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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걷기12

ㅇㅇ(125.190) 2009.12.08 00:46:03
조회 68698 추천 57 댓글 77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떴다

괜찮았다

어디 모기 물린 곳도 없었고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자기 전에 핸드폰이랑 디카를 다 배낭에 넣어두고 잤기 때문에

몇 시인지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아마 몇 시간 안 잔것 같았다

다시 자야지

눈을 감았다

갑자기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ㅍㅍ : 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만화 속 초능력자가 기 폭발 할때나 내는 소리일까

무거운 철퇴를 두손으로 잡고 빙글빙글 돌리면 그런 기합이 들어갈까

대사만 찹살떡으로 좀 바뀌어주면 찹~~살~~~~떡~~~~~~~~ 이렇게 정겹게 들렸을지도 모르겠으나

하필이면 대사가 으아 였다

뭔가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남자 신음 소리

마음 깊은 곳에 맺힌 한을 뱃속에서부터 꺼내 뱉어내는 소리

술취한 사람이 분명했다

아 ...제발

제발 여기 들어오지마라

소리가 정확히 어디서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차를 두고 멀리서 계속 소리가 들려왔다

ㅍㅍ : 으으으아아아아아.......

ㅍㅍ : 아......... 으!!!!!!!!!!아........

진짜 난 그 때 엄청 무서웠다

난 누워서 눈을 뜬채 잠은 못 들고 저 사람이 제발 여기로 안 들어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계속 들려오는 소리에 불안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버스정류장 출입문 2개가 열려 있었는데 그걸 닫으려고 했다

문이 다 닫혀 있으면 누가 들어올 때 문 여는 소리가 나서 내가 잠에서 깰 수 있으니..

근데 닫으려니까 문 삐걱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났다

혹시 문 닫히는 소리 듣고 이쪽으로 오는 건 아닌가 싶어서

벽에 몸을 숨기고 살살살..... 하나씩 조용하게 닫았다

그러면서 정류장 밖을 몰래 힐끔 내다봤지만 다행히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나 보다

그래도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정류장 문을 다 닫고는 혼자 정류장 안을 왔다갔다했다

아 ㅅㅂ.. 어떡하지 어떡하지 자다가 여기로 오면 어떡하지

불안해서 못자겠네..

설마..설마 여기로 올까..설마

안오겠지.. 내가 너무 겁먹고 오바하는거겠지

자자 설마 진짜 여기로 오겠나..




역시  난 겁이 너무 많다

아무일 없었다

그래도 잠은 제대로 못 잤다

불안해서 그런지 자다가 자꾸 잠에서 깼다

나중에는 춥고 모기까지 물리기 시작해서 많이 뒤척였다




또 한번 정신이 번쩍들었다

저 멀리서 아기 울음 소리같은게 들려왔다

정류장 밖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데 정확히 어디서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가만히 귀를 귀울였다

아 이건 또 뭐지?.. 무슨소리지?...

어린아이 웃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기 울음 같기도 하고..

tv에 나오는 귀신 소리 같기도 한.. 무서운 소리였다

처음 그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을 때는 정말 깜짝놀라고 마음이 철컹했었다

섬뜩했다

아 ㅅㅂ..이게 뭐지? 내가 잘못 듣고 있나? 노숙하다가 미쳤나....

은은하게.. 멈추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끄아이ㅡㅇ으ㅡㅡㅡ

까아아ㅏㅏㅏㅏㅏㅏ

뭐지 졸라 무섭다...

진짜 섬득한 소리가 가끔은 선명하게 가끔은 희미하게 저 멀리서 계속 들려왔다

끄앙오ㅓㅏㅇ아아ㅏ,,,,,,,,,,,

ㄲ아ㅏㅏㅏ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

어라..

이거...

왠지...닭....

닭 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그래 닭 우는 소리였다

아 무슨 닭이 저딴식으로 우노 ㅅㅂ..

닭 울음 소리라고 느껴진 이 후에도 정말 닭이 맞는지 의심가게끔 괴상한 소리로 울어댔다



닭이 우는 걸 보니 시간이 꽤 됐나보다..

