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라......."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러시아 차르와 차르의 일가는 유폐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련 건국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 놈들의 움직임이 불온한데 금위사에게 추포령을 내려야 하겠습니까 폐하?"

"제놈들이 그렇게 좋다는 공산주의 국가로 추방시켜라. 소련이라....... 소련의 상황은 어떻지?"

"순식간에 쿠데타가 일어난 탓에 아직 우왕좌왕하는 듯합니다. 멘셰비키라 자칭하는 임시 정부가 구성되어서......... 아차차, 그러고 보니 카이저의 서한이 도착했습니다."

"카이저라면,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자가 무슨 이유로 편지를 보냈단 거지? 그것도 적국의 황제인 내게?"

"아직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읽을까요?"

"그래라."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서 우리 독일 제국을 끝내 적대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패배를 계속하며 일패도지하고 있고, 나폴레옹이 해내지 못한 것, 즉 러시아 정복을 조만간에 해낼 것으로 우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영토가 이미 넓지만, 우리 독일제국은 모스크바까지는 대한제국에 넘기고, 나머지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기꺼이 넘겨드릴 의사가 있습니다. 또한 제국이 참전을 결정한 이유로 발표한 우리 독일제국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 그리고 그간 발생했던 우리 공작원들의 임무수행 등에 대해서는 사죄를 표명합니다. 그러나 제국측이 지금이라도 참전을 번복하게 된다면, 우리 독일제국은 대한제국이 우리의 군사작전으로 인해 입은 모든 민/관/군 손실에 대해 종류에 따라 2배에서 10배 가치의 금전적 배상을 시행할 의사가 있습니다. 물론 현재 제국의 금고에 그만한 현금이 없기에, 이는 독일제국의 국채로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바입니다. 또한..........>

황제는 피식 웃었다.

"우리가 그놈들 유보트에 입은 손실이 얼마나 되나?"

"저놈들은 원가만 내놓으라고 해도 절대 배상 못 합니다."

"그리고, 다른 건? 그러니까 치머만 전보, 그거는 뭐라고 해명했나?"

"치머만을 외무장관에서 해임하고 국가반역 혐의로 재판에 회부하겠답니다. 그리고 황제의 승인 없이 진행한 치머만의 단독행위였으니 치머만을 처벌하고 공식사죄하는 걸로 눈감아달라고 합니다."

"흐음?"

"라디오로 전 세계에 사죄문을 황제가 직접 낭독하겠답니다. 사죄문 초본을 동봉한다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빌헬름 2세가 쓴 사죄문은 구구절절히 사죄와 애원의 연속이었다. 말 그대로 애걸복걸하는 사죄문을 본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면 군주의 위신이고 뭐고 다 내던진 거 아닌가?"

"살고 싶어서 그럴 겁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니까요."

"뭐..... 그렇다면야."

"병력을 철수시키실 겁니까?"

"영국과 프랑스에 이 떡밥을 던져 봐야지, 우리가 선전포고를 철회하는 걸 고려한다고 하면 그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흐음?"

황제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말도 안 됩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대한제국 대사와 대화하다가 찻잔을 뒤엎을 뻔했다.

"그럼, 그 조건으로 독일과 단독강화할 예정이란 말입니까?"

"독일이 추가 조건을 제시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조건만으로도......."

"대한제국은 자존심도 없습니까?"

"무종 대제께서 오래 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필요 없......."

"대사, 독일이 얼마를 제시하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우리 대영제국은 독일이 제시한 금액의 무조건 2배를 대한제국에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도 없는 국채 대신 금괴로, 금괴로 드리겠습니다. 이자는 연....."

"대영제국이 강대하다 한들, 그만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까? 다른 조건도 기꺼이 들어드리겠습니다."

영국 총리는 정말로 다급했다.

러시아는 패배의 연속이었으며, 영국과 프랑스도 서부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 마당에 대한제국이 발을 뺀다면 진짜 패전이 기정사실화될지 모른다는 착각이었던 것이다.

이미 독일의 국력은 소진 직전이었지만, 영국은 그걸 몰랐던 것이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도 조르주 클레망소 신임 총리와 대한제국 대사가 접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