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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일본군의 조선 내 신병훈련소가 두 곳이 있었어요. 1937년도에 ‘조선인 특별지원병 조례’를 제정해서, 하나는 서울에, 그리고 하나는 또 평양에 설치했었던 거지. 이제 우리 제7연대가 평양에 입성하면서, 평양부청과 함께 그 신병훈련소를 접수하게 된에요.”
“내가 고향에서 출발한게 7월 29일인가 그랬을건데, 그 때 아버지가, 평생 표정 한 번 안 바꾸시던 그 아버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전쟁터에 끌려가도 앞줄에만 나서지 마라. 소련군은 몰라도, 독립군하고 만나면 차라리 분위기 봐서 냉큼 손 들고 항복해라.’ 이러셨어요. 1945년 여름이면 이제 패전 분위기가 완연하니까 다들 눈치채고 계셨던 거지. 그래도 소련군은 영판 야만인들이라 항복해도 가혹하게 대한다는 소문이 돌았던거고.”
“우리 조선인 출신 신병들은 신체검사에서 최고 등급, 갑 단계를 받은 사람들이었어요. 나는 7월에 아카가미, 붉은색 딱지라는 뜻인데 이게 일본군 징병영장이에요. 이 일본군 징병영장을 받고 8월 1일에 평양 훈련소에 입소한 상태였지요. 첫날 목제 침상에 누워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면서 한숨을 쉬는 것이, ‘야, 차라리 만주에 가서 광복군에 입대했으문, 왜놈들한테 욕먹고 맞아가며 바보같이 줄 맞추고 우향 우, 좌향 좌 하느니 차라리 광복군에서 우리 말로 욕먹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어요. 그 때 나랑 한 내무실에 누운 신병들이 50명 정도 되었을텐데, 다들 한 잠도 못이루는 것 같았어요.”
“당시에 우리가 인제, 징병 2기였는데, 징병 2기들 죄다 모아놓고 보니까 갑자생, 1925년도 생인거야. 그 때 아카가미가 날아들기 전에 들던 소문이 ‘갑자년생들은 전부 빠짐없이 전쟁에 끌려나간다’는 거였거든. 근데 그 말대로 된 거에요.”
“그때 훈련소 행정반에 고향 출신 형님이 소위 계급으로 계셨는데, 입소 다음날인가 나와서 슬쩍 귀뜸을 해주시는거라. ‘니들 만주로 안 갈 지도 모른다.’고. 형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러니까 ‘원래 니들은 관동군에 시급히 올려보내서 그쪽 병력자원 충당을 시키려고 소집한건데, 지금 신의주 쪽에 후테이 센진, 독립군들이 준동 중이니까 그쪽으로 갈 지도 모르겠다.’는 거야. 그게 말이 됩니까? 어제 입소해서 사격훈련을 하기는 커녕 총 쏘는 것도 한 번을 못 본 촌놈들한테 독립군을 잡으라고? 기가 막혔지.”
“왜놈들 눈치를 보느라 다들 대놓고 말은 못하는데, 지금 영친왕 전하가 이끄는 1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왔다더라, 이런 소문이 돌았어요. 그걸 어디서 들었느냐, 물어봐도 누가 말했다더라, 나는 누구한테 들은거다, 이러고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서도 밥 한 술 뜨러 식당에만 모여도 다들 그렇게 웅성거렸지. 일본군 하사관들도 처음에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화도 내고 그러더니만, 나중에는 뭐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여긴건지 그냥 지켜만 보고요.”
“입소 사흘 째인가. 일본 애들은 일단 첫날에 군복을 나눠준 후에 그때꺼정 제식훈련만 시키고 있었다고. 아침 식사 후에 연병장에서 ‘기오츠케!’ ‘세레츠 야스메!’ 하고있는데, 행정반이 위치한 건물에서 일본군 군조가 뛰쳐 나오더니 ‘큐슈데아루! 큐슈데아루!’ 소리지르는거야. 공습이라 이거지. 교관부터 시작해서 다들 미친듯이 건물로 뛰어들어가고, 잠시 뒤에 하늘에 B-29 폭격기가 네 대 나타난거야. 거기다 대고 뭐 전투기는 커녕 대공포도 한 발 쏘는 저항이 없어요. 그걸 보니 ‘야, 진짜 왜놈들이 저 폭격기에 총 한 방 못쏘는거 보니 일본이 망하긴 망하려나보다.’ 이런 생각도 들고, 또 폭격에 휘말려서 죽지는 않을까 더럭 겁도 나고 그랬지.”