너무 추워서 의자에서 일어나 버스정류장에 열려있던 창문을 다 닫았다

창문을 닫다보니 창문 위에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4시 40분

꽤 됐네?

다행이다 여기서의 밤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는데.. 조금만 더 누워있다가 나가자

30분정도 더 누워있다가 잠자리를 정리하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버스 정류장 떠나기 전에

어제 나 때문에 겁먹었던 미용실에 미안해서 연습장을 찢어 쪽지를 남겼다

 

 

어제 저 보고 많이 놀라시는 것 같던데

죄송해요 전 나쁜 사람은 아니고 그냥 여행 중인 사람인데 잘 곳이 없었어요

다신 안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자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주머니가 나 때문에 계속 불안해할까봐 안심해도 된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버스정류장을 나왔다

나가기 전에 추억이 될 내 잠자리를 ㅇㅇ









떠나기 전에 119에도 고맙다고 인사하기 위해 들러봤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메모장을 찢어 쪽지를 남겼다

 


고마워요 덕분에 잠 잘 잤어요



이제 출발



철푸둭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

울진까지만 가서 울진에서 돈을 좀 벌어볼까..

돈 벌어서 찜질방에 가서 쉴까..

아 아니다.. 이제 찜질방은 그만 가고 싶다

 

 

아침 먹으려고 휴게소 식당에 가서 밥을 좀 얻어보려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나를 좀 못 마땅해하셨다

ㅍㅍ : 그게 고생한다고 하는데 고생이 아니야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주인이 보니까 빨리 나가라고 하셨다

날카로운 말투에 기분이 좀 나빴다 괜히 밥 얻으러 갔나..

이렇게까지 얻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뭐 원인 제공은 내가 했으니까.. 내 잘못이다

이미 얻은 거 어떡하나 맛있게 먹어야지




밥 먹는데 자꾸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고생하는 게 아니야
내가 고생해보려고 이러고 있는건가?..
나는 왜 이러고 있지..

경험을 많이 하니까? 뭔 경험? 새로운 것? 보고 느끼기? 뭘?

지금 나와서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없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 우울했다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건가..



 

도로가에서 밥을 먹고 난 뒤에 그대로 앉아 좀 쉬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 처럼 걸어다니는 사람과 마주쳤다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보는구나 반가웠다

20대로 보이는 남자 두 분이었는데 포항 호미곶에서 인천까지 간다고 했다

지나가면서 잠깐 인사만 하고 다시 그분들은 길을 떠났다








 

태극기가 자꾸 걸리적 거려서 빨리 군청에 갖다 주고 싶었다

혹시 태극기를 그냥 내 배낭에 달고 다니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을 0.1초 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걸어다니는 게 뭐 자랑할거리도 아니고

저 걸어다녀요~~~~~~이렇게 뭐 광고하는 것 같고 괜히 시선 끌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러기 싫었다

또 무엇보다 내가 과연 태극기를 달고 다닐만큼 우리나라를 사랑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버려진 장갑 뒤에 부서진 인형 팔이 떨어져 있었음





가지 말아요








울진에 다 와갈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울진에서 울진친환경농업엑스포라는 것을 하고 있었는데

가는 길에 한번 구경하고 가볼까 고민이 됐다

내가 농업엑스포에 가서 뭘 보고 느낄 만한 게 있을까?....

아무래도 관심도 없는데 억지로 가서 봐봤자 느낄 게 없을 것 같아 그냥 지나갔다

아... 그럼 뭘 보고 뭘 느낀다는건데?

지금 뭐하자고 나온 건데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나는 그냥걷기




 


점심이 되기 전에 울진에 도착하면 밥도 해결하고 돈도 좀 벌어볼까 싶었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뭘 해야할지 막막하고 괜찮은 게 눈에 띄이지도 않아서

그냥 그대로 울진을 지나쳐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울진 시내에서 할머니 한 분을 보게됐다

비도 꽤 많이 오고 있었는데 우산도 없이 물건이 조금 실려있는 유모차를 끌고

맞은 편 인도에서 혼자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나와는 반대 방향이었지만 어짜피 난 갈 길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었고

