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내용: 스노리는 쓰로그에게 죽은 줄 알았지만 맥스가 마법으로 구해줌. 쓰로그가 고트렉에게 패배한 직후

'스노리는 고트렉에게 해야할 말이 있어' 스노리가 고트렉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펠릭스는 그토록 단순하던 드워프가 이토록 집중한 모습은 처음 봤다.

'네 수치에 대한 일이라면 별로 듣고 싶지 않아' 고트렉이 말했다. (여기서 고트렉은 스노리가 자기 죽음 빼앗아갔다고 징징대는줄 알았음)

펠릭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변화에 악명높을 정도로 저항력이 높은 종족이라지만, 고트렉은 그의 친구가 죽었다 살아났음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보였다.

'스노리,' 펠릭스는 최대한 달래는 어조로 말하며 늙은 슬레이어와 고트렉 사이에 섰다.

'내 생각엔 지금은-'

'아니야!' 스노리가 소리치며 고트렉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노리는 화난 손가락으로 고트렉을 가리켰다.

'아니야. 고트렉은 지금 당장 스노리 말을 들어'

펠릭스는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그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고트렉은 턱을 어루만지며 팔짱을 꼈다.

'듣고있어'

스노리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윗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스노리의 손에 무언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들려있음을 눈치챘다.

지그마시여, 안됩니다. 펠릭스는 기도했다. 그는 이미 이전에도 스노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펠릭스가 어린아이라도 되는것처럼, 스노리는 펠릭스를 밀치고 황금 목걸이를 던졌다. 고트렉은 바라보지도 않고 손으로 잡아챘다. 그외 외눈이 손에 들린 것을 보기 전에 스노리를 잠시 응시했다. 그의 호흡이 멈췄고 펠릭스는 두 드워프 모두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트렉의 표정은 마치 태양이 진 것처럼 어두워졌다.

'거미 여인는 스노리가 다시한번 친구들에게 둘러쌓였을때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어. 거미 여인은 스노리의 죽음이 오직 고통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해줬어'

고트렉은 손에 들린 목걸이를 꽉 쥐었다.

'이 목걸이를 어디서 찾았는지 말해라, 스노리 노즈바이터. 그리고 네 대답이 좋기를 기도하는게 좋을거다'

스노리의 눈은 붉게 튀어올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스노리는 떨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말은 분명했다.

'스노리는 그 날 그 자리에 있었어. 스노리는 보렉과 함께 황무지에서 고트렉을 잃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였어. 마을이 고블린들의 경고를 받지 못한건 스노리 잘못이야. 스노리 잘못-' 절박한 갈라짐이 목소리에 나타났지만, 스노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고트렉이 테인들을 살해하고 트롤슬레이어가 된 건, 전부 스노리 잘못이야!'

고트렉은 몸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건 분명 사실이 아닐거야' 펠릭스가 말했다. 방 안에 감도는 긴장감은 바람이 더 이상 불지 않으며 눈의 온도가 사람이 얼어붙을만큼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구스타프는 드워프들이 마치 미치광이들이라도 된 것처럼 그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펠릭스는 조카를 탓하지 않았다. 맥스는 지금까지 겪은 공포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한편 코일라는 예언이 읊어지는 광경을 두려움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펠릭스의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그의 검을 붙잡았다. 펠릭스는 손에서 힘이 풀리게끔 노력했다. 도대체 검으로 뭘 할 생각이였는가? 스노리를 위해 싸우겠다고? 아니면 고트렉을 위해 싸우겠다고?

'고트렉의 가족을 구하지 못한건 네 잘못이 아니야' 펠릭스가 차분히 말했다. 설령 두 드워프가 얼마나 고집스럽다 하여도, 이 어리석은 일은 펠릭스가 둘을 중재해준다면 아무런 폭력없이 끝날 것이다.

'헬가는 아직 살아있었어' 스노리가 말했다.

펠릭스는 고트렉의 도끼의 사슬이 움직이는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드워프는 도끼를 너무 쎄게 쥔 나머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꼬맹이는?'

펠릭스의 마음 속 또 다른 작은 부분이 무너져내렸다.

꼬맹이

고트렉이 캣을 부를 때 사용하던 이름이었다. 샬리야의 눈물이여, 분명 고트렉은 자기 딸을 그리 불렀을테지.

'구르나는 어찌됐나, 스노리?'

스노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젖어있었다. 그의 뺨은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입을 여는건 댐이 무너져내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내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란 말이다, 이 미친새끼야'

스노리의 눈물이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스노리는 망치를 들어올렸다.

'그건 스노리의 잘못이 아니...' 스노리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말을 다시 바로잡았다.

'스노리의 잘못이야. 헬가는 불에 탄 상태였어. 연기가 가득했고. 스노리는 그녀를 고블린으로 착각했어. 하지만 결국 스노리 잘못이야'

펠릭스는 스노리의 다음 말에 그의 마음이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고트렉이 슬레이어가 된 건 스노리 잘못이야. 스노리가 헬가를 죽였어'

근육이 하나씩 움직이더니, 고트렉의 얼굴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원시적 분노로 일그러졌고 펠릭스는 이대로 고트렉의 앞에 서있으면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고트렉은 스노리가 들고있는 망치를 바라봤다.

