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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솦갤문학] 민수용 인형 와플양 이야기 - part.5

라비루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5.31 11:45:46
조회 680 추천 1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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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원작 「소녀전선」의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민수용 인형 와플양 이야기]




"아... 진짜 짜증나네. 며칠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나 발 잘못들인 건가?"


거리를 둘러보는 양아치 사내는 한숨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깨에 한 짐 크게 매고 있는 그는 다크서클도 짙고 걸음걸이에도 힘이 없었다. 얼굴에는 그저 짜증과 불만만이 가득 쌓여있었다.


"젠장! 돈 많이 만질 수 있다고 해서 그 아조씨 말 듣고 왔더니만, 뭐 이렇게 빡센 일이 다 있어? 아오..."


물론 그의 입장에선 팀장이 빚을 상당량 갚아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뿐. 이후 해체업자의 일로 끌어들인 첫 일에서부터 노예처럼 부려먹기만 하니,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고만 있었다.


"젠장... 그 인형 발견하면 그냥 나 혼자 먹고 튈까? 그게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온갖 불순한 상상을 하던 그의 시선이 기울어지다가, 순간 큰 눈이 떠졌다. 엄청나게 놀라며 바라보는 그곳에는 다름아닌, 숀과 와플이 길을 걷고 있었다. 조금 어색해 보이는 풋내기 커플처럼, 어정쩡하게 붙어서 길을 걸어가는 소년과 소녀를 본양아치 사내의 눈매가 심각하게 굳어졌다.


'저, 저 인형 설마!!'


조심스럽게 둘의 근처에 다가가며 흘긋거리는 양아치 사내. 다행히 서로 티격태격 다투느라 다른 곳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녀를 쭉 훑어보던 그의 눈이 더욱 동그랗게 커지고 말았다. 와플의 오른손에 새겨진 타투를 확인했기에. 그는 미션 브리핑중에 팀장이 했던, 목표물 인형은 오른손등에 타투를 했다는 얘기를 곧장 떠올릴 수 있었다.


'확실해... 저 인형이다!'


목표물을 발견하자 급격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처음으로 발견한 게 자신이라니, 긴장감과 당혹감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인형이 자신의 빚더미보다도 비싸게 팔릴 거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검은 욕망이 고개를 내밀려하고 있었다.


'저걸 나 혼자 챙긴다면...!'


머릿속으로 온갖 망상을 하며 한참이나 와플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양아치 사내. 그렇게 오랫동안 있던 그는.. 옷깃의 무전기에 입을 댈 수밖에 없었다.


"형님.. 아니, 팀장님. 발견했슴다!"


더 이상 삶이 막장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그는 안정적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목소리를 한껏 낮춘 그의 무전에 대답하는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흔들림 없는 침착하면서도 무거운 것이,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좋아. 당장 잡지는 않는다. 타이밍 잘 봐서, 일러준 대로 하도록.-

"넵..!"


팀장과의 무전을 끝낸 양아치 사내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사람 굴려먹을 생각만 하는 팀장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어찌됐건 인형을 잡는 게 우선이었으니 별 수 있나. 그는 줄곧 매고 다니던 가방을 쫙 펼쳤다.




한편, 숀과 와플은 거리를 거닐면서도 계속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다.


"그냥 빨리 다녀오는 게 낫지, 뭐하러 시간을 때우다 가자는 거야?"

"구, 굳이 일찍 갈 필요도 없는 거잖아! 언제 오라고 따로 얘기한 것도 아니라는데, 모처럼 나왔으니 점심이라도 먹고 가자고.. 그, 그것뿐인데 뭐!"


아무래도 식사를 하고 가냐 마냐의 문제로 다투는 모양이다. 길 한복판에서 정도껏 한다곤 해도 땍땍거리며 다투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었고, 뒤늦게 주변을 인식한 둘의 얼굴은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빨개지고 말았다. 민망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숀이 작은 한숨과 함께 꼬리를 내리고 만다.


"그렇다면 뭐.. 오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먹고 가는 것도 좋겠지..."

"흥.. 진작에 그랬으면 됐잖아!"


어쩜 하루도 다투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는 걸까. 헤실거리는 숀과 그런 숀에게 코웃음을 쳐주면서도 크게 싫은 내색은 하지 않는 와플. 따뜻한 봄날의 햇살 아래, 서로 나란히 걸음을 맞추는 둘의 시선이 마주한.. 그때였다.


"여어~ 형씨랑 아가씨!"


