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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의 CEO분석 9] HD현대-팔란티어 '데이터 동맹'의 이면…정기선, 美 안보 시스템에 韓 방산 미래를 걸었다

ceonew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9.22 15: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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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의 CEO분석 9] HD현대-팔란티어


[CEONEWS=박수남 기자] 2022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CES)의 한 회의실. HD현대 정기선 부회장(당시 사장)과 미국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Palantir) 경영진이 손을 맞잡았다. 공식 발표는 간결했다. 조선, 에너지 등 핵심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내 언론은 이를 '디지털 전환(DX)'의 모범 사례로 조명하며, 정 부회장의 '퓨처 빌더(Future Builder)' 비전이 구체화되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악수는 단순한 기술 협약(MOU)이 아니었다. 이는 훨씬 더 깊고 중대한 전략적 결합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행위였다. 당시 알렉산더 카프(Alexander C. Karp) 팔란티어 CEO가 남긴 말은 이 협력의 본질을 암시한다. 그는 HD현대와의 파트너십이 "우리의 집단적 복지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인 기업 간 거래에서 '안보(Security)'라는 단어는 이례적이다. 이 발언은 생산 효율화라는 표면적 목표 너머에 거대한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 있음을 시사하는 결정적 단서였다.    

정기선 부회장이 선택한 팔란티어와의 '데이터 동맹'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닌, 계산된 지정학적 승부수다. 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HD현대, 나아가 한국 핵심 방위 산업의 미래를 미국의 국가 안보 시스템에 깊숙이 연결하려는 거대한 도박이다. 이 데이터 동맹은 HD현대의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열쇠이자, 한국의 산업 주권과 지정학적 자율성을 시험대에 올리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 

그림자 파트너, 팔란티어...'데이터 기업'의 가면

정기선 부회장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팔란티어라는 기업의 정체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팔란티어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다. 그 DNA부터 미국의 '그림자 정부(Deep State)'와 궤를 같이한다. 

CIA의 자금으로 태어난 기업 

팔란티어는 9.11 테러 직후인 2003년,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Peter Thiel)과 알렉스 카프 등이 설립했다. 설립 목표는 명확했다. 페이팔의 사기 탐지 기술을 대테러 활동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팔란티어의 첫 외부 투자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벤처캐피털 조직인 인큐텔(In-Q-Tel)이었다. CIA의 200만 달러 초기 투자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팔란티어가 태생부터 미국 정보기관(USIC)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기업임을 증명한다. 이들의 소프트웨어는 팔란티어의 엔지니어들이 정보기관 내부에 상주하며 공동 개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펜타곤의 디지털 중추 신경 

이후 팔란티어는 미국 국방부(DoD)의 '미션 크리티컬(mission critical)' 소프트웨어 공급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팔란티어의 '고담(Gotham)' 플랫폼은 미 육군의 거의 모든 임무 영역에 걸쳐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s)을 가능케 하는 '연결 조직(connective tissue)'으로 묘사된다.    

팔란티어의 역할은 단순한 데이터 분석을 넘어선다. 미 육군의 전체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밴티지(Vantage)' 프로그램, 드론 영상을 AI로 분석해 표적을 식별하는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 그리고 최전선 지상 시스템을 AI로 통합하는 '타이탄(TITAN)' 프로젝트 등 국방부의 가장 민감하고 핵심적인 사업들의 중심에 팔란티어가 있다. 미 육군이 팔란티어와 체결한 10년간 최대 100억 달러 규모의 단일 소프트웨어 계약은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공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막강한 기술력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법 이민자 추적 및 추방 작전에 팔란티어의 기술이 핵심적으로 사용되었으며 , 일부 도시에서는 범죄 예측 프로그램에 활용되어 인종차별 및 인권침해 논란을 빚었다. 이는 팔란티어가 중립적인 기술 제공자가 아니라, 국가 권력 행사의 강력한 도구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박수남의 CEO분석 9] HD현대-팔란티어


