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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보리스 이솔렛 야설 1화

에안나니무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0.22 20:56:50
조회 2076 추천 42 댓글 8
														

"거기에 두시면 돼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낭창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보리스는 들고 온 상자를 내려두었다. 그건 꽤나 무거웠다. 이미 완연히 추운 겨울인데도 그걸 옮기느라 보리스의 이마에 땀이 송골거렸다. 보리스는 허리를 펴며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마를 훔치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네냐플 연구동에 위치한 적당한 크기의 학생용 연구실이었다. 하지만 연구실 치고는 제법 좋은 방이었는데, 바닥에는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는데다 벽에는 벽난로까지 달려 있었다. 지금 이 방을 쓰는 게 연구생도 아닌데, 제법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방을 둘러본 당초의 목적인 목소리의 주인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보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별안간 책상 앞에 놓인 의자가 빙글 돌아갔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가 보였다. 어찌나 작았는지 의자에 폭 파묻힌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검고 치렁한 머리가 등 뒤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매번 도와줘셔서 고마워요!"


이 소녀의 이름은 아냐, 보리스의 1년 아래 후배였다. 시험공부만으로도 매년 학생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 네냐플 커리큘럼을 소화하며 드물게 자기 연구를 진행하기까지 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아냐는 총총 다가와 보리스가 가져온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탄성을 질렀다.


"와, 이렇게나 많이? 이거 정말 다 제가 가져도 돼요?"


보리스는 과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쓰지도 못하는 것들이야."


상자 안에 담긴 것은 학교 근처 대장간에서 작업 중 실수로 못 쓰게 된 철조각들이었다. 대장장이는 꽤 한가한 사람이라서 이런 것들이 나오면 언젠가 쓸 데가 있겠지 하고 모아두곤 했는데, 그것들이 모여 몇 상자가 되어도 구석에 처박아 둘 뿐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녹까지 슬어 쓰기도 애매해진 것들이었는데, 아냐가 연구에 필요하다고 부탁해온 것이다. 보리스는 가끔 시간이 날 때 옛날 생각도 떠올릴 겸 대장간에 가서 철을 두드리기도 했으므로 대장장이와 친했고, 이런 잡동사니 좀 집어간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보리스는 인사만 대충 하고 나가려 했는데, 문득 상자 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아냐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저만한 또래 소녀들과는 전혀 다른 것에 저렇게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니 조금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녹슨 쇳조각들로 뭘 하려는 거지?"


"아, 이거요? 자연의 기본 원소의 자가감퇴와 마법의 급속 소멸 현상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비교해보려는 건데요. 그러려면 일단......"


그리고 질문을 꺼내자마자 후회했다. 온갖 전문용어들을 쏟아내며 떠들어대는 아냐를 보며 보리스는 빨리 수습하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꺼냈다.


"그러니까... 썩은 샐러리랑 비슷하다 이거지?"


그런데 놀랍게도 별안간 아냐의 눈이 쟁반만큼 커지며 손뼉을 짝 쳤다.


"맞아요. 정확해요! 역시 선배, 수업시간에 조는 척하면서 남모르게 다 공부하고 계셨군요! 역시 대단해요! 그러니까 이건, 일단 유피네스의 적법성 이론이 적용되는 물질을 선별해야 하는데, 저도 처음에는 샐러리를 쓸까 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따라오는 문제가......"


보리스는 속으로 썩은 샐러리 소동과 관련된 친구 중 하나를 원망하며 어떻게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구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뒤쪽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낯익은 얼굴이 튀어나온 것이다. 다름아닌 루시안이었다.


"보리스 여기 있어? 아, 있네!"


보리스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덤덤하게 말했다.


"날 찾았어?"


"응. 와, 그런데 이 방 진짜 올 때마다 진짜 좋은 것 같아. 우리 빌라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나는 학교에서 이런 방 하나 안 주나?"


"네가 다음 시험에 낙제하지 않으면 아마 고려 정도는 해보겠지."


