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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띵군 팬픽] 신립과 낭자와 피 (추)

팝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1.26 20:57:30
조회 438 추천 15 댓글 2
														

(춘)편 / (하)편 <== 링크



"대감의 몸에 웬 잡귀가 붙었습니다."


연해주 병마사 신립은 눈살을 찌푸렸다.

당금 상감이 보위에 오른 지 15년, 만력 10년 임오년(1582), 신립 나이 서른일곱이 된 해였다.


"잡귀?"


'호랑이 병마사 앞에서 잡귀가 붙었네 운운하다니

저 중이 오늘 경을 치겠군.' 하고 병졸들이 수근거렸지만,

신립은 아무 화도 내지 않았다.

저런 폭언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는 모습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놀랐다.


"본관에게 잡귀가 붙었다고 말한다면, 어떤 잡귀인 줄은 알겠느냐?"

"미색이 제법 빼어난 젊은 낭자입니다. 대체 대감께서는 무슨 업을 쌓았기에,

저런 악독한 처녀귀신이 뒤를 따라다닙니까?"

"허튼 소리를 하는구나."



서산대사의 문하로 도를 닦다가 운수행각을 시작한 유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북방의 백성들이 불공을 드리는 관계로 불교는 연해주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정식 절이 아니라 사가에 불상을 놓고는 절이라고 하면서 매달 불공을 드리는 고을이 여럿 있었는데,

유학의 도리로는 죽음을 가까이 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다 달래기에 손이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목민관들은 불승(佛僧)들을 반쯤은 공인하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고승의 제자로 연해주까지 온 유정은 백성들에게 신망이 높았으므로,

신립이라고 해도 바로 벌을 내리긴 어려우리란 계산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게 노하여 일갈 정도는 하리라 생각하였는데 신립은 의외로 너무나도 담담하였다.


"한 말씀만 더 올리겠습니다.

만약 대감께서 처녀의 혼령이 극락으로 왕생하기를 원하신다면,

손수 금강경을 108번 사경(불경 필사)하여 그 공덕을 귀신에게 회향(공을 돌림)하십시오."

"허튼 소리는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았더냐!

지금 당장 본관의 눈 앞에서 꺼지지 않으면 대신을 조롱한 죄로 치도곤을 치리로다.

중 주제에 허튼 소리를 하는데도 봐준 것만으로도 자비는 넘치도록 베풀었느니라!"



날이 저물었다.

신립이 부병마사와 다른 군관들과 같이 술을 한 잔 하는데 낮의 이야기가 나왔다.


"유정이라고 제법 이름 높은 중입니다만 실상은 땡중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감께 처녀귀신이라니 우습지 않습니까?"

"사실 그 중의 말에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기에 벌을 내리지 않았네."


주변 군관들은 크게 놀랐다.

신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과 응시를 하기 전에 곤란한 지경에 처한 처자를 만나 구해주었던 일,

하룻밤 정을 쌓았으나 거두어 달라는 말을 거부하고 돌아갔던 일,

군관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낭자가 꿈에 나타났고, 그 말대로 조심했다고 공을 세운 일,

그 뒤 따로 처녀의 이야기를 수소문해보았더니 목을 매었더라는 일...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립은 젊은 시절에 종종 처녀가 꿈에 나타나 경고를 주었는데,

그때마다 위험한 일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놀랍습니다. 설마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대감께서 겪으셨을 줄이야...."

(태평광기: 송나라 때 나온 방대힌 이야기 모음책. 별별 희한한 이야기가 다 실렸음.)


신립은 따뜻하게 데운 술잔을 들었다.

바람이 쓰리도록 매서운 북방에서는 술을 데워 마셔야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뜨거운 주정의 기운이 신립의 몸에 후끈한 열기를 불어넣었다.

신립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꺼냈다.


"그 처자가 비록 목을 매었지만, 본관에게 원한을 품은 것 같지는 않네.

그러니까 본관을 해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런 처자를 왕생시키라니?

당당한 사대부 출신으로 고관대작이 되어 불경을 사경하라니 체면도 떨어지거니와,

비록 산 처자를 거두어주진 못했지만 죽은 처자 정도는 거둘 수 있지 않겠는가.

안사람에게 차마 이야기하진 못했네만, 나는 그 처자를 내 사람으로 생각하네.

그런데 불력(佛力)으로 그 처자를 떼어버리면 이중으로 거절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젊은 시절에는 종종 꿈에서 낭자를 보곤 했지만, 어느 정도 관록이 쌓인 뒤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더 이상 낭자가 위험을 경고하지 않아도,

여진족 따위가 부리는 간략한 수작 따위는 말 등 위에서 능히 헤아리고도 남았기 때문에 필요도 없었다.

다만 신립도 나이가 든 뒤로는 '그때 내가 너무 냉혹하게 거절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면 뒤늦게라도 잘해주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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