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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피카대회]친구의 여친과 만났다.앱에서 작성

FemaleOnly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13 14:27:32
조회 725 추천 31 댓글 3
														

지현은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였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가십거리에 호들갑을 떨고 실없는 농담에 꺄르르 맑은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애. 반이 갈라져도 가는 길이 같다는 걸 안 후엔 자연스럽게 만났고 못다한 말은 전화로 주고받다 부모님께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그렇게 가장 순수하고 예쁜 시절의 일부를 함께해도 연락은 점차 뜸해져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메세지는 거의 한달 전인 그녀의 생일이다. 생존신고를 하듯 건네는 안부인사에 대화다운 대화는 약속장소 근처로 맛집을 찾았던 게 다였다. 수연이 지현을 밖에서 만난 것도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넌 참 쉬운 여자야."
"뭐래."
"내가 뭘 하다와도 이렇게 반겨주잖아."
"알면서 그랬다고? 이게 진짜!"
"하하하하하."

살다보니 그랬다. 수연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한 채 머그컵의 손잡이를 검지로 쓸어내렸다. 자조섞인 한숨이 흰 머그컵 안 삼각형의 티백처럼 가슴 속에 내려앉았다. 뜨거운 물 위로 히비스커스 잎이 영롱히 붉은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도심 외곽의 한적한 카페 안. 맞은 편의 여자는 푹신한 소파에 등받이가 없는 것처럼 앉은 채 수연을 응시했다. 부는 바람에도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을 듯 차분한 인상과는 달리 감추지 못한 불안에 속눈썹이 떨렸다.

[저는 지현이와 만나고 있어요. 반년 전부터요.]

어느날 갑자기 SNS DM으로 연락해 온 여자는 자신을 지현의 여자친구라고 했다. 수연은 지현에게서 그런 낌새는 느끼지 못했다. 혹시 몰라 지현의 계정을 살펴도 먹고 마시고 놀러간 사진뿐이었다. 올해들어 부쩍 늘어난 셀카 몇장을 빼면.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지현은 혼자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갑작스러운 커밍아웃도 놀랄 일이었지만 정말이라면 그녀가 연락해 올 이유는 뭔가. 그것도 연락이 뜸해진 고교동창에게. 수연은 주저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부재중이라 메세지만 남겨야 했다.

오지않는 답장에서 수연의 경계심을 느꼈는지 여자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지현이 먹고 마시고 놀러간 곳들의 사진의 앵글 밖. 부자연스럽게 잘린 셀카 너머. 그녀의 손을 잡고, 볼을 찌르고, 세트인 잔을 쥐고 있는 낯선 여자가 있었다.

[그게 저에요. 배민아.]
[이렇게 연락을 드린 건 급한 일 때문이에요.]

[지현이가 사라졌어요.]

그 후로는 뻔한 일. 몇주간 업데이트 되지 않는 SNS와 물어물어 찾은 지현의 어머니와 통화에서 수연은 알아차렸다.

지현은 올해 초 회사와 가까운 자취방으로 독립했고 어머니도 알 정도로 친한 언니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 그녀가 지현의 여자친구였다.

"지현이는 수연씨 얘기를 자주 했어요. 자기 인생의 일부라고요."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네요. 아시다시피 지현이는 친구가 많아요."
"그래서였겠죠. 사라진 지현이 곁에 누가 있을까요."

수다스럽고 바보같을 정도로 잘 웃는 여자애. 지현이는 학창시절부터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모르는 얘가 없었다. 웃음소리가 특이해서 붙은 별명이 3반 부엉이. 체육대회에서 줄넘기하다 넘어진 얘. 친구들이랑 빈 교실에서 삼겹살 구워먹기로 해놓고 고기 대신 머리카락을 태워서 선생님들 사이에선 부르스타 김으로 불렸다.

그만큼 친구도 많고 졸업 후 사회로 나오면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새끼새처럼 쉴새없이 뽀르르 나가선 진흙이나 먼지를 묻힌 채로 돌아와 응석을 부렸다. 수연은 매번 바뀌는 친구와 애인들 대신 한걸음 뒤에서 둥지를 지켰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지만. 수연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으흠! 지현이 실종신고는 했나요?"
"그게... 사실 방에서 이런 걸 발견했어요."

금방이라도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낼 듯 위아래로 길게 뻗어진 글씨체는 지현의 것이었다. A4용지 위로 세 줄 정도의 머리를 식히고 올테니 찾지 말라는 내용. 하루아침에 집도 비우고 떠나기엔 불친절한 이유에 민아가 납득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지현이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어요. 아무도 못 알아보고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요. 이번에도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런 낌새는 없었어요. 종종 연락하는 걸 잊어버리긴 했지만 사귀면서는 한번도 약속을 어긴 적도 없고요."

