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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띵군 팬픽] 신립과 낭자와 피 (춘)

팝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1.26 20:36:36
조회 664 추천 12 댓글 6
														

"어찌하여 소녀를 받아주실 수 없다 하십니까?"

"낭자의 처지가 딱하여 의협심을 내어 도와주었을 뿐,

부모의 허락도 없이 어찌 야합을 한단 말이오?"


신립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발걸음을 문 밖으로 옮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당금 상감이 보위에 오르신 해, 융경 원년 정묘년(1567)에

신립은 스물두 살 나이로 무과에 응시하고자 한양으로 가던 중이었다.

어느 고갯길을 넘어 유숙할 집을 찾는데

작은 집이 한 채 눈에 띄었다.

안에 들어가 참깐 머물 수 있을까 묻고자 하는데,

고갯길 근처의 작은 집치고는 불도 밝고 소란스러워

잠시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여보았다.


"네년의 부모도 없으니 이젠 내가 네년의 서방이 아니냐!"

"부모의 원수가 네놈인데 원수를 갚진 못할지언정 이젠 첩이 되라고?"

"네년의 부모를 내가 죽였더냐? 난 손가락 하나 안 댔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을 마다하고 겔겔거리다가

그빨로 껙꼬닥 하고 칠성판 위에 드러누웠을 뿐인데

왜 이 몸을 탓하느냐?"

"그게 다 네놈 때문에 화병이 들어서가 아니냐!"


흙벽에 볏집 지붕, 오지그릇도 못 쓰고 질그릇 동이를 쓰는 가난한 집이었지만,

소녀의 복장은 깨끗하고 피부는 하야며

머리칼은 까마귀처럼 새까마했다.

소녀를 장정 몇이 횃불을 들고 둘러싸는데,

되도록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자 성질을 참는 기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소녀는 두려움도 모르고 계속 '네놈 네놈' 하면서

첩이 되길 거부하니, 두령쯤 되는 자의 말도 점점 험해졌다.


"곱게 첩으로 거두려고 했건만, 계집이 분수를 모르고 버릇장머리가 영 없구나!

첩이 되기 싫다면 이 몸의 계집종이라도 되어야지?"


두령이 오른손을 들어 소녀의 뺨을 후려쳤다.

짝 - 하는 소리가 신립이 있는 곳에까지 들렸다.


"그래, 날 죽여라 죽여!"

"이 천한 것이...!"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신립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양반 댁 도련님이지만 무과에 응시할 생각으로 마술(馬術)와 무예를 익혔고,

부모 몰래 저잣거리에서 왈패들과 어울리다 박투(搏鬪)하는 데 익숙했다.

싸울 줄 모르는 양민들을 상대로 을러대는 정도로 먹고 사는

도적 무리 정도라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웬 놈이냐?"


두령 옆에서 횃불을 들던 자가 깜짝 놀라 외쳤다.


"도적 놈들을 후려잡을 범 같은 협객이다!"


이런 촌에서야 도적질을 할 수 있지만,

한양은커녕 대구 정도만 가도 이 정도 무리들이 '도적입네.' 하고 활개치긴 어려웠으리라.

무리들의 싸움 솜씨는 하찮았다.

신립이 작대기를 휘두르고 발로 걷어찰 때마다

무리들 중 누군가의 팔다리가 꺽이거나 가죽이 터졌다.

무리들은 땅바닥에 누워 신음하다가 신립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고는

조용히 동료들을 데리고 쩔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어느 하나 자기 두 팔과 두 다리로는 걸을 수 없어서

둘이서 한 몸처럼 기대어 쩔뚝거리며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소저를 구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녀는 신립에게 감사를 표하더니만, '소녀를 거두어주십사.' 하고

무릎 꿇고 청하였다.

위급한 순간에 자기를 도와주었고, 비록 죽이지는 않았으나

팔 다리 성한 놈 없이 마치 비익조(比翼鳥)처럼 기대어 나갔으니,

연인도 아니면서 둘이서 한 몸인 듯 기대는 모습이

소녀가 보기에는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부모 없는 소녀가 신립을 보고 사랑에 빠짐도 과히 무리는 아니었다.

신립은 흥에 취하여 소녀와 하룻밤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여기서 혼인하거나 약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모의 허락도 없이 야합할 수 없다." 하는 말은 오직 절반의 진실이었다.

만약 정말로 신립이 원하고자 했다면,

기정사실로 만든 뒤 뒤늦게 허락을 구하지 못할 까닭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아직 혼인하지 않은 몸으로,

미색은 제법이나 고아인 처자를 부인으로 인정하여

처가의 도움을 받지도 못할 상황을 자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직 그러기에는 신립의 야망은 컸고, 나이는 젊었으며,

미래는 불명확했다.


"비록 내가 열정에 취해 너와 하룻밤을 같이 하였으나,

그렇다고 너를 부인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내가 돈을 줄 테니 그것을 호구지책의 도움으로 삼고,

이후는 잊어버려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하대의 말씨였다.

양인도 아닌 소저에게 굳이 존대를 할 이유도 없었고,

부인으로 삼을 생각이 없다곤 하나 하룻밤 꿈처럼

만리장성을 쌓은 뒤로는 마음의 거리낌도 제법 사라졌다.



신립은 발을 옮겨 한양으로 떠났다.

소녀는 신립이 건네준 돈꿰미 한 뭉치를 바라보았으나,

이런 것을 원한 적이 없었다.


'어찌하여 내 마음을 몰라줄까?'

'어찌하여 날 이토록 조롱할까?'

'왜 나와 함께 운우지락을 나누고서는 이토록 매몰차게 거부할까?'

'차라리 날 안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참담하진 않았을 텐데!'


소녀는 부모가 푼돈거리 삼아 꿰어둔 새끼줄을 주섬주섬 챙겼다.

이미 부모도 없다. 날 걱정해줄 친지도 없고 거둬줄 남자도 없다.

이대로 있어보았자 언젠가는 도적놈들이 날 첩으로 삼겠다고

다시 행패를 부리겠지.

아무 아쉬움도 없다.



두 달 뒤, 신립에게 얻어터졌던 도적들 중 일부가

소녀의 집에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도적들이 발견한 것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부패한 지 오래된 소녀의 시신이었다.

시신의 밑에는 시신을 먹다가 떨어진 구더기들과

구더기들이 탈피하여 버린 껍질들이 사발 그릇으로 풀 수 있을 만큼 쌓여 있었다.

부하들의 전갈을 받고 지팡이를 짚고 절룩이며 달려온

도적들의 두령은 시신을 보더니만 외면하며 크게 한탄했다.


"이 몸이 그렇게 싫었다면 차라리 도망이라도 칠 것이지!

이 독한 년, 더러운 년, 고약한 년!"


두령은 소녀의 시신을 내려 소녀의 부모 옆에 묻어주었다.

소녀는 그렇게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로 육신을 땅 속에 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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