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렉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펠릭스가 조용히 물어봤다.

'어린 딸' 스노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녀석은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했지' 스노리는 낄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펠릭스는 스노리의 얼굴에서 마치 울음을 터트리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노리는 멍청하다고 말해줬어. 엔지니어 길드가 여성에게 비밀을 가르쳐주는 때가 오느니 차라리 스노리가 엔지니어가 되는게 더 빠를꺼야'

'고트렉을 그렇게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였다고?'

스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트렉의 딸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고블린 때문이지, 어린 펠릭스. 고트렉이 고향에 돌아왔을때에는 이미 늦은지 오래였어. 그래서 고트렉은 그들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고트렉에게 원한을 품었지'

펠릭스는 고트렉의 심기불편한 시선을 예상하며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고트렉과 코일라(고트렉이 중간에 만난 키슬레프인)는 북부 바리케이드쪽으로 진창이 된 땅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그는 이번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가 예상됐다.

'나에게 털어놓을 이야기라도 있어? 만약 고트렉이 나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이야기라도...'

'고트렉은 동족살해자(킨슬레이어)야' 스노리는 마치 고트렉이 한때 갈색 머리칼을 가졌다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단히 말했다.

'드워프 군주와 그의 가문은 완전히 죽어버렸지. 그런 비밀은 숨기기 매우 어려운 법이야. 심지어...어...' 스노리는 머리를 굴리며 자신이 이전에 들었던 것을 떠올리려고 했다.

'금보다 말이야'

스노리의 목소리는 쉰 속삭임으로 줄어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의 손에 놓인 가방을 만지작 거렸다.

'만약 누군가가 마을에 경고를 해줬더라면. 만약 누군가가 고블린과 맞서싸워줬더라면' 스노리는 주먹을 풀었고, 가죽 가방에서 황금색 룬이 하늘 아래에서 빛을 내기까지 어루만졌다.

'스노리가 생각해보니...스노리는...'

펠릭스는 스노리가 말을 끝내는 것을 기다렸다. 펠릭스는 고트렉의 저지른 행위가 별로 놀랍지 않았다. 펠릭스는 원래부터 본인 종족의 귀족에게 별다른 존경심도 보이지 않았고, 만약 캣에게도 비슷한 운명이 닥쳤더라면 펠릭스도 틀림없이 고트렉과 동일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펠릭스는 슬프게 미소지었다. 적어도 시도는 했을테지.

스노리는 꽉 막힌 정신과 싸움을 벌이는 것 같았다. 펠릭스는 차분하게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에는 뭐가 들어있는거야, 스노리?'

눈이 공허하게 뜬 채로, 스노리는 가방을 넘겨줬다. 펠릭스의 손에서 축축한 가죽은 거칠게 느껴졌다. 가방에 황금으로 새겨진 룬이 반짝였다. 가방은 보기보다 무거웠고, 펠릭스는 실험삼아 가바을 흔들어봤다. 안에서 무언가가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펠릭스의 손가락이 가방의 잠금으로 움직였다.

'열어봐도 괜찮을까?'

스노리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펠릭스는 미소지으며 가방을 열었다. 펠릭스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가방 안에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가방에 새겨진 룬은 분명 고트렉에게 의미가 있다는 뜻이였고, 펠릭스는 가방 안에 무언가 중요하게 있다고 생각했다. 드워프 땀냄새가 안에서부터 흘러나오자 펠릭스는 기침했다. 펠릭스는 실망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스노리 노즈바이터는 반쯤 타버린 누더기들을 가방에 넣은 채로 올드월드의 절반을 걸어왔다. 펠릭스가 가방을 넘겨주려고 한 순간, 피범벅인 옷 사이로 육중한 황금 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펠릭스는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 목걸이를 꺼내고 가방을 스노리에게 넘겨줬다.

'아주 예쁜걸. 드워프제야?' 스노리는 어깨를 으쓱했고 펠릭스는 다시 유물로 시선을 돌렸다.

두꺼운 사슬에 드워프 룬들이 뛰어난 솜씨로 새겨져 있었다. 펠릭스는 손으로 사슬을 흝었다, 그는 보석상같은게 아니였지만, 그는 한눈에 유물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사실, 카락 카드린에서 고트렉이 그와 캣에게 반지를 선물한 이후로 이정도로 순수한 금과 장식은 처음봤다. 목걸이를 만지던 펠릭스의 손가락이 느리게 멈췄다. 새겨진 룬들의 모양이 익숙했다. 펠릭스는 숨을 참았다. 손가락을 펼치면서 그의 심장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의 반지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반지와 목걸이에 새겨진 룬은 똑같았다. 이 사슬은 한때 고트렉이 소유했던 물건이었다.

아니.

고트렉의 선물이었다.

가슴에서 소름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펠릭스는 사슬을 꽉 쥐었다.

'이건 누구 목걸이야, 스노리?'

'스노리는...기억나지 않아'

'고트렉 아내의 물건이였던거지? 내 말이 맞지? 어떻게 얻게된거야? 고블린들이 공격했을 당시에 마을엔 아무도 없었다고 했잖아'

늙은 트롤슬레이어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의 뭉개진 코에서 서리가 흘러내렸다.

'스노리는....기억이...'

펠릭스의 손은 오직 추위 때문에 마비된게 아니었다. 펠릭스는 목걸이를 다시 스노리의 가방에 넣었다. 그는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스노리가 어째서 자신의 수치를 잊으려고 했는지도 이상하지 않았다.

스노리는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다.

'오 스노리' 펠릭스가 힘겹게 말했다.

'무슨 짓을 한거야'

스노리가 안타까운게, 얘가 머리가 이상한거지 천성은 착한 드워프임

그래서 펠릭스나 다른 인간들에게도 멍청하지만 그래도 친절했음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고트렉의 우정, 고트렉의 인정이라고 할 정도로 고트렉을 소중히 여겼음

하지만 원래부터 정신 상태가 많이 좋지 못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됨

그리고 머리에 박힌 4개의 못은 스노리가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잊어버리게 만들었음

하지만 킨슬레이어 소설 초반에 스노리는 머리에 박힌 못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되고, 이후 이전 기억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함

그리고 스노리는 밀려들어오는 기억들에게서 공포를 느끼며 점점 무너져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