걸어다니다가 중간에 내가 도움될만한 일이 생기면 해보자는 생각도 계획에 있었으므로 

가서 우산을 씌워드리고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가 내 눈에는 짐수레처럼 보였기 때문에

할머니한테 짐이 되는 그 유모차를 내가 끌어주고 유모차 대신에 내 우산을 드릴 생각이었다

난 어짜피 오래 걸어다녀서 이미 몸이 꽤 젖은 상태였고 가방은 커버를 덮어놨으니까 난 굳이 우산을 안 써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비 피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 유모차는 짐이 아니라 할머니의 지팡이 역할을 해주는 보조기구였으며

아무것도 모르고 그걸 짐수레로 생각했다는 나의 무지함에 속으로 부끄러워했다

할머니는 유모차로 몸을 지탱하며 걷고 계셨고

그렇게 걷는 것조차 버거워 30m만 걸어도 숨이 차 헉헉 거리셨다

정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것만 같이..

나는 어찌 해야할지 몰라 우산만 씌워드린채 어설픈 부축을 하며 할머니를 집 근처까지 모셔다 드렸다

역시 내 무식한 표현력으로는 제대로 못 하겠다

그냥 되는데까지 써보고 있는 것이다

왠지 전달이 정확하게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답답하다

 


다시 나는 내가 갈 길을 걸어갔다

마음이 착잡했다

할머니도 분명 한 때는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였을텐데

이제는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할머니가 되었다

왜 사람은 늙게 되는 걸까
사는 건 무엇일까

늙기 위해?

죽기 위해?

산다

자신의 죽음을 차마 스스로 택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오게 된 지도 모르는 세상에 떨어져

어떻게 갖게 된 지도 모르는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젊음 늙음 죽음 그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많은 일을 겪는다

결국엔 늙고 죽는다

늙을대로 늙어서 죽음 앞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든 시간들이 오직 이 고통과 곧 다가올 죽음을 위해 존재한건가 하고 회의를 느끼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음
gg


할머니의 유모차에 실린 물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긴 한데

그건 정말 내 무식한 머리로는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그건 그냥 덮어둬야겠다

 



우리 엄마도 나중에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가 아니지..

우리 엄마도 저렇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언젠가는 늙고 병들 것이다

음..

정말 내 자신만을 생각하고 내가 바라는 삶이라면

그냥 원룸같은 작은 방이나 하나 구해서

혼자 방 안에서 컴퓨터나 하고 노래나 듣고 가끔 먹고싶을 때 통닭이나 한 마리씩 시켜 먹을 수만 있을 정도이면

그게 내게 행복이고 더 이상의 큰 돈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굳이 내가 다른 물질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하여도
최소한 나의 가족, 유일한 내 인간관계인 내 가족들이 언젠가는 늙고 병들 것이며
그 때 돈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아파하는 가족을 그대로 죽게 만들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둬야한다

뭘 해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돈이 있으면 죽음까지의 고통은 줄일 수 있잖아

 

 

지금 이 후기를 쓰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언제 내가 그렇게 밖을 걸어다녔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와 딱히 하는 거 없이 그저 병신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말 하는지 모르겠다

후기로 ㄱㄱ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다시 나는 내 길을 걸어갔다

지나가는 길에 울진군청에 들러 태극기를 갖다주고 바로 울진을 지나쳐갔다

점심을 먹으려고 한 농기계 수리센터에서 라면 물을 받고 나가려는데

안에서 먹고 가라며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반찬이 없어서 줄 게 없다고 미안해하시기까지 했다

커피를 뽑아주셨는데 배가 고픈 상태여서 그런지 정말 너무너무 맛있엇다

그래서 한 잔만 더 마셔도 되냐고.. 한 잔 더 마셨다

마음으로는 열 잔이라도 뽑아마시고 싶었지만..ㅠㅠ




 

농기계 수리센터를 나와 가던 길을 이어 갔다

잠시 비가 그쳤다가 곧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꽤 많이 쏟아졌는데 어디 비 피할 곳이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 샛길로 빠져서 좀 쉴 곳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곧은 4차선도로가 끊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빗길을 계속 걸어야했다

