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주인공 같지 않은 주인공이라면, 루크는 라이벌 같지 않은 라이벌 같다.

루크는 여타 라이벌 캐릭터들에 비해 멘탈이 약하고, 배신 때릴 생각을 한다면 모를까 으르렁거리는 일 없이 주인공과의 관계도 양호함. 그나마 라이벌 같은 면이라면 힘을 추구한다는 점. 근데 이 힘이 듀얼 실력뿐만 아니라 권력도 해당됨.

보통 라이벌들은 힘이야말로 정의라는 식으로 행동함. 루크도 무언가를 바꾸고 싶으면 일단 강해지거나 높은 자리에 서보면 된다고 주장하고,

이를 위해서 유가의 도움을 받거나 유가의 자리를 빼앗을 계획도 세우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령 밑바닥부터 시작해서라도 왕의 자리에 오르려는 집념까지 가졌음. 근데 이렇게 해서 뭘 하려는 목표가 없음. 이전에 부회장 됐을때를 생각해보면 그냥 무지성 권력남용에 불과함.

근데 64화를 보고나서 '지금'의 루크가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알겠더라.

본편에서 나왔다시피 루크는 가업에 얽매이기 싫다고 호소하는데, 이에 대해 가족들의 반응은 이럼.

-증조부 : 이 좋은 걸(톱니바퀴) 왜 마다하니? 세상은 톱니바퀴와 같고, 너의 길도 톱니바퀴뿐이다.

-누나 : 한 사람 몫도 못하면서 무슨. 그런 건 날 이기고나서 해라 or 너는 듀얼로 혼쭐을 내주마.

루크 입장에서는 환장할 일임. 증조부는 '내가 좋아하는 걸 남이 싫어할 리 없다'는 걸 전제로 설득하려 드니(본인은 세상을 톱니바퀴에 비유해 친근감을 주려 했겠지만) 루크 입장은 신경쓰지 않고 싫어하는 말(톱니바퀴)만 골라서 함.

타이가에 경우에는 사실 표현이 거칠뿐이지 루크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아낌.

루크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찾고, 루크가 힘들지 않을까 지켜보기도 하고, 잘못된 길로 갈 것 같으면 붙잡기도 함. 이번 듀얼도 혼내주려고 그런거고.

근데 문제는 타이가가 루크의 단점만 보는 것 같음. 루크를 바보라고 부르는건 그렇다쳐도, 루크의 성장을 인정하지 않음.

실력 차이를 보자면 타이가는 고하 7초에서 제일 강하고, 타이가랑 같이 듀얼해왔던 아사나는 고하 6초 최강. 둘의 실력은 호각일텐데

유가는 이 둘을 한번씩 이겼고, 루크는 그 유가를 2번 이겼음.

전적으로만 실력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루크는 2화에서 언급했다시피 많은 패배를 거치며 실전으로 실력을 키워왔으니 어릴때에 비해서 확실히 강해졌음. 유가와의 듀얼도 대회에서 아사나랑 직접 봤으니 어느정도 알텐데, 정작 64화의 듀얼을 보면 타이가는 루크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음.

로아와 겟타의 에피소드를 보면 알지만 이런 재대결을 다룰때는 상대가 전보다 강해졌을거란 전제가 있으니까 변수를 고려할텐데,

타이가는 루크하고 듀얼할때 보면 평소 듀얼할때처럼 '제법인데, 하지만 아직이다!'는 식으로 싸우는 느낌이 아니라

'그래서? 더 없냐?'는 식으로 시큰둥하게 반응함.

아예 '어차피 질텐데 하고 싶은 말 있음 해보라'는 식으로 아예 자신의 승리를 전제로 임하고 있음.(이때 아직 2턴 밖에 안됨.)

왜냐? 이미 압도적으로 강한 타이가 본인의 눈에는 루크가 얼마나 강해졌든 약해보이긴 마찬가지니까. 실제로 타이가는 루크멘이 나오기 전까지는 루크가 첫턴부터 파곳핑거를 쓰러뜨려서 선방했는데도, 바로 다음 턴에서 부활시킨 뒤 콤보로 데미지 주고 관통강화까지 시키는 식으로 실력차가 확연했음. 물론 이때 루크의 패는 몬스터 3장, 전투 때 발동하는 함정 2장이라 카드 하나 더 만드는 매직을 쓰지 않는 이상 더 보여줄 것도 없었고.

하지만 중요한 건 누가 강한지가 아님. 루크가 아직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한다면서 루크의 호소를 투정이라 여기고 흘러넘기는데, 문제는 이 한사람 몫의 기준이 타이가 본인이라는거임. 강함의 기준은 너무 높으니까 루크가 얼마나 강해졌든 성이 차지 않는거지. 루크가 훈련한다고 해도 타이가가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수련할테니, 사실상 강함의 격차는 결코 좁혀지지 않음. 제논의 역설처럼.

그러니까 타이가 역시 증조부처럼 말이 안 통함. 애초에 루크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귀를 막으면 소용없는거지. 이 둘이 루크를 생각해주기는 하는데, 루크의 편이 되어주지는 못하고 있음. 오히려 루크의 도로를 가로막고 옭아매는 존재에 가까움.

그렇게 따지면 루크가 왕(힘)을 추구하는 이유, 자기중심적인 이유, 그리고 마땅한 목표가 없는 이유가 전부 하나로 정리됨. '가족'.

가족에게서 벗어날 힘(높은 자리)을 추구하고,

가족들이 자기 얘기를 안 들으니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일단 '가족한테서 벗어날 길만 찾는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당장의 목표가 최우선이니 목표를 찾지 못하는거임.

근데 목표가 없으면 또 가족들이 더 보채겠지.