“그런데 폭격기가 우리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만 가는거 아니겠어요? 폭탄이 막 떨어져서 다 죽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거야. 다들 바닥에 납죽 업드려서 고개만 들고는 뭐지? 뭐야? 이러고 있는데, 한 용감한 친구가 창 밖을 보더니 ‘야! 저 놈들이 삐라를 뿌린다!’ 이러는 거에요. 그러니까 교관들이 말리기도 전에 다들 우르르 달려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삐라를 닥치는대로 낚아챘어요. 교관들은 ‘읽는 놈들은 다 죽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삐라를 뺏으려고 난리를 부렸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다 읽었는데, 그게 참…….”
“딱, 맨 위에 쓰인 글씨가 ‘조선 동포에게 고함!’이라고 쓰인, 한글이야. 그니까 일본 애들은 그걸 읽지를 못하는 거야. 뜨문뜨문 섞인 한자들을 통해서 내용을 때려맞추는게 다였지. 근데 그 밑에 쓰여있는 내용들이 가관이에요. ‘미국, 영국, 중화민국, 한국 4개 연합군이 8월 1일자로 한반도 해방작전을 개시하였다. 한국 광복군 10만 병력을 필두로 연합군 50만 명이 조선반도 해방을 위해 곧 투입될 것이다. 현재 한국 광복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진격 중이니 이 삐라를 본다면 그들에게 적극 협력하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이다.”
“그날은 훈련도 하지 말고 다들 내무실에 콕 박혀있으라고 하더니 일본인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만 연병장에서 삐라를 줍느라 난리를 쳤어요. 근데 그게 다 회수가 되겠어요? 몰래 주머니에 쑤셔박은 삐라를 우리끼리 내무실 안에서 다시 돌려봤지.”
“그 때 우리 할매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때가 되면 두 분 전하가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너올텐데, 그 때가 되면 일본은 망하는 것이다.’ 그러셨었다고. 그 소문이 우리 집에만 도는 게 아니고 온 조선 천지에 도는 거였으니까, 다들 그걸 퍼뜩 떠올렸겠지. 광복군이 할매가 말하시는 그 두 분 전하가 만든 군대인 거야 당연히 아는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인자, 다들 든 생각이, 이제 전쟁이 끝나는 건가? 일본이 망하는 건가?”
“그 지경이 되니까 일본놈들이 긴장하는게 보이지. 다들 암암리에 총에 실탄을 재어놓고 다니는 낌새도 들고, 우리는 그냥 줄 맞춰서 제식훈련만 줄창 시키지, 사격훈련은 커녕 목총으로 총검술 훈련도 안 시키는거라. 그걸 보니 우리들끼리도 전부 수군수군, 저놈 새끼들이 겁먹은거 아니냐, 이랬지. 근데 우리는 무기가 없으니까 반항도 못하고…….”
“원래 우리는 5일간 훈련을 마치고 관동군으로 올려보내기로 계획이 되어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입소 5일차, 8월 5일까지도 제식훈련만 하는 둥 마는 둥 할 뿐이고 일본애들끼리도 어수선하니 우왕좌왕만 할 뿐이었어요. 차라리 이러고 전쟁 끝날 때까지 여기에만 모여있다가 집에 가문 좋겠다, 그런 말을 고향 동무들하고 했었어요.”
“당시에 내가 일본어도 하고, 글을 쓸 줄 아니까 신병훈련을 받는 대신 행정반에서 행정업무를 도왔거든요.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은 특히 병력이 모자랐으니까 말이오. 그런데 내가 시키는대로 서류에 숫자를 옮겨적고 있는데, 훈련소장 타카하시 대좌 집무실 쪽에서 타카하시가 윗사람이랑 전화통화를 하는게 들렸어요. ‘지금 신병들 분위기가 흉흉해서 사격훈련도 못 시키고 소총도 못쥐어주는 판이다. 호송부대를 보내주지 않으면 신병들이 올라가다가 전부 탈영할 거다.’ 이러는 이야기를 나누는거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지. 이놈들이 우리 눈치를 보긴 보는구나.”
