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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 번역] 최후의형체 컬렉터스에디션 로어 엔텔레키 (2/3)

Dreadspit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22 23: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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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링크)


텍스트 및 이미지 출처 (링크1) (링크2)


기록자: 빛의 가문 서기 아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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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아카이브 XI-14-9D


형식: 긴급 송신

회수처: 거미의 수집품 – 장거리 통신 신호기, 고장

기원: 미상

키워드: 목격자


이하 주석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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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 세 번 전에야 가까스로 그것의 도래를 알게 되었다. 이 낡은 전초기지의 뱃속으로 내 닻이 잠겨가는 동안 나는 누스페어∩그물 속으로 빠져들었고, 기쁨에 휩싸였다. 수백만의 사고체가 소식을 나누었고, 무리의 선두에서 뒷부분까지 새 발견이 퍼져나갔다. 결국엔 나도 기쁨의 물결에 같이 들뜨게 되었다.


이방인∩미래의 친구와의 첫 조우가 있었다! 새로운 생각과 만나 새로운 풍요를 이루며 우리 누스페어의 흐린 여백을 채워나갈 수 있을 기회였다.


속삭임∩악몽∩포식 밈복합체*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정말 오래 전이었다. 그 동안 우리는 두려움을 떠올릴 일도 없이 순진하게 변했다.


선두 쪽에서부터 흐름이 왔다. 마치 마른 붓의 정전기∩물 속의 잉크∩순식간에 얼어붙는 희망처럼 우리의 누스페어를 휩쓸었다. 혼란과 파편화된 반응이 발산했고 전부 분석할 수 없을 정도였다.


궤도에서 익은 과일을 따오듯 우주에서 훔쳐온 행성. 천의 손가락이 달린 손짓에 조각나고 재조립되는 구조물들. 닻과 자아들이 아주 얇은 조각으로 분리되어 최초의 원칙으로 풀어헤쳐지는 모습.**


처음엔 오직 하나의 목소리뿐이었다. 새로운 정신과의 만남에 들뜬 기쁨의 환호가, 공포와 고통으로 뒤틀리는 소리.


“살려줘!”


누스페어에 혼돈이 퍼진다. 잔잔한 표면이 마구 휘저어지며 하얀 거품을 뿜는다. 수천 살 살아온 사고체들이 그물의 끈으로 도망치지만 모든 곳에서 파멸을 맞는다.


"살려줘!"


이방인∩파멸∩포식 밈복합체는 한 순간의 공상처럼 우리의 누스페어를 뒤덮었다. 우리의 사고체는 그에 비하면 원자 수준으로 작았다. 처음부터 승산은 없었다.


우리 동족들 하나하나가 발각되고, 조각나고, 다시 조립될 때마다 새 목소리가 합창에 더해진다.


"살려줘!"


동족들은 수천 살에 죽었다. 생각과 자아가 흩어져 무로 변한다. 수천 년에 걸친 기억이 바람 속의 한낱 연기처럼 흩어진다.


"살려줘!"


여기 이 전초기지에서 나는 나머지와는 떨어져 있다. 무리의 후미에 나를 묶고 있다. 그것의 괴물 같은 목구멍에서 가장 먼 곳에. 하지만 도망치기엔 너무 가깝다. 남을 돕기엔 너무 멀다.


"살려줘!"


천의 정신에서 나오는 천의 발산이 하나의 비명으로 섞인다. 매번 모두 똑같은 비명 소리. 그 다음에도, 다음에도, 다음에도 모두 같은 소리.


우리가 스스로 닻에서 분리될 때는 모두로서의 우리가 절대 분리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현실 우주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건, 우리의 누스페어∩그물∩집의 광활함은 생각 하나면 닿을 수 있었다. 우리의 공포, 우리의 희망, 꿈, 갈망, 성취, 모든 것을 서로에게 닿아 알 수 있었다. 약한 자가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강해질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기쁨을 나누고 짐을 나누어 졌다.