가볍게 울려 퍼지는 껄렁한 듯한 목소리가 숀과 와플의 시선을 끌어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거리의 한 편에, 작은 노점을 차리고 앉아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캡을 깊이 눌러 쓰고 선글라스로 눈까지 가린 것이 햇빛을 받기 싫어하는 건가, 싶은 남자였다. 남자의 기분 나쁜 미소를 보는 숀과 와플이 의아해하자, 그의 입이 다시 열리며 그 둘을 정확히 가리켰다.


"그래, 거기 꽁냥꽁냥한 형씨랑 아가씨! 이리 좀 와서 물건 좀 보고 가~"


꽁냥꽁냥이라는 말에 둘 모두 순간 얼굴을 붉혔다. 그저 소리 빽빽 지르며 다투는 모습뿐이었거만, 정말로 사이가 좋아 보였던 걸까? 그의 말 때문에 지금까지 해온 자신들의 행동이 의식됐다. 거리 한복판에서 남녀 둘이 점심을 먹네마네로 투닥거리는 모습이라던지, 그 전에도 어수룩하게 쭈뼛거리며 나란히 길을 걷던 거라던지. 자신들의 모습이 어땠을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화끈거리는 얼굴을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면서 그 남자에게 다가가자마자, 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꽁냥이라니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 그렇지 않으면 내가 굳이 불렀겠어? 좋은 것 좀 보고 가라고 그랬지~"


떵떵거리는 요란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가리키는 것은 자신이 펼쳐둔 좌판이었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이 한가득, 열을 맞춰서 가지런히 놓여져있었다. 목걸이와 귀고리, 반지 등 다양한 액세서리들은 비록 하나 같이 작고 소박한 디자인에다 진짜 보석이 아닌 큐빅을 박은 저가품들이었지만,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작은 광채만큼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그에 따라 와플의 눈도 빛나기 시작했다.


"예, 예쁘다..."

"액세서리네요?"

"그래, 보다시피 큐빅 액세서리지! 평범하게 장사를 하던 내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 그게 뭔지 알겠어?"


남자의 음흉한 미소에 숀과 와플은 본능적으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선글라스 속 눈빛 속에 무언가 기분 나쁜 게 있는 것 같긴 했는데... 물론 지금 상황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당장 눈 앞에 내놓을 수 있는 해답은 하나였으니까.


"... 물건 팔려고요..?"

"맞아! 돈을 벌기 위해선 역시 물건을 팔아야겠지! 그치만 오늘은 왠지 장사가 잘 안되던 와중에 너희들이 눈에 쏙 들어왔단 말이야? 그렇담... 왜 하필이면 너희들을 불렀을까?"


교묘하게 무언가를 설득하려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의 말에 숀과 와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 교환 속에서, 일련의 답 하나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자신들을 부를 때 했던 말도 그렇고 자신들이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보니 나올 수 있는 그것. 혀를 끌끌 차는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자친구에게 장신구 하나 맞춰주지 못하는 남자친구는 무능하단 말이지. 남자의 힘! 그것은 곧 능력! 여자친구에게 예쁜 액세서리 하나 못해주는 게 말이 될쏘냐? 그래서 이 기회에 하나 맞춰보라고 과감하게 불렀단 말씀~"

"그,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웃기시네, 괜히 열 올리지 말고 한 번 쭉 살펴봐봐~ 비록 큐빅이지만 디자인 좋고 예쁜 것만은 진짜배기라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부담갖지 말고~"

"그, 그치만..."


굉장히 난처한 얼굴이 된 숀은 슬쩍, 와플의 눈치를 봤다. 이전 같았으면 남자친구란 얘기에 벌개진 얼굴로 맞서 부정을 했을 와플이었건만... 물론,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있긴 했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닌지. 하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이 내려가 시선을 멈춰있는 곳은 수많은 액세서리들이 빛을 발하는 그곳이었다. 아름다운 큐빅의 빛을 받는 와플의 눈동자도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에 숀은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저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안일한 생각만 하고 있던 숀에게 와플의 그런 모습은 새삼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록 기계로 만들어진 인형이라 할지라도... 그녀 또한, 예쁜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소녀였던 것이다.


그녀가 보여준 또 하나의 의외의 모습, 그런 아기자기한 모습에 숀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 와플, 뭐 하나 갖고 싶어?"

"!"


직접적으로 찔러 물어보자, 와플의 얼굴이 또 다시 빨갛게 물들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과실이 이런 느낌일까, 순식간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와플은 아닌척 고개를 홱 돌리며 특유의 표독스런 목소리를 낸다.


"돼, 됐거든! 어차피 있어봤자 계륵이겠지. 나 같은 인형에게 액세서리가 무슨 소용이겠어? 일만 잘 하면 되는 걸.."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요리는 손도 못대고 있잖아?"