민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깍지 낀 손톱이 딱딱 소리를 내며 마주쳤다. 덧발린 분홍빛 매니큐어가 손톱 끝부터 안쪽으로 긁어낸 것처럼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수연씨도, 가족들도, 애인인 저까지 모르게 떠나는게 가능한가요?"
"불가능한 건 아니죠. 저는 보고싶다거나 사고쳤다는 얘기만 들었지 자취방 일도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도 처음 듣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곤 해도 적어도 저한테는..."
"정말 숨기려고 하면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수연은 휴대폰을 탁자 위로 건넸다. 로그인 된 지현의 SNS엔 불규칙한 날짜로 비공개 된 채 업로드 된 게시글이 여럿 있었다. 민아의 검지가 바삐 움직였다. 스치듯 내려가는 창에는 고된 업무와 파벌 사이에서 불안정한 회사생활, 집안의 결혼 압박, 빠듯한 생활비 등의 스트레스와 불만이 욕설로 빼곡했다. 그 중에는 민아가 알지 못한 부분도 있었는지 점차 사색이 되어갔다. 수연은 긴장한 듯 민아의 안색을 살폈다.

"이... 이걸 어떻게... 수연씨도 혹시 알고 있었어요?"
"낌새라고 하셨죠. 저한테 연락이 올 정도면 도움이 필요해서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수연씨가 IT쪽 일을 하신다고 했던게 그럼?"
"제가 열어드린 건 비밀이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의 손가락이 멈췄다. 화면엔 지현의 자취방 안에서 침대에서 나체로 잠든 여자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흐트러진 침대와 배게의 줄무늬 패턴은 확인사살을 하듯 선명했다. 시간을 거슬러 가지 않아도 아는 사람. 고교시절 지현이 자주 놀러가던 방송부의 후배였다. 도도하고 차가웠지만 친한  직속선배들을 제외하면 지현은 특이케이스였다. 수연이 본 건 졸업식이 마지막이었다. 후배는 앞머리는 금발에 뒷머리가 적갈색인 투톤이었고 거친 피부지만 미처 가리지 못한 엉덩이에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후... 지현이와 오래 사귀었지만 지금은 놀랄 일 밖에 없네요."

수연은 짧은 한숨을 뱉으며 민아의 손 밑으로 휴대폰을 빼냈다. 민아의 질끈 감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사진을 확대하자 귀퉁이의 탁상 거울 속에 검은색의 앞머리가 비쳤다. 수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뒤집어 탁자 위로 내려놨다.

"괜찮으세요?"
"전 괜찮... 아뇨, 안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라도 그럴거에요."

민아의 얼굴을 덮은 손바닥 사이로 흐느끼듯 신음이 새어나왔다. 갑자기 사라진 애인에게 불어온 바람. 그게 지나갔는지 아직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뒤를 쫓아야 했다.

"뭘 그런다는 거에요?"
"지금 느끼는 감정들. 묻고 싶은 말들 전부 다요. 어쩌면 이게 처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찾아야겠어요. 일단 이 여자부터."
"제가 할게요. 아는 동생이에요."

수현이 지현과 후배를 간단히 설명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흡연실에 들어가 전화를 걸더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민아는 믿기지 않는 상황에 한숨을 쉬다 뒤로 젖혀 소파에 지친 몸을 기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현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쉬는 날에도 지현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자주 떴고 민아가 가져다 주기도 전에 괜히 말을 돌리며 가로채갔다. 시간 외 업무라며 부지런히 해주던 답장은 며칠 후엔 알림이 비공개로 설정 되어있었다. 전화가 오면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기 싫다고 꺼버렸고 못보는 동안 부족한 사랑을 채워야겠다고 끌어안은채 침대로 밀어붙였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구도지만 노력이 가상해서 못 이기는 척 넘어가줬다. 민아는 가벼운 손짓에도 기쁜듯이 흔들리던 지현의 적갈색 머리칼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속 없이 마주 웃었던 자신을 책망한 민아의 눈에 수연의 숄더백이 들어왔다. 검은 소가죽 안에 고개를 내밀듯 튀어나온 민트색 장지갑은 어쩐지 익숙했다.

민트도 파스텔톤처럼 유행이 지나서일까. 열 걸음이면 한 바퀴를 도는 지현의 방을 채운 민트빛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중 몇개는 커플로 하자며 졸랐지만 초반이라고는 해도 30대. 부담스러워하는 민아의 거절에도 이미 사 버린 말 모양의 키링은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민트색 키링이 갈색이 되도록 두드리는 사이 수연이 멘솔향을 풍기며 소파에 당겨 앉았다.
수연의 움직임에 옆머리가 흘러내려 끝자락이 귓바퀴를 간질였다.

"유감이에요. 지현이가 바람을 핀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 후배라는 녀... 여자는 무슨 말을 하던가요?"