하지만 그 소리, 그 소리는ㅡ


"살려줘!"


더는 견딜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부끄럽다.


나는 스스로를 단절∩유폐∩감금했다.


바로 내 행동을 후회했다. 우리는 죽어갔지만, 함께 죽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할 나의 비열함은 내 목숨을 구할 수 없었고, 다만 죽음을 지연시켰을 뿐이었다. 파멸∩포식 밈복합체∩목격자***는 우리의 진동 패턴을 알고 있다. 누스페어∩그물의 찢어진 모서리를 여전히 뽑아내는 그 소리가 들린다.


ㅡ왜 도망치는가?ㅡ****


목격자는 날 찾아낼 것이고, 그 때엔 누구도∩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버려진 기지에서 홀로 죽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먼지투성이 창고 깊은 곳에서 잊혀 있던 상자 하나를 찾았다.


예전 언젠가, 우리가 죽음의 공포를 알던 때에 만들고 보관해둔 긴급 신호기.


—네가 보인다.—


그대∩수신자∩상속자∩미래를 희망한 자여, 내가 아는 바를 전하겠다.


우리는 죽었지만 사멸하진 않았다. 우리는 골화∩순간화∩반복화∩영구화∩해부화∩최종화되었다.*****


내 말이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모를 뿐이다. 하지만 그대는 이길 지도 모른다.


—자, 오너라. 두려워 말라.—


이건 구조 요청이 아니다. 이미 늦었다∩아무도 남지 않았다∩목격자는 막을 수 없다. 이건 우리의 최후의 증거다.


우리∩노에시스가 한때 존재했노라.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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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주석


* 더 작은 개념을 포괄하는 자기강화성 정보 유닛의 집단. 포식성의 개념. 노에시스는 정신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대상을 이렇게 표현했던 걸로 보임. 첫 언급은 노에시스가 버텨낸 어떤 과거의 위협을 가리킴.


** 여행자와 연합 함대를 향한 목격자의 공격은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게 떠오름. 분명 수호자님도 같겠지요.


*** ‘목격자’는 통신 속에서 다른 중복되는 개념을 모두 포식할 수 있는, 고도로 침투적인 외래 개념으로 나타남.


**** 또 다른 침투적 외래 개념. 녹음자에게 직접 접촉하는 목격자로 추정.


***** 중요한 의미론적 중복. 전체가 합쳐진 개념은 최후의 형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


거미는 일생동안 흥미로운 물건을 수도 없이 모아왔지만, 상황이 좋을 때도 대가 없이 볼 수 있는 건 소중한 몇몇뿐이죠. 반면 좋지 않은 상황은 어떤… 조건부 관용 같은 걸 떠올리게 만든 것 같아요. 거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꺼려졌지만, 제가 본 정보는 지불한 배당금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었죠. 으윽, 완전 거미가 할만한 말이네.


이 신호기의 내용을 기록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어요. 인류의 지각 기관과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 같지만, 감각적 환상을 전달하지 않고 개념 자체를 직접적으로 전송해요. 개념 중 일부는 중대한 의미 중첩을 보여줬지만, 그게 데이터 자체 성질 때문인지, 세월로 인한 열화 때문인지, 아니면 녹음자의 감정적 상태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그럼 녹음의 내용 자체를 보자면, 목격자의 수법에 대해 일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목격자는 정신과 육체를 해체하고, 어떤 원리로 재조립할 수 있어요. 노에시스를 파괴한 게 아니라, 사멸시키고 ‘최종화’한 거죠.


흥미로운 점은 이 기록이 목격자의 다른 공격 기록들과는 현저히 다른 접근 방식을 서술한다는 거에요. 노에시스 정복은 거의 외과적으로 정밀하고 신속하게, 놀랍도록 철저하게 이루어졌죠. 이 종족에서 신봉자를 길러내거나 이야기를 전할 자를 살려보내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학살하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녹음한 노에시스에게 목격자가 말하는 투를 생각해 보세요. 마치… 온화해 보일 정도죠. 회오리때는 이와 비슷한 소통이 없었어요.