"그, 그건 숀이 못하게 하는 거잖아!!"


쿡 터져나오는 웃음과 그에 반하듯 빽 터져나오는 언성. 파릇한 봄날의 기운 속에서 흐르는 두 상반된 소리 속에서, 마주치는 소년과 소녀의 눈빛이 그윽해졌다. 부드럽게 웃어주는 숀, 그것을 괜히 피하며 얼굴을 붉히는 와플.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을 직감한 숀이 좌판의 액세서리들을 가리키며 싱긋 눈웃음까지 지어주었다.


"괜찮아, 하나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 난 진짜로 싫다고 했다? 사줬는데 괜히 안어울린다고 후회하지나 마!"


경고조로 소리를 높인 와플이었지만, 다시 좌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재미있는 것을 볼 때 총명한 눈빛을 하는 것은 보았지만 이처럼 반짝이는 경우는 또 처음인 것 같았다. 아무리 자신을 인형이라 치부한다 해도, 그녀는 역시 한 명의 소녀였을 뿐이다.


'정말 알기 쉽다니까.'


왜 이렇게 흐뭇하기만 할까. 그렇게 생각하려던 중, 숀은 자신들의 목적을 다시금 상기해냈다. 그리폰으로 가서 와플의 기억에 대한 단서를 알아보는 것. 어쩌면, 운이 좋아서 오늘 하루만에 와플의 일을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역시, 그녀는 떠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들 무렵, 와플이 숀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민망한듯 부드러운 홍조를 띈 얼굴을 마주하는 숀은 순간적으로 조금 전까지 생각하던 모든 것들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 발간 얼굴을 가진 소녀가 손에 담고 있는 것은..


"저기.. 숀, 이거..."


이름없는 꽃 모양의 은장신구에 꽃술과 꽃잎을 따라 점점이 큐빅들이 박혀 반짝이고 있는 목걸이였다. 가느다란 은빛 체인은 그녀의 손에서 흘러내려와 부드러운 봄바람에 흔들렸다. 모양도 그렇고 의외로 굉장히 소박한 모양의 액세서리를 고르자, 숀의 표정에도 그 의문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몸에 내장된 심리파악 모듈이 제 기능을 발휘한 걸까, 숀의 어벙한 표정을 노려보는 와플의 눈매가 다시 날카로워졌다.


"뭐! 왜! 뭐 어때서!? 예뻐서 고른 것 뿐이거든?!"

"아니, 아무 말도 안했는데..."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는 숀의 모습이 우스웠던 걸까, 노점상 남자는 그저 재미있다고 크게 웃어대고 있었다.


"하하하하! 남자친구가 영 못써먹겠구만! 아무튼, 아가씨가 의외로 소박한 쪽 취향이었나보네? 여기 거울도 있으니 함 걸어봐봐. 남자친구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지!"

"흥..."


요란하게 떠드는 남자에게도 코웃음을 쳐준 와플이 조심스레 목걸이를 걸었다. 가느다란 하얀 목에 걸리는 은색의 사슬은 은빛 꽃의 무게를 받으며 날렵하게 늘어졌다. 그 사슬의 끝에 달린 꽃은 그녀가 입은 블라우스의 중앙에 자리했다. 볼록한 둔덕 한 가운데에 꽃이 피어난 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묘한 색기를 풍기는 그 모습에 숀의 얼굴도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얀 블라우스에 은색의 꽃이었음에도,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것이 왜 그렇게도 눈에 확 띄는 것인지. 꽃을 빤히 바라보다간 또 저질이라면서 화내지 않을까, 숀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괘, 괜찮네!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부끄러움 속에 감춰진 진담을 느꼈을까. 와플은 숀의 이런 행동에도 그저 좋다고 마찬가지로 얼굴을 화끈 붉혔다. 그녀의 손은 이미 가슴 한복판에 피어난 은과 큐빅의 꽃을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어루만지고만 있었다.


"어이구~ 아주 꽁냥꽁냥 잘들 노는구만. 골랐으면 계산이나 하시지?"


물론 남자의 한마디가 분위기를 깨며 둘을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목에 걸린 목걸이를 행복하게 바라보는 와플을 뒤로하고, 숀은 목걸이 값을 계산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나란히 멀어져가는 둘의 등 뒤에 대고 한참이나 손을 흔들어주는 남자. 세상 좋게 웃어주던 그의 선글라스에 소년과 소녀의 모습이 비추지 않게 됐을 때, 그의 싸늘한 눈빛이 검은 렌즈를 넘어 번뜩였다. 그리고 옷 안쪽에 부착해둔 무전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댔다.


