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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띵군 팬픽] 신립과 낭자와 피 (동) - 완

팝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1.26 21: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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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편 / (하)편 / (추)편



당금 상감이 보위에 오른 지 23년, 만력 18년 경인년(1590),

신립 나이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에 오다 노부나가가 왜국을 평정한 뒤 그 칼날을 조선으로 돌렸다.

조정에서는 이미 오다가 조선에 무도한 짓을 벌일 줄 짐작하고 방비를 강구하였으나,

왜적은 조정 신료들의 허를 찔러 전라도와 경상도, 양도에 걸친 양동작전을 벌였다.

미처 왜구의 대군을 상대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전라도의 홍양 등 관아들은

마치 화로 위에 얹은 눈처럼 녹아 사라졌다.

그래도 숱한 목민관들이 화약과 함께 자폭해가며 적도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전라좌수사가 남은 병력이 무의미한 희생을 하지 않도록 철수를 명하여 집합시킨 덕에

후일을 도모할 여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비록 이순신이 수군통제사로서 조선 수군의 주력을 모았다 하나,

전라좌수사 정걸이 전라도 병력의 무의미한 희생을 막은 공은 결코 작지 않았으니,

후일 조선이 반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상감은 평양군 신립으로 하여금 북방의 오위군을 이끌어 남하하여

삼남지방을 장악하려는 왜군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립은 너무나도 기뻤다.

무자호란도 호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여진은 본디 나라도 이루지 못한 오합지졸들로

장수 대 장수로서 지략과 용맹을 겨룰 대상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왜국에서 백 년간에 걸쳐 칼과 장비로 서로 싸워 강병을 이룬 왜군은

능히 자신과 오위군의 위엄을 드러낼 대상으로 손색이 없었다.


신립은 머릿속에서 오다의 모가지를 손수 베는 장면을 몇 번이고 그려보았다.

짜릿함. 나 또한 죽은 뒤에는 무묘에 배향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아니, '부족함이 없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무묘에 배향되고도 넘쳐 흐를 만큼 공을 세워야 한다.

상감께서도 내 공을 인정하시지 않는가!

오다라는 도적의 면상을 상상할 때면, 그 낯짝보다는 모가지의 두께가 더 궁금했다.

검집을 쥐는 신립의 손이 경련을 일으켰다.



상감은 영의정 류성룡을 파견하여 친히 남만갑을 하사하였다.

신립은 비록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상대감이라곤 하나,

전쟁터에서는 일개 서생에 불과한 자가 내려온다고 속으로 짜증을 내었다.

바로 신립의 그러한 성정 때문에 임금과 조정의 중신들이 신립을 제어코자

일부러 류성룡을 파견하였지만, 신립의 지혜로는 그러한 속사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아니, 그 난폭하고도 단순한 성정이 전쟁이 아닌 일에 지혜를 쓸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하는 쪽이 더 정확했다.


"주상전하께옵서 국란을 맞이하여 어갑으로 쓰시려던 남만갑을 평양군 신립에게 하사하노니,

평양군은 이 갑옷을 받아 더욱 분전하라 명하시었소."

"전하의 명을 받들어 왜추의 무리들을 조선에서 박멸하는 데에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나이다!"


신립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제대로 말을 타본 적도 없는 문관 출신 고관이 내려온다고 투덜거리던 마음은

삭정이가 부엌 군불로 사라지듯 없어졌다.

자신이 남만갑과 남만의 병술을 두고 하찮다고 모욕하던 것도 잊어버렸다.

임금께서 내리신 하사품이 아닌가! 그것도 전하께오서 어갑으로 쓰시려던!

너무나도 흥분한 나머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신립은 피곤한 줄도 몰랐다.

아직 입지도 않은 어갑을 너무 어루만져 벌써 손때가 묻었을 지경이었다.

신립은 어갑을 입은 첫 결전에서 마치 농부들이 벼이삭을 추수하듯 손쉽게 모가지를 뎅겅뎅겅 거두었다.

이제는 삼량진에 집결한 왜추의 수장 '오다'라는 자의 목을 따야 할 시간이었다.





"대감, 중요한 때이옵니다. 고민하실 순간을 맞닥트릴 것이옵니다.

적들을 쳐야 할 것인가, 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치시옵소서. 치셔야만 하옵니다.

그래야만 대감께서 장수로서 충을 다하고 조선의 곽자의가 되실 것이옵니다.