단호한 질문과는 달리 민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후배도 최근에는 지현이를 만난적 없대요."
"거짓말!"
"질린듯했어요. 여자친구가 생겨서 그만두자고 하니까 그게 더 스릴있지 않냐고 했다는데..."
"그만! 이제 더 말 안해도 알겠어요."

민아는 목끝까지 차오른 감정을 억눌렀다. 수연의 시선은 민아가 움켜쥔 키링에 머물러있었다. 그녀가 손에서 힘을 빼자 소가죽 위로 옅게 손톱자국이 남았다.

"미안해요.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서."
"아침까지만 해도 무슨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던 게 이젠 어디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을지 고민해야 된다니... 최악이야."
"지현이가 그렇죠 뭐. 늘 사고를 치면 어쩔 줄 몰라서 절 불렀어요. 사귄 후로는 민아씨가 대신 했겠지만요."

민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맺히려던 차. 거칠어진 손등이 물기를 훔쳐냈다. 수연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네요."

닦아도 그 자리를 채우고 넘치는 눈물에 수연이 숄더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민아는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에 고개를 돌리고 웅크리다 이내 어깨를 들썩였다. 수연은 어설픈 위로 대신 식어버린 머그컵을 들었다. 히비스커스 향이 혀를 타고 코끝에 감돌았지만 쓴 맛은 지워지지 않았다.

소리없는 울음이 잦아들 무렵. 수연이 천천히 홀짝이던 잔을 비우고 내려놨다. 화려한 향에 어울리지 않는 맛이었다. 식어버리니 그마저도 빛이 바래고 향이 날아가 볼품없었다.

"지현이는 돌아올 거에요. 제 발로 떠났다면요."
"차라리 실종이라 믿을 때가 나았어. 안 그래요?"
"그럴지도 모르죠. 가족들이 찾지 않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어요. 싸우고 나왔다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그렇게 사랑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저도... 아니, 쉬는게 좋겠어요. 먼저 일어날게요."

수연은 지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아는 이제 손수건을 쥔 팔을 들 힘도 없는지 눈물이 흐르는대로 내버려뒀다. 수연이 처연히 내려다보다 계산서를 집어들었다.

"정말 사랑했다면 그래도 한 번은 믿어보겠어요."
"대체 어떻게? 나한테 그래..."
"제가 지현이와 사귀고 있었다면요."

스쳐지나가며 흘린 말에 민아는 고개를 들었다. 수연은 이미 카운터에 서 있었다. 손에 들린 민트색 장지갑은 브랜드 로고와 지퍼가 금색이라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지현의 것과 같은 상품이다. 카페 직원이 계산을 하는 사이 수연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나야. 자기 이제 들어갈건데 뭐 필요한 거 없어?"

쾌활한 톤은 여지껏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방금까지 친구의 이면에 충격 받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통화중인 수연과 한순간 시선이 마주친 듯 했지만 입가의 미소는 여전히 선명했다.

"말하기 힘들면 그냥 톡톡 두드리라고 했잖아."

유리문 너머로 멀어지는 수연을 눈으로 쫓으며 멍하게 매만진 손수건에 이물감이 들었다. 펼쳐보니 네 귀퉁이에 붉은 점이 손가락 두마디 정도의 타원형으로 찍혀있다. 민아가 손수건을 다시 접자 크기는 다르지 붉은점이 찍힌 자리가 겹쳐졌다.

"쇠냄새... 이건 피?"

불길한 예감이 민아를 관통했다. 휴대폰을 켜 SNS를 열었다. 수연의 DM을 확인하자 자는 후배가 찍힌 사진이 떠 있었다. 머릿속에서 상황을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보냈다. 실종사실을 알자마자 잠수라고 생각할 정도로 알기 쉬운 친구였지만 중요한 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수연의 언행은 수상쩍었다. 오랜만에 접했다곤 해도 친한 친구의 실종에 걱정보다는 의심이 앞섰고 중요한 결정을 비밀로 했다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민아의 감정과 반응에 집중하고 지현의 사생활을 캐는데 익숙해 보일정도로 거리낌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은 한 가지 가설로 설명이 됐다.

민아가 연락하기 전부터 수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양쪽에 하나씩 나란히 있어야 할 줄무늬 배개는 후배가 베고 있는 하나에 빈자리를 채운 건 사자 인형이였다. 잠든 후배는 지나치게 창백했고 살짝 드러난 목덜미에는 멍이 들어있다.

지현이가 사라진 건 혹시 사고에 휘말린 게 아닐까.

불길함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싸늘하게 훑었다. 욕을 하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넘어가든 민아는 그저 어린 연인을 보고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시 만날수만 있다면.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릴리고 빅-데이터로 백붕이들이 좋아하는 악당 요소를 추려봤습니다

여백의 상상은 자유입니다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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