"형님.. 아니 팀장님, 작전 완료했슴다."

-좋다. 이제 전 인원들, GPS를 추적하며 인형의 행동을 감시한다.-


팀장의 지시에 순차적으로 들려오는 응답을 듣던 남자가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자, 아주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없이 가벼운 목소리의 주인, 팀장의 말에 툴툴대기만 하던 그 양아치 사내였던 것이다. 모든 팀의 응답을 듣던 그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다시 무전기에 입을 댔다.


"그런데 왜 인형을 그냥 감시한다는 겁니까? 인원도 이렇게 많은데, 그냥 우와악 달려들어서 붙잡아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인형이란 게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 도심은 사람들 보는 눈이 많은데다, 방금 네가 보고했던 것처럼 인형 옆에 보호자가 있다면 더더욱 곤란해지거든. 그렇기 때문에, 인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한 후에 가장 허술할 때를 노려서 잡아가는 거다. 거주지를 알아낸다면 더욱 좋지. 그래서 네가 발신기를 인형에게 붙여놓는 게 중요한 임무였던 거야.-


팀장의 설명을 듣는 내내 양아치 사내는 좌판에 있던 귀고리 하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물건도 팀장의 설명과 같았다. 방금 인형에게 팔았던 그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내부에 GPS 발신기를 부착해둔 물건이었다. 그런 목걸이를 걸고 있으니, 이제 인형은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어디에 있건 자신의 위치가 항상 발각될 것이다.


'꼴에 여자애처럼 생긴 물건들이라고, 액세서리에 혹하는 걸 이용한 방식이라는 건가... 지식이 늘었다.'

-아무튼 너도 이제 GPS 패널이나 보면서 인형을 쫓아라.-

"늬예늬예~"


팀장과의 무전을 끝낸 양아치 사내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치밀하고 확실한 일처리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말이라도 좀 곱게 해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속으로 투덜거리는 양아치 사내는 팀장이 나눠줬던 장비를 꺼내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주변 지도에 점 하나가 찍혀 움직이는 게 보이긴 했지만... 이마에 핏대를 하나 둘씩 세우던 그는 애꿎은 화면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젠장,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냐..."

"어? 큐빅 액세서린가... 이거, 라임이에게 하나 사주면 좋아하겠는데?"


GPS 패널과 씨름하던 그의 귀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갈색 머리의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혼잣말과 함께 좌판을 둘러보고 있던 것이다. 그는 좌판의 액세서리들을 가리키며, 미소를 머금은 평온한 얼굴로 양아치 사내에게 질문을 한다.


"이거, 가격이 얼마나 되죠?"


그러나 팀장의 횡포와 쓸 줄 모르는 GPS, 그리고 수면부족으로 인해 예민해진 양아치 사내의 도끼눈과 성난 목소리만이 대답처럼 날아들 뿐이었다.


"오늘 장사 접었어! 꺼져!!"


그러고서는 좌판의 천으로 물건들을 홱 감싸며 좌판을 정리하고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난데없이 욕만 먹고 물건도 못 산 그 남자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소년은 생각했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데이트라는 걸까?


소녀와 함께 거리를 걸으며 음료도 마시고, 쇼핑도 하고, 점심도 먹고. 그 일련의 과정들을 되새기던 그는 여러가지로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여자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분명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랬던만큼, 그 반동 또한 컸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할 수록, 지금의 이 상태를 좋아해야만 할까. 불안감 또한 함께 커져가고 있었다.


'이제 늦지 않게 찾아가봐야할 텐데...'


그리폰 지휘부에 찾아가 상담을 해야한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카페 점원 인형이 알선해준 자리인데 너무 늦게 가는 것도 실례겠지. 하지만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숀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확률이 그렇게 높다고 할 순 없겠지만, 만약 와플이 그리폰의 인형이어서 한 방에 일이 해결된다면? 와플은 그리폰의 인형으로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그곳, 그리폰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을까? 엘리트 인형으로서 자신감 넘치던 아이였으니, 자신의 존재의의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숀은 그녀가 그리폰의 인형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람.. 기억을 되찾는 걸 도와주겠다고 큰소리 친 게 누군데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줏대도 없지.'


고개를 살살 저으면서 자책을 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쉬이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와플이 쓸모없는 인형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겠다고 큰소리 쳤음에도, 내심 그녀가 정말로 무능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만 마찬가지로 별 쓸모도 없는 자신의 곁에 있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가 없으면 자신 또한 아무런 쓸모 없는 인생으로서 또 다시 허무속에 갇혀버릴 것만 같았기에... 그런 몹쓸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꽉-


그때, 갑자기 와플이 숀의 옷소매를 꽉 잡아 끌었다. 소녀가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으며 잡아당겼지만 인형은 인형이라 그런지, 앞으로 나가려던 숀에게 덜컥 제동이 걸려버렸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새초롬한 표정으로 시선을 슬쩍 피하는 그녀가 있었다.


