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나이 마흔 줄 늙다리 대붕이야.
디시 처음 생길 무렵에 고등학생이었고, 그 이전부터 피시통신하면서 장르문학이라는 거 자체가 처음 한국에서 태어나고 지금까지 오는 걸 쭉 지켜 봤어.
하이텔 serial란에서 온갖 작가들이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써내기 시작하고, 그게 자음과모음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내가 대학갈 쯤에는 인터넷이 엄청나게 보급되면서 피시통신이 고사하고 '라니안'같은 사이트에서 소설이 연재 되기도 했었지.
여기 대붕이들 중에는 이런거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나는 장르소설도 엄청나게 읽었지만 라이트한 역덕이기도 해서 2000년대 중반에 디씨 역갤(아직 좆망 안당하고 고람거사니 이런 네임드들이 활약하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부흥, 이글루스 이런데도 엄청 드나들었고.
내가 이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장르소설을 즐기는 동안 가장 좋아한 작가 중 한 명이 김경록이기 때문이야. 물론 김경록 작가가 좀 호불호를 타는 편이라 라 대붕이들 가운데에서도 동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좀 있을 거다.
내가 오늘 하고 싶은 가운데에도 왜 김경록이 실제보다 어떤 부분에서 고평가 받는지, 또 왜 실제보다 어떤부분에서 저평가 받는지에 대한 것도 있어.
제목은 김경록 작가에 대한 회고라고 썼지만, 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국 대체역사 시장의 변천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김경록 작가에 대한 회고인 동시에 대체역사 소설에 대한 회고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
대붕이들 가운데 2000년대 초반 생이나 90년대 후반생도 꽤 되는 걸로 아는데 이런 대붕이들은 모르는 이야기도 많을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틀딱 대붕이가 주관적으로 경험한거고, 인터넷 오래 하기는 했지만 학교 다니고 직장 생활에 바뻐서(지금은 개인사업한다) 눈팅만 하고 인터넷 이너서클에 들어갔던 적은 없기 때문에 비교적 부정확한 이야기도 섞여 있을 수 있어. 이 부분은 양해 바람.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오류 없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겪고 느낀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하는 부분도 있다는 점 알아주길 바래.
1. 한국 대체역사 소설의 탄생
일단 여기서부터 이야기 해 볼까 해. 앞서서 이야기 했지만 나는 하이텔, 천리안 같은 PC통신을 90년대 중반부터 이용해 왔었고, 거기서 이영도같은 작가들이 연재하면서 장르소설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봤어. 아직도 드래곤 라자가 출간까지 되면서 붐을 일으키던 시점의 일들이 어제적 일 같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대체역사라고 불릴만한 소설은 PC통신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웠어.
이런 상황에서 대체역사소설을 처음 넷상에 연재했던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윤민혁이었다.
내가 이 당시 철원에서 군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그걸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민혁좌가 당시 좆망 테크를 타고 있던 하이텔에서 이 글을 연재했었고, 그게 히트 치면서 뒤따라 몇몇 대체역사물이 연재되었던 것 같다. 민혁좌의 <한제국 건국사>가 인기를 끌면서 출판으로 이어지고, 당시 대여점 보급망을 타고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대체역사 붐이 시작되었어.
아마 비슷한 시기에 슈타인호프 작가도 <봉황의 비상>을 연재하고 출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간 자체는 <한건사> 보다 좀 늦었는데, 하이텔에서 연재를 했었던 건지 아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천년대 초반에 내가 군복무 중이었어서.
여하간 전역후에 출간된 소설로 <한건사>를 처음 읽었는 데 그 때의 소름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너무 재미있어서 삼독 사독하고 3부가 언제 나오나 소식이 궁금해서 이틀 걸러 한 번 윤본좌 개인 사이트 들어가서 눈팅을 할 정도였어(그 뒤의 일은 말하지 않을게. 인터넷 오래한 친구들은 대충 알거야).
여하튼 윤본좌의 히트로 다소 빛이 바라는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슈타인호프 작가도 분명히 한국 대체역사물 태동에 조그만 지분이나마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그리고 여기서 알 수 있겠지만, 한국에 처음 대체역사 물을 소개하고 그걸 출간까지 이끌고 간 건 어디까지나 '밀덕'이었어.
나는 밀덕테이스트는 아니었지만(흥미가 안 생기는 걸 어쩔 수는 없잖아), 대체역사물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고 그 상상력이 좋아서 너무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요즘에 같은 내용으로 나왔다면 아마 몇 편 안 읽고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 않겠어? 지금은 2019년이고 그때는 2002, 2003년 이럴 때니까.