때문에 몸이 다 젖은 건 물론이고

발이 젖은채로 계속 걸어다녔더니

이제는 발바닥이 물컹물컹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대로 계속 걷다가는 발바닥이 물집투성이로 완전 떡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배낭에 든 일기장

배낭 자체도 방수가 되고.. 커버까지 덮어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됐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조금이라도 물이 스며들어 내 일기장이 젖은 건 아닐까 걱정됐다

어디 잠깐 비를 피해 좀 쉬기도 하고 젖은 발도 말리고 일기장도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답답하게도 옆으로 빠지는 길이 안 나왔다

몸이 지치고 우울했다 혼자여서 더 막막하고 외롭기도 했다

 

젖은 발에 무리가 갈까봐 한 걸음 한 걸음 신경쓰면서 계속 걸어갔다

그러다 드디어 4차선 교차로가 너왔다

교차로 다리밑에서 휴식을 취했다

배낭을 벗고 발을 말렸다

일기장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하나도 안 젖었다

아하

일기장이 내가 넣어온 지퍼백에 들어가는지 넣어봤다

크기가 딱이었다

지퍼백 안에 일기장 연습장 편지지 등 종이류가 다 들어갔다

와..굿

이 안에 넣어두면 배낭 안에 물이 좀 들어가더라도 지퍼백 때문에 안 젖겠지!

지퍼백 3개 가져온 게 딱이었다

하나는 카메라가방만으로는 비를 못 견뎌낼 것 같아 카메라가방용

하나는 젖으면 못쓰는 휴지용

하나는 종이용!

계산하고 챙겨온 것도 아닌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알맞은 3장을 챙겨왔다는 거에 감탄했다
역시 잘 맞는다니까
낄낄





교차로 밑
가만 보면 다리 만들어놓은 것도 대단하다
인간들은 천재임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거 만들 생각 못했을듯


이 다음 지도에 표시된 지역으로는 원덕이라는 곳이 있었다

원덕은 얼마나 남았을까

거리 표지판이 나오지 않아서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빗길을 더 걷기는 힘들것 같아서 원덕까지는 도저히 무리일 것 같고

교차로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오늘은 여기서 더 이동하지말고 근처에 있는 마을을 찾아다녀보기로 했다
마을에서 받아줄까.. 마을 아니면 어디 갈 곳이 없는데..

다리밑에서 한 시간 가까이 쉬었던 것 같다

마을을 찾아다녔다

마을 두 군데에 찾아 가봤지만 모두 이장님이 안 계셨고

한 군데는 이장님 댁에 계신 할머니께서 많이 날카로우셨다

누가 이장님 댁 위치를 알려줬냐며... 화를 내셨다

괜히 내가 자꾸 폐만 끼치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스스로 위축됐다

그렇게 두 마을에 가보고 거절당하자 다른 데 가볼 용기가 사라졌다

다리는 아프고..발바닥은 질퍽거리고.. 비는 계속 오고

몸은 젖은 상태라 이제 슬슬 추위도 느껴졌다
또 막막함이 몰려왔다
아 마을에서 안 받아주는데 어떡하지.. 비와서 어디 잘 곳도 없는데..
다리 밑에서 자면 자다가 얼어죽을지도..

다시 마을 찾아가기가 망설여졌다

가봤자 거절당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혹시나.. 해서 다음 마을에 들어가봤다

이장님 댁을 찾으려는데 마침 마을 회관 앞에서 어르신 두 분이 얘기를 하고 계셨다

가서 내 사정을 말하고 하루만 쉬고 갈 수 있을지 여쭈어봤다

그럼 쉬고 가도 되지, 이렇게 다리도 아프고 비도 오는데 당연히 쉬어야지

자기가 이장은 아니지만 깨끗하게만 쓰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
이장님이 지금 투표하러 가셔서 마을에 안 계신데 밤에 오시니까 안에서 쉬고 있다가 투표 끝나고 돌아오시면 그때 애기하면 된다고

회관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 쉬라고 하셨다

친절히 대해주셨다

회관 안에 들어갔다

아 살았다...!
근데 불안했다

문턱에 걸터 앉아 가만히 있었다

혹시 모른다 그 어르신 두 분은 허락하셨지만

막상 저녁에 이장님이 오셔서 안 된다고 하시면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제도 그랬었으니.. 아직 좋아하기는 이르다..

