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동화라는 말이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를 떠올릴 사람도 많겠지만

동화보단 만화를 좋아하는 편이기에 아기공룡 둘리가 먼저 떠올랐다.

고길동이 불쌍해보이면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라는 바로 그 만화.

어른만화라는 말은 따로 없지만 어른이 읽었을 때 결이 다르게 느껴지는

그런 만화를 소년만화에 빗대어 어른만화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어른만화를 제대로 그리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아기공룡 둘리에서 고길동의 고통과 슬픔이 조금만 더 선명하게 묘사

되었다면 그건 이미 소년들이 읽기 버거운 만화가 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좀 더 희미하게 묘사되었다면 그만큼 어른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둘리는 애초에 어른들의 공감을 얻기위한 만화는 아니었지만

본디 그런 양면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만화라면 그 희비의 명도조절에

따라 어른만화의 완성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만화를 두고 완성도라는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밸런스를 세심하게 유지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추천을 겸하여 쓰는 모 어른만화의 리뷰글이다.

언젠가부터 고양이를 털바퀴라 부르는 사람이 생겼다.

마치 어린이들의 손에 총을 쥐어주듯이 의도를 가진 단어

를 무심한 이들에게 들려주자, 그것은 큰 반향을 일으킨다. 

총과 칼은 사람을 죽이지만 언어는 마음을 죽이는 것이다.

한데 현대의 우리는 이미 많은 언어 속에 갇혀있고 그 언어를 벗어난

감정과 생각을 떠올리기 힘들다. 

아쉽게도 언어화하는 것은 보통 나쁜 쪽의 일인 경우가 많다.

학교 왕따를 예를 들면, 만약 어느 누군가를 구별하고 따돌리는 그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따돌림은 쉽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누군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단어보다는 누군가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단어

의 힘이 훨씬 강하다. 말이 사고와 감정을 제한한다는 것은 주로 좋은 쪽의 

사고와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작 중 버그만이 언급한 내용도 이것과 유사하다. 무언가를 언어화하기 전에 

내면의 감정과 사고에 몸을 맡기는 것은 삶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

평소 수다쟁이인 캐릭터가 그런 말을 한다는게 재밌기도 하지만 아마 이 부분은

그런 넌센스를 위하여 버그만에게 대사를 맡긴 건 아닐 것이다.

이 만화는 대사량이 엄청나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대사없이 지나가는 편인데

이것은 버그만의 평소 대사량이 엄청나지만 그 와중에 그런 의미심장한 대사를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만화를 처음 봤을 때 놀란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이 말많은 만화에서 아무도 미즈키와 모모세의 '가난'을 언급하지 않아?!

그들이 사는 달동네를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하고 그와 대조된 부유한 우사의 집을

실컷 묘사해놓고서는 아무도 그들의 빈부에 관해 직접 말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그들의 가난을 언어화했다면 그것은 진짜 '가난'이 되었을 것이다.

힘들지만 열심히 알바하고 있고 동생들도 잘 돌보고 있으며 항상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미즈키의 삶은 그저 가난한 삶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들의 빈부차이를 언어화했다면 그것은 미즈키와 우사를 멀어지게 

했을지도 모른다.  언어화를 거치지 않은 이러한 만화속 장치들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는데, 미즈키와 사이가가 언덕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미즈키의 말에

사이가는 잠시 정색했을 뿐 구태여 그 감정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언어화하지 않는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은 캐릭터들 뿐 아니라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답답하고 애매모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뭔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복잡한 감정을 사이가가 숨기고 있다 믿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만화는 언어화된 부분만 읽어도 충분히 개그스럽고 재밌다.

그런데 언어화되지 않은 부분을 살펴봐도 보다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작가를 빛과 어둠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 만화의 경우는 그 명도조절이 제대로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읽어도 괜찮아보인다.

또 하나 든 생각은 미즈키나 모모세들이 언어화하지 않은 부분은 

작가의 인위적인 장치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언어화되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고등학생, 갓 시작된 청춘의 한가운데 서 있으며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언어화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