“6일차인가 훈련을 하는 둥 마는 둥, 내무실에서 누워서 자라기에 자는데, 멀리 시내 바깥에서 총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그게 한 두번이 아니고, 아예 기관총으로 쏘는건지 따다다당,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쾅쾅 거리는 폭발음도 들리고. 그러니까 이게 별 일이 아닌게 아닌게 되어버린거지. 그쯤 되니까 신병들이 다들 일어서서 웅성거렸죠. 불침번을 도는 일본군 하사관이 곤봉으로 문을 탁탁 두들기며 다들 누우라고 소리를 쳐도 다들 총소리가 들리는 쪽만 뚫어져라 바라보았죠.”
“총소리가 새벽까지 평양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데, 다들 눈이 말똥말똥해서. 일본 애들 눈치를 보니까 걔들도 우리 눈치를 살피며 총을 쥐고 다니는 거에요. 쳐다보지도 말자, 그래서 시선을 내리깔았어요.”
“새벽에, 연병장 입구에 경찰이 탄 지프차가 들이닥치더니 평양부 경찰서장 안도 요시타카가 허둥거리며 뛰어내리더니, 그때까지 잠을 안자고 있던 훈련소장이 바로 뛰어나가 경찰서장이랑 뭐라 이야기를 나누는 거에요. 그 30분인가 뒤에, 인제 지프차와 트럭들이 줄줄이 전조등을 켜고 연병장으로 들이닥치는 거라. 일본군들이 총을 겨누는데, 척 보기에도 트럭에서 내리는 사람들 숫자가 훨씬 많아요. 광복군이 온거지. 그러니까 일본군들도 함부로 총을 못 쏘지. 안도 경찰서장이랑 타카하시 대좌가 대표로 걸어나가더니 그쪽 지휘관과 뭐라고 대화를 잠시 나누고는 총을 내리라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일본군들도 자기들끼리 돌아보더니 총을 내려. 그리고는 타카하시 대좌가 옆에 찬 칼을 뽑아 상대방에게 건네는 거에요. 항복하는거지. 그걸 우리 조선인 청년들이 다 지켜보는 중이었죠.”
(나레이션) 광복군 제7연대는 1945년 8월 7일 오전 7시까지 평양시내의 일본군경과 주요 행정시설을 장악했다. 일본군 평양 훈련소를 점령한 것은 강규준 중령이 지휘하는 광복군 제119보병대대였다. (나레이션 끝)
“아침까지 다들 한 잠도 못자고 있다가, 이제 일본어가 아니라 우리 말로, ‘한국인 청년들은 모두 연병장으로 나오시오!’ 이러는거에요. 다들 웅성거리며 걸어나가 연병장에 줄을 맞추고 서있는데, 일본군들은 전부 한쪽에 맨손으로 털썩 주저앉아있고, 그 근처에 카키색 옷에 총을 든 우리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거야. 담배를 꼬나물고 우리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게, 반갑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광복군 대대장이 걸어 나와서 말을 하는 것이, ‘평양이 오늘 새벽을 기해 광복군에게 점령된 상태다. 여러분들의 처우에 대해 상부에 문의 중이니 다들 잠시만 훈련소에서 자유롭게 머무르며 기다려달라.’ 그러는 거에요. 너 이 반역자 새끼들, 일본군에 입대했으니 전부 반역자다, 이러고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고, 말도 조곤조곤 하니까 그나마 안심이 되었지.”
“일단 취사반에 남아있는 쌀로 우리들끼리 밥을 짓고 식판에 되는대로 밥을 퍼서 연병장으로 나왔어요. 말로만 듣던 독립군들이 앞에 와있는데 밥을 먹으면서도 그 사람들 구경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었죠. 그 사람들은 또 자기들끼리 씨레이숀을 까먹더라고. 연병장을 두고 한쪽에서는 식판에 멀건 무국에 보리쌀밥을 먹는 우리랑, 씨레이숀을 먹는 광복군이랑 나뉘었어요. 일본군? 걔네는 밥 달라는 말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었지. 하하하!”