"조금 천천히 걸어.. 너무 빨리 걷잖아."

"엥..?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가려는 것뿐인데, 왜 갑자기 천천히 가자고 하는 것일까. 자신의 처우에 관련된 중요한 일일 텐데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고자 하는 걸까. 식사 건도 그렇고 액세서리에 관심을 가지며 쇼핑을 즐겼던 것도 그렇고...


'혹시...?'


한순간 숀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가정이 떠올랐다. 어쩌면 와플은 자신을...


'아냐,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 그럴리가 없지.'


하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자기 분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숀이었기에, 씁쓸하면서도 그런 결론으로의 도달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숀은 걸음을 늦추었다. 자신을 따라붙는 와플과 발을 맞춰주었다.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었지만... 조금은 욕심을 내본 것이다.


숀은 조금이나마, 와플과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다.


"이, 이러면 됐지?"

"흥... 진작에 맞춰줬으면 좋잖아. 센스 없긴!"


꽥 쏘아붙이는 와플의 말에도 숀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핏 들으면 질책하기만 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표정과 어투 속에 숨은 호흡을 듣는다면 진심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해도, 오랫동안 그녀를 보아왔기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


천천히 걷는 숀의 곁으로 와플이 좀 더 가까이 다가선다. 순간 놀라 입이 벌어지는 숀이었지만, 침착하게 긴장을 풀어주며 걷는 속도를 유지한다. 얼굴을 붉히는 와플이 숀의 옷소매를 살짝 붙잡고.. 숀은 그 팔을 와플에게 맡기듯 힘을 뺐다.


다소 특이한 형태로 나란히 걷고 있는 소년과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걷고만 있었다. 미묘한 시선이 스치는 둘 가운데에 흐르는 공기를 따라, 그들은 아주 천천히.. 거리를 걸어갔다.


툭-


"아앗, 죄송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쪽에 정신이 팔려 한눈을 팔고 있었던지라,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치는 것으로 그 분위기는 와장창 깨져버렸다. 갑작스럽게 어깨에 가해진 충격은 숀의 정신을 퍼뜩 차리게 만들었고, 매사에 쭈그러져있던 그의 마음가짐은 사과가 자동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상대는... 전혀 호락호락해보이지 않는 상대였다는 게 문제였다.


"......"


오른쪽 어깨에 커다란 키보드 가방을 매고 있는 장신의 사내. 바로, 숀이 일하던 그 카페에 갔었던 그 남자였다. 기타 가방을 맨 갈색 머리의 여자와 함께 걷던 그는 선글라스 너머의 눈으로 숀과 와플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옷에는, 왼손에 들고 가던 커피잔에서 튄 커피가 묻어 갈색의 얼룩을 그려낸지 오래였다. 그것을 본 숀의 얼굴이 더더욱 큰 당혹감에 휩싸였다.


"아아아! 저, 정말 죄송해요!! 어, 어떡하지? 세탁비라도 드려야..."


안절부절 못하며 찡찡거리는 숀을 못마땅한 듯 쳐다보는 와플. 부딪친 남자는 이런 둘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와플의 오른손에 있는 타투에 시선이 닿았다. 잠시 그것을 확인한 순간, 무감정하던 그의 얼굴이 분노로 크게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역변이라고 부를 정도로, 급격한 변화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내동댕이 쳐버리며, 그 손 그대로 숀의 멱살을 확 잡아 올렸다.


"이 꼬맹이가! 이게 무슨 짓이야!!"


190이 넘는 키를 가진 남자가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로 멱살을 잡아 올리자, 숀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당혹감에 무어라 말도 못하는 숀과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버린 와플은 아랑곳 않고, 남자는 이전까지 보여줬던 딱딱하고 경직되어있던 모습이 가짜라도 되는 것처럼, 터져나오는 분노를 주체 못하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선글라스 안쪽으로 희미하게 비춰오는 그 험악한 눈길에 숀은 식은땀까지 주르륵 나오고 있었다.


"저, 정말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구요! 세탁비랑 다 드릴테니 제발 이 손 좀 놔주세요!!"