'나라면 방금 한 말을 취소했을거야'

인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앞으로 오게될 것을 알고 있는 스노리는 자세를 취했다. 고트렉은 이빨을 들어내며 룬-도끼를 휘둘렀다.

'사고였어' 펠릭스가 온힘을 다해 소리쳤다.

'사고였다고 말해줘, 스노리. 그리고 고트렉, 너에게 스노리만한 친구는 이 세상에 없을거야'

'난 스노리 노즈바이터보다 훌륭한 친구들을 죽여봤어' 고트렉이 말했다.

펠릭스는 두 친우가 원을 그리고 있는 광경을 고통스럽게 쳐다봤다.

더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다.

고트렉이 왼쪽으로 움직이는 척 하더니 스노리의 오른쪽 어깨에 일격을 가했다. 눈물로 눈이 반쯤 가려진 채로, 스노리는 고트렉의 공격을 늦게 눈치챘다. 스노리는 망치로 공격을 막으며 주먹을 고트렉의 턱에 날렸다. 고트렉은 뒤로 물러나 재정비한 다음, 도끼의 끝부분을 내지르더니 스노리의 겨드랑이 아래의 무언가를 조각냈다. 늙은 슬레이어는 신음하며 공격을 겨우 막아냈고, 망치와 철퇴를 휘둘렀다. 고트렉은 차갑게 피어오르는 분노로 공격을 막아냈다.

'멈춰' 펠릭스가 애원했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게 이젠 스노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순 없어! 펠릭스는 그의 손목을 꼬집었다. 이건 분명 꿈일거야

두 드워프는 휘몰아치는 눈 속에서 비통한 침묵을 품고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싸움이 시작되 ㄴ곳에서 거의 움직이질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간간이 근육과 뼈가 뭉개지고, 스노리가 무너질듯한 울음을 터트리는 게 전부였다. 둘은 비등해보였다. 스노리는 체급에서 이점이 있었고, 맥스의 치유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고트렉의 도끼는 불맇나 점들을 전부 이겨냈다. 펠릭스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펠릭스는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펠릭스는 감히 개입할 수도 없었다. 스노리는 고트렉의 머리로 망치를 휘둘렀다. 흐느끼고 있는 스노리의 공격은 막혔다. 스노리는 곧바로 철퇴 의족을 내질렀고 고트렉은 무릎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회피했다. 스노리의 강철 의족은 눈과 동전더미에 내리꽂혔다. 스노리는 팔을 뻗어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고트렉이 치명타를 안겨줄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고트렉도 분명히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슬레이어는 약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도끼 끝부분으로 스노리를 넘어뜨릴 뿐이었다.

펠릭스는 고트렉이 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일라와 다른 이들은 모를테지만, 펠릭스는 슬레이어를 오랫동안 알아왔다. 만약 고트렉이 참는게 아니라면 스노리 노즈바이터에겐 제대로 된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스노리와 제대로 싸워' 스노리가 말했다.

'스노리가 슬레이어답게 죽게 해줘. 스노리가 선조들의 전당을 걸을 수 있게 해줘. 스노리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게 해줘'

펠릭스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로 바라봤다. 분명 스노리는 도저히 고트렉의 행동이 배려심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눈이 좁혀지며, 고트렉은 포효를 내지르며 낮게 내리쳤다. 스노리는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고트렉의 공격이 이어졌다. 또 한번 스노리는 공격을 막았지만, 고트렉의 도끼가 끊임없이 다가오며 그에게 반격을 할 기회는 없었다. 스노리는 폭풍같은 공격에 열세에 처했다. 스노리는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흐르며 그의 뭉게진 코를 막은 상태로 맹렬히 싸웠다. 두 드워프 모두 죽고싶어함에도, 둘 중 누구도 서로를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슬레이어였다.

죽을때까지.

고트렉의 스타메탈 날이 스노리의 강철 의족을 접합부위에서부터 잘라냈다. 스노리는 휘청거렸고, 그의 눈물범벅인 얼굴에서 멍청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고트렉은 입을 꽉 다물고 스노리를 넘어뜨렸다. 늙은 드워프는 위를 올려다봤다. 축축한 눈동자가 고트렉의 외눈과 마주쳤고, 오직 안식만을 보았다.

안돼.

펠릭스가 생각했다.

안돼, 안돼, 안돼-

펠릭스는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도.

펠릭스는 두 눈을 손에 파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은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것을 희미하게 만들었지만, 그의 아래로 펠릭스는 그의 발밑의 눈들이 피로 적셔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고, 그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볼 일은 다 봤어, 인간. 그들이 나에게 카락 둠의 여정을 말하게끔 내버려둬서는 안됐어. 난 내가 후회하리라는 걸을 알고 있었는데'

두 눈에서 손을 떼고 수염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펠릭스는 고트렉을 올려다봤다. 고트렉의 외눈은 죽어있었다. 그의 얼굴은 펠릭스가 알아보지 못할 죽음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고트렉의 목소리는, 룬만큼이나 분명했다.

그리고 목소리는 어떠한 반대도 용납하지 않았다.

'내 맹세하노니, 너는 네가 있어야할 꼬맹이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킨슬레이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