최초라는 이유 때문에 다소 과평가되는 측면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현재 나오는 한국 대체역사물은 적든 크든 모두 이 시절 <한건사>에 빚을 지고 있다고는 단언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대체역사 붐이 이 시기에 일어났을지, 늦어졌을지, 어땠을지 짐작이 잘 되지 않는다.
근데 문제는 당시에는 밀덕들이 이런 소설을 썼고, 알다시피 밀덕의 수는 제한적이었다는 점이야. 더군다나 아직 지금처럼 인터넷에 자료가 넘쳐나던 시점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작가들이 쓰고 싶어도 자료 조사하거나 고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짐작된다.
그런데 당시 정치적 분위기가 효순이 미선이, 안톤 오노, 월드컵 4강등을 거치면서 엄청나게 민족주의적 정서가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한건사>가 깔아 놓은 판은 이상한 곳으로 튀기 시작했어.
2. 한국 대체역사 1차 붐과 아타리 쇼크 (2004-2007)
윤본좌의 <한건사> 2부가 출간되었던 것이 아마 2003년인가 2004년인가로 기억한다. <봉황의 비상>도 그거보다 조금 늦거나 그 언저리에 출간이 되었었던 것 같고. 그런데 문제는 이게 끝이었던 거야. 좀 고증을 하고 진지하게 쓰는 작품이 그뒤로 뚝 끊겨 버렸다. 윤본좌는 3부를 안쓰고, <봉황의 비상>도 엄청나게 더딘데다가 <한건사> 없는 시장을 리드하기에는 사실 손색이 좀 많았고.
그래서 윤본좌가 깔아놓은 판을 잡아 먹은게 환빠 국뽕 대체역사물들이었다. 그 이름도 전설적인 이 좋은 예시가 될거다.
이 소설이 아마 2004년 무렵에 대히트를 쳤던 것 같은데, 정말 말도 안되게 인기가 있었다. 내 기억에는 심지어 다음 팬카페까지 있었다.
읽다가 말았지만 내용이 대충 대한민국이 통채로 1904년으로 트립해서 전 세계를 상대로 깽판치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
<임페리얼 코리아>같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괴작(걸작?)도 이 시기에 나왔고(시립대 물리학과 교수가 쓴 건데 무대가 우주까지 옮겨가는 특이한 소설임).
그냥 국뽕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밝달실록>같은 환뽕 소설도 나왔었는데... 이런 작품들이 한 둘이 아니라 다 언급하기도 어렵다(그런거 보지도 않았고).
그래도 아주 못볼 작품들만 있는건 아니라서, <신건사> 1부 4권이 2004년 언저리에 나왔었던거 같고, 그거 말고도 <신쥬신건국사>(이름이 쥬신이라 테이스트가 좀 그렇긴 한데 생각보다 환뽕은 아니었던걸로 기억)같은 작품들이 있어서 초반부는 조금 버틸만 했다.
그런데 2006년쯤 들어가면 아타리쇼크의 조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해서, 대체역사물은 완전히 붕괴일로를 걷기 시작해.
읽을만한 작품도 안 나오고, 불쏘시개들은 4권, 5권, 6권 나오다가 조기완결되고. 그때는 대여점 반응이 안좋으면 가차없이 연중되던 시절이라 대체역사물이 7~8권 넘기는 작품이 전무한 수준이었어.
이러다가 결국 종말의 시기가 오고 만다. 아마 대부분 나보다도 나이가 많을 환뽕, 국뽕 아재들이 즐기는 삼류 장르소설로 인식이 굳어진데다가, 읽을만한 소설도 안나오면서 슬슬 출판 자체가 회피되는 시점이 오고 말았지.
더군다나 점차 대여점 기반의 장르 출판 시장 자체도 다양성이 줄어드는 시점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반짝 붐은 처참한 결과로 이어지는데, 내 기억에는 이 대미를 장식했던게 아마 <천룡전기>였던 것 같아.
<천룡전기>는 내가 취직 준비하던 쯤인 2006~2007년 쯤에 대여점에 풀렸었던 것 같은데, 아마 문피아에서 연재가 되었었을 거다.
그래도 환뽕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조금 걷어내고, 기존 대체역사물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려고 시도하면서 여러모로 호평을 받았었는데, 표절사건으로 아예 낙인이 찍혀 버렸지.
