿔 쉬엄쉬엄 진행하던 중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물량이 확 줄어든다.

조를 나누어 교대로 식사를 하러 가기에, 인원도 빠지고 물량도 줄어드는 셈이다.

급한 상자부터 쌓고 여기저기 떨어진 상자들을 주우러 가는 길.

발을 헛디뎌 접질렀다.

순간 주저앉을 것처럼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레일에 기대 몇 걸음 걷긴 했지만 어지러움에 바닥에 앉았다.

짧은 순간에 여러가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느낄 수 있었다. ㅈ됬다.

한편으로는 텅 빈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갑 절대 안 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5/20 - -
공지 여행-기타 갤러리 이용 안내 [23] 운영자 07.01.18 11209 0
28508 영국음식을 먹은 한국 할머니의 근황 여갤러(39.120) 05.10 31 0
28506 여기 당일치기 여행일정많음 여갤러(180.230) 04.30 63 0
28485 발리 누사페니다 프라이빗투어+스냅촬영 [1] 여갤러(43.224) 02.21 173 0
28483 24년2월19일 발리날씨 환율 세계로여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9 183 0
28482 모르면 손해보는 발리여행^^ 세계로여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9 203 0
28474 여자들이 뽑은 최고의 여행지 순위 여갤러(116.121) 23.12.24 174 0
28472 나눔참여) 올해 10월달에 미국다녀온거 RevKIM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04 87 0
28456 무한의 다리 1358(58.126) 23.09.15 105 1
28455 썸 무인호텔(47,000원) - 전라남도 목포시 1358(58.126) 23.09.09 186 1
28454 불가사리 곰팅이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28 148 1
28453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1357(58.126) 23.08.27 118 1
28451 강릉통일공원 1346(58.126) 23.08.14 122 1
28450 나인 커피 1344(58.126) 23.08.11 112 1
28449 렌트할 때 써라 [1] ㅇㅇ(58.127) 23.08.09 381 2
28448 환타지컵 박물관 [1] 1343(58.126) 23.08.08 131 1
28447 심도직물 터 1342(58.126) 23.08.05 116 1
28446 [겜ㅊㅊ] 비행기 모드 가능, 시간 순삭 무료 모바일게임 5선 게임메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31 144 0
28445 조양방직 2 1338(58.126) 23.07.25 134 1
28443 싱가포르 ㅇㅇ(223.38) 23.07.20 175 0
28441 완사천 1333(180.65) 23.07.07 120 1
28440 아를(ARLES) 1332(180.65) 23.07.05 122 1
28433 25-28 보라카이 태풍오네 여행자보험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5.24 161 0
28432 두리랜드(대표이사 탤런트 임채무) 1309(180.65) 23.05.21 169 1
28431 나라별 여행하기 피해야 할 시기 인생게임~(183.102) 23.05.19 318 0
28430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1306(180.65) 23.05.14 133 1
28428 오랑주리(Orangerie) -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촬영지, 1300(180.65) 23.04.30 186 1
28426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1299(180.65) 23.04.29 127 1
28424 젠틀멘 호텔(30,000원) - 경기도 양주시 1293(180.65) 23.04.22 139 1
28422 여행지 추천 좀 ㅇㅇ(182.216) 23.04.11 135 0
28420 디퍼런트 데이즈(DIFFERENT DAYS) 1292(180.65) 23.04.08 128 1
28419 CCR 1281(180.65) 23.03.26 128 1
28418 November 29 1277(180.65) 23.03.19 124 1
28416 올리브 그린(OLIVE GREEN) 1274(211.52) 23.03.02 145 1
28415 Carefor coffee 1266(211.52) 23.02.17 148 1
28412 남산 562(NAMSAN 562) 1260(211.52) 23.02.09 146 1
28409 북촌(CAFE BUKCHON) 1255(211.52) 23.01.31 155 1
28404 영국집 1246(211.52) 23.01.05 140 1
28403 아난티 힐튼 부산(Ananti Hilton BUSAN) 1239(211.52) 22.12.28 177 1
28400 오우가 1234(211.52) 22.12.06 150 1
28399 약천사 1232(211.52) 22.12.02 172 1
28398 청라호수공원(드라마 '도깨비' 김고은, 공유 촬영 장소) 1229(211.52) 22.11.30 199 1
28397 구리타워 곤충생태관 1223(211.52) 22.11.27 153 1
28395 구리타워 1221(211.52) 22.11.24 153 1
28393 용주서원 1219(211.52) 22.11.19 143 1
28392 증산공원 1218(211.52) 22.11.18 153 1
2839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수연 변호사, 털보 사장 소개팅 촬영 장소 1216(14.58) 22.11.10 177 1
28390 GENTLE MONSTER NUDAKE(젠틀몬스터 누데이크) 1214(14.58) 22.11.08 154 1
28388 형들이라면 큐슈량 홋카이도 중 어디감? ㅇㅇ(223.39) 22.11.04 1139 0
28387 용산 호캉스 각? ㅇㅇ(223.39) 22.11.02 1115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