와플의 앞이었지만 체면이건 뭐건 아무것도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저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고 싶은 숀은 울상을 지으며 두 손을 모아 빌고 또 빌었다. 그럼에도 남자의 분노는 사그라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 자식이, 이 옷이 어떤 옷인지 알기나 해? 지금 공연하러 가는데 의상이 이렇게 되버려선 뭣도 안된다고!"

"히이이... 제, 제발 용서해주세요..."


기어이 눈물까지 짜내면서 용서를 구하는 숀. 와플은 안절부절 못하며 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도 잘 모르는 듯 했지만... 남자는 기어이 작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아, 이 자식이 말로 해서는 안되겠군.. 정신을 개조시켜줄 필요가 있겠어."

"넷? 으아아!!"

"숀!"


남자는 커다란 키만큼이나 힘도 우악스러웠다. 지금껏 자신을 괴롭히던 점장의 굵은 팔뚝으로부터 느껴지는 괴력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멱살을 잡힌 숀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근처의 골목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은 구경만 난 채로 멀뚱히 서있던 가운데, 오로지 와플만이 큰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남자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형님.. 아니 팀장님, 지금 웬 양아치 같은 것들이 꼬맹이랑 인형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데요? 키 큰놈이 엄청 열받은 것 같아 보이는데..."

-그럼 일단 대기하고 기다려. 괜히 어설프게 따라 들어갔다간 의심만 받을 거다. 어차피 좀 쳐맞고 다시 나올 테니, 느긋하게 추적해도 괜찮아.-

"옙, 그럼 말씀하신 대로..."




"이봐, 잠깐! 이게 무슨 짓이야? 사과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와플이 뭐라 하건, 남자는 골목 깊숙한 곳까지 숀을 질질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숀은 어떻게든 남자의 손아귀를 풀려고 했지만 그의 단단한 손은 유약한 소년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봐! 그만 하랬잖아!!"


결국 보다못한 와플이 달려들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의 힘이 숀보다 더 강하기도 했고, 폭행을 구사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인간인 남자를 붙잡아 손아귀를 푸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다지 깊은 생각 없이 달려드는 그녀의 눈에는 오로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숀을 구해야한다는 마음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턱- 콰앙!!


"꺄악!!"


갑자기 또 다른 상황이 개입됐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뒤를 따르던, 기타 가방을 매고 있던 갈색머리의 여성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더니 뻗어가던 와플의 손을 낚아채 등 뒤로 꺾어 벽으로 밀어 붙이며, 와플을 한순간에 제압해버린 것이다.


"와, 와플!!"

"당신.. 당신은 또 뭐야?"


당혹감 서린 숀의 외침과 악에 받친 와플의 언성만이 텅 빈 골목에 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남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소년과 소녀를 붙잡은 채로 주변을 살펴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특히 남자의 경우는 방금 전까지 불같이 화를 냈던 게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격히 냉정해진 모습에 위화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두려움과 당혹감에 떨던 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퍼뜩 스쳐지나갔다.


'설마... 인권단체?'


인형들을 붙잡아 파괴하거나 팔아넘긴다는 사람들의 집단에 대한 소문이 갑자기 머리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와플의 모델은 인터넷에서도 정보가 많이 나돌 정도로 이름있는 모델이다. 그러니 와플의 외형 정보를 모으는 것은 어려울 것도 없을 것이다. 그것에서 시작된 상상의 연장은 조금 전의 사고도 의도적으로 접촉해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커졌다. 숀의 뇌내에서 펼쳐지는 가설들은, 아무리 그래도 인형인 와플을 단숨에 제압할 정도의 인력을 데리고 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어, 점차 진실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와플을 잡아다가... 팔아넘기려고...?'


그곳에 생각이 미치자, 숀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조금 전까지 두려움으로 뛰던 심장과는 조금 다른 고동이었다. 지금 이대로 와플을 잃었다간, 그녀의 서글픈 현실이 더욱 비참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숀의 눈에도 커다란 분노가 서렸다.


저 가여운 인형 소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없다는 결심은, 소년을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에잇!"

"윽!?"


숀이 어설프게나마 발을 뻗어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 찼다. 아예 대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남자가 당황한 틈을 타 손아귀를 풀어낸 숀이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의 목표는 와플을 붙잡아두고 있는 갈색 머리의 여자였다. 제 아무리 강한 상대라 하더라도 온 체중을 실어 돌격하면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 그러면 와플을 붙잡는 힘이 약해질 것이고, 그 틈을 타 와플에게 도망치라고 하면 된다.


이론상으로는 정말 완벽한 작전이었다.


"와플에게서 손 떼!!"


나름 멋진 대사까지 날리며 우다다 돌격하는 숀. 이후에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 없었지만... 와플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내하리라는 결심이 저절로 새겨지고 있었다. 숀은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은 아주 멋있는 게 아닐까, 하고.