오랜만에 장르시장에 '그나마' 읽을만한 대체역사물이 나왔다고 했더니 표절로 단단히 몰락하면서 그냥 대체역사는 기사회생 불가능이 되고 만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대여점에 가도 새로 나왔다는 대체역사물은 찾아 볼 수도 없고, 조아라, 문피아 같은 연재사이트에서도 대체역사물을 연재하는 사람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어.
진정한 암흑기가 도래한거지.
2. 김경록(2010-2013)
자, 이제 경록좌 이야기를 좀 해볼게.
경록좌가 얻은 모든 명성과 악명이 모두 이 대체역사물의 아타리 쇼크 이후의 잿더미에서 시작되었어.
2008년 전후로 대체역사물이 종말점에 이른 시기 이후에,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되었지.
물론 대체역사물이 아주 나오지 않았던 건 아니야. 스카이머시기라는 출판사에서 4권 5권으로 완결지어버리는 불쏘시개 대체역사물이 몇 질 나왔던 것 같은데(<아침의 나라>같은거), 아마 그게 다일거다.
심지어 아직 이 시점은 조경래 작가가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로 삼국지물(만약 이것도 대체역사물로 분류한다면)의 대부흥을 불러오기도 전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2010년에 <대한제국 연대기>라는 물건이 갑툭튀를 한 거야.
근데 이 작품은 기존의 어떠한 대체역사물과도 달랐고, 다른 장르소설과도 달랐어.
주인공이 4권만에 죽지를 않나, 한 단락 넘어갈 때마다 세월이 10년씩 뛰지를 않나.
근데 문제는 그런데도 재미가 있다는 거야.
물론 이걸 보려면 어느 정도 역덕 취향이 가미가 되어야 했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했지.
대체역사뿐만이 아니라 대여점 붕괴로 장르소설 시장 자체가 아타리쇼크를 맞이하던 시점에 14권까지 나가고 2부까지 쓴거 보면 이게 실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이 갈거다.
지금처럼 유료조회수가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시기도 아니었고, 대여점은 말 그대로 전성기에 비해 수가 1/3도 안 되게 줄어 있던 시기인데다가, 하여간 장르소설 자체가 좆망테크 타던 시기였다.
이게 나왔을 때 사람들 반응이 어땠을까?
제대로 된 대체역사물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은 좋든 싫든 이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도 욕지거리를 하면서 끝까지 보던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러니 여러 반응이 나오고 이름값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
일단 이때 쌓인 김경록의 명성/악명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아타리쇼크를 불러온 환뽕/국뽕 소설을 제외하면 결국 비교할 건 밀덕본좌들이 쓴 소설들 뿐일거야.
당연히 밀덕이, 그것도 본좌급이 쓴 소설들이니 밀리터리 고증들은 아주 충실한 소설이었지만, 소설 종류가 너무 제한적이었고, <한건사>는 2부까지 쓰고, <봉황의 비상>은 1부 이후로 그 뒤 내용이 안나오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둘 다 엄밀히 말해서 완결이 안 된 소설이었던 거지. 더군다나 거슬러 올라가면 이 두 소설은 그보다 앞선 <데프콘>같은 밀리터리소설류 붐의 큰 영향을 받은 소설인데(윤본좌는 데프콘 필진중 하나기도 했고), 때문에 내용자체가 역사의 변화보다는 전쟁의 묘사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 시점까지 엄밀히 말해서 역사가 바뀌는 모습을 폭넓고 깊게 보여주는 소설이 없었다는 이야기야. 경록좌의 <대한제국 연대기>가 특히 밀리터리 고증이 부실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쳐먹으면서도(아마 에전 밀리터리류 대체역사물을 보아왔던 독자층들이 선택지 없이 집어들었을 테니까), 끝끝내 지금까지 유지되는 명성/악명을 얻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야.
(<한건사>, <봉황의 비상>등을 제외하고는) 조선만 벗어나면 인명, 지명, 역사 고증이 개판인 소설들이 사실상 전부였던 데다가, 오로지 소설의 목적 자체가 국뽕 빠는 것에 있다보니 그 질이 너무나 심각했지. 그런데 거의 사실상 전세계를 무대로 하면서 400년에 걸친 역사적 변화를 그려내는데, 밀리터리 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심각한 고증오류가 안 보이는 소설은 이게 거의 처음이었다(기술이야기는 좀 이따 하자).
이때 역덕들 치고 고증이 마음에 안든다고 욕을 하면서도 경록좌 소설 안 읽은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지금은 경록좌의 약점에 대해서 대역갤에서 비판을 아끼지 않는 부갤주도, <연대기> 초중반부가 나오고 있을 시점에 트위터에서 호평을 했었다.