소녀의 말을 잊지 마소서."


"너는.....!"


소녀의 모습은 여전히 초연했다.

신립이 낭자의 꿈을 꾸지 못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신립으로서는 처음 연해주에 부임하여 아슬아슬한 순간에

꿈에서 들은 소녀의 조언으로 위기를 넘긴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내가 너를 너무 박정하게 대했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다."


스무 해나 지난 다음의 사과. 소녀는 깜짝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이미 산 몸이 아니지만 그 모습은 마치 살아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소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소녀 또한 대감의 군공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하였으므로,

귀신이 된 몸이나마 한량없이 즐거웠나이다.

비록 염라대왕님께서 천지의 섭리를 어겼다 하여 벌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소녀는 이 순간을 위하여 달게 벌을 받을 각오가 되었사옵니다."


소녀의 모습이 흐려졌다. 신립도 잠자리에서 눈을 떴다.

새벽에 동이 터오는 빛에 눈이 시리도록 아팠다.

나이가 들어 불 같던 성질도 조금은 가라앉은 뒤,

젊은 시절 매정하게 뿌리진 하룻밤의 인연이 조금은 마음에 걸려오던 터였다.

오늘 꿈에서 본 소녀의 모습에 신립은 오래된 체증이 내려간 듯 개운했다.

닭이 울었다.





신립은 당황했다.

군졸의 말을 듣고 삼량진에 진을 친 오다의 본진을 격퇴하고자

미끼 부대를 따로 내두고 현지인들만 아는 길을 따라 삐잉 둘러왔건만,

왜적들은 단 하룻밤 사이에 나무를 긁어보아 탑과 보루와 목책을 세웠다.

이래서는 신립이 처음 예상한 대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왜군과 함께 한 남만인 용병들의 포가 신립군이 위치한 곳까지 미치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지만,

이대로는 교착에 빠져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신립군보다는 오다의 왜군이 유리했다.

길을 안내한 군관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저런 것들이 없었나이다." 하므로

군관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립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참느라 고생했다.

임금의 총신이기도 한 영상대감이 보는 앞에서 품위 없이 길길이 날뛸 수는 없었다.


류성룡은 류성룡대로 곤란했다.

부마도위 사노부가 일러준 바를 도총관 신립에게 알려주었지만,

신립은 점잖은 어투로, 하지만 분명하게

'전쟁을 모르는 서생이 병술에 대해 논하지 마십시오.'하는

의사를 은연중에 흘리며 말을 받아들이길 거부하였다.




왜적의 두목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이라는 '나가마스'란 자가 사신 자격으로 조선군에 왔다.

류성룡은 나가마스에게 양군이 십 리씩 뒤로 물릴 것을 제안했지만,

나가마스를 그런 짓을 했다간 휘하의 다이묘들이 거부한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담은 결렬되었다.



왜적의 두 번째 사자로 나선 자는 바로 종친의 신분으로 무도하게도 왜적의 개가 되어

역모를 꿈꾸는 임해군 이진이었다.

이진은 무엄하게도 개의 입으로 당금 주상의 심려를 모욕하고 정책들을 거부했으며,

도총관 신립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어 '조선을 바로잡자는' 헛소리를 하였다.

신립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가 입은 임금의 하사품 - 어갑의 무게를 잊었다.

피가 역류하여 마리 심장이 터질 듯 박동하였다.


"이 역적 놈의 새끼야!"


신립이 직접 활을 들어 시위를 매겼다.

움켜쥔 손가락이 꺽지와 함께 떨어지자 화살은 바람을 타고 역적 이진의 육신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 하나로 육신이라는 더러운 피와 뼈와 오장의 덩어리가

더 이상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 했으나,

신립의 뜻과 달리 화살은 급소를 피하여 이진의 옆에 서 있던

웬 거한의 얼굴을 꿰뚫었다.

이진은 자기가 읽던 두루마리를 내던지고는 왜군에게 달아났다.


"제기랄, 너무 흥분해서 손이 빗나갔군!"



신립은 부하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그러나 부하 김여물이 신립을 말렸다.


"대감, 이제라도 군사를 물리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신립은 김여물의 말을 듣고 문뜩 류성륭을 바라보았다.

류성룡도 말은 없었으나, 눈빛으로는 김여물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입은 다물고 눈을 뜨고는 신립에게 그렇게 말 없는 말을 하였다.