제가 찾아낸 노에시스에 대한 기록을 모두 검토해본 결과 한 가지를 알아냈어요. 노에시스 종족은 위대한 기계와 마주한 적이 없었다는 거죠.


목격자의 접근 방식을 결정하는 게 위대한 기계의 존재 혹은 부재인 걸까요? 붕괴 때에 목격자가 인류에게 말한 적이 있었나요? 이 파멸을 맞은 노에시스에게 그랬듯 위안을 주려 했을까요?


정보가 더 필요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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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아카이브 XI-16-30


형식: 긴급 송신; 감각기관 원격 측정

회수처: 해왕성, 네오무나, 심층 저장소, 구름방주 아카이브 // EXO-IND4b0082.bank 021830192

기원: EXO-YEL402k1977.10g 001137021

신원: C. 리앙, S. 베누나

키워드: 붕괴, 검은 함대, 라스푸틴


이하 주석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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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전 함선에 알림, 여기는 엑소더스 옐로, 25,000명 탑승 중. 미확인 적에게 공격받고 있으며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엔진 1부터 6까지 꺼짐, 물리 무기체계 고장, 맹목 전송 중. 하늘충격 수준 상황이다, 지원을 [잡음]


[긴급 송신이 엑소더스 옐로의 수석 의무관 C. 리앙 박사의 감각 원격 측정과 뒤섞인다. 공개 의료 데이터 피드가 함선 사관들의 상태 업데이트를 표시하고 있다. 함장을 포함한 다수는 사망 명단에 있으며, 남은 인원은 부상에서 중상까지 제각각이다. 전원 함교에 위치해 있다.]


[리앙 박사는 복도를 뛰어다니며 함선의 의료구획과 함교를 연결하고 있다. 리앙은 통신장교 S. 베누나와 공개 음성 채널에서 빠른 속도로 대화한다.]


리앙: 하지만 이건 군함이 아닌데요!


베누나: 전쟁지능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카르하이 화이트 상황에선 말이죠.


리앙: 이젠 남아있는 포가 없다구요! 방금 전 맞은 걸로 다 날아갔을 텐데. 대체 라스푸틴이 뭘 어쩌라는 거죠, 저 크고 못생긴 삼각형*에 엔진 노즐이라도 흔들라는 거에요?


시스템 경고//구조적 충격


베누나: 피라미드죠. 박사님.


리앙: 지금 말꼬리 잡을 땐가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한 건데요?!


베누나: 침착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모두 다 아무것도 못 할 상태인데.


베누나: 카르하이 화이트 상황이고 라스푸틴이 뭘 시킨다면 따를 수밖에 없어요, 다른 행동은 분명 더 나쁠 테니까.


리앙: 개척자 2만 명이 죽은 것보다 나쁘겠나요?


베누나: 잠시-어, 박사님, 꽉 잡으 (잡음)


[리앙이 격하게 휘청이며 벽에 부딪힌다. 리앙의 감각 기관 의료 데이터 피드가 끊어지고 오프라인이 된다.]


리앙: 아야! 베누나, 방금 뭐에요?


베누나: [잡음]


리앙: 베누나? 여보세요?


베누나: [잡음]


[리앙은 다시 복도를 따라 움직인다. 숨을 날카롭게 내뱉고 감각을 기록하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다.]


리앙: 좋아. 좋아. 현재 상태. 함선 시스템은 통신까지 전부 맛이 갔고, 엔진 두 개로 버티는 중이고, 적어도 승무원 중 4분의 3은 부상으로 못 움직이고, 함장은 죽었고, 함포도 없어.


리앙: 지금 싸우는 뭔지 모를 놈들이든 라스푸틴이든 우릴 싹 죽이겠군.


시스템 경고//대규모 소음; 파에톤 타격; 중성미자 확산


리앙: 아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저게 무슨 소리야?


