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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금싸막. 그리고... 끝

딥딥-검은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28 23:47:09
조회 376 추천 1 댓글 1

2021년 4월 26일.


21년.

나이와 함께 부담감도 더해진, 반갑지만은 않은 새로운 해.

내가 했던 말인가 남이 했던 말인가 긴가민가하지만

언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20살까지는 숫자를 보고 살아가지만 이후로는 숫자만 보고 살아간다고.

시덥잖은 말로 20살을 그려보던 때가 그리웠다.

무엇을 하려해도 스멀스멀 부담감과 회의감이 올라왔다.

특히나 러시아, 소금싸막.

이것만큼은 잘 써야한다. 내 20대를 녹여내기로 한 글이니까...

그냥 걷기처럼.



그냥 걷기.

나에 대해서, 그냥 걷기에 대해서 한번쯤은 꼭 쓰려고 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미뤄왔었는데 지금 쓰는게 좋겠다.

제일 먼저 난 ㅇㅇ처럼 되고 싶었다.

부산을 다녀온 후, 입대하기 전이었다.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던 때로 기억한다.

친형이 알려줘서 보게 되었다.

처음 봤던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애초에 부산까지 무전여행으로 가겠다던 생각 자체가,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있던 인터넷 여행기에서부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언제 처음 봤다 하는게 중요한 건 아니다.

봤다고 쳐도 20살 당시엔 전혀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한 편 한 편 읽어갈 때마다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빨려가듯 삼켜졌다.

수수하고 단순한 문장 하나에서 진심을 느꼈다.

별 것 아닌 것 하나에도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멋있었다.

본인은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행복하다는 것을 읽고있는 내가 느끼게 해 주는것에 표현 못 할 떨림을 느꼈다.

언젠가 나도 이런 글을 쓰고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하나의 갈증처럼 또 후회처럼 짙어졌다.

군대에서 그리고 러시아에서와 한국에서,

내가 내 모습을 잃어갈 때 그리고 그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할때마다 떠올렸다.

나도 언젠가 ㅇㅇ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쓸데없는 말만 덥수룩하게 붙힌 문장

열정이나 희망없이 목숨만 붙혀 살아가는 삶

바뀌고싶지만 문을 열고 나가는것조차 무섭게만 느껴지던 하루

후회와 걱정에 찌들어가는 생각

하나하나가 닿을 수 없는 하늘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면 그냥 걷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꼭 언젠가는 그런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이렇게 병신같이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냥 걷기같은 글을 쓰고 말거야.



묘한 우연으로, 지금의 나는 양화교를 넘어 양화대교를 지나 출근한다.

광명동굴을 지나 첫 히치하이킹 이후로 내렸던 오류동.

거기서 무작정 양화대교로 가겠다고 걷던 그 기억들.

처음에는 그 생각들에 새록새록 여운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따금은 견디기 힘든 자괴감이 되어 마음을 짓눌렀다.

당시의 희망이 너무나도 거대하게 짓눌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던 게 글쓰기, 이 길기만 한 줄글이었다.

미뤄두기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 쓸거다.

지금은 이렇게 병신처럼 살지만 그냥 걷기같은 글을 쓰고 말거다.

그랬었다.

실제로 몇 달간 때려치고도 다시 쓴 것도,

막힐때마다 다시 쓸 수 있던 것도 그냥 걷기 덕분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큰 부담이기도 했다.

그처럼 잘 쓴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그냥 걷기였다면? 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꾸만 망설여지게 만들었다.



1월부터 4월까지.

푸념인지 일지인지 쓰면서도 헷갈린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쓴 말만 계속 되풀이하는 것 같고 그렇다.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서 고쳐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써야겠다.

이따금씩은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멋진 말들을 어줍잖게 되새기면서 말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불규칙하다.

어떤 때는 이렇고 또 어떤 때는 저렇다.

분명히 그때는 단정지어 대답할 수 있던 것이 이제사 맞는건가 싶기도 하고

더 나은거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한심하게만 보이기도 한다.

어떤게 맞는거고 어떤게 나은건가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없다.

영원한거라 믿었던 것들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곧 무너질거라 생각했던 것이 또 의외로 단단히 버티기도 한다.



전역하기 전까지의 내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거지? 였다.

먹고사는 문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반지하든 원룸이든간에 내가 좋은거라면 상관없었다.

더 나은 하루를 맞이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

내가 살고싶은대로 사는 것만이 고민의 전부였다.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굳이 이런저런 척을 하지도 않았고,

이유같은것도 없이 좋아한다는 것 만으로도 달려들곤 했다.

철이 없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봄이 저물고 초여름이 시작되면 애벌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무나 담벼락에서 늘어진, 투명한 줄 하나에 매달려 흔들리며 어디론가 향한다.

어디론가 향한다.

가끔은 그런 모습을 보고 나 역시도 비슷한게 아닐까 떠올려보기도 했다.

붕 떠서 구역질이 나게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난 향하는 곳이 없었다.

꽉 닫혀 틈 하나 보이지 않는 껍질에 갇힌 것처럼, 어떤 것도 없이 그냥 흔들릴 뿐.

그리고 그마저도 언젠가는 익숙해져간다.

