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1일차, 한국에서 파리로.
‘나쁜 일들은 한꺼번에 닥쳐온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살면서 불행한 일들을 겪어본 적이 없진 않지만, 내게 2016년 4월은 악몽의 한 달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 혹은 어떤 것들을 면 주 만에 다 잃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내게 더 큰 상처로 남아버렸다.
하루하루 지인들을 붙잡고 술 마시며 투정 부리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들도, 나도, 반복되는 스토리와 술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내게 친구 한 명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천해주었다. 원래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무작정 걸으며 잊는 것으로 상처를 극복했던 일이 많았던 나는, 그 제안이 솔깃했다.
그 이후 산타이고 카페에 가입하고 관련 블로그 글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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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잃은 백수 신세에, 넘치는 게 시간이었던 나는 준비도 없이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0리터 가방, 등산 스틱, 등산장갑, 베드 버그 방지용 계피 껍질, 세면도구, 손톱깎이, 버프, 등산용 의류, 그림 그릴 도구, 약품, 침낭, 우의, 경량 패딩, 충전기, 기타 등등.. 꼭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가방이 무거웠다. 잠시만 메고 있어도 어깨가 아팠다. 이걸 짊어지고 내가 800Km를 걸을 수 있을까.
인천 공항 46번 게이트, 비행기를 타기 20분 전까지 나는 떨리고, 긴장됐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러나 적어도 난 실패는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 딱 봐도 순례자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내 쪽을 머뭇머뭇 쳐다봤다. 서로 의식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는듯 하더니 다시 다른 쪽으로 걸어가버렸다. 아마도 우리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겠지.
이륙 시간.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내 옆자리엔 프랑스인 모녀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굳은 표정에 나도 잠시 긴장이 됐지만, 이내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에 마음이 풀렸다.
첫 번재, 기내식.
두 가지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다. 크림소스 닭 가슴살 스테이크와 한국식 쌈밥. 대부분의 한국인이 스테이크를 선택하고, 대부분의 외국인이 쌈밥을 선택했다.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이때 나는 왜 쌈밥을 안 먹었을까 후회할 줄은 몰랐지.)
한국에서 파리까지는 12시간 정도 소요됐다. 긴장과 떨림으로 시작됐던 비행은 곧 지루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시간을 아무리 확인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언제 도착하지,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옆 자리 프랑스인 모녀를 봤을 때 느낀거지만, 외국인들은 미소를 참 자연스럽게 짓는 것 같다. 내게 그건 참 힘든 일이다. 이번 기회에 산티아고에서 그런 것들을 고칠 수 있길 바랐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차갑고 무뚝뚝한 인상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곧 파리에 도착한다. 사진에 보이는 땅은 동유럽 어디 쯤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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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12시간 30분의 비행시간. 드디어 샤를 드골공항에 도착하였다. 내 자리가 복도 쪽이었으므로 바깥 사진을 찍는 데에 힘들었는데, 옆에 앉은모녀가 대신 사진을 찍어준다. 땡큐 대신에 메흐시 보꾸라고 말하니 굉장히 좋아했다. 유럽 사람들은 자기네 언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에서 영어를 쓰면, 그거 아니라고 스페니쉬 단어를 알려주는 가게 주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출발 전, 유럽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와 치안에 대해 질릴 만큼 많이 듣고 들은 만큼 쪼그라들어 있었기에, 파리에서 내려서는 사진도 거의 찍지 못 했다.(근육 흑형이 와서 핸드폰 뺏어갈까 봐...) 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파리는 흑형들의 도시인가 생각했을 정도로 길거리의 3/2 이상이 흑인들이었다. 게다가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찾는 데에 한참 걸렸고, 도심으로 가는 공항철도 RER 매표와 플랫폼을 찾는 데에도 굉장히 헤매었기 때문에, 거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골공항은 터미널 1, 터미널 2, 터미널 3이 있으며, 터미널 2에서 공항철도와 공항버스를 탈 수 있다. 내가 이용했던 항공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터미널 1에서 내려 공항 내 순환철도를 타고 터미널 2로 이동해야만 했는데, 나는 거기서 헤맨 것 ㅠ_ㅠ)
우여곡절 끝에 오스텔리츠 역에 도착!
프랑스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 데 피에드 뽀드로 가려면, 파리 오스텔리츠 역에서 바욘으로, 바욘에서 생장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떼제베를 타면 빠르게 갈 수 있지만, 나는 저렴한 데다가 야간열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야간열차를 미리 예매하였다.
기차 시간이 좀 남아있었기에, 역 앞의 센 강을 걸었다. 사실 한참을 걷다 지도를 보고서야 이 강이 센 강인 것을알았다. 냄새나는 더러운 강이라는 말을 프랑스에 살다 온 친구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한강보다 깨끗해 보인다. 지하철 역시 좁긴 했어도 예상보다 훨씬 깨끗한 편이었다. 정보는 전달되며 과장되기 마련이다.
오스텔리츠 역 앞에서 순례길을 걸을 예정인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다. 나와는 다른 루트로 생장을 향해 가시는듯하다. 어디를 통해서 어찌어찌 갈 거라고 하셨는데, 유럽 지리를 모르니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네, 길 위에서 뵈어요!' 하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근데 사실 여기서 만난 아주머니도 그렇고, 공항에서 잠깐 마주친 젊은 여자도 그렇고, 끝내 순례길 내내 보진 못 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고, 인연이 아닌 사람은 아닌가 보다.
기차를 기다리며 5유로짜리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프랑스에서 먹는 첫 음식이다. 거대한 사이즈의 샌드위치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마법 같았으며, 딱딱한 바게트가 내 입천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으나, 맛은 좋았다.
야간열차의 모습이다. 예상보다 더 놀라운 구조다. 두어 평 남짓한 공간에 3층 침대가 굉장히 비좁게 들어차 있다. 여기에 남녀 구분도 없이 다들 구겨져 들어가 눕는다. 과연 이곳이 우리나라와 1000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다른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리를 잡고 누워서 스케치를 해보려 했으나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잠이 오나 하는 걱정도 잠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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