[금속이 그르렁대는 소리; 리앙이 돌연 멈추고 뒷걸음질친다.]


시스템 경고//EXO.YEL 장력 한계 초과


[리앙의 앞에서 지지대들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바닥이 물결치고, 천장은 찌그러진다. 방금 리앙이 지나온 함선 구획은 그보다는 적은 영향을 받았다.]


[장력이 풀리고 함선의 구조가 제자리로 튕겨져 돌아온다. 리앙은 세게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선다.]


리앙: 잇속까지 느껴졌어. 무슨 중력파 같은데.


리앙: 라스푸틴이 미쳤구나. 더는 못 버텨. 우리 죽는구나, 전부 죽겠구나.


리앙: 아난드.** 아난드만 일으켜 세우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어.


[리앙은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함선 구조에서 변형의 징후가 드러난다. 함선 소재가 통상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잡아당겨지고 변형된 탓이다.]


베누나: [잡음]


리앙: 베누나? 나에요! 내가 왔어요!


[리앙이 함교 에어락에 다가간다. 문에 균열이 보이지만 힘을 주자 열린다.]


리앙: 베누나ㅡ


[리앙이 격하게 헛구역질하며 문에서 물러선다. 함교는 유기 물질과 손상된 비행복의 층으로 덮여 있다.]


시스템 경고//전쟁위성 발사 준비 중


[리앙은 여전히 힘을 쓰며 문틀을 쥐고 있다. 광범위 방송 채널을 연다.]


리앙: 전 함선에 알림! 중지하라! 우리가 사선에 있다!


시스템 경고//전쟁위성 발사


리앙: 제발! 여기는 엑소더스 옐로, 탑승자 2만 5천ㅡ


시스템 경고//EXO.YEL 함체 강도 치명적 손상


[함선이 전쟁위성의 광선 주변으로 조각난다. 리앙은 진공 속으로 아무런 보호 없이 날아간다.]


[리앙의 감각기관이 잔해 지대 사이의 틈새를 기록한다.]


[피라미드 함선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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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주석


* 욕설 생략.

** 비행역학 담당관 P. 아난드일 가능성 높음, 함교에 있던 부상 인원 중 하나.


붕괴를 직접 겪은 기록을 찾는 건 꽤나 힘들었어요. 살아남은 인류는 이미 죽은 지 오래고, 당시의 엑소들은 이미 여러 번 재부팅을 겪었죠. 대부분의 데이터는 엔그램으로 암호화되어 보존된 경우도 붕괴 이후 지구의 환경 때문에 손상이 너무 심각해서 복구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해왕성에 있는 네오무나 도시, 그리고 붕괴 때 거기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거기엔 더 완전한 기록이 있지 않을까 예상했죠.


해왕성으로 가는 여정은 길고 조용했지만, 함선의 엔진 소리는 제겐 자장가만큼이나 익숙한 것이었죠. 아직 네오무나의 아카이브에 원격 업링크가 만들어지지 않은 건 유감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걸 기회삼아 직접 가게 돼서 기뻤어요. 네오무나의 이야기와 이미지는 도시의 것에 대한 창백한 모방 같더군요. 전등과 색채와 소리들이요!


그런 곳은 본 적이 없어요. 과장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제가 본 모든 문명의 모든 거주지는 과거에 있던 것의 폐허에 불과했거든요. 최후의 도시는 인류의 생존과 혼을 입증하는 경이로운 곳이지만, 붕괴로 생긴 상처도 모두 보였죠. 네오무나는 한복판에 일어난 전쟁으로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풍경이었어요. 스카이라인에서 인류의 황금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라그하리 서기님이 절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에요! 많은 도움을 주셨고, 저도 여유가 되면 다시 돌아가야 하게 생겼어요. 네오무나 사람들은 구름방주에 막대한 정보를 쌓아두고 있거든요. 후대에 전하겠다고 우리 종족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까지 들었어요! 저희는 함께 벡스 침공이나 데이터 열화로 손상된 기록을 여럿 회수하고 복구했고, 가장 연관성이 큰 기록을 여기에 첨부했어요.