... 문제의 그 남자가 뒤에서 후드집업의 옷덜미를 낚아채는 일만 없었으면 정말 멋있었을 것이다.


"켁!"


옷덜미가 붙잡힌 통에 달려나가던 숀은 목이 덜컥 걸리며 강제로 제동이 걸려버렸고, 그대로 휘청거리며 바닥에 철푸덕 엉덩이를 찧고 말았다.


"쇼, 숀! 뭐 하는 거야!?"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지만, 너무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숀에게 결국 한 소리 해버리는 와플. 그런 소리를 듣는 숀은 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면서도, 심기를 거슬렸을 인권단체로 추정되는 남자의 폭행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둘 다, 일단 진정하도록 해라."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숀은 다시 시야를 틔우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남자를 반대로 올려다봤다. 옷덜미를 붙잡은 남자는 진중한 얼굴로,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다. 선글라스까지 벗은 그의 얼굴은 숀이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굉장히 진중하면서도 올곧은 기운이 담긴 그의 눈빛에 숀은 오히려 당황하여 벌떡 일어섰다.


"리엔필드, 이제 놔줘라. 여기쯤이면 괜찮은 것 같다."

"네."


리엔필드라 불린 갈색머리의 여성도 힘이 담긴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와플을 붙잡은 손에 힘을 놓았다. 와플은 자신의 속박이 약해진 것을 느끼자마자 그녀를 밀치고는, 바닥에 널부러진 숀에게 다가갔다.


"숀! 괜찮아?"

"난 괜찮아.. 와플은?"

"나, 나도... 그, 그러니까 걱정할 짓을 왜 하는 거야?! 어설프게 반격하려는 건 또 뭐였고!"


자신도 괜찮다는 말을 하려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새빨개진 와플은 숀의 행동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따박따박 귀를 따갑게 찌르며 들어오는 질책에 와플을 구해주려고 했던 숀은 억울하기만 했다. 자신의 마음을 호소해도 와플은 부끄러운 건지, 오히려 더욱 화를 내기만 한다. 그렇게 아웅다웅거리던 중, 둘은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의 존재를 다시 떠올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와플을 자신의 뒤로 돌려 보호하는 숀이 이를 뿌드득 간다.


"둘 모두 진정해라. 지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으니까."

"도대체 뭔데 이러는 거예요? 당신들, 혹시 인권단체 아냐? 와플을 잡아가서 막 그렇고 그런 짓 하려는... 맞지?"


이번에는 확실하게 외쳐주는 숀. 비록 두려움과 긴장감에 손발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의 그런 태도에 와플은 조금 전까지의 부끄러움이나 화를 잊어버렸다. 오로지 지금, 자신을 감싸주는 숀의 행동을 하나하나 마인드맵에 새기며 느끼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그의 태도에 리엔필드라 불린 여성도 선글라스를 벗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을 보여주었다.


"오해할만한 상황이긴 했습니다만, 방금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노리는 진짜 인권단체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으니까요."

"진짜... 인권단체...?"


그 말에 숀과 와플은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진짜는 또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함에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둘을 보며, 남자는 옷 품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지갑이 아닌, 얊은 수첩 형태의 물건을 꺼내고서는... 그것을 펼쳐, 숀을 향해 뻗었다. 단숨에 가까이 다가온 수첩의 내용을 보는 숀과 와플의 얼굴은 여러가지 감정에 휘말리며 경악을 드러냈다.


그의 단정하고도 올곧은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그에 따라 적혀있는 많은 문구들. 그것을 완전히 숙지한 그의 입이 열리며,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린다. 아주 유명한 어느 PMC의 로고 자수가 놓아진 붉은 제복을 입고 있는 사진속의 남자는, 사복을 입은 채로 그들의 눈 앞에 서있었다.


"그리폰 & 크루거 소속 전술지휘관, 미하일.. 미하일 손체프다."

"저는 미하일 지휘관님의 부관 전술인형인 리엔필드입니다."


그리폰 & 크루거. 둘의 소개를 들은 숀과 와플의 얼굴에는 경악과 기쁨, 당혹감으로 복잡하게 물들어갔다. 무슨 조화였을까, 마침 찾아가려던 그리폰의 사람이 눈 앞에 있다는 사실에 숀과 와플은 별 다른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부터 해야할까.. 아니, 그 전에 그가 정말로 그리폰 관계자가 맞는지 의심도 들었고 설령 맞다 해도 어떻게 귀신같이 자신들을 찾아온 건지, 왜 그런 상황을 만들었던 건지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경계심이 다시 피어오르려는 그때, 미하일이 먼저 손을 뻗었다.