이런 상태는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되는데, 워낙 시장이 좆망상태였기 때문에 경록좌 하나가 히트쳤다고 뒤따라 대체역사가 부흥하거나 그럴 수는 없는 시장이었단 말말이지.
그러니까 몇년에 걸친 시간 동안 경록좌는 경쟁자 없는 원탑이었던 거다.
비교가 되는건 항상 그 시점에서 나온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한건사>였고, 다른 작품이랑 비교 자체가 되지를 않았어.
<연대기>와 그 이후 <제국의 계보>에 대해서 가해지는 비판은 주로 두 가지였는데,
(1) 밀리터리/기술 고증의 상대적 부실함
(2) <연대기> 후반부와 <제국의 계보>에서 드러나는 좌경색채 및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 낡은 학설에 기반한 역사변화 서술
이런 것들이었어.
이 가운데 (1)은 <연대기>가 나오던 시점에 바로 즉각적으로 특히 밀덕들에게서 반응과 비판이 나왔던 것 같고, (2)는 이런 비판이 정립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
그러나 2010년대 초반 시점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2)는 경록좌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뒤로 나온 작품들에서 딱히 (2)와 같은 경향이나 모습을 본 기억도 없고.
그 당시 최신 학설을 찾아다니면서 역덕질 한 몇 명의 역덕 네임드들이 대단한거지, 경록좌가 당시 시점에서 아주 그 부분을 잘못 쓴 것은 아니었어. 일단 기존의 국뽕/환뽕 소설을 벗어나려 하다보니 일단 쉽게 접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대학가에 만연해있던(내가 200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녀서 좀 안다) 그런 아이디어들을 소설에 조금 빌려왔지 않을까 생각을 해.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확실한 게, 2010~2013년 사이는 김경록 원탑체제였다는 거다.
다루는 시공간의 깊이가 전례가 없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자면 대체역사에서 동로마뽕을 처음 주입한 것도 김경록의 <연대기>였어.
신대륙부터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하게 시점을 옮겨다니면서 온갖 재미있는 역사적 장치들을 활용하는 소설은 이전에는 없었고, 그 당시에도 나올 거라고 기대했던 종류의 소설이 아니었지.
진짜 대여점에 한권 한권 풀릴 때만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직접 사모았던 것이 기억난다.
이 시기 이후로 조휘니 다물이니 하는 친구들이 등장해서 대체역사물을 김경록보다 잘 팔아먹었던 것 같은데, 알다시피 국뽕 불쏘시개 쓰는 작가들이고.
그냥 말 그대로 김경록이 <연대기>와 <제국의 계보>로 거의 3-4년 가까운 공백기를 혼자 휩쓸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된다.
4. 과도기 (2014-2017)
그런데 <제국의 계보>가 끝날 무렵쯤에 슬슬 장르소설 시장에 지각변동이 감지되기 시작해.
아마 여기서부터는 좀 나이 어린 대붕이들도 좀 알고 있는 것들일거야.
대여점이 이제 완전히 붕괴한 시점에서 장르소설이 그냥 시망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는데, 웹소설 플랫폼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출구가 열린거지.
몇 푼 안되더라도 연재를 해서 푼돈이라도 벌 수 있게 되었고, 이북을 내서 팔 수 있는 시장도 열렸어.
그래서 다시 작가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지.
이때부터는 확실히 대체역사물의 성격이 많이 달라져서 국뽕/환뽕이 아닌 소설이 많아졌어. 고증의 성실성은 부차적으로 두더라도, 재미있는 대체역사물이 꽤나 늘어난거지.
<만석꾼>을 쓴 구사 작가도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날아올랐고, <신건사> 2부도 연재가 재개되었지.
슈타인호프 작가도 <내가 히틀러라니!>로 예토전생을 했고, 여하간 슬슬 대체역사물이 다채로워지기 시작했어.
경록좌는 이 시기에 <왕조의 아침>을 썼는데, 이 소설이 참 안타까운 점이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애매한 시기에 나와서 대여점에 풀리는 출판본으로 먼저 나오는 바람에 8권 조기종결을 먹었다는 거야(사실 출판 시장이 그만큼 망한 상태에서 8권도 많이 찍어낸거긴 함). 이때가 아마 2014~2015년 쯤이었을 거다.
이 시점이 되면 슬슬 작가군이 두터워지고 대체역사물 종류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굳이 경록좌 소설이 아니라도 읽을 것이 많아졌지.