“광복군 대원들이 밥을 먹다가, 그 중 한명이 밥 먹다 말고 일어서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거에요. ‘야, 동구야!’ 이러는 거에요. 그러니까 식판에 밥먹던 우리 갑자년생 징집병들 중에서도 한 명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형님!’ 이러고 달려나가 와락 껴안는 거에요. 알고보니까, 그 두 사람이 사촌 형제지간이었던거지. 그 광복군은 ‘동구 이놈 새끼야. 삼촌이랑 숙모님은 잘 지내시고? 숙자, 동명이는?’이러고 물어보고, 동구라는 청년은 눈물만 뚝뚝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그때부터 광복군이랑 우리 사이에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지. 먹다 남은 콘비프 깡통도 건내주며 노나먹으라고 하고. 드롭스 먹어보라고 사탕도 한 알씩 쥐어주고. 다들 표정이 풀어지니까, 한결 동네 형님들 같이 친숙해보이더만.”
(나레이션) 한편, 평양 훈련소에서 막간의 가족상봉이 이루어지던 그 순간, 광복군 지휘부는 심각한 분위기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나레이션 끝)
“인자, 우리도 평양시에 입성하면서 든 의문이, 일본이 지나치게 조직적인 저항을 못하고 있지 않는가……. 혹시 이게 함정이라던가, 적의 기만 술책이 아닌가, 연대장님부터 시작해서 연대 장교들이 전부 바짝 긴장했죠.”
(나레이션) 실제로 일본군 제17방면군은 8월 1일 광복군의 신의주 탈환 이후 이틀 간 상황을 파악한 끝에 8월 3일, 평양에 주둔 중이던 미야기 지대를 청천강변으로 북상시켜 방어선을 구축케 한 이후로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 한반도 남부에 배치된 일본군 제17방면군의 편제에는 제주도에 배치된 제58군 3개 사단을 제외하고도 1945년 4월 만주에서 대구로 이동배치된 제120사단을 포함해 4월부터 신규편성 중이던 제150, 제160, 제320사단 등 총 4개 사단을 포함해 20만 명의 병력이 포함된 상태였다. (나레이션 끝)
"나중에 알고보니까, 58군이 17방면군에 항의를 했다는 거야. 이제 결7호 작전에 있어서 한반도 남부의 네 개 사단은 제주도 결전의 예비대 내지는 미군의 제주도를 우회한 남해안 상륙을 거부할 전력인데, 그걸 왜 빼느냐고. 예비대라니, 미 해군이 벅시글 거릴 남해를 뚫고 어떻게 증원할 것인지 정말 어이없지 않어? 게다가 북방이 뚫려서 광복군이 서울로 내려오는데 말이야. …...원래대로라면 17방면군이 58군의 상급부대이기도 하고, 17방면군 고즈키 요시오 중장이 58군 나가쓰 사히쥬 중장이랑 계급은 같지만서도 고즈키 중장이 육사 21기, 나가쓰 중장이 육사 23기라 상하관계는 명확했어. 그런데 이제 나가쓰 중장은 일본 수뇌부, 대본영이 주목하는 결7호 작전을 담당하는 핵심 지휘관이라 기세가 등등해진거지.”
“제주도 58군이 용산 17방면군에 뭐라고 항의를 했느냐면, 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는 17방면군 관할이 아니라 관동군 관할인데 관할을 침범해서 병력을 위로 올릴 수가 있느냐 그런거지요. 그러니까 고즈키 요시오 중장이 다시 관동군에 물어보니까, 인제 우리나라나 다른 국가들 군대같으문, 그걸 지금 왜 우리한테 물어보냐고 그럴 일이잖아요. 아니면 윗선에, 대본영에 물어보라고 하던지. 근데 그거를 관동군에 물어보는 거야. 관동군이 대본영 통제도 거의 안받는 독립된 조직화 되어버렸으니까 그 순간에도 거기 눈치를 본 거지요. 근데 또 관동군은 소련군이 이상한 낌새를 보이니까, 야마다 오토조 관동군 사령관까지는 보고가 올라가지도 않고, 참모장 하타 히코사부로 중장 선에서 검토하겠다 하고 말았다고 들었어요.”
(나레이션) 일본군 제17방면군은 예하부대인 제58군, 상급부대인 일본 관동군과의 사이에서 혼선을 겪다가 8월 4일, 광복군이 청천강 방어선을 돌파하자 뒤늦게 한반도 남부의 병력을 북쪽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 한국 광복군은 한반도 중부에 개전 첫날 투입된 공작대 제2지대를 동원해 일본군의 보급과 이동을 적극적으로 교란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군 제17방면군은 평양에 이렇다 할 병력 증원을 해보지도 못하고 8월 7일, 한반도 북부의 최대 도시인 평양을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나레이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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