"험하게 다룬 건 사과하마. 하지만 감시하는 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가 연기...?"

"연기를 전공한 적이 있었다."

"확실히,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긴 했네요..."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며 제대로 불량배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때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쑥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하일을 보는 숀과 와플의 얼굴에는 더욱 큰 황당함이 서렸다. 그의 곁에 선 리엔필드가 다시 입을 연다.


"어쨌든, 갑작스럽겠지만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인간분도 함께 가시죠."

"엣? 설마, 와플을 데리러 온 거예요?"


당황한 숀의 그 말에 와플은 화들짝 놀랐다. 숀이 봤을까, 애써 내색하지 않는 듯 했지만... 그 얼굴에 감정이 서리는 것까지는 어찌 하기 힘들었는지, 결국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래.. 너는 와플이라고 부르는 모양이군. 아무튼, 우리는 비공식 의뢰를 받고 그 인형을 그리폰으로 다시 데려가기 위해 온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사실 저희도 그리폰을 찾아가려고 하긴 했는데요..."

"일단 이동하도록 하지. 이렇게 오랫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면, 의심하고 쳐들어올 수 있다."


반신반의였다. 갑자기 이렇게 다가와서 위협적인 행동을 하다 정색하면서 그런 소릴 하는데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본인 입으로 연기라고 했으니 지금 이 상황도 믿기 힘들기만 했다. 하지만 그리폰 지휘관 수첩을 거리낌없이 보여주며 자신을 증명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인형을 부관으로서 곁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권단체는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었기에... 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플은 최대한 감싸주며.


"숀..."

"그런데 데리러 왔다는 건 역시, 와플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가요?"


그것만은 짚고 넘어가고자 했다. 이 넓은 도시에서, 어딘가에 동종 인형이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와플 하나만을 목표로 찾아올 수 있었는지. 그렇다는 건, 와플의 과거는 결국.. 그리폰의 전술인형이었다는 답이 나오는 것이었기에. 그렇기에, 숀은 알려고 했다. 와플도 알아야했다.


정말로...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거였을까?


둘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그 답을 갈구하며, 숀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미하일을 올려다봤다.


"... 가면서 얘기해주마. 어떻게 상황이 여기까지 온 건지."


커다란 키보드 가방과 기타 가방을 맨 등이 숀과 와플에게 보여졌고, 그들은 골목의 안쪽 길로 들어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숀도 와플도 서로 눈빛을 한 번 교환하고는... 말 없이, 손짓으로 인도해주는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형... 아니 팀장님, 벌써 10분이 넘었슴다. 아직까지도 쳐맞고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아요?-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볼멘소리에 팀장의 이가 까드득 갈렸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상태에서 중요한 작업을 하는데 계속되는 징징거림에 평정심이 사라져갔다. 하지만 일단 우두머리로 앉아있는 만큼, 최대한 화를 억누르는 무거운 목소리를 무전기에 흘려보낸다.


"입 좀 닥치고 조금만 더 기다려. 10분째 쳐맞고 있는 걸 수도 있잖냐."

-... 넵.-


팀장의 으름장에 양아치 사내도 눈치를 느낀 모양이다. 다시금 조용해진 무전 덕분에 팀장은 무거운 심호흡으로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간만에 찾아온 좋은 기회였다. 어마어마한 거액의 거래가 가능한 물건을 잡기 위해선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이 중요한 사업을 사소한 스트레스 하나로 날려먹을 수 없다는 집념이, 그를 무서우리만치 차분한 모습으로 만들어놓았다.


그 순간, 그의 곁에 앉아있던 부하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 목표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오는 건가?"

"아뇨... 골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고 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팀장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양아치 사내가 보고했던 그 키 큰 남자, 우연히 부딪쳐 시비가 붙었다고 하기엔 너무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머릿속으로 그려진 간단한 계산이 맞아 떨어진 순간, 팀장의 무거운 목소리가 다시 무전을 타고 퍼져나갔다.


"근방 인원들부터 시작해 해당 골목을 포위해나가라. 절대로 놓치지 말도록."



=====


[민수용 인형 시리즈 링크]


=====



원래는 조금 쟁여뒀다가, 빵갤과 함께 묻혀버린 와플양 이야기까지 복구하면 올리려고 했던 와플양 5파트야.


원래 링크들도 다 날아갔겠다, 그냥 매 편마다 링크를 할까.. 했지만 역시 그냥 한꺼번에 묶어두는 게 낫겠지 싶어서 그렇게 해본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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