"음. 역시 그럴까? 그래도 다른 연구실은 이렇게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아냐, 넌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야?"


루시안이 또 뜬금없는 화제로 말을 옮길 것 같고, 그랬다간 다시 빠져나갈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보리스는 대충 루시안의 말을 얼버무리고 아냐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문고리를 돌려 여는데 별안간 반대쪽 손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아냐가 보리스의 손을 쥐고 있었다.


"선배. 항상 고마워요. 다음번에 제가 답례로 술이라도 한잔 살까요? 아, 물론 시간이 나면요."


내려보니 생글대는 아냐의 얼굴이 보였다. 전부터 나름대로 밉상은 아니라 귀엽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하니 대놓고 거절하기도 뭣해 그냥 씩 웃어주었다.

"아, 맞다. 보리스. 말하려다가 깜빡했는데."


그렇게 복도로 나오려는 순간, 루시안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뭔데?"


"손님 왔어."


"뭐?"


그리고 웃음기가 약간 남아 있는 채로 복도로 나온 보리스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흐음."


다른 순간이었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의심하고 있긴 한데, 다른 때였다면 누구보다 반가웠을 사람이 눈 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얼어붙은 보리스 앞에 이솔렛이 삐딱한 표정을 짓고 턱을 괸 채 서 있었다.


"자, 잠깐만요. 이솔렛. 이건 그러니까......"


이솔렛은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학교 생활이 재미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지금이 아니라 다른 순간이었다면 감동의 재회였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이솔렛이 그대로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버렸기 때문에.


"뭐야? 보리스. 너 뭐 잘못했어?"


속 없이 옆에서 그런 소리나 하고 있는 친구를 보며, 보리스는 오래 전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거 지금 뒷목 쳐서 기절시켜도 무죄인가?


보리스는 곧 고개를 홰홰 저었다. 쓸데 없는 생각은 그만두고, 지금은 일단 쫓아가야 할 때다.




"이솔렛!"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보리스가 이솔렛을 따라잡은 건 교정 앞까지 나가서였다.


"제 말 좀 들어봐요! 이솔렛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때 저만치 앞서가던 이솔렛이 별안간 걸음을 딱 멈추더니 매섭게 뒤돌아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게 뭔데?"


"......"


보리스는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그런데 이솔렛은 여전히 차갑게 보리스 쪽을 보더니 대뜸 근처에 있는 공용 의자 하나를 잡아 풀썩 앉았다. 시선은 여전히 보리스에게서 거두지 않은 채였다. 보리스는 말 없이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


한참동안 말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보리스는 이솔렛의 옆얼굴을 흘깃대며 바라보았다. 화난 걸까? 역시 화났겠지? 아니,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이라고 한 건 없잖아? 그냥 후배랑 인사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리고 원래 이솔렛은 무뚝뚝한 사람이니까......


"아."


머릿속으로 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솔렛이 소리를 냈다. 보리스가 황급히 이솔렛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풀숲 사이에서 검은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거리며 나오는 중이었다. 이솔렛이 저 고양이에 관심이 있는 걸까?


"음... 섬에는 없었죠? 저건 말이죠..."


"나도 저게 뭔지는 알아."


"......"


보리스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역시 화가 난 게 맞는 걸까?


그리고 이솔렛의 다음 말이 떨어진 순간, 보리스의 의심은 확신로 바뀌었다.


"머리 검은 도둑고양이 같으니."


-----


-원작 읽은지 오래되서 사소한 설정이나 캐릭터 해석이 좀 틀렸을 수도 있음. 그런 거 있으면 주저없이 지적해주셈.


-오리지널 캐릭터 아냐는 그냥 보리스가 다른 여자애한테 한눈파는 상황 만들고 싶어서 넣었다가 생각보다 비중이 많아졌음. 앞으로 끝까지 등장 안 할거고 메리수나 삼각관계 같은 거 안 넣을 테니까 걱정 ㄴ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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