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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양경규 : 의정 100일, 로자와 체트킨을 생각하며

진붕이(211.46) 2024.05.09 13:09:19
조회 205 추천 10 댓글 3
														

사람 2명의 이미지일 수 있음



100일, 의원직을 승계한 지 100일이 되었네요. 뜻밖의 100일이었습니다. 몇 선씩 하는 의원들에게야, 아니 단임이라도 4년을 하는 의원들에게야 100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저에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턱없는 욕심이 아니었나 싶어 스스로 화끈 낯이 붉어집니다.

등원인사를 위해 처음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 생각난 사람은 클라라 체트킨이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발의한 독일의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스팔타쿠스단, 공산당을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 말입니다. 클라라 체트킨 같은 결기를 갖고 싶었습니다.

1932년 8월 30일, 독일의 의사당은 1개월 전 독일 의회선거에서 드디어 원내 제 1당이 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나치라고 부르는 당의 의원들로 가득했습니다. 1920년대 내내 한 자리수를 전전하던 나치는 인종주의와 전체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폭력과 테러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확장하면서, 이미 이탈리아에서 집권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전범으로 삼아 드디어 독일을 지배하는 정당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성 정치세력의 무능력과 독일민중의 고통을 외면한 안이함은 나치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나치의 부상은 독일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었지만 민중은 법과 질서를 이야기하고 패전의 울분을 자극하며 철저하게 배외주의를 표방한 나치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나치의 서슬 퍼런 폭력과 압도적인 광기에 뭇 정치세력들은 주눅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히틀러가 총리가 되는데는 6개월의 시간이 더 지나야 했지만 새 국회의 개원일, 나치의 기세는 등등했습니다.

가장 연장자가 명예의장을 맡아 개원국회의 개회사를 한다는 독일의회의 전통에 따라 단상에 선 사람, 그가 바로 75세의 클라라 체트킨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반전운동으로, 여성해방운동으로 단련된 그에게 의사당을 메운 나치의 위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불굴의 여성, 역전의 사회주의자 클라라 체트킨은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나치당의 의원들을 향해, 그리고 기성정치세력을 향해 날 선 검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몰락해 가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광범위한 노동대중에게 끔찍한 고통을 가하고 있는 상황.... 사회복지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상태에서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굶주리고 있는 마당에 앞으로 실업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산업합리화가 급격하게 확대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더욱 착취당하게 될 것이며..... 임금수준은 떨어지고 농민과 소상인의 몰락은 가속화될 것이다....”

“내각은 나치 돌격대의 깃발을 든 파시스트들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였고 이로 인해 벌어진 지난 수주 간의 살육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의회는 헌법을 어기고 의회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정부를 타도해야 한다. 의회는 대통령과 각료들을 헌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정에 세워야 한다”
“현재의 비참한 고통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은 그들의 완전한 해방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환상을 불러 이 투쟁에 수의를 입혀서는 안 된다.....파시즘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노동자의 연대전선이 필요하다..... 이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필연성 앞에서 그 모든 억압적.분파적 정치는 겸손해야 한다.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이여, 파시즘에 맞서는 연대전선을 만들자.....”
세상을 다 얻은 듯 위세를 부리며 앉아 있던 나치의 의원들조차 침묵하게 한 이 결기는 노동자 민중을 향한 그의 진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봅니다. 100년 가까운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면 과장일까요? 조금 비틀어 보면 지금 우리의 정치 지형, 오늘 우리의 한국사회가 겹쳐집니다. 노동자와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며 거침없이 질주하는 보수양당과 속절없이 추락하는 민생을 보게 됩니다. 아, 물론 보수양당을 그 끔찍한 나치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클라라 체트킨을 떠올린 것은 진보정치의 결기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쏟아 놓은 말, 어쩌면 지금 진보정당이, 정의당이 꼭 해야 할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뿐, 저에게는 그럴만한 결기가 없었습니다. 마음은 좀 더 분명하게 좀 더 통렬하게 의회권력을 향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보수양당을 향해 거리가 아닌 의사당 안에서 소리쳐야 했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저 노동자들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국회를, 하늘에서 땅에서 투쟁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그 절절한 소리를 듣는 국회를 만들자는 소심한 이야기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100일 내내 ‘좀 더 분명하게 좀 더 단호하게’를 주문처럼 읊조리며 스스로를 채근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나 늘 행동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시대의 뒤안길에 숨죽이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이런 저런 수사로 모면해 온 시간들이었다는 자책도 합니다. 이제 20일 정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제게 남은 시간이 어찌 의원의 임기만이겠냐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뜻밖의 100일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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