신립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온갖 장면이 회오리처럼 몰아첬다.

아군의 군세, 왜적의 군세, 전황, 사망자 수, 무기, 지형, 구해야 할 조선의 주요지점들...

장수로서 따져야 할 온갖 사항들이 머릿속에 휘감겼다.

김여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여기서 잠시 후퇴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 공격해야 좋다는 계산도 함께 들었다.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다. 결단을 해야만 한다.

그 순간 신립의 머릿속에 꿈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대감, 중요한 때이옵니다. 고민하실 순간을 맞닥트릴 것이옵니다.

적들을 쳐야 할 것인가, 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치시옵소서. 치셔야만 하옵니다................"

'네가 말한 순간이 바로 이때로구나!'


신립은 소녀를 믿었다. 낭자를 믿었다. 귀신을 믿었다.

아직 신출내기 군관이던 시절부터 도와준 바로 그 낭자가 아닌가!

신립의 머릿속에서 서로 싸우던 두 가지 계산이 그쳤다.

답은 단순했다.

공격, 공격, 공격.



"저 역적의 목에 우리 5만 군사의 목숨이 걸려 있단 말일세!"


신립의 사자후.


"지금 자기 눈 앞에 있는 우리 병력이 오위군의 거의 전부임을 신장(오다)에게 고했을 터!

밀양강 좌우에서 길을 막은 우리 군사가

허물뿐인 의병(미끼 군대)임을 단박에 눈치챌 테고!"


김여물도 덜덜 떨었다. 신립이 걱정한 바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오다의 나머지 병력이 밀양성으로 가면 신립군은 뒤로 갇힌다....

반드시 여기서 싸워 오다의 본진을 깨부셔야 한다....



김여물이 신립의 계산에 동의하는 듯 보이자, 신립은 환도를 꺼내들고 군사들 앞에 섰다.

내리쬐는 햇빛에 번쩍이는 칼날이 눈에 시리도록 날카로웠다.


"너희는 조선의 제일가는 정병이다!

너희가 조선의 제일군이라는 사실을 역적과 왜적에게 보여주도록 하라!"



폭풍 같은 함성이 가득했다.

오위의 병사들에게 신립은 하늘에서 내려온 장수, 지상의 금강역사, 조선의 곽자의였다.

신립의 판단과 무용을 믿는 그 마음에는 한점 흔들림이 없었다.

그것이 북변의 삭풍 속에서 매질하듯 단련된 신립과 병사들의 일체감이었다.

신립은 포를 쏘라 명령했다.

오다군은 이 거리에서는 포가 맞지 않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조선의 화포와 오위군의 조준이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라면 충분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신립은 조선의 최정예 군사인 오위의 창기병과 궁기병,

총 1만을 데리고 산출기를 타고 오다군을 향해 올라갔다.


신립은 놀라운 무용으로 오다의 본진을 향해 돌격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류성룡이 감탄을 금지 못할 만큼,

왜 오위의 장졸들이 신랍의 말이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지 이해할 만큼 그 모습은 거대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쪽에서 수천 왜군이 갑자기 나타났다.

류성룡과 사노부는 지금 저 복병으로 조선군의 패색이 짙어졌음을 직감했다.


신립의 활력도 화수분은 아니었다.

아무리 신립이 용장이고 일신의 무용이 뛰어나도,

땅 위에서 숨쉬고 걸어다니는 인간인 이상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남만갑이 피로 젖어 온전한 제 빛깔을 잃어버렸을 즈음,

신립도 제 육체의 힘이 한계에 다달았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말에게 채찍질을 하여도 언젠가는 쓰러지는 때가 오는 법,

신립의 정신이 제 몸뚱이를 아무리 다그쳐도

육신에서 제대로 기력을 뽑아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신립의 눈에도 동쪽에서 후군 쪽으로 몰려오는 군세가 보였다.

하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다.

아군과 왜적의 피로 땅을 적시며 오다가 자리잡은 산비탈을 7분쯤 올라왔는데,

지금 내려가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었다.

적어도 오위군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신립이 애써 외면했던 가능성이 드디어 지상에 실현되었다.

동쪽에서 올라온 복명이 후군을 들이치자,

최정예 전투병을 신립이 끌고 남은 후군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만약 여기서 류성룡이 죽기라도 하면, 조선 조정의 중요한 거목이 사라진다.

지금 여기서 자기가 죽으면 조선군의 큰 대들보가 사라진다.