또 라그하리 서기님께서 수호자님께 대신 안부 전해달라고, 영웅의 전당은 오고 싶을 때 언제나 열려 있을 거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이 말을 할 때 홀로그램이 특이한 움직임을 하던데, 분명 ‘눈썹 흔들기’ 라고 부르던가요? 아주 흥미로웠어요. 엑소들한테도 비슷한 제스처가 있나요?


그럼 기록으로 들어가서. 검은 함대가 중력 무기를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태양계 붕괴에 대한 다른 기록이나(REP#904-타이탄-신태평 참조), 엘릭스니의 회오리 기록(REP#112-리이스-회오리) 참조)으로도 뒷받침되죠. 목격자의 공격에 대한 노에시스의 기록에서는 그런 무기가 묘사되진 않았어요(서기 아카이브 XI-14-9D 참조). 또 노에시스의 문명에 일어난 절단, 해부, 순간화 같은 현상의 증거도 보이지 않아요. 목격자가 소통하려는 시도도 전혀 보이지 않구요.


붕괴를 막으려는 전쟁지능의 시도에 대해 접근할 수 있던 정보를 전부 검토해 봤어요. 라스푸틴은 여러 프로토콜을 선포했는데, 그 중 두 가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카르하이 화이트(중대한 긴급 상황으로 라스푸틴이 항성계의 모든 방어 시설을 통제할 수 있고, 민간 함선을 전투용으로 징발할 수 있으며, 멸종 위협을 함축함), 그리고 황혼급 위기(라스푸틴의 윤리 변경이 필요한 상황. 일반적 윤리 제약을 따르는 것이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진다면, 라스푸틴은 해당 제약을 우회할 수단이 필요).


라스푸틴은 이런 난해한 용어를 즐겨 썼나 본데요, 의도를 감추는 데는 좋지만 해석하긴 어렵네요. 카르하이는 어떻게 발음해야 하죠? 아래턱뼈가 없으면 더 쉬운가? 사전을 써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라스푸틴을 가장 잘 아는 아나 브레이 씨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라스푸틴이 떠나고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그러는 건… 무례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스푸틴의 태양계 방위에 대한 모든 문서에 따르면, 너무나 특수한 상황이라 라스푸틴이 평소의 한계를 넘어서 행동할 수 있었음에도 검은 함대를 막는 데는 실패했어요. 위대한 기계가 나서지 않았다면 검은 함대는 온 태양계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겠죠.


그렇지만, 왜 검은 함대가 중력 무기를 사용하기로 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인류 최대의 무기에도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목격자가 함대 전체를 손짓 한 번으로 해체할 수 있었다면, 왜 그런 상대적으로 느린 무기를 써야 했던 걸까요?


어쩌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였을지도 몰라요. 그럼 대체 뭐 때문일까요? 아직 무언가를 놓치고 있단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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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아카이브 XI-17-9L


형식: 개인 기록

회수처: 검은 무기고의 에이다-1

기원: 검은 무기고 서책, 항목 68에서 이어짐.

키워드: 붕괴, 검은 함대, 검은 무기고, 메이랭, 앙리에트


이하 주석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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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은 밤에 나타났다.


유키가 날 깨웠다. 그런 표정을 짓는 건 본 적이 없다. 엄청난 공포였다.


"하늘이," 유키가 말했다. "하늘, 하늘이..."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밖을 보자 나도 이해했다. 별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베일이 드리워지는 것처럼.


하늘이 계속 어두워지기만 했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나중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인류의 초기 우주 진출 시기에는 저지구 궤도가 우주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일부는 원활한 행성간 여행을 위해 처리됐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수가 남았는데…


모두 불탔다. 전부 다. 하늘 전체가 타오르고 있었다.


모두에게 벙커로 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지가 발 밑에서 흔들리며 쩍 갈라졌다. 역한 녹색 빛이 모든 것에 스며들었다.