그러다보니 경록좌 작품도 새로운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비교되기 시작했어.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그런 비판이 조금씩 누적이 되기도 했지.
그러나 그래도 그 명성은 어디 안 가고, <왕조의 아침>이 이북으로 풀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김경록 작가 작품이란 이유로 바로 사서 봤던 것 같아.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출판본은 나온줄도 모르고 있다가, 문피아 이북 대여란에 <왕조의 아침>이 두달 가까이 1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사서 읽었다. 김경록 이름 값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뒤늦게 풀린 작품이 그 정도였어.
물론 요즘이랑 비교하면 연재도 아니고 이북인데다가 광고도 없이 문피아 들어온 거였는데도, 판매수가 1000을 상회했다. 단물 다 빠진 소설인데도.
5. 현재
이제는 대붕이들이 잘 알거야.
우리가 매일같이 소설 보고 글을 싸는 지금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들이지.
이제는 <한건사>는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이 되어 버렸고,
<대한제국 연대기>도 처음 나온지 10년을 바라보고 있지.
두 소설 모두 요즘 나온다면 큰 반응을 얻기 힘들거야.
그간 인터넷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접할 수 있는 정보나 쌓여 있는 정보의 수준도 진짜 달라졌고, 접할 수 있는 양도 현격한 차이가 있지.
더군다나 모든 건 시간이 지나가면 쌓이기 마련 아니겠어? 왕년의 네임드 역덕들도 이제 많으면 인터넷 역덕질 연혁이 물경 20년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는 마당이니.
작가군도 점차 두터워 지고 대체역사물의 신르네상스가 찾아오면서 이제 경록좌의 작품도 많은 대체역사물들 가운데 재미있게 보는 하나 정도가 되었지.
그래도 그 명성이 어디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까지 유지가 되는지를 생각하면 (내 주관적인 견해에서는) 한국 대체역사물 역사에서 손꼽히는 작가로 거론될 작가라고 생각한다.
6. 결론
이제 <퍼거토리>가 종결을 앞두고 있어서 아쉬운 생각도 들고 그래서 판 글인데, 너무 길어졌다.
내가 경록좌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좀 말해 볼게. 이게 내가 주관적인 이유지만 경록좌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일단 앞서도 말했지면 그냥 폭싹 망해서 아무도 남지 않은 대체역사 장르판에 혼자 횃불 지키고 있던 사람이라서야. 그런데 그냥 횃불만 들고 있는게 아니라 퀄리티가 꽤 좋았어. 그리고 지금까지 10년에 걸쳐오면서 끊임 없이 단점을 개선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이야. 여전히 경록좌스러운 습관이 남아 있긴 하지만 <연대기>랑 <퍼거토리> 사이에는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지. <연대기> 쓰던 사람이 웹소설 장르판에 이 정도로 적응을 한다는건 놀라운 일이야.
물론 경록좌의 명성에 비해서 그 고유의 색채 때문에, 또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일단 너무 진지빠는 경우가 많아서 덕질할 소재가 많이 안나오지. 캐릭터라든지, 상황이라든지...
물론 이건 단점만은 아니고 장점일 수도 있기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역사소설 다운 진중함이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퍼거토리>에서는 희대의 국진좌를 탄생시키기도 했고.
둘째는, 아무래도 기술고증일 것 같아.
<퍼거토리>쯤 되면 밀리터리나 기술고증에 경록좌가 많이 신경을 쓴 흔적이 보여.
그래도 그 분야를 파는 덕후들이 보기에는 미진한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지.
혼자 쓰는데다가 부갤주 말대로 숫자에 좀 약해.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20년에 걸쳐서 대체역사물을 봐올 때, 적어도 한국장르판에는 완벽한 대체역사물은 없었어.
경록좌 소설 정도면 여전히 쓰기만 하면 그 시점에서 탑3안에 들어갈 기본은 늘 갖추고 나온다고 본다.
물론 이제 경록좌보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더 등장을 할거고, 고증이 더 나은 작가들도 점점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에서 2010년대의 초중반의 한국 대체역사는 김경록의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경록좌가 어디 커뮤니티 활동같은 걸 하지를 않아서 좋은 의미에서의 적극적인 쉴더들이 많지 않은데,
그냥 생각난 김에 한 번 내 생각을 정리해봤어.
전업작가가 아니라고 하니 언제까지 글을 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퍼거토리 이후에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작가의 말에서 말했던 것 같으니, 신작도 빠르게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계속 이렇게 발전하면서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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