목표가 없어? 그럼 가업을 이으렴.

목표가 없어? 그럼 넌 아직 멀었어.

고민이 있어도 가족들한테 털어놓을 수 없어. 다 자기 얘기만 하니까. 상담해봐도 결론은 고민을 들어주는 쪽의 주장으로 끝나겠지.

그렇다고 루크 혼자만 변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님. 듀얼이 끝난 뒤에도 보면 타이가는 여전히 루크를 인정하지 않음.

지기 직전의 표정을 보면 자신이 밀린다는 건 알고 있음.

하지만 자길 이기고 떠나버린 루크(멘)를 보고 이런 식으로 강해진거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하는 거 없이 그냥 젠장이라며 이를 갈 뿐.

증조부는 루크가 집 나가는 모습보다는 톱니바퀴 생각뿐임. 물론 루크의 퓨전을 보고 역시 카미조 가의 일원이라면서 어느정도 인정은 함.(어차피 집에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압박일지도 모르지만..)

하루카는 이 말에도 딱히 루크가 강해졌구나 하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았음.

(사실 이런 면에서 진짜 가족답긴 하지. 루크도 초반에는 일침 같은 것도 해서 좋은 녀석 같았는데 사실 자기 할 말만 하는거였고, 타이가도 뭔가 강자로서 직구로 말하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기 말만 하는거고. 무조건 옳거나 무조건 틀리다고 볼 수 없는 양면적인 모습이 진짜 닮았음.)

어쨌든 이렇다보니 루크는 가족을 증오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불편하게 여기고 있음.

이게 어딜봐서 가족이랑 듀얼하는 표정이야? 루크가 그동안 몇번이나 멘탈 깨졌어도 이 정도로 겁에 질린 적은 없었는데.

거기다 카이조랑 듀얼했을때도 자기 가업이랑 관련된 말을 들었을때, 그리고 64화에서 톱니바퀴를 보자마자 쟝고 못지 않게 발작하는 걸 보면 루크가 지금의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음.

문제는 루크가 이 정도로 싫어하는 걸 가족들은 모른다는거임.

타이가는 팬티 챙기러 집에 들르려던 루크를 혼낼때 '그래도 집에는 돌아오겠지'라는 전제로 말한거라 말 그대로 잘못 했으니까 혼내려는거였는데,

루크는 진짜 팬티만 챙기고 나갈 생각이였음.

그런데 타이가는 이걸 반성하지 않고 고집 부린다고만 생각해서 이유는 묻지도 않고 (듀얼로)혼낼 준비부터 함. 위에서 봤다시피 이후 루크가 이유를 말해줬지만 듣지도 않았고...

루크는 자기가 누나를 절대 못 이기는걸 알고 벌벌 떨어왔는데도 집 나가는 걸 포기하지 않고, 설령 이길 가능성이 없어도 집념으로라도 이기겠다고 할 정도면 진짜 돌아올 생각은 없어보임.

한마디로 가족들은 루크가 그냥 투정 부리는 것뿐이고 집을 나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루크는 말도 안 통하는데 자꾸 간섭하고 소리 지르니까 집을 나가고 싶은거임. 가족간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이거...

친구들의 적인데도 기꺼이 들어갔던 것도 그런거겠지. 친구들과는 달리 가족은 싫어도 같이 있어야하니 가족이 (다른 의미로)우선순위일 수 밖에 없음.

그 정도로 루크는 집이 불편했던거임.

고하 형제가 되려는 이유도 자신을 가족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강한 힘을 원하니까 그런거인 한편, 도입부에서 루크가 유오한테 형이라면서 들러붙으려던 걸 보면 자기 편이 되어줄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에 그런 것으로 보임. 한번도 지지 않았다고 인정해주고, 남한테 얽매이지 않을 권력도 줘. 마다할 이유가 없지.

한편 이거와는 별개로 루크랑 유오가 엮이는 걸 보고, 고하 형제 편의 주제가 가족간의 갈등이 아닐까 싶음.

지금 루크와 유오의 공통점이 가족 관계가 영 좋지 않은거임.(지멋대로인 것도 있고...)

고하 형제는 기본적으로 유오를 제외하면 형제애는 좋은데, 어딘가 이상한 점은 있지. 유오는 사장 자리를 혼자 독점하려 했는데 그동안 여섯이서 고하 사를 운영했을때 어땠길래 그랬을까? 미미가 사장 대리 맡는 동안 보면 알겠지만 어른(?) 혼자 하기 버거울 정도인데, 초등학생이나 되면 사실 손이 열개라도 부족하니 여섯이서 머리를 맞대야 할텐데.

혹시 회의 중에 한쪽이 소외되거나 한쪽 의견만 듣는 경우가 있었을까?

그리고 형제애가 그렇게 좋은 4명조차 여섯째를 모르는걸까? 혹시 형제간에 서로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 갈등을 일으킨게 아닐까 싶음.

아니, 주인공은 유가인데 왜 남의 가정사를 중점으로 두는가 싶겠지만

이 장면 보고 떠오름. 여기서는 가족들의 고집 때문에 한번 막혔지만, 이후 한번 더 누군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설거라고.

그게 유가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음.

요악)

1. 64화를 보면 루크네 가족은 서로 자기 말만 하느라 소통이 안 됨. 여기서 가장 휘둘리는게 루크. '지금'의 루크가 권력을 원하는 건 이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2. 이번 화에 들어 루크와 유오가 엮이는 걸 보고 둘 다 '가족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막내'라는 공통점이 보였음.(유오는 본인이 갈등을 일으킨거지만)

3. 고하 형제 편에서 루크네 가족 떡밥을 푼 건 혹시 이번 편이 '가족간의 갈등'을 테마로 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