아 8시,9시 넘어서 여기 나가게 되면 완전 밤이라 곤란해지는데..제발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직 확실한 허락을 받은 게 아니니까..

불도 안 켜고 젖은 옷도 안 갈아입고 회관 방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현관에 짐만 내려놓은 채
그냥 문턱에 걸터 앉아 수첩에 낙서도 하고 사진이나 찍어보며 이장님을 기다렸다





8시가 넘어 날이 깜깜해져도 왠지 이장님이 오시질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회관에 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장님 댁을 찾아가기로 했다

근데 이장님 댁이 어딘지..

회관 바로 옆집 거실에 불이 켜져있고 tv도 켜져있는 걸로 봐선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길 좀 물어보자..

저기요

저기요 실례합니다

거실 현관 문으로 꼬마가 나왔다

난 단지 이 밤에 갑자기 나타난 내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란걸 어떻게든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ㅇㅇ : 저기.. 부모님 안 계세요? 뭐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니고요..

부모님 안 계시냐니.... 나쁜 사람은 또 뭐임...그게 더 이상하잖아.....

말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생각은 들었지만 말은 더 꼬이고 이상한 말만 줄줄......

그냥 길만 물었으면 됐을텐데 괜히 쓸데없는 말을 더 내뱉은 탓에 꼬마 아이가 나를 더 수상하게 봤을 것 같았다

여튼 꼬마가 이장님 댁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줬다

꼬마가 가르쳐 준 길로 가긴 갔는데 어디가 이장님 댁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여긴가?저긴가? 하며 헤메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ㅍㅍ : 저기에요 저기!

아까 그 꼬마였다

고맙게도 날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길을 제대로 찾아가는지 궁금해서

빗길에 우산을 쓰고 멀리서 날 따라 오고 있었던 거다

아 고마워라

 

 

덕분에 이장님 댁을 찾았다

투표를 하고 집에 와 계신 상태였다

이러쿵 저러쿵..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렸다

일단 회관으로 가보자고 하셨다

이장님은 내가 혼자 걸어다니는 걸 이상하게 여기셨다

둘도 아니고 왜 혼자 그러냐며..

둘이면 이해하겠는데 혼자라서..

나쁘게 보는 건 아닌데

자기가 마을을 맡고 있는 이장으로서 회관을 빌려주는 데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혹시 모르니 확인을 좀 해봐야겠다고 하셨다

신분증을 달라고 하셨다

경찰을 불렀다

 ┓━..

경찰에게 한번 판단을 요청해보고

경찰에서도 괜찮다고 하면 자신도 마음 편하게 허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일이 너무 커지나.....괜히 여기저기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곧 회관앞에 경찰차가 도착하고 안에서 경찰 아저씨 두 분이 나오셨다

난 그냥 걸어다니는 사람이에요....

다행히 경찰 아저씨들은

아 다행이.. 아니라 난 진짜 수상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ㅠㅠ

경찰 아저씨들은 날 나쁘게 보지 않았고

아이고 이장님~ 그냥 한 번 재워주세요~ 나쁜 사람 아닌 것 같은데요~

저희가 있잖아요~ 무슨 일 있으면 저희가 바로 와드릴게요~ 좀 재워줘요~~

이렇게 이장님께 잘 말해주셨다

고마웠음^,,^

덕분에 이장님도 허락하셨다

 


회관에 혼자 남아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관 문 앞에 누가 와 있는 것 같았다

아까 그 꼬마였다

친구까지 한 명 데리고 와서는 우산을 쓰고 회관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밖을 내다 보자 날 신기해하며 웃었다

ㅍㅍ : 혼자왔어요????ㅋㅋ

귀여웠음..

나도 어릴 땐 저렇게 귀여웠을까 ㅠㅠ

 

몸은 피곤하고.. 왠지 회관 불 켜는 전기세 쓰는 것도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일기는 또 나중에 쓰자고 미루고 바로 잠 ㄱㄱㄱㄱ

맨날 이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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