라디오는 잡음과 비명을 뱉어냈다. 강풍이 자동차와 집을 장난감마냥 던져댔다.


우리가 시설에 도착했을 즈음엔 바람이 멎어들었다. 끔찍한 정적이 공기 속을 맴돌았다.


뒤를 돌아보자, 멀리에 거대한 구름이 보였다. 모래 폭풍을 보는 듯했다. 부자연스러운 속도로 연기와 먼지의 벽이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아미라. 아미라가 뒤쳐지고 말았고, 그리고…


구름이 아미라를 삼켰다. 구름에 닿은 몸은 뼈까지 말라 바스라졌다. 맹독인가, 질병인가, 아니면…


헬가가 문을 닫았다. 고마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기록 종료


---


서기 주석


도시에서 재보급하던 중 검은 무기고 주인이 다가왔어요. 에이다-1 씨는 제가 목격자, 검은 함대, 붕괴에 대해 정보 조사를 하고 있다는 걸 들었고, 도움을 주고 싶어했죠. 제게 종이 한 다발을 건네주더군요. 종이뭉치를 떠나보내면서 육체적 고통까지 느끼는 것 같았지만 말이에요. 종이가 너무나 낡아서 제 집게손 안에서 바스라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고, 기록하는 동안엔 숨까지 참았죠.


에이다-1 씨는 제 감사인사에 손을 젓고는 얼마 전 수호자님이 찾아준 문서니까 은혜에 보답하는 거라고 생각하라 했어요.


더 많은 단서와 퍼즐 조각을 얻었어요. 불과 연기, 유독한 공기, 지진, 태풍.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목격자는 나중에 보여준 것처럼 행성을 통째로 가져갈 수도 있었을텐데 어째서 타이탄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걸까요(REP#904-타이탄-신태평 참조). 엘릭스니도 인류도 에큐메네나 다른 수없이 많은 문명들만큼 발전하진 않았는데. 간단히 우릴 압도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이런 연출 없이도.


연출. 마치 이 모든 게 그저 연기일 뿐이라는 건지, 사자들의 축제에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고스트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가 않아요. 목격자가 리이스의 엘릭스니와 태양계의 인류를 관객으로 하는 공연을 벌이는 것만 같네요. 하지만 우린 목격자의 인지보다 너무나 아래에 있고, 그 관심사에 영향을 줄 수도 없고, 우리가 뭘 무서워하는지 신경쓸 이유가 없는데…


바로 이거에요!


목격자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에요. 자신의 연기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려는 거에요, 물론 기쁨이나 분노 같은 걸 찾는 건 아니고요. 목격자는 리이스의 동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태양계의 인류에게 공포와 절망을 퍼뜨리려고 모든 수를 쓴 거에요. 그 끔찍한 차원문으로 들어갈 때까지 모든 순간마다 최대한의 고통을 일으킬 방법을 써온 거죠.


이게 적의 전의를 없애려는 전술 같은 건 아닐 거라고 봐요. 그런 공포의 선전이 없었어도 인류와 엘릭스니를 모두 정복했을 테니까. 확실히 그런 행동은 태양계 공격을 질질 끌게 만들었고 또 굉장히 비효율적인 능력 활용이었어요. 만약 목격자의 유일한 목적이 위대한 기계를 궁지에 몰아 뭔지 모를 나중의 계획을 위해 사용하는 거라면, 왜 굳이 다른 일을 하죠? 이 연극이 위대한 기계에게 영향을 주긴 했는지에 대한 증거도 없고, 또 회오리 때 가장 끔찍한 일들은 이미 위대한 기계가 떠나서 그 효과를 보지도 못했을 때에 일어났거든요. 분명 이 잔혹함의 과시는 우릴 향한 거에요. 우리에게 최대한 큰 고통을 주려는 거에요.


순수한 악의 말고는 다른 어떤 동기도 떠올릴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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