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추종자 '수구리' 주장 비판
수구리 : 임나는 대마도다
책사풍후 : 왜?
수구리 : 일본서기 보면 임나는 북쪽으로 바다로 가로막혀있고, 경주의 서남쪽에 있대 근데 김해는 경주의 남쪽이고 북쪽은 그냥 육지야
그러니까 임나는 대마도야
책사풍후 : 응?
금관가야 북쪽은 바닷물이 들어와서 강이 폭이 굉장히 컸음
금관가야(=임나가라=금관가라=구야한국=금관국=남가라=수나라=배벌) 수도가 김해 양동리랑 대성동인데
북쪽 보면 대산만 지역은 그냥 바다였음
고로 일본서기에서 임나 북쪽은 바다로 막혀있다는 기록은
사실로 증명됨
그리고 일본서기에선 임나가 신라의 수도 계림(서라벌)의
서남쪽이라는데
실제로 지도를 보면 서남쪽 맞음
임나가 대마도라고?
임나가 대마도라면 광개토가 보낸 기병보병이 대마도까지 쳐들어갔다는 소리임
그럼 기병 보병 5만이 배 타고 대마도 쳐들어갔다는 소리인데
광개토가 임나가라 종발성 정벌한게 서기 400년 일인데
문제는 그로부터 8년 후인 서기 408년 삼국사기 신라본기 실성이사금 시대 기록을 보면
실성이사금이 왜군이 대마도에 신라 지속적으로 칠 군사기지 짓는거 보고 열받아서 정벌 하려다가 쫄아서 관둠
ㅡ.ㅡ
이런데도 임나가 대마도라고?
권 제3 신라본기 제3 > 실성(實聖) 이사금(尼師今) > 7년 2월 대마도의 왜인 군영을 정벌하려다 그만두다(0408년 02월 (음))
대마도의 왜인 군영을 정벌하려다 그만두다 ( 408년 02월(음) )
7년(408) 봄 2월에 왕이 왜인(倭人)이 대마도(對馬島)註 001에 군영을 설치하고 무기와 군량을 쌓아 두어 우리를 습격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예 군사를 뽑아 적의 군영을 격파하고자 하였다. 서불한(舒弗邯)註 002 미사품(未斯品)註 003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무기는 흉한 도구이고 싸움은 위험한 일이다.’라고 합니다. 하물며 큰 바다를 건너서 남을 정벌하는 것은 만에 하나 이기지 못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험한 곳에 의지하고 관문(關門)을 설치하여 〔그들이〕 오면 곧 막아서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유리해지면 곧 나아가 그들을 사로잡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남을 유인하지만 남에게 유인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그 말에 따랐다.
七年, 春二月, 王聞倭人於對馬㠀校勘 001置營, 貯以兵革資粮, 以謀襲我, 我欲先其未發, 㨂精兵擊破兵儲. 舒弗邯未斯品曰, “臣聞‘兵㓙校勘 002噐, 戰危事.’ 况渉巨浸以伐人, 萬一失利, 則悔不可追. 不若依嶮設䦕, 來則禦之, 使不得侵猾, 便則出而禽之. 此所謂致人而不致於人, 䇿之上也.” 王從之.
註 001
대마도(對馬島): 한반도와 일본의 큐슈[九州] 사이에 있는 섬. 행정구역으로는 일본 나가사키 현[長崎縣] 쓰시마 시[對馬市]에 해당하며 일본어로 쓰시마 섬이라고 한다. 본서에는 여기 1차례 나오는데 박제상전에 보이는 ‘해중산도(海中山島)’를 대마도로 보기도 한다.
註 002
서불한(舒弗邯):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일 높은 이벌찬(伊伐湌)의 이칭이다. 이벌찬에 대해서는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이벌찬에 대한 주석 참조.
註 003
미사품(未斯品): 실성이사금 2년(403) 정월조 기사의 주석 참조.
그 후 수구리는 책사풍후의 게시글,댓글을 모조리 삭제하고 자기 글 , 댓글만 남겨두는등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아래 링크 누르면 수구리의 서식지로 갈 수 있음.
갤러리 이름이 '고조선의 역사와 영토' 갤러리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tnrn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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