지끈거리고 구토가 나오던 것마저도 안정감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이해할수도 없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벗어나는 것도 뛰어드는 것도 무섭기에 필사적으로 남에게 나를 이해시키려 하는 기괴한 꼴.

어딘가 어그러졌다는 느낌마저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지워낼 수 없는 마음을 밀어두려 항상 시끄럽게 귓속에 뭔가를 박아둬야 했다.

그러던 새 초조함과 열등감은 어느샌가 내 성격이 되어있었다.



삶이란 뭘까.

중학교때 바라보던 군복의 모습과

고등학교때 바라보던 대학교의 모습과

졸업하고 바라본 부모님의 모습.

항상 누군가를 뒤따라가던 것만 같던 내 삶은 이제 곧 20대의 전환점을 맞을테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나이가 될 테지.

나는 잘 살아온걸까. 잘 살고 있는걸까.

부끄럽지만 엉망진창도 이렇게 심할 수는 없을테다.

22살이었던, 그냥 걷기 속 ㅇㅇ의 나이를 넘어 24가 될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또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글 하나 쓰겠다면서 2년을 질질 끌어오고 그나마도 이렇게 난잡하게나 써 버리고..

모르겠다.

내 글은 그냥 걷기에게 많은 것을 빚져있다.

그냥 걷기.

내가 어떻게든 따라잡고 싶었던,

또 아득히 멀게만 느껴져 결코 닿지 못할 것 같던 글.

언제고 몇 번이고 돌려보고싶은 글.

하지만 결국 발끝만큼도 쫒아가지 못했다.

한심하다.



마지막 편은 이렇게 쓰려던 게 아니었다.

이렇게 끝내야지 하면서 써놓았던 것들도 여럿인데 이렇게 우중충하게 마무리짓다니

내가 하고싶었던 말. 가장 처음 써놓고싶었던 것.

언젠가 다시 돌아볼지는 모르겠지만, 잊기 전 기록해두고 싶었던 내 20대.

막상 써놓고나니 우울하기 그지없다.

처음. 처음 힛갤에 올라간 댓글을 읽을때만 해도,

내 힘으로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겠다고 할 때만 해도 좋았던 것이 있었다.

버리고 싶어하지도 않았는데 이젠 다 어디로 가버렸나.

엉터리.

모든 게 다 엉터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수는 없다.

아무리 더듬거리며 늘어놨던 글이라고 해도 이렇게 끝내지는 않겠다.

나를 믿어줬던 분들을,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서.



이따금씩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말들.

내 미래에 관한, 연봉에 관한, 방향에 관한 말.

꼭 해낼거라고 이를 악물지는 않았다만 생각한 것은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정리하면서,

다시는 꺼내보지 않을거라던 일기들을 뒤적거리면서 생각했다.

빙 둘러 돌아가고 스스로 발등을 찍어가면서도 조금씩은 달라지는 게 있었다.

항상 좋지만은 않았더라도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당장 지금만해도 인생이 끝난거라고 좌절하던 예전과는 다르지 않은가.

어쨌거나 난 죽지 않았다.

아직까지 살아있고 또 숨 쉬고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매일은 계속해서 이어져간다.

한번에 세상 모든 것들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무언가는 또 바뀌어나갈 것이다.

비루하고 한심했던 일들이었음에도 이렇게 마무리는 짓지 않았나.

눈 위에서의 발자국은, 아무리 헤메더라도 결국은 이어져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는 시간과 그것을 후회하며 보낸 시간.

또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려 쓴 시간.

내가 어떤 모습이건 시간은 멈추지 않고, 쌓인 것들은 내 모습이 된다.

난 지금까지 어떤 모습을 쌓아왔나.

언젠가는 그냥 걷기를, 좋아했던 것들을 미워한 적도 있었다.

내가 실패한 것. 글쓰기.

겨우 이런 것밖에 쓰지 못하는 나와 다르게 돈을 벌고 유명해진 사람들.

맹렬하게 타오르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습기밖에 머금지 못한 나.

비참하다는 말로도 담아내지 못하는 역겨움.

글을 쓰는데 필요한 자격이 있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지금 쓰고 있다.

거짓말이 아닌. 허세가 아닌.

나만의 것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눈.

이르꾸츠크를 떠올린다 라는 말은 겉멋뿐으로 보이려나.

하지만 지금 나는 그 곳에서의 벌판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머무는 곳을 지나 깊이 들어서는 나밖에 남지 않았던 그 곳.

기어다니고 굴러다니고 걸어다니고 누워있다 어느 순간 돌아본 뒤쪽,

빙글빙글 늘어선 내 발자국들이 찍혀있었다.

내 것밖에 없어 더 선명하게 보이던 그 모습.

그 곳에 난 지금 다시 서있다.



어떻게 마무리지을지 써놓았던 건 많았다만, 그건 이제사 쓸모없는 것.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보면 어차피 또 바뀌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과 아주 동떨어진 모습은 아닐거다.

그거면 충분할테다.

눈 앞만을 보며 걸어가야 한데도 언젠가는 뒤돌아볼 수 있겠지.

어쩌면 난 이 말을 쓰려고 돌아다녔던 것일지도.

혓바닥이 너무 길어졌다.

여기까지 같이 걸어와준 여러분에게,

20살의 별자리로 남아줬던 분들에게,

ㅇㅇ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러시아, 소금싸막. 그리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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