적어도 신립은 그렇게 생각했다. 바깥으로는 군을 망치고, 안으로는 조정을 망친 셈...

불현듯 눈 앞에 더러운 역도 이진(임해군)이 눈에 띄자,

신립은 자기 처지마저 잊어버리고 노호성을 터트리며 활을 날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진은 피하고 옆에 있던 오다의 팔에 맞았다.

신립은 자기가 활을 맞춘 자가 오다인 줄도 몰랐다.

다만 빌어먹을 놈을 죽이지 못했음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그 왜장이 팔에 활을 맞자 왜군은 발칵 뒤집혔다.

신립은 자기가 활을 맞춘 자가 바로 왜적의 수괴 오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이다! 지금이 최후의 기회이다!

신립은 정말로 육신의 근육 한 올까지 쥐어짜는 기분으로 힘을 끌어모았다.


"나를 따르라!"


살아남은 마지막 오위의 병졸들이 신립의 주변에 모였다.

왜졸들을 걷어차고 칼로 베었다. 눈보라 속에서 단련된 칼놀림은 한번 움직일 때마다

주변을 둘러싼 왜적의 팔과 목을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검은 피와 붉은 근육과 하얀 뼈와 형상 없는 아우성이 신립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왜적이 신립이 탄 말을 쏘아 넘어트리더니 신립에게 올가미를 걸어 포박했다.


신립은 자신이 패배했음을 깨달았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이 패배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온 장졸들을 제 집이 아닌 곳에서 쓰러지게 하여 무주고혼의 귀신이 되게 했다.

어쩌면 류성룡마저 죽을지도 모른다.

조정의 영수인 영상대감이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임금과 조정이 받을 타격이 곱절이 되고 만다.

자기만의 패배가 아니라 왜란의 양상을 불리한 쪽으로 몰고 갈 만한 대패....


신립은 꿈에 나타난 낭자를 떠올렸다.

지금 이 것이 바로 그 귀신이 원하고 이끌었던 바였다.

자신이 고민하던 그 순간에 치명적인 오판을 '확실하게' 하도록,

오다가 꾸민 계략에 확실하게 걸리도록 자신을 부추긴 것이었다.


"....너는 나를 용서하지 못했구나."


조용히 뇌까렸다.


"만약 그토록 내가 원망스러웠다면, 나만 죽였으면 되지 않았느냐?

왜 내 부하들까지 네 복수에 휘말리게 했느냐?

저들도 너와 같은 딸이 있는 아버지가 아니냐?

왜 나만 죽이지 않고 이 많은 조선의 백성들,

조선의 숨탄것들이 제사도 못 받는 귀신이 되게 했느냐?

나를 비참하게 죽일 수만 있다면,

다른 자들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었단 말이냐?

악독하구나, 정말로 악독하구나."



신립의 머릿속에서 문뜩 유정이라는 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귀신을 극락왕생시키고 싶거든 손수 금강경을 108번 사경하여 그 공덕을 회향하라고....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당당한 조선의 장수가 되어 일개 중의 말을 따라 불경을 베껴 쓰고 싶지 않았고,

귀신이 이미 자신의 기백에 감탄하여 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일생 일대의 오판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면, 108번이 아니라 1080번이라도 썼을 텐데.


평생 지독한 오만과 자신감 속에서 살았던 신립이었다.

일신의 무용으로 '호랑이 병마사'라 불렸고

군사들을 이끌어 세운 군공으로 '평양군'이란 군호를 받았다.

그러나 과거에 거두지 않은 한 처자의 원한으로 가장 참담한 패배를 맞은 지금,

신립은 평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겸허해져 있었다.

신립의 어머니가 그토록 자식에게 가르치고 싶어 했던 마음가짐이었다.


분노와 원한과 참담함과 슬픔이 한데 뭉쳐 신립의 신경을 타고 흘렀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적장의 앞이 아닌가.

여기서 울면 내 체면만이 아니라 조선의 체면마저 깎인다.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날 신립은 오다의 앞에서 목이 베였다.

어느 처녀의 원혼이 신립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소문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흘렀지만,

모두들 단지 허황된 소문이라고만 여길 뿐이었다.


신립의 피는 무심하게 흘렀다.

그리고 어느 소녀의 무덤도 비석 하나 없이 잊혀져 그저 둔덕 속의 진토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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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라는 것도 내 손으로 써보니까 생각보다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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