'미래형 조선소(FOS)'의 이중용도

HD현대와 팔란티어 협력의 공식적인 명분은 '미래형 조선소(Future of Shipyard, FOS)' 프로젝트다. 2030년까지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세계 최초의 '스마트 조선소'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30% 향상시키고 건조 기간을 30% 단축한다는 것이 목표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Foundry)' 플랫폼은 이 비전을 실현할 데이터의 중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FOS 프로젝트는 본질적으로 '이중용도(Dual-Use)' 전략이다. 상업용 LNG 운반선을 건조하는 데 사용되는 데이터 통합, 공급망 최적화, AI 기반 생산 관리 기술은 대한민국의 이지스 구축함이나 차세대 잠수함과 같은 복잡한 함정을 건조하고 유지·보수하는 데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며,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 이중용도 독트린의 실체를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가 바로 무인수상정(USV) '테네브리스(Tenebris)'의 공동 개발이다. 라틴어로 '어둠'을 의미하는 이 무인함정 개발 프로젝트는 2026년 완료를 목표로, HD현대의 고성능 하드웨어(17미터, 14톤급 스텔스 선체)와 팔란티어의 국방 AI 플랫폼을 결합하여 임무 자율성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박수남의 CEO분석 9] HD현대-팔란티어


이는 단순한 상업적 시도가 아닌, 무기 체계의 공동 창조다. 팔란티어가 해양 무인 시스템 분야에 진출하는 첫 사례 중 하나이며, 이미 "미 해군과 초기 논의"를 가졌다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의 전략적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FOS 데이터 플랫폼은 이제 스마트 조선소를 넘어 스마트 전장(Battlespace)으로 확장되고 있다. 팔란티어 통합 조선소에서 건조된 군함은 유지·보수·정비(MRO) 데이터를 동일한 플랫폼으로 완벽하게 피드백하여 수명주기 전체의 데이터 루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는 펜타곤이 추구하는 데이터 중심의 현대전 개념(JADC2)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이 파트너십은 단순히 조선소의 '디지털 트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한 국가의 해군 산업 역량 전체의 '디지털 트윈'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 디지털 자산은 물리적 조선소만큼이나 전략적으로 가치가 크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 플랫폼은 상업 및 군함의 설계 사양, 공급망, 생산 일정, 인력 데이터를 포괄하는 조직 운영의 완전한 디지털 복제본을 만든다. 이 통합 데이터 모델을 통제하는 주체는 한국 해군 생산 능력에 대한 전지적 시점을 갖게 된다. 이는 산업 데이터를 전략적 정보 자산으로 변모시키며, 기업 효율성과 국가 안보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린다.    

지정학적 승부수...인도-태평양에서 미국에 닻을 내리다 

팔란티어와의 동맹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HD현대의 공격적인 전략이라는 더 큰 그림 안에서 봐야 한다. 이 전략은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MASGA)'로 알려진,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산업계의 광범위한 움직임의 일부다. 이 구상은 특히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직면한 미국의 조선 역량 격차를 해소하려는 워싱턴의 필요에 직접적으로 부응한다.    

HD현대는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박수남의 CEO분석 9] HD현대-팔란티어


팔란티어 파트너십은 이러한 '하드 파워'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 열쇠다. 펜타곤이 가장 신뢰하는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채택함으로써, HD현대는 단순한 외국 계약업체가 아니라 '디지털 네이티브'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이는 다른 어떤 외국 경쟁업체도 넘기 힘든 데이터 상호운용성과 보안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단번에 뛰어넘는 효과를 가져온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싱크탱크들이 강조해 온 한미 방산 협력 및 공급망 복원력 강화의 필요성에 비추어 볼 때 , 정기선 부회장의 행보는 '기업가적 외교(corporate statecraft)'의 전형이다. 그는 정부 간 협정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속도와 깊이로 한미 동맹의 전략적 목표를 민간 기업 차원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HD현대는 이제 단순히 미 해군에 함정을 공급하는 업체를 넘어, 어려움을 겪는 미국 조선 산업 기반의 잠재적 구원자로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HD현대는 미국 업체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이지스 구축함을 건조할 수 있다. 외국 기업 참여에 대한 미국의 가장 큰 우려는 안보와 데이터 보호 문제다. CIA에서 탄생하고 펜타곤이 가장 민감한 데이터를 맡기는 팔란티어와 파트너 관계를 맺음으로써, HD현대는 이러한 안보 우려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이제 HD현대는 워싱턴을 향해 "우리는 당신들의 생산 능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비교 불가능한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당신들이 이미 신뢰하는 보안 플랫폼 위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입찰자를 넘어 전략적 해결책 제공자로서의 위상 변화를 의미한다.    

이면

그러나 이 화려한 전략의 이면에는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리스크가 존재한다. 바로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의 문제다. 데이터 주권이란 한 국가나 조직이 자신이 의존하고 생성하는 데이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최근의 지정학적 격변은 데이터 주권을 단순한 규제 준수 문제를 넘어, 기업과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심적인 안보 리스크로 부상시켰다.    

딜레마의 핵심은 명확하다. 대한민국 최대 조선사이자 핵심 방위산업체의 완전한 운영 데이터가 CIA 및 펜타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미국 기업이 개발하고 관리하는 플랫폼에 통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산업 스파이의 위험은 표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더 깊은 위험은 지정학적 레버리지다. 이 플랫폼은 한국의 해군 함정 생산 능력, 공급망의 취약점, MRO 준비태세에 대한 포괄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는 미래에 한미 양국의 국익이 충돌하는 가상 시나리오에서 워싱턴에게 강력한 압박 카드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종속 상태를 야기한다. 

이는 기우가 아니다. 유럽의 동맹국들은 자국 안보 인프라에 대한 팔란티어의 "서서히 다가오는(creeping)" 영향력을 경계하며, 이를 자국의 전략적 독립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대한민국은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수준의 데이터 통합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이 파트너십은 기업의 이익(미국 시장 접근)과 국가의 이익(전략적·산업적 자율성 유지) 사이에 잠재적인 충돌을 야기한다. 정기선 부회장의 도박은 이 두 가지 이익이 영원히 완벽하게 일치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HD현대라는 기업에게 팔란티어와의 거래는 거대한 성장을 위한 합리적이고 공격적인 경영 판단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게 핵심 해군 산업 데이터의 통제권을 미국 안보 시스템과 연동된 플랫폼에 넘기는 것은, 오늘날 한미 동맹에는 이익이 될지 모르나 미래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제약할 수 있는 구조적 족쇄가 될 수 있다. 정 부회장의 리더십은 이제 국가적 차원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 주도 생태계의 '신뢰받는 파트너'가 됨으로써 얻는 경제적, 안보적 이익이 장기적인 산업 및 전략 주권의 잠식 가능성이라는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HD현대와 팔란티어의 동맹은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훨씬 뛰어넘는 정교한 '기업가적 외교' 행위다. 이는 민간 기업과 국가 안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한다. 

정기선 부회장의 '퓨처 빌더' 비전은 단순히 AI로 미래형 선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안보 구조의 필수불가결한 구성 요소로서 회사의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선박을 넘어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팔란티어를 선택함으로써 정기선 부회장은 한미 양국의 국익이 영원히 일치할 것이라는 거대한 도박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질문은 미-중 기술·안보 경쟁의 일부가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통합될 것인가이다.

정기선 부회장의 결단은 우리에게 두가지 질문을 남긴다.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에 우리나라의 미래를 안주함 으로써 안보를 확보한 것인가, 아니면 테이블에 앉기 위해 주권의 일부를 거래한 것인가?

질문의 답은 미래에 있고, 현재의 현실은 진행형이다. 다만 변화하는 양상에 따라 우리는 미래가 보여줄 답안지의 일부를 조금씩 확인해나갈 수 있다. 정기선 부회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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